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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사는 값

웃는곰 2008. 5. 5. 22:15
 

하루를 사는 값

부자가 죽게 되었다.

세상에서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오만하게 살던 그였지만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기세가 등등할 때는 찾지 않던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 조금만 더 살게 해 주십시오. 네?"

하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하루만 더 살게 해 주랴?"

"하루는 너무 짧습니다. 며칠만 더 주십시오."

"안 된다. 그럼 지금 죽어야겠다."

"하나님, 그러시면 하루만이라도 더 살게 해 주십시오."

"넌 무엇으로 나에게 보답하겠느냐?"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네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

"예금한 돈이 500억 원입니다."

"그 돈의 반을 다오."

"네? 반씩이나요?"

"반은 너의 하루를 위해 남겨주는 거다. 그거 다 쓰고 가거라. 못 다 쓰면 내일 이때쯤 너를 데리러 올 거고 다 쓰면 일년 뒤에 오마."

"정말입니까?"

하나님은 입을 다무셨다.


부자는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번 돈인데 그걸 반이나 아무것도 도와 준 것 없는 하나님한테 준단 말인가. 악독한 하나님.'

부자는 남은 24시간을 어떻게 쓸 것이며 돈은 어떻게 써야 하루에 다 쓸 수 있는가를 궁리했다. 자지도 말고 쉬지도 말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쓰는 방법을 생각했지만 하루에 쓰기에는 너무 큰돈이었다.

'은행에서 돈을 찾아 쓰자면 부동산을 사는 것이 목돈 쓰기에 적당하다. 집을 몇 채나 사야 되는가? 5억 원짜리 50채를 사야 한다. 그러나 50채는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사며 내가 죽은 뒤엔 누가 가질 것인가. 식사는 평생 가보지 못한 일류 요정으로 가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비싼 술에 미녀를 끼고 현 시가보다 10배씩 주고 먹자. 그렇게 비싼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제대로 될까?  4끼 먹는 데는 얼마나 들까? 아무리 비싼 집에서 먹어도 10억을 쓸 수는 없다. 어디다 돈을 다 써야 하루에 다 쓸 수 있단 말인가?'

부자는 1년이라도 더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 쓰기만 하면 1년을 더 살게 해 주시겠다고 했는데 하나님을 믿어도 될까? 믿어야겠지? 하나님마저 못 믿으면 누굴 믿을까. 사람은 평생 겪어 보아도 믿을 것이 못된다는 건 알았지만 하나님과는 첫 거래니까 믿어도 되겠지. 그러나 어떻게 하여 다 쓴다?'

부자는 고민 끝에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은 누구며 그만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기로 했다. 친한 친구를 만나 보았지만 친구도 믿을 상대가 아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교회 십자가를 발견했다. 하나님과 한 약속이니 교회로 가서 목사님께 물어 보기로 했다.

"목사님 의논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은 부자의 이야기를 다 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큰돈을 하루 사이에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슨 묘안이 없을까요?"

"한 가지 있기는 한데……"

"있습니까?"

"있기는 한데 어렵습니다."

"1년만 더 살 수 있다면 무슨 짓은 못 하겠습니까?"

"좋습니다. 말씀드리지요. 전액을 교회에 헌금하십시오. 제가 헌금으로 받았다는 영수증을 해 드리겠습니다."

"헌금을 하라고요? 반은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는데 반은 교회에 바치면 모두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까? 그건 좀……"

"그러시면 할 수 없지요. 사람은 원래 맨손으로 왔다가 자기 재주껏 하나님께 돈을 빌려 가지고 살다가 돌려드리고 가는 것이니까요. 내일 가셔도 다 두고 가시는 것이고 일년 뒤에 가셔도 당신 것은 없습니다. 잘 판단해서 하십시오."

"목사님도 하나님도 너무 한 것 아닙니까?"

"그럼 하루만 마음껏 사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의 약속과는 다릅니다. 그럼 이만."

"잠깐만요. 헌금을 하고 영수증을 받으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실까요?"

"물론입니다."

"내일 하나님께 확인하고 헌금 영수증을 받으러 오겠습니다."


다음날 돈을 다 썼다는 증거물을 준비해 가지고 가지 못한 부자는 시커먼 흙덩이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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