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좌석 / 1 멧돼지
나는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서울역으로 나가 무궁화호 1호칸 31번 석에 앉는다.
내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나는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날마다 30분씩 수원까지 쉬지 않고 한 번에 쌩쌩 달리는 동안 나는 스트레스와 피로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게 바로 힐링이라는 것인가 보다.
그것도 모르는 친구들은 나를 보고 피로하겠다, 고생한다고 위로한다. 그러나 나를 따라 한번 씽씽 달려보면 내 기분을 알 것이다. 그렇게 30분의 쾌속 주행 속에 나는 남모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처음에는 못 느꼈는데 날이 갈수록 내 옆 32번 좌석에 누가 와서 앉느냐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31번 석은 창 쪽이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 고정적으로 티켓을 예매하여 앉는다. 하루는 창문을 열고 기분 좋게 앉았는데 옆자리에 멧돼지처럼 두리두리한 몸집에 헝클어진 머리며 우락부락한 얼굴이 흉하게 생긴 사내가 머리를 들이밀며 기차표를 내 앞에 쑥 내밀었다.
자기가 창쪽이라는 것 같아 내가 티켓을 보여주었더니 무서운 얼굴로 쿵하고 의자가 들썩이도록 앉았다. 그리고 바로 벌떡 일어나 배를 쑥 내밀고 내가 열어놓은 커튼을 확 잡아당겨 닫아놓고 제 자리에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순간 매우 불쾌했다. 그러나 그 사내가 하도 험상궂고 무섭게 생겨서 찍소리도 못하고 얌전히 앉아 들고 있는 책에 눈길을 던졌다. 30분이면 내릴 것이니 기분 상하지만 30분만 참자 하고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 사람은 몸을 비틀기도 하고 머리를 벅벅 긁기도 하고 쩝쩝거리며 몸부림을 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똥 묻은 돼지우리에 갇혔구나 하고 참자, 참자 견디었다. 이윽고 수원역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 소리를 듣자마나 그 사내가 벌떡 일어서며 내 길을 열어주었다. 내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그 사내는 31번 석에 냉큼 앉아 등에 진 보따리를 32번 석에 풀어놓았다.
누군가가 창가 쪽 티켓을 들고 온다면 어떨까 생각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날부터 내 옆자리에 누가 와서 앉느냐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옆 좌석에 누가 와서 앉느냐가 나의 하루 기분을 결정지어 주는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떤 사람과 앉느냐를 놓고 30분 이야기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옆 사람 2 / 아름다운 동승자
나는 퇴근길에 서울역서 무궁화호 1호차 31번 석에 앉아 내가 지은 판타지 탈장르 문학지 <돈>이라는 책 가운데 한 곳을 읽고 있었다.
‘오만 원짜리 한 장에도 벌벌 떨던 내가 일억도 아니고 십억도 아니고 백억이 통장에 들어왔다. 그 기쁨을 무슨 자로 잴 것이며 그 기쁨을 무슨 그릇으로 담아낼 것인가. 그런 돈을 가져본 자만이 기쁨의 크기를 알리라’
‘아내도 모르게 산을 사고 아무도 모르게 산을 팔아 백억을 가진 부자가 된 거다. 밥을 굶어도 배부르고 세상이 온통 내 것 같고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런 걸 행복이라고 하는 걸까?’
‘하늘을 보아도 웃음이 나오고 화장실에 가서도 웃음이 나온다. 친한 친구한테 자랑도 하고 싶다. 그러나 이 행복한 비밀을 어찌 알리겠는가. 절대 혼자의 비밀이다 흐흐흐’
이 대목을 읽고 있는데 열차가 영등포역에 도착했고 입구 문이 열리고 단아한 여자 승객이 들어섰다. 차림새가 깔끔하고 머리 모양부터가 교양 있게 느껴졌다. 정말 돈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자였다. 적당한 키에 동그란 얼굴이 나를 사랑해주시는 어느 분 같은 인상이었는데,
그 여인이 바로 내 옆 좌석 32번 석 앞에 멈춰 서서 허리를 가볍게 숙이며 앉겠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우락부락한 사람을 만났던 기억 때문에 요조숙녀 같은 분이 와서 앉으니 기분이 좋았다.
40대 후반쯤 보이는 숙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백에서 두툼한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무슨 책을 읽을까 궁금하여 곁눈질로 보니 세계적 인물평론 같았다. 너무 얌전하고 자세가 정숙하여 감히 말 붙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슨 책일까 궁금하여 고개를 약간 숙이고 표지를 보고 싶었지만 볼 수가 없었다. 시간이 좀 흐른 뒤 염치 불구하고 말을 건넸다.
“독서중이신데 죄송합니다. 독서를 좋아하시는가 보지요?”
여승객은 아주 겸손히 받았다.
“네, 저는 책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시군요. 그 책은 무슨 책인가요?”
그분이 책 표지를 보여주었다. 내용은 한글이었는데 표지는 영어로 되어 있었다. 무슨 책인지 모르는 단어로 되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지고 있던 <울타리>를 내밀면서 말했다.
“혹시 이런 책도 보셨나요?”
“못 보던 책인데 표지 색깔이 제가 좋아하는 색이네요.”
“드려도 될까요?”
“그냥 주시겠다고요?”
“예, 제가 만든 책으로 스마트폰에 빠진 사람들이 책도 좀 사랑하시라고 독서운동 차원에서 만든 것입니다. 스마트 북이지요.”
책을 받아들고 나를 의미 있게 보면서 말했다.
“맞는 말씀이에요. 요새 사람들이 모두 스마트폰에 빠져서 독서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만 이런 현상인 것 같아요. 좋은 생각을 하셨네요. 주시는 책이니 처음서 끝까지 꼭 읽어보겠습니다.”
이때 안내방송이 나왔다. 수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나는 무슨 이야기든 더 하고 싶었지만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어디까지 가는지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 알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아쉽게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차에서 내렸다.
책을 사랑하고 내 생각에 동의하시는 분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흐뭇한 퇴근길이었다.
옆 사람 3 / 오골계
나는 시간관념이 강해서 서울역 무궁화호 1호 칸애 가장 먼저 오른다. 내 자리 31번 석은 날마다 가슴을 열고 나를 반긴다. 바로 옆 32번 석엔 누가 오실까 하고 기다려본다. 그러면서도 멧돼지만 오지 말았으면 하고 빌었다.
그런데 오늘은 바로 32번 석에 60은 되어 보이는 새까만 옷에 새까만 얼굴의 오골계같이 왜소한 사람이 오더니 좌석에 날름 앉았다. 마음으로는 ‘반갑습니다 어서오세요’ 하고 싶은데 날마다 그게 안 된다. 내 맘이 그만큼 깡마른 이유일 거다.
열차가 서울역을 31분에 떠나면 15분만에 영등포역에 토착한다. 그리고 영등포역에서 3분 정차 뒤 15분을 달리면 수원역이다. 그러니 옆 사람과 나의 동행은 서울서 만나면 30분, 영등포서 만나면 15분이다.
그 60대하고는 30분을 동석해야 하는데! 아이구! 맙소사! 그 사람이 앉자마마 우리 좌석은 담배냄새가 진동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담배냄새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냄새가 파고들어 괴롭기 시작했다. 나는 얼굴을 창밖으로 돌렸지만 얄미운 냄새가 돌린 얼굴도 무시하고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만석이라 다른 좌석으로 갈 데도 없었다. 한참 괴롬을 당하며 ‘하나님 나 좀 살려주세요. 숨이 막겨 죽을 지경입니다’ 하고 있을 때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승객이 다가와 자기가 32번 석이라면서 자리를 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60대가 화를 벌컥 냈다.
“와 내 자리를 내달라카는교?”
“이 자리는 제 자리라예, 비워 주이소.”
두 사람이 다 경상도다. 자리를 비워달라 못 한다 약 5분간 실랑이를 했다. 시끄럽고 답답하여 내가 끼어들었다.
“미안하지만 두 분 차표를 봅시다.”
두 사람이 내민 표를 보고 나는 ‘아이고, 내가 살았다’ 하고 쾌재를 불렀다. 60대 영감 표는 2호자 32번 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솔로몬 판결을 했다.
“어른께서 잘못 타셨습니다. 2호 칸으로 가세요.”
영감이 하는 소리.
“무신 놈의 표가 이랬다 저랬다카노, 에이 더러버서.”
그러면서 자리를 떴다. 얌전하게 생긴 여승객이 자리에 앉으며서 나한테 고맙다고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물었다.
“선생님예, 어디까지 가십니꺼?”
“수원입니다.”
“선생님이 가만히 계셨으면 오늘 시껍할 뻔했심니더.”
“압니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대구갑니더.”
“네. 여행중에 읽을 책은 가지고 계신가요?”
“난 책 안 좋아합니더. 스마트폰이 책보다 얼마나 좋십니꺼.”
“그래도 책도 보셔야 합니다. 제가 책 선물해 드릴게 한번 읽어 보세요.”
그러면서 울타리를 내밀었다.
“이 책 거저 저신다고예?”
“에, 그 대신 다 읽어 보시고 다른 책도 구하여 읽으세요.”
“고맙십니더. 저도 학생 시절에는 독서를 좋아했는데 우찌다 보이 책하고 멀어졌십니더.”
“다들 그렇습니다. 전자문명이 출판문화를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뭐 하는 분이십니꺼?”
“저요?”
이때 방송이 나왔다. 수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나는 대답을 못하고 안녕히 하고 인사하고 일어섰고 부인은 내 뒤에 대고
“고맙십니더. 주신 책 꼭 읽겠십니더.” 했다.
나는 그 말이 고마워서 한 번 더 돌아보고 차에서 내렸다.(2021.10.25.)
옆 사람 4 / 빈자리
서울역 17시 31분발 부산행 무궁화 1호칸 31번 석은 내 자리다. 출발하여 15분간 달리면 영등포역인데 오늘은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영등포역에서 누군가가 탈 것이다. 날마다 옆자리에 멧돼지만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어떤 사람이 와서 앉을까 기다린다.
영등포역에서 승객들이 줄을 서서 들어섰다. 통로 맨 앞에 두더지 같은 젊은이가 들어서고 이어 토끼같이 예쁜 아가씨가 들어섰다.
나는 속으로 두더지는 안 돼, 토끼가 좋아 하고 토끼가 오기를 바랐지만 두더지도 토끼도 내 곁을 그냥 지나갔다. 그 뒤를 안경을 쓴 멋쟁이 기린 같은 여자가 깝쪽깝쪽 또 그냥 지나갔다. 그 뒤를 너구리 영감이 허리를 굽적거리며 들어섰다.
난 ‘영감은 싫어 오지마’ 했다. 그런데 그도 꺽꺽거리며 나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또 백조같이 날씬한 여자가 나타났다. 나는 기대를 가지고 여기 앉아요 했지만 그녀는 오다 말고 앞자리에 날름 앉고 등을 돌려댔고, 그 뒤를 거위같이 긴 다리를 한 중년이 들어섰다.
난 당신 싫어 오지 마 했지만 그도 나를 무시하는 듯 건너편 자리에 풀썩 앉았고 결국 차는 떠났다. 내 옆자리는 승객 없는 빈 자리! 차는 다시 출발.
오! 이럴 수가. 누군가가 옆자리에 앉아야 그 사람을 볼 건데 아무도 안 오고 나는 외로운 승객이 되고 말았다. 지난 날 곁에 앉았던 사람들 생각이 났다. 새까만 모자를 쓰고 굴뚝새처럼 앉았다 쌩하고 떠난 여자, 핸드폰을 서울서 어디까지 가는지 수다를 떨던 여자, 멋대가리 없이 늑대처럼 앉아 한숨만 쉬던 사내. 그런 사람이라도 와서 앉았으면 외롭진 않았을 거야.
동행자가 귀한 것이라는 걸 실감하며 생각에 잠겼다. 지구 70억 인구 중에 한자리에 와서 나란히 앉았다가 헤어지는 사람, 수많은 사람을 다 물리치고 30분도 아닌 60년을 같이 살며 사랑하고 자식 낳고 늙도록 떨어지지 않고 산다는 부부, 얼마나 귀한 만남인가.
악처도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이고 현처도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 아니면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부부로 만난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하고 귀한가.
악처 크산티페가를 만나 살던 소크라테스. 마누라가 버럭버럭 욕을 해대며 머리에 물동이를 퍼부었을 때 “천둥이 친 다음에는 비가 내리는 법이지” 했다던 철학자, 친구가 그런 여자와 어떻게 사나 내쫓아 버리게 하자 “여보게, 내가 내 아내가 하는 짓을 참으면 세상에 못 참을 일이 뭐가 있겠나”하고 아내를 통하여 인내 철학을 배우고 “결혼하여 현숙한 아내를 만나면 행복해서 좋고, 사납고 험악한 아내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테니 아니 좋은가”하였다는 소크라테스를 떠올렸다.
옆자리에 ‘예쁜 여자가 와서 앉으면 15분 동안 행복하고 험상궂은 사람이 와서 이상한 짓을 하면 나는 인생을 배우게 될 테니 좋지 않은가’ 생각하면서 아무튼 혼자 가는 것보다는 미녀 꾀꼬리가 오든, 참새가 오든, 오리가 오든, 너구리가 오든 늑대 여우가 오든 누군가가 와서 15분간 내 곁에 앉는 사람은 나한테 인생을 가르칠 교사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 빈자리였다.
달리는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며 세상과 인생은 거기서 거기, 다 그런 것이지 뭐하고 생각하는 사이 “여기는 수원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방송 소리는 나를 차 밖으로 밀어냈다.
옆 사람 5 / 가지마
내가 열차에 오르는 순간 뒤를 바짝 따라오던 사람이 31번 석 바로 내 옆자리까지 와 털썩 앉았다.
나도 할배면서 내 또래 할배하고 나란히 앉는 것이 싫었다.
그 사람은 머리숱이 우거진 수풀같이 새까맣고 머리가 눈썹까지 붙은 할배였다.
그 울창한 머리숱이 대머리인 나한테는 부러운 대상이다. 그래서 속으로 그 머리숱 반만 나를 주면 피차 좋겠소 하고 생각하는데 바로 내 앞좌석에서 하얀 이마에 반달눈썹, 예쁜 눈이 반짝하고 내밀었다. 순간 나하고 눈길이 마주쳤다. 아기가 꺄악 소리를 치며 숨었다.
나는 아기가 참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잠시 후 또 얼굴을 쏙 내밀었다. 아기 눈과 내 눈길이 마주쳤다. 아기가 방긋 웃는 순간 옆에 할배가 손을 들어 때리는 시늉을 했다.
아기가 귀여운 소리로 옆 할배를 향해 “아저씨 미워!” 하고 나를 향해 “할아버지 좋아!”했다.
나를 좋다고 하는 소리는 반가웠지만 옆 사람한테는 아저씨라 하고 나한테는 할아버지라고 한 것이 은근히 섭섭했다.
그때 아기 엄마가 아기를 자리에 앉히며 꾸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못써” 하는 소리였고 아기는 “할아버지 좋아. 난 할아버지 볼 거야!”하더니 아이가 또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을 쏙 내밀고 손까지 내밀었다. 나하고 손을 잡자는 신호였다. 나는 아기 손을 가만히 만져주었다. 아기가 예쁘게 웃었다.
그러나 엄마가 다시 끌어 앉히며 꾸짖었다. “자꾸 이럴 거야!”하는 소리에 아기는 “나 할아버지한테 갈 거야!” 그러더니 엄마를 밀치고 뒷자리로 와 나한테 왔다.
아기도 나도 마스크를 하여 눈만 맞추었다. 아기가 내 무릎에 안겼다. 하얀 양털 스웨터가 보드라웠다. 아기는 나를 보고 “할아버지 이거 벗어” 그러면서 내 마스트를 잡아당겨 벗기고 제 마크도 벗었다.
뽀얀 볼에 예쁜 잎이 분꽃 같았다. 아기는 웃으며 “할아버지 모자도 벗어.”했다.
요런 깜찍한 놈 봤나. 아기가 명랑하고 밝았지만 모자까지 벗어 보라는 말에 약간 놀라면서 벗었다. 아기가 깔깔 웃으며 “할아버지 대머리야?”했다. “그래, 대머리다. 미우냐?”“아니, 할아버지 좋아.” “넌 이름이 뭐냐?” 묻자 “양수빈이야.” “몇 살?” “네 살!” 그러더니 내 나이를 물었다. “할아버지는 몇 살이야?” “여덟 살.” “그렇게 많아?” “그래.”
옆에 할배를 가리키며 “저 아저씨는 수염이 많은데 왜 할아버지는 수염이 없어?”
“면도해서 그렇다.” “면도가 뭐야?” 별걸 다 묻네 하고 생각하는데
“할아버지 얼굴은 왜 이렇게 생겼어?” “늙어서 그렇다. 미우냐?”
“아니, 할아버지 좋아.”
아이가 꼬박꼬박 옆 할배는 아저씨라고 부르고 나는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불만스럽기는 해도 그 할배보다 나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나는 위안이 되었다.
“할아버지 어디 가?” “수원.” “수원이 부산보다 멀어?” “아니. 넌 어디까지 가?” “부산 할머니한테 가.”
순식간에 15분이 지나고 방송이 나왔다. 여기는 수원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도 따라 서며 물었다. “할아버지 어디가?”
“할아버지는 다 왔다. 수빈이 잘 가,” “인 돼. 자기마.”
아이가 나를 따라오려 하자 아기 엄마가 잡아 안으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지금 가셔야 해.” “안 돼, 할아버지 가지마.”
나도 실은 아기와 더 멀리 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엄마하고 기다려. 갔다가 돌아올게.” “빨리 와야 해.” “알았어 잘 가 수빈아.”
아기가 ‘가지 마’ 하는 목소리를 귀에 묻힌 채 나오면서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인생은 그렇게 만났다 헤어지는 것, 세월의 목적지에 이르면 그렇게 헤어지는 것, 아름다운 추억도 내려놓고 사랑도 미움도 다 내려놓고 떠나는 인생 아닌가.
열차가 멀리 꼬리를 감출 때까지 나는 아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옆 사람 6 / 하이에나
나는 날마다 열차 한 칸 전체 좌석 71석 중 가장 먼저 차에 오른다.
자리에 앉아 누가 내 옆에 오시려나 기다리는 것도 재미있는 습관이 되었다.
오늘은 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주르르 들어왔다. 앞에서 열 명쯤은 아가씨들이었는데 모두가 미인들이었다. 어디서 그렇게 예쁜 아가씨들이 많이 모여 올까? 내 옆자리에 그 예쁜 여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와서 앉을 테지 하고 기대감으로 차 있는데 줄을 서서 들어오는 아가씨들 맨끝에 하이에나같이 뒤숭숭한 차림의 사람이 어슬렁거리고 따랐다.
나는 속으로 저 사람만은 옆자리에 오지 말라! 아가씨들 가운데 안 예뻐도 좋으니 제발 아가씨가 와 다오 하고 빌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아가씨들이 모두 지나가고 마지막에 따라오던 시커먼 하이에나가 내 옆에 오자마자 털썩!
이크! 하필이면 왜 왜?
차는 출발했고 하이에나는 앉자마자 배를 쑥 내밀고 다리를 쩍 벌리고 앉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시끄럽게 해대면서 나를 힐끔거렸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창밖으로 눈길을 던지고 침묵.
