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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내가 만난 소크라테스

웃는곰 2008. 5. 5. 22:30
 

내가 만난 소크라테스

노란 은행잎이 떨어져 차곡차곡 쌓이는 오후

바다 속보다 진한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안녕하시오?"

그 사람은 참으로 못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툭 튀어나온 눈

구겨지고 풀어진 사자코

아무렇게나 생긴 입술

여자하고 살기는 참 힘들게 생긴 얼굴이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이시지요?"

"그렇소이다. 어떻게 한눈에 알아보았소?"

"원체 유명하신 분이신 데다가 보기 드물게 못 생긴 얼굴 때문이지요."

"내가 그렇게 못 생겼소?"

"잘 생긴 편은 아니지요. 너무 솔직해서 죄송합니다."

"솔직한 건 죄가 안 되오. 솔직하지 않은 것이 죄가 되오."

"선생님은 기원 전 469년에 나서 399년에 가셨으니 70세에 가셨는데 올해로 2473세가 되시나요?"

"그렇소이다. 당신은 몇 살이오?"

"65세올시다. 선생님보다 2408세가 아래지요."

"참 좋은 나이오."

"선생님은 지금 어떻게 지내시나요?"

"말도 마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 아오?"

"네 압니다."

"개똥보다 더 더러운 게 뭔지 아오?"

"그보다 더 더러운 게 있습니까?"

"마누라요. 우리 마누라는 개똥만도 못한 여자였소."

"너무 심하신 말씀이십니다."

"심한 게 아니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런 마누라도 좋으니 이승에만 살게 해 준다면 소원이 없겠소."

"어디서 어떻게 사시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지옥에서 고생을 한다오. 악처하고 살아도 좋으니 여기 살고 싶소. 내 아내가 악처였지만 그런 마누라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지옥에 가서야 알았소."

"선생님같이 훌륭한 분이 지옥으로 가셨다고요?"

"그렇소. 나는 평생에 그럴 듯하게 세상을 농락했고 아내를 속으로는 미워하면서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였소. 그러면서 결정적인 실수를 하였소."

"선생님도 실수를요?"

"그렇소, 나는 신이 있다는 것과 죽으면 영혼이 어디론가 간다고 생각했지만 보이지도 않는 신을 상대로 경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으로 생각했고 나의 철학만 믿고 있었소."

"그게 무슨 실수입니까?"

"그게 바로 죄였소."

"신에게 경배는 하지 않았지만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지는 않았습니까?"

"인정했소. 그러나 내 철학을 앞세우고 확신 없이 신의 존재만 인정한 것이 실수였소. 나 혼자만 그랬으면 좋은데 내 말을 믿고 철학을 한답시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 지옥으로 갔다는 것이 더 큰 죄였소. 눈에 보이는 아버지는 믿으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조상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선조를 존경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었소."

"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신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관대하지도 않고 너그럽지도 않은 분이오. 신을 믿고 경배하고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 자에 대하여는 추호의 용서도 없는 분이오. 내 말 잘 새겨들으시오. 게다가 사단은 하나님을 속여가며 사람을 악한 쪽으로 끌고 가고 있소."

"하나님과 사단은 어떻게 다릅니까?"

"사단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면서 하나님의 눈을 피해 신형 악성 세균을 개발하여 사람들에게 뿌려대고 사람들이 피해를 입으면 하나님은 새로운 항생제를 만들어 사람을 구하는데, 사람들은 사단이 하는 일에는 협조적이면서 하나님의 가르침에는 비협조적이고 거부반응을 보이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소."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다시 불이 타는 지옥으로 가야 하오."

"거기서 구원의 길은 없습니까?"

"없소. 당신이 여기 있으니 가서 몇 마디 이야기를 하고 오라 하여 잠깐 나올 수 있었소. 고맙소, 당신과 잠깐 만나 이야기하는 이 순간이 내게는 영원히 오지 않을 행복한 순간이오. 당신은 신 앞에 경배하고 그 가르침을 잘 지키시오. 이후에 나와 지옥에서 만나게 되면 내가 당신에게 나보다 몇 천 배 잔혹한 고통을 당하게 할 것이오. 나 가오."

그는 추한 모습에 걸음걸이가 바람에 흔들이는 거적 같은 모습으로 지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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