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날개 슬픈 날개 길에서 키가 채송화처럼 납작하고 주름살로 오그라든 할머니가 길을 물었다 쪼그라든 입술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가 목소리보다 컸다 허리를 숙이고 내려다보며 대답하자니 키가 훤칠한 미인 배우가 나타나 물었다 이 분이 누구신지 아세요? 다시 들여다보았지만 전혀 모르는 얼굴 내가 고.. 문학방/시 2008.05.03
계단 계단 아현동 지하철 삼층 계단 이층 계단 턱에 남루한 외투에 머릴 박고 얄따란 양은 그릇 하나 내놓고 새까만 손 달달 떨며 구걸하는 사람 계단 입구 시주하고 복 받으라 쓴 보시함 앞에 두꺼운 실목도리 두툼한 두루마기 폭신한 모자로 귀까지 덮은 스님 하나 목탁을 친다 딱 따르르 딱딱 딱 따르르 .. 문학방/시 2008.05.03
겨울 나무 겨울나무 언 땅에 다리 묻은 겨울 나무 가지 끝에 달 걸어놓고 금식 기도중 달은 가지 끝에 얼굴을 올려놓고 역사책을 읽는다 나무 밑엔 하얀 지팡이 장님이 가고 한 다리 짧은 늙은이 자벌레 걸음으로 간다 장님은 눈감은 은혜로 죄를 모른 채 하늘로 가고 절름발이는 욕심을 좇지 않아 하늘로 갔다 .. 문학방/시 2008.05.03
길 길 나무숲을 지나 언덕을 넘고 모퉁이를 돌아 누군가 기다릴 것 같은 하늘이 내려앉은 아득한 길 끝에는 내가 아직 보지 못한 행복이 있을 것만 같아 언제나 마음은 길을 걷는다 그러나 파란 하늘 끝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사람은 행복이 여기 있는 줄 알겠지 행복은 길 끝 멀리 있지 않고 내 발등에 내.. 문학방/시 2008.05.03
하나님 엄마하고 아빠하고 쌈이 났어요 하나님 아빠와 엄마가 싸워요 "하나님, 아빠와 엄마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어요." 하나님이 빙긋이 웃으면서 내려다보셨습니다. "그러냐? 왜 싸우시더냐?" "엄마와 아빠가 오늘 자연농원으로 놀이를 갔다 오셨어요." 하나님은 아무 것도 모르는 듯 물으셨습니다. "좋은 데 놀러 갔다 와서 무슨 일로 싸우.. 문학방/동화 2008.05.03
소라 소라 소라는 죽어서도 노래를 한다 봄에는 기쁜 소리로 가을에는 슬픈 소리로 뱅글뱅글 꼬리 끝까지 살을 채우고 월세 살던 나그네 늙어 떠난 빈 껍데기 고독을 못 이기고 바람 따라 울더니 백화점 진열대에 호적수로 남았구나. * 노트 : 백화점 진열장에 갇혀 바다를 그리는 소라 껍데기를 보면 모래.. 문학방/시 2008.05.03
천사 바이올린 켜는 천사 노래를 어깨에 걸고 꿈을 타는 아기 천사 가녀린 선율은 영혼에 내리는 무지개 명주실보다 가는 음률 영혼을 도려내어 세상 죄 검은 허물 하얗게 색칠한다. 문학방/시 2008.05.03
기행문 / 김유정 문학탐방 문학기행 / 김유정 생가 답사기 풀꽃아동문학동인회 주최로 오월 이십오일 문학기행 모임이 있었다. 40여 명이 승용차 8대로 양평 소재 대명 콘도에 모여 서산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저녁상을 즐겼다. 일정 계획표에는 24일 밤 취침은 절대 불가라고 해 놓고 기상은 25일 아침 7시로 되어 있었다. 자지 말.. 문학방/수필 2008.05.03
꽃들아 사랑해 꽃들아 사랑해 봄이 날개를 펴고 따듯한 입김으로 대지를 녹일 때 화분 하나에서는 살이 포동한 파란 떡잎이 손을 내밀었고 또 한 화분에서는 빨간 새싹이 동그랗게 오므린 손을 호호 불며 쏘옥 내밀더니 봄이 포근히 개나리 꽃잎을 퍼다가 뿌릴 때 파란 손은 난초로 이름표를 달았고 빨간 새순은 함.. 문학방/시 2008.05.03
여자가 나오는 건 여자가 나오는 건 신촌 지하철역 인파 속에 숨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여의도 공원에서 물소리 새소리 숲 푸른 연못 연꽃 수 고운 수면엔 구름 한 조각 떠가다가 그림으로 내렸다 나비 한 마리 꿀 찾다 떠난 자리 별 같은 벌레들 꽃 속을 파고들고 명찰도 달지 않은 꽃들 화장하지 않아도 곱다.. 문학방/시 2008.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