다행인 것은 그에게 담배 냄새와 향수 냄새가 안 나서 좋았다. 자리에 앉은 지 10분도 안 되어 꾸벅거리더니 머리를 내 어깨에 얹었다. 나는 뿌리칠 수가 없어 그의 베개가 된 채 어깨를 내주고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사람인지 몰라도 15분이지만 한자리에서 만났으니 70억분의 1의 인연이 아닌가 하고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거칠게 생긴 하이에나, 무슨 잠이 그렇게 빨리 드는지 신기하기도 했다.
어쩌면 고된 일을 하다가 어디론가 급한 일로 가는 모양이다.
머리도 헝클어지고 허름한 점퍼에 흙이 묻은 운동화를 보니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첫인상이 하이에나 같다는 선입견을 떨치고 고되게 살아가는 한 나그네 인생을 떠올렸다. 나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하며 쓸어보니 그 사람은 나보다 한참 아래로 보였다.
좋다, 편히 주무시라. 내 아우도 그대쯤 될 테니 아우로 알고 15분은 어깨를 내줄 테니 좋은 꿈이나 꾸시라.
짦은 15분은 금방 지나가고 “이번 역은 수원입니다. 왼쪽 문으로 안녕히 가십시오.” 방송.
나는 어깨를 빼고 일어섰고 하이에나는 눈을 감은 채 길을 열어주었다. 피차 인사도 없이 그렇게 그는 어디론가 가고 나는 나대로 15분 인연은 안녕이다.(2021.11.25.)
옆 사람 7 / 아이구 답답혀
17시 31분 부산행 무궁화호 1호칸 31번석.
12월 2일 승차하여 창밖을 내다보는 사이 내 옆에 한 아가씨가 나비처럼 아무 기척도 없이 들어앉아 있었다. 힐끗 옆모습을 보니 대단한 미인이었다. 흑갈색 머리에 까만 마스크를 했는데 코도 높아 보이고 눈썹도 새까만 얼굴에 피부가 백장미.
“어라? 어디서 이렇게 예쁜 여자가 나타났지? 30분 동안은 기분 짱이겠는데? 하이에나나 담배통 돼지하고 앉아가는 기분보다 얼마나 다행인가.”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해도 미인임은 틀림없었다. 그래서 곁눈질을 하며 지켜보니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데 무슨 국회의사당 같은 큰 건물 사진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영국 국회의사당 같기도 하고 독일? 프랑스? 왜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을까?
“이 사람은 책을 안 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한테 울타리를 안겨주어 책을 보라고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가방에서 울타리를 꺼내들고 말을 건넸다.
“아까씨, 실례합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파란 눈의 아가씨가 얼굴을 내게 돌렸다.
“이크, 이게 뭐야?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잖아!”
아가씨가 웃는 얼굴로 나를 보며 뭐라고 했다.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독일!” 하고 한 마디. 내가 울타리를 잘못 내밀었구나 생각하며 물었다.
“한글을 아시나요?”
“한글, 조금 몰라.”
“그럼, 이 책 여기 한번 읽어 볼래요?”
내가 들고 다니며 읽는 책 중 <아빠하고 엄마하고 쌈이 났어요>라는 동화 제목을 보여주었다. 아가씨는 웃는 얼굴로 그 제목을 또박또박 읽으면서 “나 한글 조금 몰라.”했다. 나도 반말로 물었다. “이 책 받아.” 울타리를 내밀자 고맙다는 눈으로 “나 가져?”한다.
“그래 가져, 그리고 읽어 봐. 이 책은 책읽기 안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주는 책이야.”
그녀는 내 말이 길어지자 못 알아듣는 듯 독일말로 뭐라고 대답하는 것 같은데 알 수가 없었다.
독어는 고등학교 때 재2외국어 선택으로 쥐꼬리만큼 배운 게 전부인데다 다 까먹고 겨우 데르데스뎀뎀 뭐 그런 알파벳 몇 개만 머리에 남았으니 내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물었다. “독일 알아?” “알아, 나 독일 두 번 가보았어.” “어디 갔어?” “쾰른, 함브르크.” “퀠른 @#$%^!@#$^&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또 멍청.
내가 바보처럼 바라보고 있으니 웃는 눈으로 바라보기에 “어디까지 가?” 했더니 무슨 소린지 대답을 하는데 알 수가 없어서 멍청해 있자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전자 예매 서울에서 구미 1호차 32번 석이라고 되어 있었다. 나도 31번 석을 보여주었더니 소리 내어 웃었다. 우리는 동행자라는 생각으로 웃는 거 같았다.
이렇게 몇 마디하고 그녀는 한손에는 울타리를 들고 다른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또 그 의사당 같은 건물만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 장면을 살짝 촬영했는데 실패,
그리고 15분 동안 이따금 서로 웃음을 주고받았고 나는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는데 못하고 그녀가 뭐라고 말하면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그냥 아이구 답답해, 답답해하는데 여기는 수원역입니다.
내가 일어서자 아가씨 발딱 일어서는데 앉았을 때는 나보다 작은 키 같았는데 수숫대처럼 쭉 뻗은 다리에 장신이었다. 그리고 얼굴이 좀 전에 웃던 얼굴이 아니었다.
단정하고 엄숙하게 길을 열어주며 바라보는데 갑자기 정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데 못 알아듣고 굿바이 하려다, 그저 반말로 “잘가!” 한마디를 하고 내렸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는 왜 그렇게 엄숙해졌을까? 그게 돌일 인사법인가? 우리나라 사람은 헤어질 때 웃으며 ‘안녕’하는데 어째서 그녀 얼굴은 그렇게 굳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옆 사람 8 / 이래도 모르겠소?
부산행 무궁화 1221호 1호칸.
나는 매일 똑같은 시간 17시 17분에 차에 오른다.
차 문을 열고 들어서서 두 번째 칸 앞을 막 지나는데 누가 내 외투를 꽉 잡았다. 나는 누가 이래? 하고 발을 뛰려는데 또 꽉 잡고 놓지 않았다. 나는 기분이 상한 채 누가 이러나 하고 내려다보았다. 새까만 개똥모자에 마스크를 한 사람이 올려다보는데 날카로운 눈빛만 보일 뿐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약간 불쾌한 감정으로 물었다.
“왜 이러시오?”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 대답 없이 내 외투자락을 잡아당겼다. 아무리 보아도 모르는 사람인데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눈을 맞추고 살펴보면서 물었다.
“누구시오?”
그제야 한 마디
“나요.”
“나라니요?”
“나 모르겠소?”
“글쎄요.”
“이래도 모르겠소?”
그러면서 마스크를 벗었다. 그 얼굴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이 차를 타셨나요?”
“날 그렇게 못 알아보시다니. 나는 한눈에 누구라는 걸 알아봤는데.”
“참 오랜만입니다. 어디를 가시나요?”
“나 대전으로 갔어요. 아들이 거기서 목회를 하기 때문에.”
“그러셨군요.”
상대를 알아보았고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5분 나누고 나는 내 자리 31번 석으로 갔다. 그분은 8번 통로쪽 좌석앉아 나를 만나셨는데 차가 출발하자 그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21번 창가로 갔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차는 수원역에 도착했고 나는 졸고 있는 분을 깨워 편히 가시라는 인사를 하고 내렸다.
무슨 이야기든 더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꿈결이듯 만난 그분은 기다란 꼬리를 단 열차에 실려 대전으로 떠나셨다. 차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자니 서운한 마음이 쉽게 돌아서지지 끌려갔다. 집으로 오면서 이런 후회를 했다.
“가방 속에 많이 있는 사탕과 울타리를 드렸어야 하는데 왜 그 생각이 지금 나나. 뭔가 드리고 싶었는데 겨우 마음도 못다 드렸으니 섭섭하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했다. 옛날 신작로 길로 서울서 떠나 수원을 지나 대전까지 가는 친구라면 가다가 우리 집에서 들러 뭐라도 좀 먹고 마시고 가라고 잡을 수도 있는데 세상이 바뀌어 기계 속에서 만나 기계가 하는 대로 살다 보니 인간적인 정은 기계가 빼앗아가고 인간미는 날로 멀어지는구나.
그분은 왜 바로 입구에 앉아 나를 잡았을까? 자기 자리는 21번 안쪽인데 그것도 이상하다. 내가 그 차를 탄다는 말이 정말인가 확인하고 싶어서 나보다 먼저 와서 나를 기다렸던 것일까? 내가 거짓말로 옆 사람 이야기를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의심해서 그러셨을까?
근 20년간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에서 함께 봉사하고 정을 나누신 분이지만 전직이 형사였기 때문에 그런 연극도 해 보셨는지도 모른다.
남성적인 베이스 음성으로 시낭송을 멋지게 하시고 경주에서 내 사진을 찍어주시던 친절하신 장로님.
바로 이상인 장로님이었다.
옆 사람 9 / 배려(왕눈이와 새우 눈)
차 창가 31번 내 자리 옆으로 여자 둘이 왔다.
하나는 내 옆에 하나는 건너편 통로에 앉았다.
두 여자가 통로 건너 마주앉아 수다를 떨었다.
서울역서 차가 떠날 때까지 10분이 넘도록 다른 사람들 생각도 않고 수다를 계속하는데 지켜보자니 안타까웠다.
바로 옆자리 여자는 늘씬한 키에 눈도 시원하고 예뻤는데
건너편 여자는 키도 작고 눈도 새우눈.
왕눈이와 새우 눈이 엄청 친한 사이 같았는데
통로에 건너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자니 얼마나 불편할까
나는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일어서며 말했다.
“두 분이 여기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하시지요.
제가 건너 자리에 앉을게요.”
옆의 왕눈이 예쁜 여자가 겸손히 그러시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건너편 새우눈이 발딱 일어서며 반겼다.
“고마워요 아저씨. 제가 그 자리로 갈게요.”
새우눈은 날래게 자리를 떴고 나는 그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왜 밖에서 못다 하고 여기까지 와서 할까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 같지도 않은데 하고 머리를 저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차에서 내릴 때가 다 되어
내가 일어나며 울타리 하나를 들고 물었다.
“두 분 중 어떤 분이 책을 좋아하시나요?”
하자 왕눈이 예쁜 여자가 금방 “저요”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새우눈 정떨어지는 한 마디.
“요새 책 보는 사람 있나요.”
심드렁하게 말하는 소리에 약간 실망했지만 웃으면서 가지고 있던 울타리를
왕눈이 미인한테 주었다. 그랬더니 새우눈이 불만스런 한 마디.
“누군 주고 난 아 주나요?”
“책 안 읽으신다면서요?”
“책은 안 읽어도 주시면 안 되나요? 한 권 더 없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앞으로 책하고 친해지세요. 하나 더 있습니다.”
책을 건네주고 자리를 떴다.
왕눈이 미인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인사를 깍듯이 하는데
새우눈은 내 자리 31번석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요새 책 보는 사람 있나요 하던 새우눈,
책은 안 읽어도 욕심은 있어서 갖고 싶었던 거다.
괘씸한 생각도 들었지만 책도 품고 있으면
목마를 때 물을 마시듯 무료한 시간이 있을 때는
읽으리라 생각하며
예쁜 왕눈이와 눈을 맞추고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왕눈이 같은 여자하고라면 부산까지라도 가고 싶지만
새우눈하고는 한 정거장도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
인생 부부 사이도 그러리라.
50년을 살아도 헤어지고 싶지 않게 즐거운 부부가 있고
결혼 첫날부터 삶이 지루한 사람이 있으리라.
결혼하고 지금까지 미우니 고우니 하면서도
웃는 날이 더 많게 지낸 부부는 하나님이 맺어준
한 몸이고 행복 반려자인 것이다.
토요일을 기다린 당신 감사합니다!
옆 사람 10 / 명랑한 토끼
나는 언제나 가장 먼저 차에 올라 31번 석에 앉는다. 그리고 누가 옆에 오려나 기다린다. 오늘도 줄줄이 들어서는 사람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희한한 명물이 나타났다.
새하얀 모자에 새하얀 양털오버의 새하얀 아가씨 토끼였다. 게다가 더 재밌는 건 양쪽 새까만 귀가 너풀거리고 이마 위 머리에는 새까만 방울 둘이 달려 더 흥미를 끌었다.
재미있게 생긴 귀여운 토끼가 어디로 가서 앉을까 하고 바라보는데 사뿐사뿐 오더니 내 옆 32번 석에 나비처럼 앉았다. 순간 나는 마치 구슬 따기에서 구슬을 딴 기분이었다.
아가씨는 마스크 얼굴이라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눈이 예쁘게 보였다. 그런데 이 아가씨 어딘가 전화를 한참 하는데 낭랑한 목소리는 틀림없는데 무슨 소리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 청각이 이렇게 나빠졌나? 청각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자부했는데 그 아가씨 전화소리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갸웃거리다 통화가 끝나기에 물었다.
“아가씨, 우리나라 사람 맞아요?”
“아니에요, 중국 사람이에요.”
유창한 발음이 정확하여 또 물었다.
“정말 중국 사람인가요?”
“네에! 맞아요.”
“우리나라에 몇 년 사셨나요?”
“2년 살았어요.”
“그런데 우리말을 그렇게 잘해요?”
“저는 중국서 한국어를 배우고 왔어요.”
“중국 어디가 고향인가요?”
“흑룡강이 있는 할빈이에요.”
완전한 한국어를 구사하기에 한글도 아느냐고 물었더니 한글도 잘 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울타리>를 보이며 이거 읽을 수 있느냐 했더니 아주 좋아하면서 주시면 다 읽겠다는 대답.
우리나라 사람도 주면 ‘나 책 안 좋아해요’ 하면서도 주면 열심히 읽는 사람을 보았지만 대뜸 좋아한다는 대답을 듣기는 처음이다. 책을 주면서 2021년 12월 22일 날짜를 쓰고 이름을 물었더니 최ㅇㅅ라고 선뜻 대주었다. 그래서 왜 한국적 이름이냐 물었더니 한국에 오면 한국식 이름을 써야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어서 하나 지어서 쓴단다.
토끼 차림새도 그렇고 유창한 한국어도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어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했다. 아주 밝게 웃으면서 허락했다. 그리고 내가 서툴게 한 장 찍었더니 내 핸드폰을 달라더니 나도 같이 사진을 찍어주면서 웃었다. 그리고 울타리를 펴보면서 아주 좋아했다.
“한국 책 주어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읽고 여기로 독후감도 써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판권의 이메일이 맞느냐고 했다. 나는 그 동안 여러 권을 사람들한테 주었지만 이렇게 좋아하고 독후감까지 써 주겠다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 특히 판권에 있는 이메일까지 말하는 사람을 앞으로 더 만날 수 있을까?
정말 독후감이 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아무한테도 독후감을 받아본 일이 없으니 중국 아가씨지만 써 준다면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믿고 한번 기다려본다.
* 이번 주일에는 옆 사람이 <김해 다람쥐> <낙타 캄보디아 대학원생> <노루>가 있었는데 줄인다.
옆 좌석 11 / 부엌 차린 다람쥐
내가 31번 석에 앉았는데 키가 작은 부인이 들어오고 뒤를 이어 역시 작은 키의 남자가 손수레를 끌고 따라와 32번석 앞에 멈추었고 부인이 자리에 앉았다. 손수레를 끌고 따라온 남자는 가지 않고 통로에서 무슨 이야기인지 두 사람이 계속 속닥거렸다.
‘저 부부가 여기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면 얼마나 좋을까? 한분은 입석표만 산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내가 자리를 양보해주면……? 하고 생각했지만 쉽게 자리 양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망설이는데 출발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제야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다람쥐같이 작은 부인은 차에 오를 때부터 검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남편인 듯한 남자가 내리자 검은 안경을 벗고 잠자리 눈처럼 둥그렇고 큰 안경을 바꾸어 썼다. 그러더니 그 안경을 벗어 검은 안경과 나란히 앞좌석에 달린 망주머니에다 나란히 걸더니 이번에는 작은 안경을 바꾸어 썼다.
‘이 다람쥐 아줌마 안경점을 차리나?’
이렇게 생각하고 지켜보자 이번에는 손수레에 있는 짐을 풀었다.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비닐봉지들이 나오고 플라스틱 꼬마 통들이 쏟아져 나왔다.
‘허허, 이 다람쥐 아줌마 산보 오셨나? 뭘 하시려는 걸까?’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지켜보는데 그 아줌마는 옆 사람에는 관심 없이 바닥에다 그것들은 이리 늘어놓았다. 그리고 저리 놓았다 이리 놓았다 자리바꿈을 하는 동안 내 앞 통로는 살림살이로 즐비했다. 안경 2개를 걸어놓은 망에는 물병을 넣고 홀짝홀짝 마시며 부엌처럼 꾸몄다.
나는 나갈 때 어떻게 나간담? 저렇게 벌여놓은 살림살이들을 날아서 넘어야 하나 밟고 넘어야 하나 생각 중인데 아줌마는 그것들을 이리저리 들었다 놓았다 바빴다.
‘참 이상한 아줌마, 다람쥐 같은 살림놀이를 하시네.’
그러고 바라보는 동안 30분이 지나갔다. 방송에서 수원입니다. 내리실 분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줌마는 앉은 채 나한테는 관심도 배려도 없이 지나가라는 거였다. 할 수 없이 나는 조심스럽게 살림살이들을 넘어 통로로 나왔고 차에서 내렸다.
이상한 다람쥐 아줌마다. 무슨 살림을 거기다 차릴까? 날마다 타는 차, 날마다 바뀌는 옆 사람, 참 별별 사람이 다 앉았다 떠난다. 그분은 왜 그렇게 안경이 여러 개며 살림살이를 거기다 차렸을까?
세상을 살다 보면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인물과 사건을 만나기도 한다. 참 이상한 사람들 가운데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스스로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지만 남이 볼 때의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내가 아닐 수도 있다. 과연 나는 남이 볼 때 어떤 사람일까?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오늘은 2022년 1월 1일 첫날이다. 한 해 동안 나를 아는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고 넉넉한 부자가 되기를 빈다. 그리고 이 한 해를 평범한 나로 살게 해 달라고도 빈다. 샬롬!
옆 사람 12 / 어! 또 만났네
지하철 엘리베이터 앞에서 언젠가부터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붉으죽죽한 가죽 개똥 모자를 쓰고 등이 약간 구부정한 영감이다. 우연히 퇴근길에 몇 번을 만났더니 어느 날인가 영감이 나를 보고 놀랍다는 듯 한마디 했다.
“어! 또 만났네.”
나도 속으로 ‘그러네, 영감 자주 만나네.’ 하고 형식적으로 머리만 꾸벅해 보였다. 영감은 아무리 봐도 엿장수나 고물 장수같이 보였다. 이유는 모자 때문이었다. 고물장수나 옛날 엿장수는 그런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서 얼굴이 익은 영감이 어느 날 무궁화호 내 좌석 31번 석을 지나 33번 석으로 지나가다 나를 발견하고 또 “어! 또 만났네.”했다.
그리고 수원역에서 나를 따라 내렸다. 그리고 내 뒤를 졸졸 따라오기에 ‘무얼 하는 영감일까?’하고 생각하는데
“우리 자주 만나는데 오늘 차 한잔 하고 갑시다. 내가 대접하겠소.” 했다. 할 수 없이 그럽시다 하고 그와 함께 카페로 들어갔다.
영감이 커피 두 잔을 사들고 와 마주앉았다. 아무리 보아도 엿장수나 고물장수 같은데 마스크에 가려 얼굴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영감이 커피를 권하면서 찻잔 닦으라고 준 곰보 휴지를 펴더니 거기다 자기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으며 말했다.
