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 323

허당에 빠진 국자 / 51회-66회

미행자다음날도 허당은 고서 한 권과 다른 책 아홉 권을 묶어 들고 정거장으로 나갔다. 맨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이 그 신사였다. 허당이 먼저 인사했다.“선상님 안녕하세유?”“반가워요. 이렇게 날마다 만나서 좋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오시니 고맙고 더 좋소.”신사는 허당이 내미는 고서를 받아들고 흡족한 얼굴로 봉투를 건네주었다.“이게 뭐여유?”“오십만 원이오.”“책을 거저 드려도 되는데 날마다 돈 받기가 그러네유.”“그렇지 않아요. 내가 찾는 책을 구해다 주시는 것만도 고마운데 거저 받을 수가 있나요. 난 갈 데가 있어서 먼저 저쪽으로 가겠소.”“안녕히 가세유.” 오늘도 사람들한테 받은 돈 9만원을 봉투에 같이 넣고 차에서 내린 할머니를 부축해 드리면서 말했다.“차타고 다니시기 대간하시쥬?”“그려, ..

문학방/소설 2025.04.16

학교 가는 길

학교 가는 길 2학년 때 다니던 십 리 학교길 걸어도 걸어도 끝없는 산길 질퍽질퍽 흙 길 걸어 언덕 넘으면 옹달샘이 졸졸졸 물 한 모금 떠먹고 고갯길 꼬불꼬불 울퉁불퉁 자갈길 바위 돌아 물 흐르는 계곡 신발 벗고 물 건너 문둥이가 나온다는 진달래 숲 길을 겁먹고 뛰어 가던 길 고갯길 넘어서면 논두렁 밭두렁 꼬불꼬불 좁은 길 그 길 끝을 가로막는 산당 있는 쇠꼴고개 돌멩이 자갈 길 뒤뚱뒤뚱 넘으면 아득히 들판 멀리 학교 보이고 고개 비탈 내려가면 심술 궂은 시냇물 바지 걷고 물건너 산모퉁이 돌아서 다리 아파 못 가겠네 청보리밭 둑에 앉아 바라보던 학교 지붕 온 마을이 초가 지붕 학교 지붕 기와 지붕 선생님이 기다리며 물으시던 한 마디 다리 아프지? 아파도 부끄러워 고개 젓던 내 얼굴 ..

반쪽 장군 이야기 (총 12편 중 / 1-3까지)

1. 장사 반쪽이 아주 멀고먼 옛날 옛적 깊은 산골에 반쪽짜리 총각이 있었습니다. 다리도 하나, 눈도 하나, 귀도 코도 반쪽. 그런 사람이 키가 7척 장신에 힘이 장사였습니다. 그가 어디를 갈 때는 한 다리를 접었다 쭉 펴면 몸이 구름 위로 치올라 십리 거리에서 내렸습니다. 그가 높이 떴다가 내릴 때는 천둥소리가 났습니다. 하루는 반쪽총각이 깊은 산길을 가는데 가만히 보니 길가에 커다란 정자나무가 바람도 안 부는데 마치 누구한테 절이라도 하듯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 참 이상도 하다. 나무가 꾸벅꾸벅 절을 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한 반쪽이가 정자나무 가까이 다가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젊은 사람이 정자나무 아래서 자고 있는데 콧바람이 얼마나 센지 후하고 내쉬면 나무가 ..

문학방/소설 2025.04.15

옆 사람 16. 기분 나쁜 여자

옆 사람 16. 기분 나쁜 여자 내가 수원으로 이사하여 무궁화호로 퇴근한 지가 6개월이 넘었다. 한 달에 20일씩 6개월 120일, 옆자리 동승자가 120명이다.  120명 중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이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이 와서 곁에 앉을 때마다 받은 인상이 다르다. 마스크를 쓰고 눈만 보이는 옆 사람, 남자들의 경우 눈썹과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맘씨가 보였다. 예를 들면 눈썹이 M형인 남자는 너그럽고, W형은 거칠고, ―형은 친절한 편이었다.  눈매도 이렇다. M형은 사악하고 V형은 사납고 ―형은 친절하면서도 간사한 편이었다. 여자들은 또 이렇다. 대개의 여자들은 눈썹이 초승달 형이 많고 가끔 M―형이 있다. 그리고 눈매는 거의가 ⁃형이고 어쩌다 V형이 있는데 V형이 신경 쓰였다. 여자 승객 60명..

문학방/수필 2025.04.12

대왕 람세스와 집시를 읽고/감상문

I think about[스크랩] 심혁창의 "대왕 람세스와 집시"를 읽고..감상 / 흐르는~ 샘2009. 5. 15. 22:50  댓글수  공감수  * 이 글은 내가 지은 판타지 동화 를 어떤 독자가 읽고 독자평을 카페에 올린 글을 발견하여 여기에 그대로 옮깁니다. 저작자인 나로서는 이런 글을 보면 고맙고 힘이 생깁니다. 흐르는샘님 감사합니다.     고대박물관의 유리관 속에 있는 오래된 '해골'을 상상하며 "나는 너의 미래 모습이고 너는 나의 과거 모습이다"라는 번쩍이는 영감을 받고 착안한 '판타지' 동화다. 저자는 해골이 된 '대왕 람세스'와 사막을 떠도는 '집시'와의 대화를 통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생생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첫째, 복음을 포장한 '메시지'라는 점에서 기독교사적 '천로역정'과..

문학방/소설 2025.04.12

잃어버린 사랑

잃어버린 사랑 들에 핀 찔레꽃은 나비에게 맡겨야 한다. 찔레꽃 향기는 바람에 맡겨야 한다 하얀 버선발로 박꽃같이 웃음 짓던 그 사람은 곱게 보내야 한다 사랑은 만지면 때 타는 꽃과 같은 것. 사랑은 멀리서 그림으로 그리고 외로움으로 달래는 슬픔이어야 한다 내가 사랑한 당신은 늙은 모습으로 오지 않고 꽃 같은 젊음으로 마음에만 와야 한다.

문학방/시 2025.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