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보링 1. 바보 효자들
누구라도 알 만한 국내 재벌회사 가운데 하나인 정수물산 그룹의 아들 삼형제가 모여 회의를 했다.
큰아들이 먼저 말했다.
“아버지가 오래 사셔야 하는데 건강이 문제다.”
둘째도 따라 걱정을 했다.
“그래요 형님, 아버지가 오래 사시지 않으면 우리가 힘듭니다.”
셋째도 말했다.
“아버지가 관절이 약해서 못 걸으시고 척추 협착증으로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시어 너무 늙어 보여서 안 좋아요.”
큰아들이 제안했다.
“우리 아버님 건강을 찾아드리자.”
“건강을요?”
동생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자 첫째가 설명했다.
“자동차도 고장이 나면 보링을 해서 새 차처럼 쓰지 않니. 약해진 몸도 보링을 하면…….”
둘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 같아요, 형님, 우리 그렇게 해 봅시다. 나는 아버지 관절수술로 다리를 청년처럼 튼튼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셋째도 말했다.
“나는 아버지 척추 인공수술을 하여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허리를 쭉 펴고 젊은 시절처럼 당당하게 걸어 다니며 일하실 겁니다. 체가 책임지겠습니다.”
첫째가 아주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우들 고맙네. 아버님을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하겠나. 나는 아버님이 속이 늘 안 좋아 고생하시고 소변이 안 나온다고 고생하시니 간장 위장 췌장 내장을 보링하여 젊은 시절처럼 활발하게 아무것이나 잘 잡수시는 젊은 건강을 찾아드리겠네.”
그렇게 하여 효성이 지극한 삼형제는 2년 만에 아버지의 건강을 완전히 되찾아주었다. 절름거리던 다리는 인공뼈 수술로 튼튼해졌고 굽은 허리도 인공 척추수술을 하여 꼿꼿이 다녔다. 내장 보링을 하신 뒤에는 술도 옛날처럼 마시고 웃는 소리도 청년처럼 우렁차졌다. 아들들은 아버지가 정정한 것을 보고 기뻐했다.
아버지는 보링을 하고 나니 하얀 수염도 새까맣게 돋고 눈도 밝아져서 안경을 벗어던졌다. 식성도 좋아지고 힘도 좋아 직원들이 실수를 하면 큰소리로 벼락을 쳤다.
몇 달 뒤 그렇게 품위 있고 점잖으신 아버지가 이상한 증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여비서를 점잖게 대하시던 분이 어느 날 여비서를 끌어안았다. 놀란 여비서가 비명을 질러대고 사표를 내고 달아났다. 여비서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한 아들들은 더 예쁜 여비서를 구하여 드렸다. 그 여비서 역시 비명을 지르고 달아나는 변고가 생겼다.
인간 보링 2. 이상해진 아버지
회춘하여 정력이 왕성해진 아버지는 젊은 여자만 보면 가만 두지 않고 성추행을 하는 등 체면을 잃은 인물이 되어 갔다. 그렇게 하여 비서를 수시로 교체시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뿐 아니라 저녁이면 안 가던 술집으로 가서 아무하고나 자고 난봉을 피는 등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일들이 벌어졌다. 되찾은 젊음을 자랑하다가도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하루는 큰아들을 불러놓고 소리쳤다.
“너, 주식 팔아서 어쨌어?”
“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주식을 팔다니요?”
“그럼 너 말고 누가 있어? 네 동생들은 다 외국에 살고 있고.”
“아버지, 제 동생들이 왜 외국에 삽니까. 다 저하고 같이 우리 그룹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잖습니까?”
“거짓 말 마. 어저께 경찰이 와서 조사하고 갔어. 내가 모를까봐.”
“아버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내가 얼마 전에 비행기 타고 미국 갔다 왔잖으냐?”
“아버지, 언제 미국을 가셨다는 겁니까? 다리 관절로 친구들도 만나러 나가시지 못하셨는데 미국을 가시다니요.”
“내가 미국서 우리 회사 제품 소개를 하고 백만 불 주문을 받아다 주었는데 어쨌니?”
“아버지, 그때가 언제인데 그러십니까. 아버지, 40년 전에 그러셨지요.”
“넌 내가 정신이 없는 줄 아는 거냐?”
“아닙니다. 아버지.”
“아니면 됐다. 그런데 말이다. 요새 내 방에 누가 숨어 있는 거 같은데 그 놈을 잡아다오.”
“네?”
“숨다니요. 회장실에는 비저밖에 아무도 없습니다.”
“비서? 그 애 언제부터 우리 회사에 들어왔느냐?”
“지난 월요일부터 새로 나온 직원입니다.”
“그 애가 수상해. 날마다 내 주변을 돌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엿듣는 거 같다. 그 애 내보내라, 당당.”
“아버지, 그러시면 안 됩니다.”
“왜 안 된다는 거냐? 내가 그 애를 첩으로 삼을 것 같으냐?”
“네?!”