“난 명함이 없어서 이렇게 써 드릴 테니 이해하여 주시오.”
나도 명함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말로만 ‘저도 없습니다.’ 하고 들여다보니 글씨가 보통 필체가 아니었다.
또박또박 깔끔하게 쓴 글자가 살아 있었다. 그래서 그 휴지를 받아들면서 내 이름을 대고 내가 먼저 마스크를 벗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분도 그제야 마스크를 벗었다.
“이크! 품위 있는 얼굴!”
마스크와 모자를 벗은 얼굴은 엿장수도 고물장수도 아니었다. 인상이 좋은 품위 있는 얼굴에 대고 솔직히 말했다.
“참 인품이 좋으십니다. 제가 겉 사람만 보고 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실례라니요. 나도 선생이 좋아서 차 한잔 하자고 한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뭘 하시는 분인데 날마다 열차를 타십니까?”
“저는 **대학교 대학원 교수부장을 지내고 지금은 **정부기관에 근무합니다.”
나는 가지고 있는 울타리를 건네면서 말했다.
“저는 출판사를 하면서 이런 책을 만들었습니다. 이 책이 제 명함이기도 합니다.”
“그러시군요. 연세가 저와 비슷해 보이시는데……?”
“용띠입니다. 선생님은?”
“토끼띠입니다.”
“그럼 형님이십니다.”
“한 살 차이에 무슨 형 아우입니까. 우리 친구합시다.”
이래서 나는 영감친구를 알게 되었고, 동시에 내가 얼마나 건방지고 오만한 사람인가를 반성했다. 그렇게 훌륭한 교수를 차림새만 보고 엿장수 고물장수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유대인 거지 중에는 랍비가 있다는 말을 알면서도 나는 겉 사람만 보는 눈을 가졌으니 한심하지 않은가. 내가 제대로 된 사람이 되자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옆 사람 13 / 군인과 군바리 추억
내 옆 빈자리에 멋진 군인이 앉았다. 매우 늠름해 보이는 출중한 인물이었다. 내가 나이 들다 보니 군인이든 아니든 젊은 사람은 다 내 아들 같고 딸 같아 모두가 잘나고 예뻐 보인다.
나는 군바리 추억이라는 군생활 이야기(별빛 쏟아지는 전선의 밤)를 어느 사이트에 올렸다가 책으로 출판했다. 당시에 얼마나 인기가 대단했던지 다른 사람은 조회수가 200명 이내였는데 내 글은 조회수가 3,000명이 넘고 추천이 157이었다. 그 사이트에서 최고의 추천을 받아 선물도 받은 바 있다. 군인을 보면 지난 날 추억이 떠오른다.
옆 군인한테 말을 걸었다.
“책 읽기 좋아하시나요?”
“책 말씀입니까?”
“네.”
“저는 책을 안 좋아합니다. 책과 담 쌓은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아! 이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그래도 한마디 덧붙였다.
“책 읽기를 안 좋아하는 분들이 보는 책이 이런 책입니다. 한번 읽어 보시지 않겠어요?”
“그냥 주시겠다고요?”
“물론이지요. 읽어주시기만 한다면 감사하지요. 자, 받으시지요.”
“예, 주시는 책이니…….”
그리고 군인은 책을 받아들고 즉시 펴 들더니 첫 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했다. 영등포에서 수원까지 15분 동안 꼼짝 않고 읽었다. 나는 그 모습에 만족하여 곁눈질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수원에 다 도착했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이 붕어빵 이야기는 참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소월 시도 학생 때는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고요. 지금은 다 잊은 시들이 아주 새롭습니다. 좋은 책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어디까지 가시나요?”
“구미까지 갑니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이면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겠습니다. 책 읽으며 보람 있는 여행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나는 기뻤다. 그와 잘 가라고 악수까지 나누고 헤어졌다. 책을 안 좋아하고 안 읽는다면서도 받아 들고 웃으며 읽는 사람을 만나면 그보다 즐거울 수가 없다.
한 주일에 두 개씩이나 올릴 수는 없고. 다음 주에는 정말 아주 기분 나쁜 여자 이야기를 써야겠다.
옆 사람 14. 기분 나쁜 여자
내가 수원으로 이사하여 무궁화호로 퇴근한 지가 6개월이 넘었다. 한 달에 20일씩 6개월이니 120일이고 옆자리 동승자가 120명이다.
120명 중에는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이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이 와서 곁에 앉을 때마다 받은 인상이 다르다.
마스크를 쓰고 눈만 보이는 옆 사람, 남자들의 경우 눈썹과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맘씨가 엿보였다. 예를 들면 눈썹이 M형인 남자는 너그럽고, W형은 거칠고, ―형은 친절한 편이었다.
그리고 눈매도 이렇다. M형은 사악하고 V형은 사납고
―형은 친절하면서도 간사한 편이었다.
여자들은 또 이렇다. 대개의 여자들은 눈썹이 초승달 형이 많고 가끔 M―형이 있다. 그리고 눈매는 거의가 ―형이고 어쩌다 V형이 있는데 V형이 신경 쓰였다.
여자 승객 60명과 동석하면서 말을 건넨 사람은 많지 않다. 할망 2분 아줌마 6명, 그리고 나머지는 아가씨들이었다.
나는 남자는 청년이 좋고 여자는 아가씨가 좋았다. 다 늙은 사람은 싫다. 그러니 내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하면 나야말로 제 주제도 모르는 철부지 아닌가 한다.
그러니 내 옆자리에 앉는 아가씨들은 나를 보고 얼마나 실망스러울까. 하필이면 왜 대머리 영감이야! 할 테지만 나는 반대로 젊은 사람이 좋으니 허허.
한번은 미끈하고 멋지게 생긴 여자가 통로를 걸어오더니 바람을 일으키며 내 옆에 털퍽 앉았다. 나는 마스크 얼굴을 보았다. V자 눈이었다.
―형 여자는 거의가 고운 눈매에 눈썹에 웃음이 살짝 얹혀 있어서 예쁘다. 그런데 어떤 눈은 슬픔에 젖은 듯 보이고 어떤 눈은 조는 눈이다.
나는 눈썹이 곱고 웃는 착한 얼굴을 보면 <울타리>를 건네며 인사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한테는 말을 건네지 않는다. 차에서 <울타리>를 건네준 사람은 12명쯤(120명 중에 10%) 되는데 내가 말을 걸면서 책을 내밀면 책 안 좋아한다면서도 받아들고 재미있게 읽는 사람이 많았다.
실은 책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인데 스마트폰의 유혹에 빠져 책을 잊고 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옆에 앉은 아가씨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 아가씨는 털퍽 앉자마자 스마트폰에 빠졌다. 내가 조심스럽게 <울타리>를 내밀면서 스마트폰을 보시다가 가끔 이런 책도 보세요 하였더니 힐끗 보는데 눈빛이 늑대눈이었다. 순간 책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섬광!
그러나 말을 건넸으니 줄 수밖에. 그 아가씨인지 아줌만지 책을 받아 무릎에 놀려놓은 채 스마트폰에 빠졌다가 수원역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발딱 일어나 <울타리>를 앉았던 자리에 내려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나는 책을 도로 집어 들자니 부끄럽기도 하고 엄청 실망스럽기도 했다. 저런 눈빛인 여자한테는 책을 주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바보지, 비싼 돈 들여 만든 책을 거저 주면서 좋아하는 내가 바보가 아니면 누가 바보인가.
그 순간 실망을 하고 이제부터는 이 미련한 짓 그만 해야지 하면서도 퇴근시간에는 가방 속에 <울타리> 2권을 넣고 옆 사람 관상을 본다.
줄까 말까? 또 던지고 가면?
내가 사랑하는 책! 독자를 위해 만든 <울타리>를 던지고 간 옆 사람! 처음 만난 기분 나쁜 여자였다.
옆 사람 15. 꾀꼬리
열차 1호칸 31번 석은 내가 정해 놓고 타는 자리다. 표를 예매하려 했더니 전체 71석 중 29,30석만 남고 내 자리는 어떤 아가씨 둘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밀려나 29번석에 앉았다. 저것들이 내 자리를 빼앗았네 하고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파랗고 청명했다. 내 옆 빈자리는 누가 와서 앉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기차가 떠날 순간 깜찍하게 생긴 아가씨가 헐레벌떡 달려와 내 옆에 살짝 앉으며 생끗 웃었다.
아! 저 하늘같이 맑은 눈!
나는 순간 하늘같이 참 맑은 아가씨 눈을 보았다.
아가씨가 꾀꼬리같이 맑고 예쁜 소리로 물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아가씨는 하늘…….”
“예? 하늘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요. 아가씨가 하늘…….”
“제 이름을 아세요?”
“네?”
“저를 아니나요?”
“초면인데요.”
“그런데 어떻게 제 이름을?”
“아가씨 이름이 뭔데요?”
“하늘이에요...
옆 사람 16. 부엉이///지루하게 긴 글입니다////
내 옆 좌석에 우중충하고 오종종하게 생긴 70대쯤 보이는 부엉이같이 새까만 차림의 영감이 가방과 검은 비닐 봉투를 들고 콩콩 달려와 앉았다.
아무 상관도 없는 옆자리 승객이 아가씨가 와서 앉으면 기분이 좋고 부엉이같이 생긴 사람이 앉으면 왜 싫은지 내 심보를 모르겠다.
아가씨든 영감이든 나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거 아닌가. 솔직히 말해 아가씨가 좋은 건 내 속이 엉큼해서인 것 같다. 하하하.
키도 작고 새까맣고 오종종하게 생긴 사람이 내 옆자리에 앉자마자 비닐봉투에서 무슨 빵인지 모르겠으나 별로 안 좋은 냄새나는 것을 꺼내어 우걱우걱 먹는 것이었다.
밀가루 냄샌가? 하는 중에 날마다 그 시간이면 나오는 안내방송 “기내에서는 음식을 잡수시면 안 됩니다. 핸드폰은 진동으로 하시든 꺼놓으시기 바랍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이 부엉이 영감은 수그린 채 우적우적 먹기에 정신 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좋지 않았고 빵 냄새도 별로였다.
부엉이 영감, 빵을 다 먹고 나더니 가방을 열었다. 힐끗 훔쳐보니 책이 가득했다. 나는 책만 보면 눈이 번쩍 띄고 마음이 변하는 별종이다. 호기심이 나서 지켜보다가 그가 꺼내 드는 책을 보고 더 깜짝 놀랐다.
어!! ?? 저건? <역대 세계의 소피스트> !!
왜 놀라느냐고?? 그 책은 바로 우리 출판사에서 발행한 철학 교양서이기 때문이었다.
출판 50년에 내가 만든 책을 보는 사람은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나는 갑자기 빵 냄새도 구수하고 오종종한 영감의 얼굴이 귀하게 보여서 말을 건넸다.
“선생께서는 그 책을 어떻게 가지고 계십니까?”
부엉이영감 입술에 빵이 묻은 채 대답.
“난 꼴이 이렇게 생긴 대로 별볼일없는 인간이지요. 이 나이가 되도록 나이만 먹고 배고프면 음식이나 해치우는 식충이니까요.”
“식충이가 아니십니다. 책을 들고 계신데…….”
그가 물었다.
“어다까지 가시오?”
“수원까지 갑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디까지 가시나요?”
부엉이 영감 대답.
“대전까지 갑니다. 내일 모 대학에서 철학특강을 해달라는 청을 받아서 가는 길입니다.”
그 대학은 내가 잘 아는 대학이고 거기서 우리 출판사 그 책을 선택한 적도 있어서 반가웠다. 그는 변명 비슷하게 말했다.
“나는 여섯 시에 아침을 먹고 오후 사섯 시에 저녁을 먹습니다. 1일 2식이지요. 차에서 음식을 먹지 말라고 했지만 난 그 시간에는 꼭 먹어야 삽니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몇 마디 더 나누다 시간이 되어 나는 차에서 내렸다.
집으로 돌아오며 반성했다.
내가 참 교만하고 건방지고 못돼먹은 인간이라는 것.
남을 외모만 보고 평가하는 못된 습관이 있다는 것,
남자보다 여자를 좋아하는 수컷 추태 인간이라는 것,
별로 할 줄도 모르면서 하는 체한다는 것,
내 허물은 못 보면서 남을 비판한 비겁한 인간이라는 것,
매사에 이름값을 못한다는 것…….
집에 도착하도록 생각하니 반성할 것이 너무 많아서 줄여야 한다.
부엉이 영감이 유대인으로 말하면 랍비 같은 분이었다.
유대인들은 거지 중에도 랍비가 있으므로
외모로 상대 평가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난 고개를 숙여야 해.
옆 사람 17. 이상한 고슴도치
31번석 내 옆자리에 새까만 망태기 모자에 새까만 마스크를 하고 털이 부실부실한 회색 목도리에 까만 털 오버를 들쓴 아가씨가 앉았다.
고슴도치를 연상시켜서 첫인상이 제로였다. 그런데다가 놀랍게도 손톱이 게딱지같이 길고 거기다 회토색칠을 했는데 그 위에 뭘 또 붙여서 손톱인지 뭔지 이상하기만 했다.
별 사람이 다 있네 하고 생각하는데 자리에 앉은 지 5분쯤 스마트폰에 빠졌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2호칸 앞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그런데 들고 온 가방을 내 옆자리에 둔 채였다. 별로 크지도 않은 가방만 동그마니 두고…….
아가씨는 화장실이 있는 2호칸으로 간 뒤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가방에 신경이 쓰였다. 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누굴 믿고 그렇게 굴려놓고 갔을까 해서였다.
5분쯤 지나 돌아와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더니 또 일어나 2호칸 쪽으로 갔다. 가방은 여전히 둔 채.
이 아가씨 설사가 나서 그런가? 아니면 여자만 하는 뭐 그것이 급했나? 나를 믿고 가방을 두고 간 건가? 왜 가방은 그냥 두고 돌아다닐까?
그러는데 잠시 후 돌아온 아가씨는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 있다가 이번에는 일어나 1호칸 맨 뒤쪽으로 갔다.
그 사이에 차가 수원역에 도착, 그래도 아가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가방만 두고 빈자리를 뜨자니 공연히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주인 없는 가방을 그냥 두고 내리면……?
개운치 않고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할 수 없이 내려야 했다. 그래서 뒷문 쪽으로 하차하러 가면서 보니 그 아가씨가 뒷구석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내렸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만약 그 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 고슴도치가 나쁜 사람이면 가방 옆 사람 나를 잡고 그 안에 뭐뭐가 들었었는데 없어졌다고 덤벼든다면 어떻게 될까?
가방만 동그마니 두고 내리면 어떻게 되는 거야 하는 의문도 생겼지만……, 만약 그녀가 나를 잡고 그 안에서 돈을 꺼내갔다고 악을 쓰며 경찰서로 가자고 한다면? 아이구, 상상만 해도 소름!
이상한 옆 사람이 나의 기분을 어지럽혔다. 나는 아무 탈 없이 내린 것이 다행스런 생각까지 들었다.
만약 빈자리에 둔 가방을 누가 집어간다면? 하는 기우도 생기고…….
낯모르는 옆 사람이지만 거동조심하고 자기 물건을 잘 간수하고 조심할 할 때 남도 편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 여자 애는 산에 살다 온 고슴도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그 아가씨는 세상 사람을 자기를 믿듯 남을 믿는다는 신뢰감이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나라가 우리나라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해도 좋지 않을까.
옆 사람 18. 황새의 꿈
오늘은 31번 석을 빼앗겨서 63번 석을 예매하여 자리를 옮겼다. 63번 석에 앉아 영등포역에서 오르는 승객을 보니 적어도 30명 이상이 줄을 지어 들어오는데 거의가 아가씨들이고 남자는 드물었다.
입구 맨 앞에 들어선 아가씨는 참새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뒤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새들처럼 느껴졌다.
참새 뒤에 비둘기 그 뒤에 뻐꾸기 그 뒤에 수탉 또 뒤에 독수리 그 뒤에 화려한 수꿩 그 뒤에 종달새 그 뒤에 날씬한 제비 그 뒤에 납작한 뜸부기, 또 뒤에 부엉이 그 뒤에 꾀꼬리 그리고 또 몇 사람,
그 뒤를 다리가 길고 목이 가느다랗고 꺼벙한 황새 영감이 꺼덕꺼덕 따랐다.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아주 나쁜 놈이다.
나도 할배면서 같은 할배를 싫어한다는 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드니 말이다. 그래서 예쁘고 깔끔한 새 하나가 내 옆에 오기를 바랐는데 허허!
옆 사람 19. 심술 거북이/////
열차 31석은 창 쪽이다. 오래 타고 다니다 보니 열차의 창가는 홀수석이고 짝수 석은 통로쪽이라는 걸 알았다.
오늘은 거북이처럼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한 영감이 나보다 먼저 와서 내 자리 31번 석에 앉아 있다가 태연히 32번석을 가리키며 앉으라는 거다.
대개는 남의 자리에 앉으면 일어서서 자기 자리로 옮기는데 이 거북이는 내 자리에 앉아 주인 노릇을 했다.
자리가 별것도 아닌 건데 기분이 언짢았다. 할 수 없이 32번 석에 앉았다. 그 거북이영감이 한마디 했다.
“아무나 먼저 앉는 사람이 주인 아닌교?”
“알았습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일었다. 가만히 보니 나이도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영감 노릇은 나를 앞섰다. 거북이 영감 창밖을 내다보며 지껄여댔다.
“앗따 아파트가 천지 아닌교. 저기도 아파트, 여기도 아파트, 아파트 천지요. 저 많은 아파트 속에 사람이 다 살...
옆 사람 20 / 공짜도 싫다는 염소
어제는 31번 석을 빼앗겨 55번 석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늘씬한 키에 멋쟁이 아가씨가 뒤따라와 앉자마자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힐끗 보니 긴 머리채에 마스카라한 눈썹이 하늘로 뻗쳤는데 마스크에 가려서 얼굴과 눈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상대의 눈빛을 보아야 그의 심성을 파악하고 내가 품고 다니는 <울타리>를 주는데 판단이 서지 않았다.
서울역서 떠나 영등포역까지 15분, 영등포에서 수원까지 15분이 걸린다. 그 짧은 시간에 낯선 옆 사람한테 말을 건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스마트폰만 보지 말고 책도 보자는 운동을 하는 출판문화수호운동가가 아닌가. 그래서 자존심을 접고 말을 건넨다.
멋쟁이 아가씨가 게임에 빠져 있는데 방해를 한다는 거 보통 바보가 아니면 하기 힘든 바보짓이다. 그러나 나는 진짜 엉뚱하다. 그래서 아가씨한테 누구에게나 했듯 말을 건넸다.
“미안해요. 평소에 책 읽기를 좋아하시나요?”
그녀 딱 한 마디.
“저는 책 질색이에요.”
나는 가방에서 울타리를 꺼내 내밀었다.
“이 책은 독서를 안 좋아하는 분을 위해 만든 책입니다. 한번 읽어 보실래요?”
“싫어요.”
정나미가 똑 떨어지는 소리. 마치 칼에 벤 느낌이고 낯이 뜨거웠다. 그래도 나는 참 질긴 사람이다. 또 한 마디 더.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잠자는 독자를 깨우려고 만든 책이에요. 드릴 테니 검토라도 해보세요.”
“싫다니까요. 다른 사람이나 주세요.”
