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 꿈의 금그릇 흙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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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을 새웠더니 아무 때나 졸려서 꾸벅거렸다.
원고 교정을 보다가도 깜박 졸았는데 퇴근시간에 차를 타고 자리에 앉아서도 깜박 잠이 들었다.
나는 한 어린 아이가 벚꽂이 만발한 길을 따라 산중 깊이 들어가는 뒤를 따랐다.
어딘지 모르는 산속에 커다란 나무 아래 머리도 수염도 하얀 할아버지가 앉아 아이를 불렀다.
“이리 오너라.”
아이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그건 알 것 없고 네 부모는 무엇을 하시느냐?”
“네. 아버지는 회사 경비원이고 엄마는 식당에서…….”
“가난한 집 아이로구나?”
“가난해도 우리 집은…….”
“음, 네 부모는 가난하지만 너는 부자니라.”
“네?”
“너의 부모는 가난하지만 넌 부자란 말이니라.”
“그걸 어떻게 아세요?”
“내가 말해 주랴?”
“네.”
할아버지는 손을 저어 아이를 곁으로 가까이 불렀다. 그리고 이상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그릇을 만드는 기술자니라.”
“할아버지가 그릇을 만든다고요? 무슨 그릇을 만드시나요?”
“여러 가지니라. 어떤 그릇은 큰 국대접, 어떤 그릇은 밥사발, 어떤 그릇은 간장종지.”
“할아버지는 아무 그릇이나 맘대로 만드시나요?”
“그러니라. 사람마다 다 그릇과 같으니라. 넌 어떤 그릇이 되고 싶으냐?”
“몰라요.”
“넌 금대접인데 종지 밑에 있으니 아직은 종지니라.”
“할아버지 농담이지요? 왜 제가 종지 밑에 있나요?”
“너의 부모는 종지이고 너는 큰 금대접이니라.
그릇은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니라.
큰 국대접도 흙으로 적당히 빚은 것이 있고 쇠로 만든 것이 있고
구리로 만든 것, 은으로 만든 것, 금으로 만든 것이 있고.
밥그릇도 흙. 철, 구리, 은, 금으로 만들고
종지도 흙. 철, 구리, 은, 금으로 만든 것이 있느니라.”
“왜 그렇게 복잡하게 만드시나요?”
“그건 내 맘이니라.”
“할아버지가 정말 하나님이라도 되시나요?”
“그러니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마다
내가 만들어 놓은 그릇 가운데 하나씩을 안겨주느니라.”
“할아버지 맘대로요?”
“그러니라. 내 맘대로 사람 하나가 태어나면 만들어 놓은
그릇 가운데 순서대로 나누어 주느니라.”
“할아버진 진짜 하나님이에요?”
“그래도 나를 못 믿겠느냐? 나는 그렇게 그릇을 만들어 안겨 주고 복비를 붓느니라.”
“복비라고요?”
“복을 쏟아 부어 주느니라. 그러면 어떤 그릇이 복비를 가장 많이 받겠느냐?”
“큰 국대접이지요.”
“국대접이 커서 많이 받긴 하는데 그릇이 흙으로 만들어진 것은
복비를 많이는 받으나 바로 문드러져 흙이 되고 마느니라.
쇠로 만든 대접은 한동안 견디지만 녹이 나서 무너지고
구리로 만든 것도 스러지고 은으로 만든 것도 그렇고. 무엇이 가장 오래 가겠느냐?”
“금그릇이…….”
“그러니라, 아무리 큰 그릇도 작은 금종지만 못할 때가 있니라. 그릇이 크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니라.”
“네. 그럴 것 같아요.”
“복비가 내리면 작은 종지는 어떻겠느냐?”
“복비를 조금밖에 못 받겠어요.”
“네 말이 맞느니라. 아무리 복비가 많이 쏟아져도 작은 종지에 얼마나 차겠느냐?”
“할아버지가 나를 금그릇이라고 하셨지요?”
“그랬느니라. 너는 금그릇이니라. 그런데 너의 부모가 흙으로 만든 종지라
복비를 받아도 힘없이 허물어지느니라.”
“큰 그릇이 흙으로 만든 것이라도 복비를 많이 받으면 부자가 되지 않아요?”
“아무리 복비를 조금밖에 못 받아도 금종지는 흙이나 쇠,
구리로 만들어진 것들의 존경을 받느니라. 그러나 흙으로 만든
그릇은 금방 무너져 흔적도 사라지느니라.”
“그게 무슨 뜻인가요?”
“흙으로 만든 그릇은 복비를 많이 받아도 금방 무너지듯 부자가
오래 못 살고 바로 죽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나 금종지는 작아도 오래오래 복비를 받고 장수하느니라.”
“할아버지, 금그릇 같은 사람은 오래 살고 아닌 것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러하니라.”
“할아버지 그럼…….”
“무엇이 알고 싶은 것이냐?”
“부자들은 다 금그릇을 받은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은 다 흙이나 쇠 그릇을 받은 사람인가요?”
“그러하니라. 그래서 사람은 복을 받고 태어난다고 아는 체하는 사람이 말하느니라.”
“할아버지 나는 금대접을 받았다고 하셨지요?”
“그랬느니라. 그런데 꼭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느니라.
금그릇이라도 어디에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니라.”
“그게 무슨 말인가요?”
“쉽게 말하면 금그릇이 화장실에 가 있으면 똥그릇이 되고
흙그릇도 부엌에 있으면 밥그릇이 되느니라.”
“말이 안 되잖아요? 어디에 있든지 금그릇은 금그릇이 아닌가요?”
“네가 비록 금그릇을 받아 가지고 태어났어도 금답지 못하게
아무데나 가서 뒹굴고 아무 짓이나 하면 흙만도 못하게 되느니라.”
“말이 어려워요.”
“쉽게 말하면 사람이 태어날 때 어떤 그릇을 받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자기 그릇에다 무엇을 채우느냐가 더 중요하니라.”
“알겠어요. 금그릇에 똥을 담으면 똥그릇이고
흙그릇에도 금을 담으면 금그릇이 된다는 말씀이지요?”
“바로 알았느니라. 내가 아무 그릇이나 주고 복비도
내려주지만 그릇마다 자기가 어떤 그릇인가를 잊고
욕심을 부리고 온갖 더러운 것들을 끌어다 채우므로 모양이 달라지느니라.”
“할아버지 고마워요. 저는 금그릇이라고 하셨으니 화장실이나
수채 구멍이나 더러운 곳을 피하고
욕심 없이 착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채우고 금그릇이 되겠어요.”
“네가 약속을 잘 지키는지 지켜볼 것이니라.”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염을 날리며 구름을 타고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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