문학방/동화

냉이가 시집간대요

웃는곰 2008. 5. 5. 22:18
 

냉이가 시집간대요

따사로운 봄볕이 평화스럽게 내리는 오후

파란 풀밭에 배를 깔고 누웠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풀피리 여운 같은 아주 작고 가냘픈 소리

"아찌, 아찌."

"누구냐?"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실같이 가는 목에 별보다 작은 하얀 냉이꽃이

손짓을 했습니다.


"너였구나?"

"저 오늘 시집가요."

"네가 벌써?"

이때 다른 소리가 끼여들었습니다.

"아자씨, 아자씨!"

"응? 넌 누구냐?"

"저요. 꽃다지."

어느새 피었는지 접시보다 납작한 가슴에

손을 내밀어 보이는 꽃다지도

노란꽃을 들고 있습니다.

"응, 너도 피었구나."

"아자씨, 저 오늘 장가가요."

"응? 그래, 벌써?"


노랑나비 하나가 부채질을 살랑살랑하면서 날아와 인사했습니다.

"아저씨, 안녕?"

"응, 노랑나비구나."

"저 오늘 중매 많이 했어요."

"잘했다. 네가 아니면 꽃들이 어떻게 결혼을 하겠니?"

"아저씨, 저도 장가 보내주세요."

"너도?"


내가 놀라자 냉이 꽃이 작고 맑은 소리로 웃었습니다.

"호호호, 나비도 장가를 가나요?"

꽃다지도 납작한 손바닥을 치면서 웃어댑니다.

"헤헤헤, 나비도 장가가 가고 싶다고?"


나는 꽃들과 웃다가 나비를 향해 말했습니다.

"기다려라. 내가 개나리를 찾아가 색싯감을 알아보아야겠다."

"아저씨, 제가 찾아볼게요."

나비는 날개를 활짝 펴고 산중턱에 환하게 웃고 있는 개나리 꽃 밭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풀밭에는 여기저기서 웨딩마치 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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