그제야 이 여자 눈을 바로 보았다. 염소 눈이다. 책뿐 아니라 무엇이든 오만하게 거절할 상이다.
그래도 나는 책 표지에 있는 스마트 북이라는 글자를 짚어 보이며 한 마디 더 했다.
“여기 보세요. 스마트 북이라고 했지요? 스마트폰 옆에 스마트 북이 있다면 얼마나 좋아요. 스마트폰 보다가 지루하면 스마트 북도 보면….”
아가씨가 손을 쏙 내밀며 한 마디.
“주세요, 갖고 싶어요.”
나는 고맙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건네주었고 그녀는 스마트 폰을 가방에 넣더니 스마트 북을 읽기 시작했다.
약 십분 동안 앞 페이지서부터 읽어 들어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 다행이다 도로 내밀지 않고 읽어주시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거저 준다는데도 책이 싫다는 사람들한테 돈을 내고 사가라고 하다니 그런 미련퉁이가 세상에 어디 있나! 허허!
이 책 한 권 만드는데 원가만도 3,000원이 드는 것을 싫다는 사람한테 공짜로 주면서 애를 태우고 바보짓을 하는 곰이 누군가?
바로 나!
내가 아닌가! 그러면서도 좋다고 허허거리지 않나. 내가 웃는곰이라고 지은 닉네임은 절대 잘 지은 이름이다. 허허허.
오늘 경험을 생각해 보면 7,000원을 보내주신 회원이 얼마나 고마운 분인가 그 사랑의 높이를 잴 자가 없다.
그 앞에 절을 드리고 싶고 10부, 50부, 100부를 사서 나누어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그분들한테는 춤을 추며 감사드릴 수밖에 달리 갚을 길이 없다.
* 그래도 곰 이야기를 읽어주시는 회원님 감사합니다.
옆 사람 21 / 앞사람 또 앞에 물소///////////
오늘은 무궁화 1호칸 15번 석에 앉았다. 앞에 앞 7번석에 앉은 사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데…….
목소리는 물소같이 왕왕거리고 컸다. 그 주변 내 옆에 옆자리까지 다 들리는 소리로 서울역에서 영등포역까지 가도록 지껄이더니 또 영등포역에서 떠난 후에도 계속했다.
들리는 소리는 별것도 안닌 것.
“하하하, 그때 말이야 그 사람이 누구더라, ‘누구?’ ‘아 그래 그 사람이군, 그런데 말야 내가 하나를 건졌더니 그 사람 샘이 났는지 옆에서 떠나더라고.’ ‘내가 잡은 게 얼마냐 하면 월척도 넘는 큰 놈이었는데 하하하하’ 거기는 물 반 고기 반이었어, 하하하, 그 날 말이야 우리 실컷 먹었지? 그 맛에 낚시질하는 거 아닌가 하하하, 그리고…….”
내용은 낚시를 해서 즐거웠고 월척 붕어 안주로 술을 얼마나 먹었던지 하는 이야기가 끝나자 또 다른 사람한테 전화를 걸어서 하는 소리...
옆 사람 21 / 입석표와 캥거루
매주 금요일은 지방 사람들이 몰려서 귀향하는 날이라 승객이 만원이다. 오늘 4월 1일은 입석표 승객이 특히 많았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서울역에서 입석표를 샀을 경우는 기차 4호 칸으로 가시면 좋습니다. 거기는 입석표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여 만들어 놓은 카페 같은 칸입니다. 서울역에서는 그 칸이 비어서 영등포까지 갑니다. 그러나 영등포역에 도착하면 자리가 메어져 지하철처럼 서서 가야 합니다.)
나는 매일 타는 지정석을 빼앗기고 55번 석에 앉았다. 서울역서 내 옆자리는 아무도 오지 않아 빈 자리였다. 그 사이 통로에는 입석표 승객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고.
내 옆자리는 차가 출발할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대개 서울역에서는 여기저기 빈자리가 있어서 입석표 가진 승객들이 차가 출발할 때까지 만이라도 서 있다가 예약자가 안 오고 빈자리일 때 가서 앉는다.
옆 사람 22 / 예쁜 비둘기
내가 63번 석에 앉자마자 서울역서 64번 옆자리에 아담한 아가씨가 비둘기처럼 내려앉았다.
아가씨는 앉자마자 석조전 행사 안내 팸플릿을 들고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가지고 온 종이 가방에도 ART라고 영어로 쓰여 있었다.
이 사람은 예술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얼굴을 보았다. 마스크에 가려 눈만 보았지만 비둘기 눈처럼 영리하게 생긴 아가씨였다.
서울역에서는 대개 빈자리로 가다가 영등포에서 누군가가 오르는데 오늘은 일찍이 옆자리를 차지한 아가씨가 호감이 가서 물었다.
“아가씨, 독서를 좋아하시나요?”
“네. 자주 좋아해요.”
기다린 듯이 한 마디로 대답하는 그 말! 얼마나 반가운 말인가. 내가 10개월 동안 한 달에 20일씩 200명이 동석을 했는데 오늘 두 번째로 독서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난 거다. 3개월 전에 착한 눈을 가진 최*혜라는 아가씨를 만난 뒤 두 번째다.
나는...
옆 사람 23 / 미니스커트 참새
오늘은 71번석 1호칸 맨 끝자리이다. 내 자리보다 더 마지막 자리는 72번 석.
열차가 영등포역에서 정차, 승객이 입구로 주르르 들어서는데 맨 앞에 참새처럼 작은 아가씨가 당당하고 빠르게 곧장 걸어오더니 내 옆자리에 딱 섰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짧은 스커트 밑으로 드러난 맨다리가 먼저 보였다.
아니, 벌써 저런 미니스커트를 입은 애도 있네! 하고 생각하는데 내 옆에 폴싹 앉았다. 그리고 어디서 하다가 왔는지 스마트폰에서 줄타기 게임을 열심히 했다.
그런 꼴의 애들은 책을 전혀 안 읽을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울타리>도 꺼내지 않고 가방에 넣은 채 한참 머물다가 그래도 한번 물어볼까 하고 말을 건넸다.
“아가씨, 책 하나 드릴까요?”
내 말이 들리자 얼굴을 내게 돌리며 한 마디,
“저 책 싫어요.”
아! 실망! 책이 싫다는 말에 실망이 아니다.
아가씨의 큰 눈이 호랑이? 눈 아래 위로 벌건 화장을 했는데 화난 짐승 눈 같았다. 그만 얼굴을 보고 나는 쪼그라들었다. 말도 걸기 싫고 다시 보고 싶지도 않았다.
넓적다리가 다 보이는 스커트에 진하게 한 화장한 얼굴, 실망이다 실망.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눈길을 돌리고 길만 내다보고 관심도 두지 않았다.
수원이 가까운 성균관대 앞을 지날 때 아가씨가 내게 말을건넸다.
“책 주신다고 했지요?”
나는 탐탁지 않아서 고개만 끄덕했다. 그랬더니 살짝 웃음까지 보이며 말했다.
“책 주세요.”
“싫다면서요?”
“저는 사실 책 좋아해요.”
“그런데 왜 싫다고 했지요?”
“제가 싫어하는 건 무조건 책을 준다는 사람이 주는 책들은 다 전도지거든요. 전도지 받는 거 싫어서 그랬어요.”
“정말 책을 읽으실 건가요?”
“주세요.”
울타리를 가방에서 꺼내주었다. 아가씨는 책을 받자마자 밝은 얼굴로 말했다.
“전도 책 아니네요. 고마워요. 책도 예쁘고 목차가 재미있을 것 같아요. 잘 읽겠습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나눌 새 없이 차가 수원역 도착, 내가 내리며 물었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평택이에요.”
“잘 가시오.”
“책 읽고 전화 드릴게요. 전화 알려주세요.”
“그 책에 전화번호가 있어요. 꼭 읽어보세요.”
나는 차에서 내려 집으로 오면서 생각했다.
‘책 읽고 전화한다고 한 사람이 몇 있었지만 아무 전화도 받아본 적이 없으니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차림새로 보아서는 그 말을 더 믿을 수가 없다. 참새같이 작은 애가 맨다리에 눈두덩이 벌건 얼굴, 그게 뭐야.’
허허, 외모만 보고 속사람 평을 하는 나도 문제야. 내 눈이 이상한 거지??(4월 12일)
옆 사람 23 / 새까만 까마귀 //
매주일 차를 타면 오늘은 무슨 이야깃거리가 생길까 하고 생각하지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오늘만 지나가면 이야깃거리가 없어서 내일은 편히 넘어가겠구나 생각했는데 금요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영등포역에서 내 뒤쪽에서 새까만 까마귀가 날아와 앉았다. 나이는 이십대 같은데 새까만 모자에 새까만 안경, 새까만 마우스 새까만 옷차림. 이건 완전히 까마귀다.
첫인상이 나빠서 처음부터 무시하고 바라보지도 않았다. 눈을 보아야 맘을 알 텐데 눈도 안 보이는 검은 안경.
뭐 이런 아가씨가 다 있어.
몽땅 새까만 걸 보면 마음도 새까말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힐끔 보았다.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는데 화면도 깨알보다 작은 새까만 글자가 가득했다.
저렇게 작은 글씨를 새까만 안경을 쓰고도 다 읽어질까?
없던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무리 훔쳐보아도 글씨가 깨알 같아서 읽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무관심하겠다고 생각해도 궁금한 것이 까만 안경을 쓰고 까만 글씨가 보일까? 하는 거였다.
나는 어린애 같아서 궁금한 건 물어 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하고 싶지도 않은 말을 억지로 했다.
“아가씨, 그 글씨가 다 보이세요?”
아가씨는 검은 안경을 내 쪽으로 돌려대면서
“잘 보이니까 읽지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엉뚱한 말을 했다.
“아가씨는 책 좋아하시나 보지요?”
“네.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 말은 반가웠다.
그래서 안 주리라 생각한 <울타리>를 보이면서 물었다.
“이런 책 보셨어요?”
“그런 책도 있어요? 못 보았어요.”
“이 책은 스마트북이에요. 스마트폰 좋아하는 사람 옆에서 친구하라고 만든 책이지요.”
“스마트북이라고요? 책이 아기같이 작고 예쁘네요.”
아가씨가 보기와는 달랐다.
이 까마귀가 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니!
책을 내밀면서 이 책 드릴까요? 했더니
웃는 입으로 대답했다.
“고마워요. 주신다면.”
새까만 것 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는데 웃는 입만 보았다. 입은 예뻤다.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나빴던 감정이 물러가고 호감이 생겼다.
아가씨는 책을 받아 첫 페이지를 읽고 가운데서 홀로코스트를 펼치면서 물었다.
“홀로코스트도 있네요?”
“네, 그것은 아주 유명한 노벨상 수상작인데도 아주 재미있어서 연재하기로 했지요. 어떤 독자는 연재해서 올리는 내용만 보다가 서점에 가서 아예 책을 사서 읽는다고 해요. 그 끝에 책이 보고 싶은 분은 서점에 가서 사셔도 된다는 안내를 해 놓았거든요.”
“저도 읽어보고 생각해 볼게요.”
그러는 사이 수원역 안내 방송이 나왔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수원 친구 만나러 오는 중이에요.”
나도 수원서 내린 다고 했더니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허리를 숙이고 얌전하게 인사를 하고 앞문 쪽으로 갔다.
나는 언제나 뒷문 쪽으로 내리므로 그렇게 돌아서며 생각했다.
까마귀도 예쁜 까마귀가 있는데 내가 문제야.
늘 외모로 상대 평가를 하는 오만은 버려야 하는데…….
난 까마귀만도 못해!(4월 22일)
옆 사람 24 / 잘생긴 기린
목요일 1호차 좌석을 놓쳐서 2호차 71번 석에 앉는데 바로 뒤따라 한 젊은이가 앉았다. 체구도 좋고 얼굴도 늠름하게 잘생긴 40대로 보이는 젊은이였다.
참 잘생긴 젊은이구나. 나도 저렇게 잘 생겨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다시 태어나도 저렇게 멋진 인물로 태어나기는…….
허허, 꿈도 야무지게 내가 감히 그런 기대를 하다니!
이러고 있는데 그 젊은 친구, 가방을 열더니 넓적한 컴퓨터를 켰다. 나는 그게 무슨 기계인지 모른다.
다만 만주 문학기행 갔다 올 때 비행기 옆좌석에 앉으신 김영백 목사님이 그런 걸 가지고 글씨도 읽고 그림도 보고 사진도 찍는 걸 보아서 매우 좋은 기계라는 것만은 안다.
그 젊은이는 화면을 열더니 무슨 책인지 한 페이지를 열고 연필 같은 것으로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다가 스마트폰을 꺼내어 무엇인지 단어 검색을 하기도 했다.
누구 눈에는 뭣만 보인다더니 ...
옆사람 25 / 예쁜 도깨비
오늘은 63번 석에 앉았는데 64번 석에 첫인상이 고운 예쁜 아가씨가 앉았다.
아가씨는 앉자마자 크고 까만 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빨갛고 작은 가방을 꺼냈다. 그리고 빨간 가방을 열고 주춤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무엇인가를 찾았다.
내 앞에 노블레저 젖가슴이 보이도록 엎드려 의자 밑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통로 쪽을 이쪽저쪽 살폈다.
하는 짓이 이상하여 그녀를 지켜보았다. 나중에 의자 뒤쪽 틈에서 무엇인가 꺼냈다.
그리고 자리에 앉더니 예쁘게 생긴 동그란 손거울을 열고 들여다보면서 손거울 잡은 손에 까맣고 작은 병뚜껑을 열고 거기서 방금 찾은 가느다란 붓을 꼭 찍어 속눈썹을 그렸다.
대단한 기술이었다.
서울역에서 떠난 차가 흔들리는데도 눈썹을 예리하게 그렸다. 그리고 까만 붓에 묻은 잉크를 앞좌석에 붙은 망에다 붓끝을 문질러 닦았다.
나는 그러면 못 써요 하고 싶은 걸 참고 ‘아가씨가 교양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만 했다. 다음에는 빨간 가방에서 무언지 꺼내어 거기서 거무스레한 액체를 손가락에 바르더니 눈두덩 위에다 먹칠(?)을 했다.
그리고 또 작은 솔을 꺼내더니 눈썹을 새까맣게 발랐다. 그리고 또 약간 굵은 연필 같은 것으로 원래 예쁜 눈썹에다 덧칠을 했다. 예쁜 눈썹이 시커멓게 본래의 모습이 무너졌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빨간 가방에서 쇠로 된 거미다리 같은 원형 도구를 꺼내어 눈썹을 위로 말아 올렸다.
화장 도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보고 느낀 대로 썼지만 그 아가씨 서울역에서 시작하여 안양까지 가도록 20분 이상을 꼬무락거리고 화장을 해댔는데 다시 보니 처음 미녀가 아닌 도깨비로 변했다.
눈이 서양 여자처럼 휘둥그레지고 눈언저리가 아프리카다. 처음 본 예쁜 얼굴이 없어졌다. 안 예쁜 눈이다. 나는 실망했다.
처음 얼굴 그대로였으면 나는 말을 걸고 <울타리>를 주었을 건데 울타리 얘기는 아예 하기도 싫었다.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든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아름답게 지어 주셨는데 내가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본모습을 깨뜨리고 천사의 모습에서 악마의 모습으로 바꾸어 살고 있지 않는가.
얼굴 화장은 그렇다 치고 얼굴을 성형수술로 바꾸어 놓아 하나님 앞에 도착한 사람을 하나님이 보고 넌 누구냐? 하고 물으면 저 모르세요? 김미라요 할 때 하나님께서 ‘아니다 난 너 같은 천사를 만든 적이 없다. 넌 내가 만든 천사가 아니야. 넌 나를 속이는 악마다. 물러가라’ 하실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본 미인을 두고 화장한 여자한테 실망했듯이
인간은 과욕으로 천성과 덕을 잃고
본 모습에서 벗어나 사는 사람이 많다.
그 중에 나도 끼어 사는 거다.(2022.5.4)
옆사람 26 / 두꺼비 아가씨
오늘은 1호차 63번 석이 내 자리였다.
기차의 맨 끝 칸이므로 승객이 뒤쪽 문에서도 탄다. 내가 자리에 앉으려는데 뒷문으로 올라온 사람이 나보다 먼저 64번 석에 앉았다.
서울역에서 옆자리에 타는 사람은 흔하지 않은데 나를 앞질러 타는 사람이 있으니 놀라서 얼굴을 보았다.
까만 차림의 여자. 우둥퉁한 얼굴, 뒤룩거리는 몸집, 왕잠자리 눈처럼 두껍고 큰 안경을 쓴 아가씨였다.
나보다 앞질러 탄 사람이 좀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평택이에요.”
“한 시간쯤 걸리겠지요?”
“초행이라 모르겠어요.”
가만히 보니 안경이 두꺼비 눈 같고 우둥퉁한 몸매가 책이라면 고개도 돌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심술궂게 이런 사람도 책을 읽을까 하고 어쭙잖게 교만한 생각을 하며 물었다.
“책 읽기 좋아하시나요?”
“네. 아주 좋아해요.”
이크! 이게 무슨 대답?
그러면서 박처럼 큰 얼굴에 함박꽃처럼 웃는데 목소리는 미녀를 연상케 하는 맑은 음성이었다. 잠깐이지만 건방지게 생각한 나를 꾸짖으면서 가방에서 <울타리>를 꺼내 보였다.
“이 책 크기보다 내용은 쓸 만한 게 있어요. 드릴까요?”
“네, 주시면 호호호.”
그녀는 내가 내민 책을 받아들면서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핸드백 속에 집어넣고 책장을 펴들었다.
‘야호! 스마트폰을 집어넣게 만든 스마트 북 승리!’
그녀는 읽기 시작했다. 두꺼운 안경을 쓴 것으로 보아 시력이 안 좋은 것 같은데 금방 책장을 넘기며 읽었다. 시력도 나쁜 사람한테 책을 억지로 맡기는 것도 무리가 될 것 같고 못할 짓을 한 것 같은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명시거리를 유지하고 25분 동안 꼼짝 않았다. 그 동안 책의 중반을 넘겨 읽고 있었다. 책을 읽어주는 것이 고마워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앞으로 5분 있으면 수원역에서 내립니다.”
“그러세요? 금방 내리시겠네요.”
“그 내용 중에 좀 괜찮은 것이 있습니까?”
“다 좋은 것 같아요. 평택 갈 동안이면 다 읽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다 읽고 나서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시거든 그 책에 증정 사인을 해서 친구한테 선물하시면 좋아할 겁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옆자리에 앉는 사람은 적어도 7천 원짜리 선물을 받은 행운아다. 나를 만났으니 행운아가 된 것이고 내가 행운아를 만들어 놓고 그 곁에 앉았으니 나도 행운아다. 행운은 나에게만 따로 오는 게 아니다. 내가 누군가를 행운아로 만들고 그 곁에 내가 존재하면 바로 나도 행운아가 되는 것이다.’
얼굴이 우둥퉁하고 몸매가 설명하기 곤란한 아가씨였지만 속사람은 바로 내가 찾는 아름다운 독자였다.
아! 나는 몇 년을 더 살아야 속사람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질까? 나는 눈 뜬 장님이고 겉 사람만 보는 애꾸눈이 아닌가. (2022.5.20. 미국대통령 오는 날)
옆사람 27 / 곰같은 내 인생
내 옆자리에 아주 인상 좋은 청년이 앉았다. 말끔하고 밝은 얼굴이 마음을 끌었다. 그래서 말을 쉽게 걸었다.
