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꽃 아침 화단 가지마다 치렁치렁 고개 숙여 조는 분꽃 하루 종인 졸다가 해질녘에 눈비비고 화장을 한다 누구를 만나려나 떠난 임 돌아오기 기다리는가. 밤새도록 화사히 웃다 해 뜨면 눈을 감고 다시 조는 분꽃 문학방/시 2008.09.06
사람아 넌 무엇이 되고 싶으냐? 사람아 넌 무엇이 되고 싶으냐 조물주가 온갖 새와 짐승과 벌레를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되고 싶으면 앞으로 나오너라.” 아무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조물주가 까치를 바라보았습니다. “까치, 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냐?” “싫습니다.” “이유는?” “사람이 되면 걸.. 문학방/동화 2008.07.29
고향 엉겅퀴 세상 물에 절어 잃어버린 고향산 산길에서 무득 만난 엉겅퀴 그때 그 얼굴 이제도 늙지 않은 젊은 그 얼굴 빨간 입술에 웃음 묻은 엉겅퀴 수줍어 고개 숙인 빛 고운 얼굴 너는 청아한데 나만 늙어 세상 때로 절은 채 고향을 찾았구나 문학방/동시 동요 2008.06.24
딸기 딸기 “엄마 한 달 동안 있다가 오면 저 딸기와 방울토마토는 어떻게 되는 거야?” “물 안 주면 다 말라 죽는 거지 뭐.” “그럼 어떡해?” “그러니까 사지 말자고 했잖아?” 소희는 책가방만한 스틸로플 상자에 아기들처럼 옹기종기 담겨 있는 어린 딸기순과 지팡이나무 방울토마토 허브 순에 물을 .. 문학방/동화 2008.05.23
간증 / 내가 전도한 여자 오랜 전 일이다. 서리집사가 막 되었을 때였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처지에서 선배 한 분과 캬바레를 갔다. 술도 제대로 못하고 춤은 아예 생각도 못할 만큼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그런 곳에 간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우리가 테이블에 앉자마자 맥주 몇 병이 안주와 함께 날라왔고 선배는 술을 .. 문학방/동화 2008.05.09
소설 / 하얀 귀로 하얀 歸路 심 혁 창 (363-0301) 1. “박교수, 이걸 좀 받아 두게.” 대학장 설재우 교수는 박상록 교수에게 열쇠 뭉치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의아한 박교수는 주춤하면서 물었다. “일단 받아 들고 내 말을 듣기로 하지.” “네.” 박교수는 두 손으로 받았다. “고맙네.” “……?” “이 열쇠들이 .. 문학방/동화 2008.05.09
버릴 것만 남았으니 마음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선생의 장례 행사를 보면서 화려한 죽음이 부러웠다. 그렇게 죽을 수만 있다면 한번 죽어 볼 만한 일이 아닌가! 그렇게 축복받는 죽음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못 사는 자의 부러움이 얼마나 수치스런 생각인가. 그만한 삶이 있었기에 그렇게 행복한 죽음을 누릴 권.. 문학방/수필 2008.05.09
구겨진 시간 구겨진 시간 씹다 버린 청춘은 돌아올 수 없는 시간 속으로 가고 비에 젖은 시간은 구겨져 이력서 쓸 자리도 잃었다. 비 오고 눈내리는 초가지붕에 해가 매달려 떨고 서럽게 서럽게 때묻은 시간을 도리다가 벗지 못한 무게를 등에 업고 다리를 절며 간다. 문학방/시 2008.05.05
진달래 진달래 진달래 분홍 산길 소월이 넘던 길 짝사랑 소녀는 새 신랑 밥짓는데 소월은 아직도 우리 가슴으로 운다 한용운이 다리를 절며 울며 넘던 길 문둥이는 아이를 잡아먹는다고 진달래 꽃 속에 전설을 쓴다 바위 고개 오솔길 못 보낸 순정 그리움은 할미꽃으로 다시 피는데 잔인한 사월은 진달래 꽃.. 문학방/시 2008.05.05
아버지를 속이는 아들 아버지를 속이는 아들 아버지가 목욕탕에를 다녀오시며 기분이 좋아서 말씀하셨다. "서울 사람 인심이 시골 사람보다 더 좋더라. 오늘은 목욕탕엘 갔더니 웬 젊은 사람이 다가와서 등을 밀어 주겠다고 하는 게야. 나는 미안해서 안 된다고 했지. 그랬더니 막무가내로 내 등을 씻겨주는 거야." "모르는 .. 문학방/수필 2008.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