“미안해요 학생인신가요?”
“네.”
억양이 경상도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 물었다.
“전공은 무슨 과인가요?”
“기계과입니더.”
보기보다 퉁명스런 경상도 사투리다. 학과가 책하고는 거리가 멀 것 같아서 약간 실망감이 스쳤다. 그래도 물었다.
“책 읽기 좋아하시나요?”
“안 좋아합니더.”
“내가 책 읽기를 안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이런 책을 만들었어요. 한번 보시겠소?”
울타리를 내밀자 마지못해 두 손으로 받아들며 허리를 숙이고 겸손히 인사치레를 했다.
“이 책은 꼭 읽어보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한 마디 더 했다.
“혹시 읽고 싶지 않은 경우는 누군가 친한 친구한테 선물로 주셔도 좋아요.”
“아입니더. 꼭 읽어볼 거라예.”
“어디까지 가시오?”
“구미까지 갑니더.”
말끔한 인상과는 달리 경상도 사투리가 주는 무뚝뚝한 억양에 내 목이 쏙들어갔다.
바로 이때 스마트폰에 벨이 울렸다.
기차 속이라 조심스럽게 받았다. 의외의 최교수님이었다.
“하하하, 나 아현동에 왔습니다.”
“아현동이시라니요? 지금쯤 한강을 건너가셨을 텐데 왜 아현동입니까?”
“한글에서 나와 2호선을 타고 사장님이 주신 <울타리> 3호를 읽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지하철 2호선을 한 바퀴 돌아 도로 아현역에 왔습니다. 사무실로 올라갈까요?”
“아닙니다. 저는 기차 타고 퇴근중입니다. 계속해서 한 바퀴 더 도세요.”
“또 돌라고요? 이 책 두 사람이 읽다가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를 만큼 재미있습니다. 하하하.”
전화는 그렇게 끝났다. 교수님은 왕십리를 향해 가시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울타리를 펴낸 것의 보람을 느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50년이 넘도록 외길로 달려오며 600종이 넘는 책을 펴냈지만 <울타리>를 만들어낸 보람만큼 좋은 기분은 없다.
<울타리>는 스마트폰 시대에 꼭 필요한 스마트 북이다. 전 국민이 블랙홀 같은 전파 매체에 빨려 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이때 내가 감히 도도한 전파문명 앞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이 출판인으로 일생을 투신한 나의 용기며 보람이라는 생각이 대견하기도 하다.
내 출판 인생에 삶의 보람을 주머니 속의 작은 책에 담는 의미는 누구한테나 칭찬받고 자랑하고 싶은데 과욕일까? (2022.5.27.)
옆사람 28 / 지구호 승객들의 합창
나는 오늘 특급열자 지구호를 타고 여행했다.
내 옆 좌석에는 굉장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바로 옆에 이택주 수필가, 그 옆에 김어영 시인이 또 옆에는 목사 최건차 수필가가 앉았는데 앞에도 뒤에도 모두 친숙한 얼굴들이었다.
멀리 대구에서 KTX를 타고 오신 박하 수필가와 배정향 시인이 반가웠다. 특히 박하 권사님이 다가와 나를 안아주면서 차에서 받은 간식 건과류 미니 박스를 선물이라고 주시는 우정은 감격적이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모두가 마스크를 해서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뒷좌석으로 갔을 때 예쁜 미인이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눈이 예쁜 얼굴인데 누군지 알 수가 없어서 당황하며 인사를 했다.
“누구신지요?”
“모르시겠어요?”
“마스크에 가려서…….”
미인이 마스크를 벗으며 물었다.
“이래도 모르시겠어요?”
“이크! 김순희 권사님이시잖아요?”
나는 놀라 박수까지 치면서 반가워했다. 그렇게 마스크에 가려 못 알아본 얼굴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럴 때 마스크 좀 벗어보실래요? 하면서 발견한 얼굴. 김영백 목사님, 정사모님, 이권사님, 안권사님, 마스크를 벗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얼굴들이 있고 마스크를 썼어도 알 수 있는 얼굴도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오래도록 만나기 힘들었던 회원들을 만나니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회원 중에는 친정오라비라도 만난 듯 반기는 분이 있었고 나도 시집간 누나를 만난 듯 반가움을 느낀 92호 출판 기념회였다.
마지막으로 여자 회원들이 다 모여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면서 예쁜 천사들이 다 모였네 하고 박수를 보냈다. 길게는 25년 짧아도 10년 이상 나하고 친숙하게 지낸 얼굴을 만나는 기쁨은 글로 쓸 능력이 모자란다.
처음 인사한 밝은 인상을 주는 김연수 사모님은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얼굴같이 친근감이 들고 부담이 없었다. 나를 처음 보시니 나를 소개하는 방법이 없어서 “카톡 한크회원방에서 옆사람이라는 글을 쓰는 곰입니다” 했더니 금방 아는 체를 하셨다. 가끔 그 글을 읽으셨다고 했다.
나는 회원들의 사랑을 참 많이 받는다는 것을 느낀다. 만나는 사람마다 옆사람 재미있게 읽고 있다는 인사가 그렇다.
찬양단의 찬양은 언제나 좋았고, 양왕용 교수님 강의는 유익했다. 그 자료를 준비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을 거다. 유인물로 되어 있더라면 울타리 한쪽에 살짝 올려도 좋을 내용이었다.
특히 나를 놀라게 한 분은 김어영 시인이다. 얌전한 충청도 아저씨가 시 낭송을 위해 아내를 생각하며 쓴 <머위잎> 긴 시를 암송하시는 것을 보고 저런 애처가 인물이 우리 협회에 있다는 것이 보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눈에 띄는 건 92호 표지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언제든 울타리에 한 번 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직업이 출판이니 그림만 보면 책 표지를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행사 중 남창희 장로님, 양영숙 권사님의 사회진행도 능숙하여 좋았다.
지구호 열차 옆자리에 이렇게 훌륭한 승객이 별처럼 많이 동석하고 나 같은 것도 끼어 여행한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지구호 옆자리 승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건필하여 문단의 별이 되시옵소서.(2022.6.3. 한크문학 92호 발행 감사예배날
옆사람 29 / 꽃네와 장미울타리
오늘 71번석 옆 72번 석 여자 동행자는 단정한 몸가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적당한 키에 단정하고 깔끔한 차림, 교양 있게 보이는 꽃네는 단정히 무릎 위에 작은 핸드백을 올려놓고 인형처럼 반듯하게 앉았다.
인상이 주는 분위기가 말을 함부로 걸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울타리> 말은 안 하기로 하고 중학생 때 생각을 회상했다.
중 2때 여자 미술선생님한테 느꼈던 그런 감정이 이런 것이었던 것 같다. 그 선생님은 미술시간에 다들 그림을 그리라고 해 놓고는 내 옆에 바싹 붙어서 내 그림 지도만 특별히 해 주셨다. 여기를 이렇게 해야 원근법이 되는 것이라든가 뭐 그런 친절한 지도였다. 서울대 미대를 나왔다는 선생님은 동화속의 공주처럼 매우 뽀얗고 예뻤다.
그 선생님을 회상하면서 옆 좌석의 깔끔이 꽃네한테는 의식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서울역에서 수원까지 30분간 앉았지만 그녀는 단정한 몸매 그대로 담담했다.
그렇게 수원역에서 내렸다. 꽃네가 내 앞에 서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도 늘 타는 대로 그 뒤를 따라 올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꽃네는 내가 갈 버스 환승장을 향해 걸었다. 나도 그 뒤를 따라 걸었고 내가 타고 갈 400번 버스에 그녀가 먼저 올랐다. 나도 따라 올랐다.
그리고 내가 내릴 아파트 앞 정거장에서 꽃네가 내렸다. 나도 따라 내렸다. 꽃네는 잰걸음으로 내 앞을 걸었다. 나도 따라 걸었다. 드디어 아파트를 둘러친 100여 미터 되는 장미 울타리 길을 따라 걷다가 꽃네가 걸음 속도를 줄이더니 내 뒤에 처져서 걸었다.
나는 흐드러진 장이울타리 장미들한테 반하여 참 예쁘다, 정말 예쁘다 하고 장미에 취해 걷다가 발길을 멈추고 뒤에 따라오는 꽃네한테 감히 말을 건넸다.
“이 장미울타리가 참 예쁘지요?”
꽃네는 생각보다 친절하게 대답했다.
“네. 아주 아름다워요.”
“꽃들이 모두 우리를 보고 하하하 웃는 거 같지요?”
“그래요. 모두 웃는 미인들 같아요.”
꽃네는 상상보다 상냥하고 웃는 눈이 예뻤다.
“장미 울타리를 아시나요?”
“여기가 장미울타리지 않아요?”
이때 내가 가방에서 <장미울타리>를 내보이며 말했다.
“이게 장미울타리입니다.”
“어머, 정말 장미울타리네요.”
“장미울타리를 장미울타리 앞에서 드릴게요. 받으실래요?”
“그냥 주시겠다고요?”
“네.”
꽃네는 책을 받아들고 말했다.
“장미 울타리 앞에서 장미 울타리를 받네요. 책이 아담하고 예쁜데요.”
“책도 예쁘지만 내용은 더 예쁘답니다. 꼭 읽어 보세요.”
“고마워요. 그런데 죄송하게도 저는 겁을 먹고 있었어요. 기차에서부터 여기까지 내 뒤를 계속 따라오시는 것이 불안했거든요. 이런 책을 주시는 분인 줄 모르고… 미안해요.”
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는 동안 장미 울타리 끝에 이르러 쌍갈래 길에 앞에 이르렀다. 꽃네는 왼쪽 길로, 나는 오른쪽 길로 헤어지며 인사.
“안녕히!”
꽃네는 그렇게 단정한 모습으로 걸어갔고 나는 나대로 우리 집을 향해 걸었지만 마음은 꽃네를 따라가 돌아오지 않았다.(2022.6.7.) ///////////////////
** 나는 ‘그녀’라는 대명사 대신 ‘꽃네’. ‘그’라는 대명사 대신 ‘별’이라는 대명사를 쓰기로 혼자 정했습니다.)
옆사람 30 / 쌀쌀맞고 귀여운 고양이
나는 1호차 63번 석에 앉았고 64번 석에는 같은 여자가 오늘 세 번째 동석했다. 세 번씩이나 앉았지만 말을 건네지 않았다.
이유는 쌀쌀맞고 날카로운 눈빛 때문이었다. 이상하게 그런 여자는 싫었다. 그런 여잔데 자리에 꼿꼿이 앉아 스마트폰에 빠졌다.
승객들이 오르고 어수선한 가운데 두꺼운 두꺼비 안경에 울퉁불퉁하게 야생적으로 생긴 부인이 다가와 옆자리 여자한테 자리를 내달라는 것이었다. 자기 자리라는 거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입력된 화면을 내보이며 자기 자리라는데도 쌀쌀맞은 여자는 꼼짝 않고 자기 폰의 화면만 내보이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안경 아줌마는 화가 나서 당장 덤벼들 기세였다. 그래도 옆자리 여자는 태연히 자기 폰만 내보이고 말이 없었다.
안경 아줌마는 계속해서 자기 자리라고 거의 3분 정도 우기는데도 옆자리는 꼼짝 않았다. 내가 보...
옆사람 31 / 나는 우물 안 개구리
1년 동안 내 옆자리에 240명이 앉았지만 자리에 앉으면서 인사하는 사람을 오늘 처음 만났다. 40쯤 되어 보이는 차분하고 얌전한 인상의 여성분이었는데 옆자리에 와서 겸손히 허리를 숙이며 ‘저 여기 앉겠습니다.’ 했다. 나는 당연히 ‘네 앉으세요.’하고 대답한 다음 말을 건넸다.
“저는 수원까지 갑니다만 어디까지 가시나요?”
“왜관까지 갑니다.”
왜관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50년 전 내가 33세 때 도서출판 예원각을 시작하고 2년째 되는 어느 날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 날 오후 5시쯤이었는데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어른 부부가 우리 사무실로 들어와 대뜸 이런 인사를 했다.
“선생님요, 우리 좀 도와주이소.”
난 돈을 구걸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한분이 보자기에 싼 물건을 내놓으며 말했다.
“이기 진짜 꿀입니더. 우리 부부가 이것을 팔라고 서울까지 왔는데 사주는 사람이 없십니더. 선생님, 이 꿀 좀 사주이소.”
가짜 꿀 장수가 왔나 싶어 안 사겠다고 하자 아주머니가 사정을 했다.
“선생님요, 우리 좀 살려주소. 이것을 몬 팔면 우리는 집으로 갈 차비가 없어서 몬 갑니더.”
“집이 어디세요?” 하고 묻자 두 분이 이구동성으로 “왜관입니더.”하는데 사기꾼 같지 않아 억지로 3만 원을 주고 샀다. 두 분 말로는 5만 원도 안 아까운 꿀이라 하였다. 먹어보니 가짜는 아닌 것 같았다. 두 분은 굽실굽실 인사를 하고 돌아가면서 한 마디를 남겼다.
“우리는 왜관서 문화여관을 합니더. 왜관 오시면 꼭 한번 들리소.”
나는 왜관에 갈 일도 없지만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지냈는데 옆자리 승객이 왜관까지 간다는 말에 궁금해서 물었다.
“왜관이 대구보다 멉니까?”
“대구보다 가깝습니다.”
“거기까지 몇 시간이나 걸립니까?”
“한 시간 40분 정도 걸립니다.”
“그다지 멀지는 않네요. 그런데 책 읽기를 좋아하십니까?”
“네,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러시면 가시는 동안 이 책 한번 읽어 보실랍니까?”
하고 <울타리>를 내밀었다.
“그냥 주시겠다고요?”
“네. 읽어만 주시면 고맙습니다.”
인상이 단정하고 좋아서 또 물었다.
“미안합니다만 무슨 일을 하시나요?”
“전에 대구 출판사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이라는 말에 나는 귀가 번쩍 띄었다. 동화를 써놓고 화가를 만나지 못하여 화가 만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염치없는 소리를 했다.
“저는 동화를 써 놓고 그림 없는 책을 냈습니다. 제가 쓴 동화가 있는데 그림 좀 그려주실래요?”
“작품을 보아야지요.”
“그 책 <울타리> 판권에 이메일이 있습니다. 거기다 선생님 메일 주소를 넣어 주시면 동화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리고 나는 차에서 내렸고 옆자리 승객이 떠난 다음 날 이메일로 주소와 전화를 알려왔다. 나는 어떤 작품을 보낼까 생각하다가 짧은 동화 <뻐꾸기와 종달새>라는 탁란을 소재로한 41쪽짜리 원고를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에 그분의 답이 이메일로 왔다.
* (여기서부터 작가님들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꼭 읽어 보시기 바람)
이메일로 온 답글은 7쪽을 스캔하여 올린 것으로 내 글 가운데 잘못된 곳을 빨간 연필로 지적하여 놓았는데 나를 깜짝 놀라 했다.
나도 내가 그렇게 엉터리 작품을 쓴 줄 몰랐다. 7쪽 쪽마다 지적한 곳을 살피고 감동하여 전화를 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미숙한 작품을 보여드렸는데 친절히 지적하여 주시니 배움이 됩니다.”
“아닙니다. 제가 작품을 잘못 이해한 것 같기도 합니다. 받고 2번 읽었습니다. 첫 번 읽고는 실망했다고 할까요. 작품 소재가 흔한 것으로 평범하고 집필 테크닉이 70년대라고 할까요. 크게 작품 평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실망하여 다시 물었다.
“그럼 50점짜리도 안 되나요?”
“그렇지 않아요. 두 번 째 읽고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어요. 이런 작품을 쓰자면 연륜과 창작 경력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쓰기 쉽지 않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속독한 것과 두 번째 정독한 소감은 달라요.”
이런 평을 받고 나니 내가 정저지와라는 생각이 들었다. 80년 넘도록 나이만 잔뜩 주워 먹고 실력은 유치원생이라는 생각.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써 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생각했다. 작품이 시원찮아서 그림을 안 그려주시겠구나 했다. 그런데 어제 작품 지적한 문맥을 스캔한 것을 또 보내왔다. 무려 1쪽부터 27쪽까지!
나는 지적한 곳을 스캔하여 보낸 페이지를 자세히 읽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작품 쓰는 태도가 매우 방만하고 양적 욕심만 채우려 들고 질적 배려는 없이 그냥 날아다니고 싶어 한 것이 흠이다. 나는 작품을 쓸 때 깊이 구상하고 한 문 장, 한 단어를 심도 있게 선택하지 않고 함부로 기분 나는 대로 써왔다.
문장은 깊이 생각하여야 하고 단어는 고소장 문구 쓰듯, 소송 답변서 단어 쓰듯, 법률용어를 쓰는 자세 이상으로 신중히 단어와 문장을 쓰고 다듬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것에 너무 경솔했다.’
한명희 소설가가 ‘문장과 단어는 바위에 글자를 새기듯 써야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나는 많이 쓴 것만 자랑한 내가 부끄럽고 나 같은 사람이 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왜관으로 감사의 문자를 보냈다. 그분한테 물었다.
“유화나 수채와 일러스트 가운데 어떤 것으로 그림을 그리시나요?”
“저는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요. 작품을 보고 어느 것을 선택하여 그릴 것인가를 결정해요. 아무 작품이나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이 말씀 또한 처음 듣는 말이었다. 대개는 작품을 내놓고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면 자기 취향대로 그려주는 것이 보통인데 작품의 성격에 따라 그림 선정을 한다는 것도 나한테는 생소한 답이었다.
<뻐꾸기와 종달새>라는 탁란(托卵) 판타지 동화 삽화를 그 선생께서 그려주셨으면 좋겠다. 마치 초등학생이 선생님이 주시는 점수를 기다리듯이. (2022.6.17.)
옆사람 32 / 지겨운 30분 즐거운 30분
한 자리에서 30분간 동행하는 사람이 함께 앉은 것이 불편하여 30분이 길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같은 30분이 아주 짧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옆자리에 폭탄이 터진 느낌이 들만큼 멧돼지 같은 사람이 쿵 하고 앉자마자 늘어진 배를 내 앞에 늘어뜨리고 내가 열어놓고 내다보는 창문 커튼을 확 닫더니 의자를 벌렁 젖히고 다리를 쩍 벌리고 누워 무슨 소린지 중얼거리던 사람.
그는 나를 불쾌하게 만들어 놓고 인사 한 마디 없었다. 그 꼴을 보고 침묵으로 동행하는 나는 그 옆에서 당장 떠나고 싶었다. 그 시간만큼 지루한 30분도 없었다.
그런데 꾀꼬리같이 고운 목소리에 공주같이 아름다운 23세 아가씨는 나를 기쁘게 했다.
그녀는 내가 말도 걸기 전에 어디까지 가세요? 오늘 날씨가 참 좋지요. 저는 대전에서 진구 만나러 가는 중이에요.
이러는 아가씨한테 내가 웃으며 ‘그래요, 참 좋은 날이에요. 내가 선물 하나 드릴까요?’ 하자 ‘주시면 고맙지요.’ 하여 <울타리>를 내밀자 ‘책이네요. 저는 책을 아주 좋아해요.’
그리고 받더니 한참 동안 읽었다. 책 읽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는 꽃보다 예쁜 사람이로군 하고 생각하는 동안 차가 수원이 가까워졌다.
아가씨는 ‘저는요, 박정희 대통령이 어떤 분이지 잘 몰랐고요, 나쁜 독재자라고만 배워서 알았는데 여기를 읽어 보니 눈물이 날 만큼 훌륭한 대통령이셨네요.’
‘그렇지요. 박대통령은 정말 한국을 살린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울타리>를 잘 만들었다. 더 좋은 책을 만들어서 스마트폰에 빠진 사람들을 책 읽는 사람들로 끌어내야 한다.’
그 아가씨에게 박대통령 이야기와 스마트 북 울타리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는데 그만 차가 도착하여 자리를 뜨면서 인사했다.
‘잠깐이지만 아가씨 즐거웠어요. 이름은?’
‘최은*이에요. 안녕히 가세요.’
같은 30분인데 너무 짧고 야속한 이별이었다. 무엇을 하는 아가씨인지 어디 사는지도 모르지만 잠깐이지만 따듯한 마음을 나누었기에 고맙고 아름다운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같은 30분이 불쾌할 수도 있고 즐거울 수도 있는데 부부가 한 번 만나면 죽음의 종착역까지 가야 한다.
좋은 옆사람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오죽하면 이혼을 하겠는가만.
대개의 부부는 좀 섭섭해도 참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늙어가며 백년해로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부부로 만나 서로 안 떨어지고 아옹다옹하면서도 자녀를 곱게 기르며 꿈을 길러주는 부부처럼 아름다운 관계도 없지 않은가.
* 회원님(김연수 사모님과 신영옥 권사님)이 정담을 나누는 동안 이 글을 쓰면서 올리면 회원들께 방해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됩니다. 양해 바랍니다.
옆사람 33 / 꺽다리 킹크랩
63번 좌석은 입구에서 한참 걸어야 도착하는 자리다.
오늘은 또 누가 내 옆에 오시려나? 기다리는데 긴 통로에 줄줄이 들어서는 승객들 가운데 기인 하나가 등장했다.
키가 2미터도 넘을 듯 굉장히 큰 거인이 앞사람을 따라 오는데 뒤에 따르는 사람이나 앞선 승객들이 모두 꼬마들로 보였다.
야! 굉장한 거물이 나타났구나!
나는 감탄하며 그가 어디로 가서 앉을까 생각했다.
설마 내 옆자리는 아니겠지 하고 은근히 밀어내려는 심사로 보고 있는데 그가 성큼성큼 오더니 하필이면 내 옆자리 64번 석에 서서 허리를 숙이고 다리를 꺾고 앉는 게 아닌가!
희한한 꺽다리 킹크랩이 내 곁에 인사도 없이 앉았다.
그런데 웃기는 현상은 다리가 너무 길어서 좁은 자리에 다리를 꺾고 넣어도 안 되어 내 쪽으로 한 다리를 들이밀고 뻗고 오른쪽 다리는 통로로 내밀고 앉았다.
다리는 그런데 더 놀라운 모습이 나를 웃겼다.
그렇게 큰 사람이 자리에 앉았는데 그 이마가 내 어때 아래로 납작하게 내려다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앉자마자 쓰고 있던 안경을 대머리 위로 밀어 올리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하체는 꺽다리인데 상체는 난쟁이 가까웠다.
쓰고 있던 안경은 왜 벗고 스마트폰을 보는지?
다른 사람은 안 썼던 안경도 쓰고 보는데 왜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다리만 길고 상체는 짧아서 마치 다리만 긴 킹크랩을 연상케 했다.
다리가 그렇게 긴 사람을 곁에 앉히고 힐끔거리자니 갑자기 어린 시절 암마한테 듣던 <반쪽이 이야기> 생각이 났다.
내가 일곱 살 때는 집집마다 석유 등잔으로 밝히고 살았는데 석유 값이 비싸다고 일찍 등잔불을 껐다.
초저녁에 억지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엄마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장화홍련전, 유충렬전, 심청전, 춘향전, 흥부와 놀부 이야기, 그밖에도 더 많다. 그런데 특히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도는 이야기는 <반쪽이 이야기>이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 가운데 <반쪽이 이야기>를 들어보신 분이 있으면 만나고 싶다. 이유는 그 이야기의 마지막을 잠이 들어서 못 들은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참 재미있었다.
잠깐 앞 이야기만 들려준다면 이렇다.
옛날 어느 동네에 키가 삼척이나 되는 장다리 반쪽이가 살았다. 반쪽이라 눈도 반쪽, 코도 반쪽, 입도 반쪽, 목도 가슴도 팔도 오른팔만 있었다.
아주 긴 다리도 반쪽인데 힘이 얼마나 장사인지 한번 다리를 접었다 쭉 펴고 뛰어오르면 십리를 뛰고 마음만 먹으며 아무데고 가고 싶은 곳을 한 번에 튀어 간다는 것이다.
반쪽이가 하루는 산속으로 돌아다니는데 집채만 한 바위 위에서 한 사람이 자고 있는데 숨을 들이마시면 바위가 쑥 들어가고 숨을 내쉬면 바위가 불쑥 올라오는 것이었다.
반쪽이가 가까이 가서 잠자는 사람을 깨웠다. 그랬더니 자던 사람이 눈을 번쩍 뜨고 황소 같은 소리로 소리쳤다.
“어떤 놈이 남의 잠을 깨우는 거냐? 허허, 도깨비야 뭐야?반쪽짜리가 사람도 아닌 것이 어디서 감히!”
반쪽이가 대답했다.
“이 사람아, 사람 잘못 보았네. 뭣이 도깨비?”
“네가 도깨비가 아니고 뭐냐? 물러가라.”
“좋다, 물러갈 테니 나하고 내기 한번 해보자. 네가 이기면 물러가마.”
“뭣이 어째? 병신이 육갑하는 소리를 하는구나. 좋다, 해보자.”
반쪽이가 제안했다.
“저 산 꼭대기에 큰 나무 밑까지 누가 먼저 올라가나 경주하자. 먼저 올라간 사람이 형이 되기로 하자.”
“좋다. 네 말대로 하지. 자, 그럼 이제 똑같이 뒤는 거다.”
“좋다, 출발!”
바위에서 자던 장사가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달리다 돌아보니 반쪽이가 그냥 서 있는 게 아닌가. 그것을 보고 소리쳤다.
“왜 가만히 있는 거냐? 자신이 없다는 것이니? 항복이냐?”
“무슨 소리! 간다!”
이렇게 소리치던 반쪽이가 쿵 하고 발을 굴렀다.
그것을 본 바위장사가 숲속을 헤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산꼭대기에 다 올라 돌아보니 반쪽이는 보이지 않았다.
“병신이 감히 나하고 경주를 하자고, 흐흐흐.”
이렇게 비웃는데 산 위에서 반쪽이 소리가 들렸다.
“이봐라, 그렇게밖에 오지 못하겠느냐?”
올려다보니 어느새 반쪽이가 앞서 나무 아래서 비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위장수는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좋아, 깨끗이 승복하는 네가 마음에 든다. 넌 이제부터 내 아우다. 이름은 바위산이다.”
“네, 형님.”
힘이 장사인 의형제는 산을 넘고 넓은 들을 걸었다.
그런데 한 곳을 바라보니 굉장히 큰 정자나무가 허리를 숙였다 폈다 하는 것이었다. 바위산이 말했다.
“형님, 이상한 일도 다 있습니다. 나무가 저렇게 허리를 숙였다 폈다 하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가 보자.”
그들이 나무 아래 도착해 보니 한 사람이 나무 그늘에서 자고 있는데 숨을 들이쉬면 나무가 푹 숙이고 숨을 내쉬면 나무가 벌떡 일이서는 것이 아닌가!
** 이렇게 하여 이야기는 밤이 새도록 계속됩니다. 너무 길이서 뒷이야기는 여기서 다할 수 없고 크리스천문학가협회 카페에서 다 들려드리겠습니다. 다만 이야기를 아시는 분의 연락을 부탁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옛날이야기를 많이 아시는 건 외삼촌이 학자여서 책읽는 소리를 많이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옆사람 34 / 판도라의 상자//////
사람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옆에 앉은 사람과 말을 트지 않으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입을 열어보면 그 사람 속이 드러난다. 바로 입은 판도라의 상자 뚜껑이다.
내 옆자리에 앵무새보다 예쁘고 사랑의 노래보다 야리야리한 20세로 보이는 깔끔하고 단정한 아가씨가 앉았다. 아담한 키에 노란빛이 도는 갈색 머리에 인형처럼 작고 하얀 피부의 미인이었다.
이 예쁜 아가씨는 눈도 맑고 착해 보이고 흠잡을 데가 없는 천사 같은 미모였다.
저렇게 예쁜 사람이니 마음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하며 한참을 가다가 말을 건넸다.
“아가씨, 독서 좋아하시나요?”
아가씨는 놀란 듯 예쁜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독서가 뭐예요?”
“책 읽기요.”
“저 그런 거 안 좋아해요. 책이라면 질색이에요.”
‘……!!’
나는 순간 실망을 했다. 그렇지만 한번 말을 건넸으니 <울타리>를 주어 책과 친하게 하리라 생각하고 책을 내밀었다.
이 예쁜 아가씨, 책도 안 받고 자기 스마트폰을 내밀어 보이며 하는 말.
“이렇게 좋은 게 있는데 왜 책을 읽어요. 이 안에 뭐든지 다 들어 있어요. 지금 누가 책 같은 것을 들고 다니며 읽어요.”
아!! 이 말에 나는 기가 꺾였다. 내밀었던 손이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이런 인간을 위해서 만든 것이 울타리 아닌가.
미모에 호감이 갔었지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오는 무시, 시기, 원한, 질투, 복수, 슬픔, 미움 등 온갖 재앙이 쏟아져 나왔지만 마지막에 희망이라는 것이 남아 있어서 판도라가 그것을 꺼내어 세상에 풀어놓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요 예쁜 것이 나를 실망시키고 있지만 판도라 상자 속에 마지막 남은 희망으로 사람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나도 희망으로 사는 사람이다.’
나는 실망한 감정을 누르고 물었다.
“아가씨는 어디까지 가시나요?”
“부산 가요.”
“앞으로도 다섯 시간은 가야 하겠지요?”
“네.”
“그 동안 지루하시지요?”
“네.”
“스마트폰도 계속 들여다보면 지루하시지요?”
“그럴 때는 자요.”
“자고 깨서는 뭘 하시나요?”
“창밖을 보지요.”
나는 아가씨 가슴에 못을 박듯 말했다.
“이 스마트 북은 스마트폰을 보다가 지루할 때 보라고 만든 착한 반려예요. 이거 받으셨다가 언제든 지루할 때 한 페이지라도 들여다보세요. 절대 손해 볼 일은 없어요. 어느 책이든 스마트폰처럼 재미는 없지만 읽어두면 지식이 돼요. 스마트폰은 재미로 보지만 책이 주는 지식처럼 남지 않는다는 건 알아야 해요.”
아가씨는 나를 힐끗 보더니 마지못해 울타리를 받아주었다. 거저 주고 뺨맞는다는 치사한 생각도 들었지만 참고 말했다.
“고마워요. 가다가 한 페이지라도 읽어 보시고 맘에 안 들면 가까운 친구한테 주세요. 책 좋아하는 친구는 선물로 생각하고 좋아할 거예요.”
싫다는 것을 억지로 주며 고마워한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수원서 내렸고 아가씨는 눈으로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무궁화호는 부산으로 가고 나는 우리 동네로 가는 버스에 올라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이 바로 판도라의 상자다. 처음 만난 사람과 말을 트지 않으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 입을 열어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옆자리 예쁜 아가씨는 바로 판도라의 상자였다. 그 예쁜 아가씨의 뚜껑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얼마나 실망스러웠던가.
그래도 나는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 남은 희망을 가지고 웃으며 오로지 한 길을 간다.
옆사람 35 / 예쁜 할미꽃
제 시간에 도착해 있어야 할 기차가 오지 않아 승차장 벤치로 갔다. 나보다 먼저 와서 차를 기다리는 분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우리 협회에서 2년간 회장을 지내신 전덕기 권사님으로 보였다.
둥그런 챙이 달린 동그란 하얀 모자, 빨간 블라우스에 녹색바지, 그리고 하얀 구두, 하얗게 보이는 뒷머리, 선하게 보이는 눈과 예쁘고 동그란 얼굴.
하마터면 “권사님!” 하고 인사를 할 뻔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분이 방긋이 웃으며 앉은 옆자리를 살짝 피해 앉으며 “이리 앉으세요.” 했다.
나는 ‘고맙습니다.’ 하고 앉으며 그분의 얼굴을 살폈다. 외모와 차림은 전덕기 회장님과 똑같이 생겼는데 마스크를 해서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권사님은 지금 건강 문제로 외출이 어려운 처지라 다른 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자 그분이 물었다.
“내 얼굴에 무엇이 묻었나요?”
“아닙니다. 아주 곱고 예쁘셔서 보았습니다.”
“아이고 고마우셔라. 어디까지 가세요?”
“수원까지 갑니다. 여사님은 어디까지 가시나요?”
그분은 친절하게 대답했다.
“저는 평택까지 갑니다만 댁은 무슨 좋은 일로 가시나요?”
“저는 날마다 이 차로 출퇴근을 합니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도 보시기에 좋습니까?”
“네. 연세가 어떻게 되셨는지 모르지만 아주 예쁜 얼굴이십니다.”
“호호호, 그러세요? 저는 올해 일흔 둘입니다. 댁은?”
“저는 여사님보다 열 하고도 한 살이 더 많습니다.”
“그러시군요. 저는 옛날에 예쁘다는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며느리 삼겠다는 어른들, 자기 애인이 되어달라고 쫓아다니는 총각들, 결혼하자고 덤비는 부잣집 아들들. 정말 젊어서는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예쁘다고 했습니다. 보실래요? 거짓말 아닙니다. 이건 제가 마흔 두 살 때 사진입니다.”
그러면서 낡은 가죽지갑에 곱게 보관하고 있는 사진을 펴보였다.
빨간 원피스에 매끈하게 쪽 뻗은 다리며 야리한 허릿매와 단정히 말아 올린 머리가 삼십대로 보이는 예쁜 사진이었다.
그분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젊은 날 하늘을 날아다니던 새처럼 잊을 수 없다는 추억을 자랑했다.
그러는 사이에 차가 들어왔다. 마침내 자리를 떠야 할 시간이었다. 여사님이 물었다.
“무슨 일을 하시기에 그 나이에도 출퇴근을 하시나요?”
“출판사를 합니다. 여사님은 책 읽기를 좋아하시나요?”
“네. 좋아합니다.”
나는 반가운 생각에 울타리를 내밀었다.
“이 책 받으실래요?”
“그냥 주시겠다고요?”
“네. 읽어만 주시면…….”
“아이 좋아라. 책도 예쁘게 생겼네요. 나는 책만 보면 잠도 안자고 읽을 만큼 아주 좋아합니다. 좋은 선물 고맙습니다.”
그분은 3호차로 가며 귀여운 손을 흔들며 승차.
나는 1호차 63번 석으로.
열차 출발이 늦어져서 엉뚱한 나그네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세상에는 옆자리가 어디든 한정된 곳 없이 참으로 많다. 기차 좌석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무데고 옆에 앉으면 다 옆자리가 아닌가. 수원까지 오는 동안 생각했다.
“예쁜 할미꽃이 그냥 예쁜 게 아니다. 자기가 가꾸어야 예쁜 꽃이 되는 거다. 그분은 외모도 예뻤지만 마음이 더 예쁘게 느껴졌다. 책을 좋아한다는 것도 예쁘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늙히지 않고 젊은 사진 한 장이라도 품고 다닐 만큼 젊음을 아끼고 인생을 밝게 산다는 점이다.
오늘 대기실 벤치에서 만난 옆사람은 늙지 않은 예쁜 할미꽃이었다.(2022.7.20)
옆사람 36 / 화려한 비단벌레
내가 어렸을 때 학교 가는 겨냄이고개를 넘는 오솔길엔 온갖 벌레들의 놀이터였다.
그 벌레들 가운데 별 볼일 없이 수두룩한 것이 풀묵지이고 가장 못생기고 미운 놈은 송장풀묵지였다.
그리고 잡고 싶었던 귀여운 놈은 다리가 길고 파란 땅개비(방아깨비)이고 무서웠던 놈은 눈깔을 부라리던 오줌싸개였다.
아무리 까불고 다녀도 무시했던 놈은 땅개비 등을 타고 다니던 홀쭉한 때까치였다.
그리고 부러운 건 잠자리이고, 예쁘지만 부럽지 않은 건 나비였는데 무엇보다 무서운 건 뱀이었다.
고목나무 밑에는 집게벌레가 까맣게 우글거렸는데 장난감으로 두 놈을 잡아다 싸움을 시키고 놀다가 버리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 길은 온갖 벌레들의 이마트였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그물을 쳐놓고 먹거리가 걸리기를 기다리며 눈을 부라리던 거미도 옛날 친구 같다.
또 길옆 숲속에서는 여치가 비단같이 고운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베짱이는 하프를 연주했다.
그런 속에 어쩌다 꿩이 꿩꿩하고 소리치면 메아리가 길게 울려 퍼지고 산길은 갑자기 바다 속처럼 고요했다.
그럴 때 소리도 없이 내 앞에 니티난 새파랗고 화려한 비단벌레가 꼬리를 치며 앞질러 달아났다. 그놈은 벌레들 가운데 내가 가장 예뻐하는 벌레였다.
얼마나 빠르게 달아나는지 잡으려고 따라가도 잡을 수가 없었다. 예쁘고 얄미운 비단벌레는 학교 길에서 단연 미스코리아였다.
내가 갑자기 어려서 넘던 학교 길을 왜 떠올렸는가 하면 내 옆자리에 비단벌레같이 화려한 부인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
그 부인은 보통 키에 빨간 구두에 노랑 블라우스, 초록치마, 얼굴은 평범했는데 귀고리가 눈길을 끌었다.
귀고리 크기가 작은 사과만큼 큰데 황금이 아니라 새까만 바탕에 하얀 줄이 몇 개 쳐 있는 이상한 디자인의 귀고리였다.
부인이 비단벌레보다 예뻤느냐고? 아니다 어림도 없다. 스마트폰에 빠져서 내가 자기 귀고리를 노리고 보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한참 가다가 내가 물었다.
“여사님은 독서를 좋아하시나요?”
“독서가 뭐예요?”
“책 읽기예요.”
“난 세상서 가장 보기 싫은 게 책이에요. 왜 책 말을 하시지요?”
“품위 있게 보여서 그랬습니다.”
“됐어요. 난 이렇게 하고 다녀요. 다들 보기 좋다고.”
“책이 싫다지만 기억에 남는 책은 있지 않으신가요?”
“책이라면 싫어요.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밥맛이에요. 남 연속극도 못 보게 방해하시면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나는 울타리 말은 꺼내보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본 비단벌레가 떠올랐다.
껍데기는 화려한데 속사람이 송장풀묵지 같아서였다.
곤충 가운데 가장 많이 돌아다녀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싫어하고 발로 툭툭 차버리는 것이 송장풀묵지다.
그 화려한 부인은 비단벌레인 줄 알았더니 유감스럽게도 송장풀묵지였다.
옆사람 37 / 민들레 홀씨///////
내 옆에 바람보다 가벼운 민들레 홀씨가 날아왔다.
호리호리하고 작은 몸매의 아가씨는 옷깃도 스치지 않고 내 옆자리에 나비처럼 앉았다.
하늘하늘한 하얀 원피스 차림, 뽀얀 피부에 갈색 머리는 언뜻 예쁜 하얀 나비 같은 느낌이 귀엽게 보여 호감이 갔다.
그런데 이 민들레 홀씨는 앉자마자 노란 표지의 책을 펴들었다.
책을 가진 사람만 보면 나는 눈이 커진다. 그리고 무슨 책일까 하고 기웃거린다.
‘귀엽게 생긴 아가씨가 책을 좋아하는구나! 참 아름다운 모습이야, 무슨 책일까?’
나는 반가운 기대를 가지고 표지를 보려고 기웃거리는데 아가씨는 금방 책을 짝 펴들더니 핸드백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어 오른쪽 책장에 올려놓고 게임을 시작했다.
아! 실망. 책은 안 읽고 게임에 빠지다니!
나는 궁금증이 생겨서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 미안해요? 책은 안 읽고 스마트폰만 보시나요?”
“네, 책은 폼이에요.”
“폼이라면?”
“요새 책은 안 읽고 스마트폰만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요?”
“이렇게 하면 남 보기에는 내가 책 읽는 것같이 보이지 않겠어요. 책은 폼이지요.”
“그래도 책장을 폈으니 읽으실 거 아닌가요?”
“네. 어쩌다 읽기도 하지만 게임이 더 재미있어서…….”
“혹시 스마트 북이라는 거 보셨나요?”
“세상에 그런 책도 있어요? 스마트폰이 아니고요?”
“그 책은 스마트폰처럼 작고 내용도 스마트폰 수준입니다.”
“그렇게 작은 책이 있으면 그런대로…….”
“그런 대로라시면?”
“스마트폰을 가려주고 무겁지만 않으면 좋지요.”
“내가 그런 책을 보여드릴까요?”
“지금이요?”
나는 울타리를 꺼내 주면서 말했다.
“이 책이 바로 스마트 북입니다. 한번 읽어보실래요?”
“그냥 주시겠다고요?”
“읽어 주신다면 그냥 드리지요.”
아가씨는 울타리를 펴서 스마트폰에 맞추어 보더니 묘하게 웃었다.
“크기가 딱 맞네요. 이렇게 펴들면 책을 읽는 것처럼 보이겠네요. 작고 귀엽네요.”
“이 책은 스마트폰 때문에 책 읽는 독자가 줄어들어서 독서를 권하자는 독서권장 캠페인을 하려고 만든 책이에요. 게임만 하시지 말고 이 책도 읽고 또 여러 책도 읽으세요. 게임은 시간을 빼앗고 지적으로 남는 것이 없지만 책은 읽어두면 지식이 됩니다.”
“알았어요. 이 책이라도 한번 읽어 볼게요.”
“고마워요. 어디까지 가시나요?”
“천안 가요.”
차가 수원역에 도착했다. 나는 내리면서 잘 가시라고 인사를 했고 아가씨는 울타리를 예쁘게 저으면서 굿바이!
이 아가씨가 보여주는 폼이 머리 좋은 방책일까?
스마트폰만 보는 것이 남의 눈에 부끄러원서 책이라도 들고 부끄러운 몸을 옷으로 가리듯 그렇게 책을 희생시키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그런 지혜도 나쁘게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이 모두 스마트폰에 빠져 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책을 머리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자책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독서 쇼를 착안한 건 아닐까?
옆사람 38 / 얌체 뒤통수치기
기차에서는 옆 사람이 딱 한 사람이지만 전철을 타면 옆사람 앞사람 위사람 사람 장벽이다.
나는 매일 출근할 때는 아침 7시 17분 수원역에서 경로석에 앉아 전철을 타고 출발, 사무실에 도착하면 8시 33분이다. 한 시간 16분을 누군가 옆 사람 옆에, 입석자 코 아래, 그렇게 앉아 책을 읽는다.
며칠 전에 내 옆자리에는 50때로 보이는 여인네 둘이 나란히 앉았고 나는 문쪽에 앉았는데 성균관대역에서 70이 넘어 보이는 불그레한 통치마 아주머니가 커다란 자루를 끌고 들어와 바로 내 앞에 서서 기둥을 잡고 끙끙거렸다.
서 있는 사람들이 물러서 주고 아주머니 자루가 내 발 끝에 부딪쳤다. 나는 옆에 앉은 젊은 부인 둘 중에 누군가가 일어서며 자리를 양보할 줄 믿었는데 두 분이 꼼짝도 않았다.
나는 한 정거장을 가도록 양보할 부인을 기다리다가 내가 자리를 양보하기로 하고 일어서서 “아주머니 이리 앉으세요.” 했다.
아주머니는 기둥을 잡고 선 채 극구 사양했다.
“아녀유. 괜찮어유. 저보다 위로 보이시는데 그러시면 안 되쥬.”
“아닙니다. 저는 남자 아닙니까.”
“연세가 어찌 되시는디유?”
“겨우 83밖에 안 됩니다. 아주머니는 저보다 좀 아래이신 것 같습니다만.”
“한참 아래지유. 그런데 제가 거기 앉을 수 있남유. 서서 가도 괜찮어유.”
이런 말을 주고받자 서 있는 사람들이 약간 물러서서 아주머니가 편하게 해드리려고 했다. 이때 내 옆자리 건너 구석자리 부인이 마지못해 일어섰다. 아주머니는 자루를 끌고 그 자리로 들어가 앉아 나를 향해 인사를 했다.
“아저씨 고마워유.”
뭣이 고바울까. 고마운 것은 자리를 양보한 부인이 들을 소리가 아닌가.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내가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기 때문에 젊은 부인이 일어나 자리를 앉게 되어 고맙다고 하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가운데 꼼짝 않고 앉은 부인을 건너 나한테 말했다.
“저는 시골서 고구마 종사를 해서 캤지유. 아들이 고구마를 좋아해서 가지고 가는 길인데유. 아저씨도 몇 개 꺼내 드릴까유?”
“아닙니다. 저는 고구마를 싫어합니다.”
나도 좋아하는 고구마지만 거짓말을 했다.
나는 전부터 자리 양보를 잘하는 이유가 있다. 나보다 윗사람이 왔을 때 앉아 있으면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래서 자리를 양보하고 서 있으면 다리는 아파도 마음이 편했고 양보 받은 사람이 고마워하는 눈빛을 보내 줄 때 마음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내가 부인들한테 ‘자리 양보하세요’ 하는 말 대신 내가 먼저 양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끝내 앉아서 이 소리 저 소리 다 들은 부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옆사람 39 / 천사의 눈/////
9월 21일 무궁화호 부산행 1221열차 1호실 71번 석.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아주 깔끔하고 고운 30대 여자가 따라와 72번 석에 앉았다.
그녀를 보는 순간 섬광처럼 내 머리 속에 저장된 천사의 눈이 스쳤다. 어디서 본 눈이지? 낯익은 눈이고 얼굴인데? 어디서 본 사람일까? 곰곰이 생각하는 중에 멀리 있는 내 기억의 창고 문이 열렸다.
“아! 그 천사!”
내 기억 속에 충격을 준 사람이었다. 10년도 넘었을 것 같은 지하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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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할머니와 예쁜 아가씨
2호선 전철에서 아주 예쁜 아가씨를 보았다. 머리를 곱게 뒤로 동그랗게 묶어 올리고 단정히 무릎 위에 핸드백을 올려놓고 책을 읽던 아가씨. ///////
그 아가씨 앞에 키가 150이 채 안 되어 보이고 허리에 분홍 보자기를 띠로 말아 맨 채 통바지에 치렁한 남방 차림의 할머닌지 아줌마인지 다리를 약간 저는 분이 커다란 자루를 질질 끌고 나타나 전철 선반 위에 있는 신문을 내려 모았다. 팔이 닿지 않아 앞에 사람한테 신문을 좀 내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앞 사람은 무반응. 그 옆 사람도 무반응. 또 무반응…….
책을 읽고 있던 아가씨가 저쪽에서 일어서면서 책과 핸드백을 자리에 놓고 그리 다가가 할머니를 도왔다. 선반 이쪽저쪽을 돌며 신문을 내려 자루에다 다 넣어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책을 펴들었다.
모처럼 지하철에서 아름다운 천사를 발견했다. 그 아가씨 얼굴이 왜 그리도 더 예뻐 보이던지.
그런데 그 할머니인지 아주머닌지 자루를 질질 끌고 내가 내리는 이대역 한가운데 내렸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까지 가려는 눈치였다.
이대역은 구조가 엘리베이터는 서쪽 끝에 있고 동쪽 끝은 에스컬레이터만 있다. 나는 동쪽으로 걸었다.
한참 걷는데 ‘거기까지 도와드리면 좋을 텐데…….’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방향으로 나오고 말았다.
노인이 자루를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내 마음을 후벼 팠다. 내 맘은 헝클어졌다.
“인색한 놈, 인정머리 없는 놈, 말로만 선을 지껄이면서 행동은 동쪽으로? 넌 뭐야, 아가씨가 예쁘게 보였던 의미를 알면서, 네가 어떤 놈인지 알아?
나는 그 날 그분을 도와주지 않은 것을 많이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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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앉은 사람이 바로 내 기억에 입력된 그 여자 같았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혹시 오래 전에 2호선 3가역에서 타고 가다 선반 위에서 신문을 모으는 할머니가 선반 위의 신문을 못 내리고 있을 때 내려주신 일이 있으신가요?”
“네? 그런 일이 한번 있었는데 어떻게 아시지요?”
“바로 맞은편에 앉았던 사람이지요. 저는 그 날 많이 반성했던 기억이 있고 아가씨를 눈여겨보아 눈빛을 기억하지요.”
“네?”
“천사의 눈빛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지금 갑자기 그때 본 얼굴과 눈빛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한번 여쭈어 본 것입니다.”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데 그런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시나요?”
나는 <울타리>를 내보였다.
“책 좋아하시는 것도 기억합니다. 저는 출판사를 하면서 이런 책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대구까지 갑니다.”
“가시면서 지루할 때는 이 책도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시네요. 어디까지 가시나요?”
“지금 수원역 하차 준비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네요. 바로 내려야 합니다.”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겠네요.”
“그렇습니다. 먼 길 편히 가시고…….”
“선생님 명함이라도 주시면…….”
“그 책이 네 명함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나는 차에서 내려 돌아오면서 참 인연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10년은 넘은 것 같은 세월을 보냈는데 내 기억의 창고에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씨와 눈빛이 남아 있었다.
또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시간과 공간 속으로 말로 할 수 없는 미련을 싣고 기차는 무정하게 달려가고 우리는 그렇게 굿바이!
옆사람 42 / 둘 중에 하나만 잡으세요
오늘은 서울역에서부터 옆에 아가씨가 앉았다.
마스크를 해서 함께 있으면서도 상대의 얼굴을 확실히 볼 수가 없어 답답하다.
내 옆자리 아가씨는 약간 외롭고 슬퍼 보였다.
그래서 나는 곁눈질로 지켜보면서 왜 그렇게 보일까 생각했다.
사람은 모두가 뚜껑 덮인 항아리 같아서
그 속에 어떤 성품이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허리가 두리두리한 큰 항아리 같은 사람 속에는 어떤 성품이 들었을까?
기다란 항아리 같은 키다리 속에는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작고 예쁜 단지 같은 여자는 또 어떤 성품이 가득할까?
사람 속은 누구나 알 수 없는 뚜껑 덮인 항아리 같다.
엄숙한 사람도 말을 걸어보면 너그러운 사람이 있고
상냥할 것 같은 사람도 입을 열면 거친 독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얼굴 모양대로
그 사람의 인격이 속에 들어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노래가 하고 싶고
어떤 사람은 만나면 철학을 하게하고
어떤 사람은 소설을 쓰게 만들고
어떤 사람은 시를 쓰게 만든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문학 작품의
소재가 되어 돌아다니는 것이다.
나는 남들에게 무엇으로 보일까?
황소? 곰? 호랑이? 늑대? 토끼? 양?
아니면 안개꽃? 찔레꽃? 장미? 벚꽃? 진달래? 백합……?
아무튼 나는 이 중에 무엇이든 닮았어도 닮았을 것이다.
옆에 아가씨가 나를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말을 해 본 것도 아니고 누구인지도 모른다.
기차는 줄기차게 달리고 전철 정거장 몇 개를 건너뛰고 달려
수원이 가까워졌다.
낯선 옆 사람한테 말을 걸기란 지극히 조심스럽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갈까 하다가 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여 말을 건네고 말았다.
“아가씨 독서 좋아하시나요?”
“네?”
“책 읽기 좋아하느냐고요.”
“있으면 읽고 없으면 이거 보지요.”
그러면서 스마트폰에 눈길을 보냈다.
나는 무례하게 그녀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장미울타리 3호와 단풍울타리 4호를 내밀면서 물었다.
“이런 책 보셨나요?”
“아니요. 그런 책도 있네요.”
“이 책을 드리고 싶어요. 둘 중에 어떤 것을 드릴까요?”
“그냥이요?”
“네. 하나만 잡으세요.”
“둘 다 주시면 안 되나요?”
“안 돼요. 하나만 잡으세요.”
아가씨는 그제야 약간 밝은 얼굴로 장미울타리를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저는 수원 병원에 문병 가는 중이에요. 병원에 가서 읽어 볼게요.”
“고마워요. 이 책은 스마트폰에 빠져서 책을 안 보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스마트 북입니다.
다 읽어보신 후에 친한 사람한테 사인을 해서 선물로 주세요.
책 첫 장에 누가 누구한테 준다는 사인하는 페이지가 있어요.”
그 사이에 차는 수원에 도착,
아가씨는 앞문 쪽으로 가고 나는 뒷문 쪽으로 내렸다.
돌아오며 생각했다.
사람은 어떤 인상의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내 의식이가 바뀐다.
부부가 만나 평생 살면서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에게서 어떤 의식을 가지고 살까?
소크라테스가 악처도 견디고 살았듯
모든 부부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잠깐 만났다 헤어지는 사람한테 느끼는 의식이 이런데
늘 만나는 사람들한테 나는 무엇으로 보일까? /
옆사람 43 / 뚜껑 덮인 항아리가?
전에도 말했지만
사람 속은 정말 알 수 없는 뚜껑 덮인 항아리 같다.
아침 7시 17분 수원 전철역 4-1번 승차 위치에서
수개월 전부터 만나는 노신사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구부정하고 머리를 꺾어 숙인 자세였다.
아무리 보아도 선한 노신사 같았는데 특히 우리 협회 수필로 등단한
안양대학교 한명희 교수와 똑같이 생겼다.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아아니, 한 교수님이 아니십니까?”하고
실례를 한 뻔했다.
오다가다 보면 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많다.
꼭 한 교수 같은데 살펴보니 아니었다.
그분은 무엇을 하기에 아침마다 나처럼 출근을 할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나는 이상하게 호기심이 많아 궁금한 것은 못 참는다.
그래서 며칠 전에 인사를 했다.
“날마다 뵈면서 인사를 못했습니다. 저는 아현동까지 출근하는 사람입니다.”
“예, 저도 실은 뉘신지 인사를 하고 싶어도 못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인사나 하고 지냅시다. 직장이 서울이신가 보지요?”
“예, 한남동에 14개동 아파트가 있는데 관리소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나눈 뒤 날마다 아침이면
우리는 친구처럼 악수를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분은 서울역까지 가고
나는 서울역에서 우리 사무실까지 가는 길이
매우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려서 신도림역에서
갈아타기 때문에 차는 같이 타지 못한다.
그러다가 3일 전에 그분이 무슨 노트를 들고 있기에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들고 계신 것은 책인가요 아닌가요?”
그러자 그분이 내 앞에 그것을 내밀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심심할 때 낙서하는 낙서장입니다.”
낙서장이라고 하는 그 두툼한 메모장에는
‘나의 人生錄’이라고 굵직하게 씌어 있고
아래는 20이라는 숫자가 있고 밑에는
박수림(朴秀林)이라고 자기 이름을 써 놓았다.
순간 나는 항아리 뚜껑을 열어 보는 기분이었다.
“거기 무슨 글이 있는지 보아도 될까요?”
“부끄러운 것이지만 보시지요.
이것이 20번째 쓰고 있는 저의 인생록입니다.”
나는 들고 있던 울타리를 내밀면서 말했다.
“이 책은 제가 만든 책입니다. 한번 읽어보시지요.
그리고 가지고 계신 인생록을 하루만 저한테 빌려주시지요.”
“고맙습니다. 부끄럽지만 빌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나는 직업의식이 작동하여 20번째 썼다는 메모장을
출판물이 될 만한가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읽었다.
그 내용을 다 쓰기는 그렇고
다음 주 토요일에 몇 구절 옮겨야겠다.
사람은 모두 뚜껑 덮인 항아리 같아
열어보면 누구에게서든 신기한 것이 쏟아져 나온다.
판도라의 상자만 신기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판도라상자보다 신기한 비밀을 가지고
뚜껑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옆사람 44 / 그 딸에 그 엄마
바로 어제 5시 31분 서울역 내 옆자리에 보기 드문 미인이 와서 앉았다.
늘씬하고 큰 키에 눈이 매력적인 아가씨였다.
‘오!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다 있네?’
하고 생각하는데 그 아가씨 잠깐 앉았다가 일어섰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할배라 실망해서 같이 앉는 게 싫어서 그러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아가씨, 뒷자리로 가더니 어떤 분하고 속닥거렸다.
나는 섭섭한 기분이 들어서 생각했다.
‘너도 나만큼 늙어 봐라. 네 옆에 젊은 청년이 웃으며 앉을까?
내가 너무 늙어서 미안하다,’
그런데 이 아가씨 다시 옆자리로 돌아와서 앉지도 않고 주춤거렸다.
‘이상한 아가씨야, 앉든지 서든지 할 것이지 왜 이래?’
하고 생각할 때 아가씨가 허리를 납작 꺾고 말을 건넸다.
“죄송한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좀 도와주실래요?”
“무슨 말씀인가요?”
“저희는 대구까지 가는데요, 저하고 엄마 표하고 제 표가 결렸어요.
지금 계신 자리와 같은 뒤의 뒷좌석이 엄마 자리인데요.
혹시 자리 좀 바꾸어 주실 수 있나요?”
나는 선뜻 대담했다.
“그러세요? 그러시면 바꾸어드려야지요.”
그러면서 내가 일어서서 그리로 가자 아가씨 엄마가
허리를 숙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 딸에 그 엄마였다.
키는 딸보다 작지만 얼굴은 엄마가 더 복스럽고 예뻤다.
그렇게 하여 자리를 바꾸어 앉았고 잠시 후
아가씨가 내 앞으로 와 두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선생님. 감사 표시로 이거라도 드리려고요.”
나는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눈인사를 하고 받아 들었다.
아주 정성들여 포장한 과자인지 빵인지 알 수 없는 빵과자였다.
정4각형으로 사방 4센티 정도에 두께가 1센티쯤 되는 연갈색이었다.
잠깐이나마 할배가 싫어서 그러는 줄 오해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리를 양보해 주고 기분이 좋았는데
인사의 선물까지 받았으므로 나도 답례하고 싶어서
<단풍울타리>를 들고 다가가서 내밀었다.
“과자 값으로 이거라도 가져왔습니다. 받으시지요.”
아가씨가 울타리를 받아들었다.
그러고 모녀가 울타리를 주고받으며 말했다.
“책이 작으면서 예쁘게 생겼네요.
핸드백에 넣고 다녀도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겸손히 말했다.
“그렇습니다. 책은 작지만 내용은 큰 책 못지않습니다.
언제든지 짬날 때 읽으시면 좋을 것입니다.”
내가 자리로 돌아와 앉았을 때
몇 군데 잠깐 읽어본 아가씨가 짧게 찬사를 했다.
“아주 유익한 내용이 들었어요. 두고두고 잘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잠깐 사이에 차는 수원역에 도착했다.
나는 두 사람한테 인사도 못하고 뒷문 쪽으로 내렸다.
만약 내가 고집을 부리고 자리 양보를 해 주지 않았다면
모녀는 장거리를 떨어져 앉은 채 갔을 것이 아닌가.
그러면 얼마나 지루한 여행이 되겠는가.
나는 지극히 작은 양보를 했지만
두 분에게 큰 즐거움이 되어 준 것 같아 기뻤다.
‘잘했어 잘했다.’ 하고 내가 나한테 칭찬하며 집으로 와
그 과자빵을 아내한테 선물했다.
“사랑의 선물 받으시오.”
아내가 웃으며 받아들고 말했다.
“평생에 처음 받는 선물이라 고마워요.
무슨 선물인지 예쁘고 고급스럽네요.”
“이 빵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옆자리 아가씨가 준 거라오.
내가 먹기엔 아까워서 가져왔으니 그리 아시오.”
그러고 차에서 자리 양보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내가 잘했다고 하면서 포장을 벗기고 하나를 쪼개 들고 말했다.
“예쁜 분이 준 빵이라더니 속도 예쁘네요.
안에 치즈와 꿀과 또 뭐가 들었는데 이런 고급 빵은 처음 봐요.”
그러면서 반쪽을 주어 나도 속을 들여다보았다.
정성들여 만든 과자빵이었다.
먹어보았다.
보드랍고 달콤한 꿀맛이었다.
인간의 정이란 것이 별것 아니라는 걸 느꼈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를 양보하면
그것이 정이 되고 기쁨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터득한 날이다.
옆사람 45 / 두 번 만난 양보
11월 1,2일 양일간의 스토리.
첫날---
신도림역은 언제나 승객이 붐비는 환승정류장이다.
늘 그렇듯 오늘도 4-1번 승차대에 올라 승객들에 밀리어 경로석 쪽으로 갔다.
경로석에 젊은 층 애늙은이 셋이 꼭 박혀 앉았는데 가운데 사람이 더 늙어 보였다.
그런데 내가 들어서자 가운데 사람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내주는 것이었다.
나도 늙었지만 그도 65세는 넘어 보이는 사람이라 사양했다.
그렇지만 그가 굳이 양보하므로 자리에 앉으며 가방에서 울타리를 꺼내주며
“귀한 자리를 내주시어 고맙습니다. 이것이라도 감사인사를 드립니다.”했다.
처음에는 사양하다가 받아들고 3호 칸과 4호칸 통로로 가서 쪼그리고 앉아 내가 준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아현역에 내리면서 사람이 많아 그 사람한테 인사도 못하고 하차하여 사무실로 갔고.
마음으로만 감사하였다.
둘째 날-----
어제처럼 신도림역 4-1번 승차대에서 사람들에 밀려 경로석으로 갔는데 어제 그 사람이 오늘도 나를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인사를 못해 미안해하던 터였는데
또 자리를 양보하려고 해서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고집스럽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단풍울타리를 내밀었더니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어제 주신 책 재미있게 다 일었습니다. 안 주셔도 됩니다.”
“이 책은 그 책이 아니라 단풍울타리입니다. 장미울타리를 다 읽으셨다니 이것마저 읽어 보세요.”
그랬더니
“그러시면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책을 받아 든 그 사람은 역시 3,4호 칸 통로로 가서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 내가 말했다.
“선생, 이리 와 내 자리에 앉아서 읽으세요.”
했더니 굳이 그대로 있겠다는 거다.
그러자 옆자리에 좀 젊어 보이는 애늙은이가 일어서서 자리를 비워주었다.
내가 그 사람을 불러 옆에 앉혔다. 그리고 물었다.
“왜 서서 보지 않고 그렇게 앉아서 책을 보시나요?”
그 사람은 순하게 대답했다.
“제가 며칠 전에 척추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서 있지는 못합니다. 아무데서나 쭈그리고 앉아야 편합니다.”
그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시면서 이틀씩이나 자리를 양보하셨습니까?”
“어르신님을 서계시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고맙기는 한데 자기 생각을 먼저 하셔야지요. 어디까지 가시나요?”
“시청까지 갑니다. 저의 회사가 거기 있습니다. 좋은 책을 주셔서 아주 잘 읽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자리 양보하지 마세요. 저는 여기서 내립니다.”
그렇게 하고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가면서 생각했다.
나는 내 모습을 젊게 보이기 위해 배를 내밀고
허리도 펴고 모자도 눌러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씩씩하게 걸으며 이렇게 하면 늙은이같이 보이지 않겠지 하고
활보를 했는데…….
그런데 어디에 늙은 레테르가 붙어서
사람들이 금방 내 정체를 알아채고
자리 양보를 하는지
나의 속임수는 숨길 수가 없다.
“허허, 아무리 가면을 하고 숨바꼭질을 해도
달라붙은 세월의 허물은 벗지 못하는 법이 아닌가.
세월아, 나 좀 잡지 말고 젊은 체라도
맘껏 하게 버려다오.”
옆사람 46 / 아름다운 착각과 우연일치
무궁화호 1호칸 61번석 옆자리에 아주 반가운 아가씨가 와서 앉았다.
동그란 금테안경, 맑고 예쁜 눈, 동그란 이마와 뒤로 묶은 머리, 틀림없이 아는 사람이었다. 반가워서 인사를 하려다가 뜸을 들이고 아가씨를 살펴보았다.
나는 반가운데 아가씨는 아는 체를 안 했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아가씨 반가워요.”
아가씨가 겸손히 인사를 받았다.
“네.”
“이렇게 또 만났네요.”
“네?”
“벌써 잊으셨나요?”
“뭘……?”
“전에 옆에 앉았었잖아요. 수원까지 가시지요?”
“네.”
“영통 사시지요?”
“네.”
“직장은 여의도시지요?”
“네. 맞아요.”
“지하철 내리면 우측 광장 끝에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시지요?”
“네. 어떻게 그것까지 아세요?”
모든 것이 그 아가씨하고 다 맞는데! 나를 처음 본다는 눈빛이라니. 그래서 확인을 더 하기 위해 울타리를 내밀어 보였다.
“전에 이런 책 받으셨지요?”
“그런 책 받은 일이 없는데요.”
그럼 이 아가씨가 다른 사람인가? 다 맞는데 내가 준 울타리를 안 받았다고 하니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이름까지 알아보고 싶었다.
“이름이 채진희씨 아닌가요?”
“아닌데요. 제 이름은 허우인데요.”
“허우? 닉네임이시지요?”
“아니에요. 제 이름 맞아요.”
나는 허우 허우 하면서 바보처럼 웃었다.
“왜 웃으세요? ”
“요새 제가 쓰는 단편소설 주인공 이름이 허당인데 허우라고 하시니 재미있는 생각이 들어서요.”
“허당은 이름이 아니잖아요?”
“주인공 이름이에요. 그리고 그 딸 이름이 허우거든요.”
“네? 농담하시는 거지요?”
“진짜예요. 보실래요?”
그러면서 스마트폰을 꺼내어 요새 성용애 권사가 만든 28명 회원의 카톡방에 올리고 있는 <하필 허당에 국자가 빠지다>라는 익살스럽고 따듯한 소재의 글을 쓰고 있어서 그 대목을 열어 보여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미안하지만 허우는 한자로 어떻게 되나요?”
“허자는 아시지요? 우는 기쁠 우자예요.”
기쁠 우? 순간 내가 아는 만날우, 도울우, 어리석을우, 집우, 비우, 친구우, 빼어날 우를 생각했지만 기쁠 우는 생각이 안 났다. 기쁠 우자가 어떻게 생겼지요? 했더니 스마트폰을 열고 손가락으로 글씨를 써 보였다. 이렇게 ‘㥥’(오늘 컴에서 찾아보니 우자그룹 중 가장 끝에 있었다. 어려운 한자 하나 배움)
또 나는 스마트폰에 글씨를 손가락으로 쓰는 법을 모르는데 그것까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가씨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울타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책 이름이 정답고 아담한 것이 따듯한 느낌을 주네요.”
“그래요? 고마워요. 읽어보세요. 시간 손해는 안 볼 겁니다.”
아가씨는 주르르 대략 훑어보더니 말했다.
“흥미 있는 내용들 같아요. 특히 책 끝에 사자성어, 틀리기 쉬운 한자, 외래어 등은 유익해요. 두고두고 배워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차는 잠깐 사이에 수원역에 도착했다. 그 아가씨는 웃으며 영통행 지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나는 버스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울타리 1호를 처음 만들어 첫 번째로 친한 목사한테 보여주며 칭찬을 듣고 싶었는데 그는 독설을 퍼부었다.
“누가 이런 책을 읽어요, 본문을 촌스럽게 올 칼라로 하고, 책장마다 늙은이 냄새가 나요. 젊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늙은이들 사진뿐이잖아요. 제목 글씨도 아무 책에서나 쓰는 보통 글씨, 뭐 하나도 새로운 것이 없어요.” 하고 책을 책상에다 픽 밀어제쳤다.
나는 기분이 매우 나빴다. 그렇지만 입으로는 좋은 충고해 주어서 고맙다, 참고하겠다 하고 헤어졌다.
그래서 불쾌한 기분으로 차를 탔는데 그날 옆자리에 동석한 아가씨가 채진희 씨였고 그녀는 울타리를 보면서 칭찬하여 내 기분을 완전히 바꾸어 주었다. 칭찬만큼 용기를 주는 약은 없다.
수원으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길이 선 나한테 그녀가 수원역 구조와 차타는 길을 안내해 주어 얼마나 고마웠던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런 터에 똑같이 생긴 아가씨를 만나 헛소리를 해댔다. 완전히 우연의 일치의 착각이었다.
나한테 볼펜까지 준 그 아가씨는 언제나 또 만날 수 있을까?
옆사람 47 / 경로석에 앉은 죄
수원으로 이사 와서 날마다 퇴근길은 무궁화 열차를 탔다.
그러면서 1년 동안 궁금한 것이 전철 급행을 타면 얼마나 빠르고 좋을까였다.
게다가 무궁화는 1900원을 주고 타는데 전철은 공짜다.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급행을 타 보고 싶은 호기심은 털어버릴 수가 없었다.
마침 천안행 급행 전철이 왔을 때 시청 앞에서 서울역까지 1정거장 가는 동안
‘이번 역에서 자리가 나면 이 차를 한번 타 보리라’
했는데 마침 경로석에 빈자리가 났다.
일단 무궁화 열차 예약차표를 반납했다.
서울역에는 내리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이 더 많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용산, 영등포, 구로역에서도 내리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이 많았다.
마침내 차는 미어터지게 승객들로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찼다.
사람속의 사람은 마치 깊은 산중에 들어온 기분이었는데…….
경로석 좌석 코너가 문제였다.
노인들이 모두 그리로 몰려들어 백발 천국을 이루었다.
내 자리는 문 앞인데 가운데 옆자리에는 70대로 보이는 고습도치 머리의 젊은 노인이 앉았고 그 옆에는 머리를 틀어박은 인물이 머리가 까만데 얼굴을 들지 않아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 80은 되어 보이는 배불뚝이 영감, 마로 곁에는 80이 다 되어가는 백발 할머니, 그 곁에는 허리가 굽은 영감이 차에 기대서서 좌석을 내려다보고 있고 그들 등 뒤로도 백발노인들이 두 겹으로 서서 우우 소리를 치며 흔들거리고…….
머리 위에서 백발들이 내려다보면서 자리 나기를 기다리는 상황 속에 납작 쭈그리고 앉은 나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차라리 내가 일어서고 한 노인을 앉히고 싶었다.
누구한테 자리를 양보할까?
내가 자리를 양보한다면 허리가 가느다란 저쪽 할머니한테 내주고 싶은데 내가 일어서면 바로 앞에 80쯤 보이는 뚱뚱이 영감이 앉을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고심하고 있는데 옆의 젊은 고슴도치는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며 시시덕대고 있었다.
차가 안양역쯤에 섰을 때 바로 내 발 앞에 70대 젊은 할머니가 커다란 자루를 밀고 들어오더니 큰 가방을 자루 위에 올려놓고 섰다. 그 자루가 내 발등에 얹혀 뺄 수도 없이 찍어 눌렀다. 그 할머니는 이마에 땀을 닦고 끙끙거렸다.
스마트폰으로 안양서 수원까지 출발-도착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30분이 걸린단다.
내가 자리 양보를 하면 30분 동안 미어터지는 승객 틈으로 들어가 시달려야 한다.
경로석 코너를 둘러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안 보였다. 모두가 7,80대 노인들이다.
승객으로 빽빽한 자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타서 안내 방송 소리도 안 들리고 영상 안내판도 보이지 않았다. 짐짝처럼 앞뒤로 끼어 서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안타깝게 보였다. 그들한테 내 자리를 내주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것은 마음뿐, 앞에 옆에 끼어 있는 사람 사이가 지옥 같았다.
아무 말도 못하고 발등을 할머니 자루가 눌러도 뺄 수도 없었다. 자루 할머니는 가방에 턱을 괴고 자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몸부림을 치고 싶도록 답답하지만 몸부림도 칠 수 없는데 차가 내려갈수록 손님이 줄지는 않고 점점 더 늘어났다.
희한하게도 정거장마다 사람이 타고 밀리는가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앞에 영감이 다른 할배로 바뀌고, 백발 할매가 섰던 자리에 영감이 바뀌었다. 진땀나게 힘들고 정신없는 퇴근길이었다. 무궁화 열차로 30분 거리가 급행 전철은 1시간 7분이 걸려서야 수원역에 내렸다.
수원역에서도 타는 사람보다 승객이 더 많았다. 전철은 그렇게 긴 꼬리를 끌고 남으로 내리달렸다.
나는 집으로 오면서 다시는 호기심에 끌려 엉뚱한 짓은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생각했다.
지구라는 전철을 탄 우리 인생은 경로석만 있고 하차역도 모르는 채 실려 가는 승객이다.
인생 경로석은 나이도 건강도 가리지 않고 아무데서나 내려주는 인생 종착역일 뿐
누가 내린다고 빈자리에 앉을 사람도 동행하는 이도 없는 이별석이다.
옆사람 47 / 거룩한 수녀와 목발 여목사
운송업체 반란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무궁화 열차도 지하철도 운행시간이 11월 28일부터 12월 2일까 엉망이었다.
28일 서울역에서 떠나는 17시 30분 발 무궁화호를 17시 20분부터 기다리는데 18시 40분에야 차가 왔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승차장 번호를 기다리는 사람이 바글거렸다. 나도 그 가운데 서서 1시간이 넘도록 기다렸다. 다리가 아프고 짜증이 나고 괴로웠다. 한 시간이 넘게 지연된 차를 타고 돌아온 뒤, 그 다음 날부터는 당분간 전철을 타기로 했다.
출근시간 수원역에서 전철을 타고 경로석에 앉았다. 바로 옆자리에 75세쯤 보이는 수녀가 거룩한 모습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책을 꺼내어 읽으며 수녀까지도 저렇게 스마트폰에 빠져 있으니 독서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지 하고 생각하는데 수녀는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고 멍하니 앉아 있기에 내가 <장미울타리>를 꺼내 들고 말을 건넸다.
“이 책은 스마트폰입니다. 지루할 때 한번 보시라고 만든 책입니다. 한번 보시지요.”
그러면서 울타리를 내밀었다. 수녀는 고개도 까딱 않고 정면을 바라본 채 손가락을 까딱까딱 가로 저었다. 싫다고 거부하는 보디랭귀지.
그 순간 수녀는 교만하고 엄숙한 늙은 바위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공연한 실수를 했구나 하고 울타리를 도로 가방에 넣고 말없이 서울까지 왔고 수녀도 그렇게 앉은 채 있다가 영등포 어디선가 내렸다.
그리고 그 날 퇴근 시간이었다. 예매한 기차표를 반환하고 천안까지 가는 전철에 올랐다. 마침 자리가 나서 영등포역까지 편히 앉아서 왔다. 차가 멈추고 승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 75세쯤 보이는 부인이 목발을 짚고 올라왔다.
부인은 경로석 구석 벽에 기대서서 앉아 있는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 부인의 눈길을 의식하고 자리를 양보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한 시간을 사람들에 끼어갈 생각’을 하니 선뜻 일어서지지가 않았다.
옆에 두 사람도 거의가 75세 정도의 할배들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일어서야지 목발 환자를 앉아서 바라볼 수는 없지 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옆 사람이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가운데 자리가 났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부인한테 앉으세요 했더니 부인이 맑고 정정한 목소리로 다른 사람을 불렀다.
“이리 오세요. 여기 자리 났어요.”
그러자 저쪽에서 그 또래의 영감이 와서 앉았다. 나는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서며 부인한테 이리 앉으세요 했다. 그랬더니 부인이 자기는 서서 가도 되니 저보다 위로 보이시는 분이 앉아야 한다며 사양했다. 그리고 내 앞으로 목발을 짚고 다가와 물었다.
“장로님이죠?”
나는 소리 내어 대답할 용기가 나지 않아 그렇다는 표시로 고개 인사를 했다.
“그러실 것 같았어요. 혹시 벤허를 보셨나요?”
“네.”
“쿼바디스도 보셨지요?”
“예.”
“앞으로 계시록을 드라마로 만든다는데 아세요?”
“모르고 있습니다.”
“혹시 보시지 않으실래요?”
나는 대답하기가 곤란했다. 누구신데 이 아줌마가 이러실까? 목발까지 짚고 어디를 가신다는 건가?
이렇게 주저하는데 부인이 조용한 소리로 말했다.
“저는 목사예요. 목발을 짚었지만 금년에 80입니다. 그래도 저는 차에서 자리가 나면 어른들을 먼저 앉히십니다.”
이때 내가 <울타리>를 내밀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목사님께 이거나 드릴게요.”
목사님은 몇 번씩 감사의 인사를 하고 받으며 말했다.
“요새 책 보는 사람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이 책은 가지고 다니며 읽기에 좋을 것 같아요. 꼭 다 읽어 볼게요. 장로님 연락처는?”
“그 책 판권에 제 명함이 있습니다. 보시고 더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목사님 교단은 어디신가요?”
“백석이에요.”
“장종현 목사님의 백석입니까?”
“네. 장종현 목사님 좋으신 분이지요. 그럼 안녕히.”
성도 이름도 모르고 소속 교단만 알고 헤어졌다.
나는 수원까지 오는 차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하나님의 여종 두 사람을 만났다.
출근길에는 수녀를,
퇴근길에는 여목사를,
나는 두 분의 상이점을 보았다. 거룩한 수녀와 겸손한 여목사!
수녀가 아무리 책이 싫어도 상대방을 보고 미소라도 지으며 손을 가로 저었다면 얼마나 거룩하고 예쁘게 보였을까.
늙은 할매 목사가 자기는 목발을 짚고 서서 자기보다도 나이가 아래로 보이는 할배한테 자리 양보를 하는 모습, 얼마나 곱고 아름답게 보였던지.
이 종들 중에 하나님은 누구를 더 귀하다 하실까?
사람 눈에 보이는 대로 하나님도 그렇게 보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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