“그 애 예쁘다, 내 맘에 들어.”
“네?”
“이 멍청한 놈아 당장 나가 봐. 누가 찾아왔잖아. 저 자동차 소리 알 들려?”
“자동차 소리요?”
“그래. 저 자동차 소리가 바로 그 소리였어.”
“네?”
“넌 귀가 먹었어. 나가서 네 동생 오라고 해.”
“네. 아버지.”
큰아들은 허겁지겁 나가서 둘째를 불렀다.
“둘째야, 아버지가 부르신다. 빨리 가 봐라.”
둘째아들이 회장실에 들어서자 아버지가 물었다.
“넌 왜 왔느냐?”
“아버지가 부르신다고 해서 왔습니다.”
“넌 참 오랜만에 보는구나. 그 동안 어디 갔다 온 게냐?”
인간 보링 3. 먹던 맥주 가져오너라
“네?”
“네 처도 잘 있고?”
“네에?”
“왜 그렇게 놀라느냐. 넌 아직도 미국에 있다가 온 것이냐?”
“네에? 아버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 동안 잘 지내다 왔느냐고 물었다.”
“아버지, 저 미국에서 돌아온 지가 삼 년이 넘었어요.”
“그런데 왜 이제야 날 찾아온 게냐?”
“아버지, 왜 이러세요?”
“내가 왜?”
“…….”
“어제 먹던 맥주 가져오너라.”
“아버지가 언제 맥주를……?”
“그만 둬라. 네 동생 오라고 해. 걔는 알고 있어.”
“동생이 뭘 안다는 거예요?”
“나가서 동생 오라고 해. 넌 나하고 코드가 안 맞아.”
둘째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러나 동생을 불렀다. 그리고 물었다.
“아버지가 부르신다. 들어가 보아라. 언제 아버지가 회장실에서 맥주를 마셨었냐?”
셋째아들이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묻는 거 아니냐.”
“형님이 참 이상하시네요. 언제 맥주를 마시셨다는 거예요.”
“일단 들어가 봐.”
셋째아들이 들어서자 아버지가 물었다.
“넌 누구냐?”
“아버지 셋째아들이잖아요.”
“응, 그런 것 같다. 너 어제 내가 마시다 둔 술병 어디가 감추었느냐?”
“네?”
“술 마실 때 옆에서 따라주던 아이는 어디 간 거냐?”
인간 보링 4. 넌 양귀비처럼 예쁘다
“네?”
“그 애, 참하고 예뻐서 내 맘에 들었다.”
“네?”
“그 애 불러오너라.”
“아버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뭐라고? 내가 너한테 내 지갑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어디다 숨겼느냐?”
“아버지, 왜 이러세요?”
“하하하, 넌 그렇게 눈을 동그랗게 뜰 때가 귀여웠다.”
“네?”
“아니다, 결재서류는 왜 아직도 안 가지고 오느냐?”
“결재는 아침에 하셨잖아요?”
“그랬구나. 비서 들라 하고 넌 나가 봐라.”
셋째도 형들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서한테 물었다.
“회장님이 언제 맥주를 마시었나요?”
비서가 놀란 소리.
“네?”
“미스 오는 알고 있지 않아요?”
“몰라요, 회장님이 언제 맥주를 마시었나요?”
“내가 몰라서 묻는 거예요. 일단 회장님께 가 보세요.”
여비서가 회장실로 들어서며 물었다.
“회장님, 찾으셨어요?”
“응, 이리 와 봐.”
회장은 책상 서랍을 열면서 물었다.
“이리 와 봐. 내가 여기다 수표를 넣었는데 안 보여.”
“언제 넣으셨어요?”
“작년 정월이었지.”
“저는 금년 5월에 입사했기 때문에…….”
“그런가? 그럼 지난번에 나간 그 애가 훔쳐갔나?”
“…….”
회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비서를 아래위로 더듬어 보더니 한 마디.
“잘 생겼어, 예뻐. 양귀비야 양귀비.”
그러면서 비서를 와락 끌어안았다. 깜짝 놀란 비서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아들들이 걱정스럽게 회장실 주변을 맴돌고 있다가 회장실로 달려들었다.
“아버지, 무슨 일이 있었나요?”
회장은 태연히 대답했다.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내 서랍에 둔 수표가 없어졌다.”
큰아들이 물었다.
“언제 넣으셨는데요?”
“작년인가 금년인가 생각이 안 난다.”
“아버지, 그 수표 삼 년 전에 친구한테 주시지 않았어요?”
“내 친구? 아아, 그랬던 것 같다.”
회장은 엉뚱한 소리를 또 했다.
인간 보링 5. 비서를 추행하고도
“비서가 갑자기 소리치고 나갔는데 무슨 일이 있었느냐?”
둘째아들이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회장은 또 엉뚱한 대답을 했다.
“아니, 너 둘째 아니냐? 외국에서 언제 온 거냐?”
“벌써 작년에 왔잖아요?”
“그랬나. 왜들 이렇게 몰려와 있느냐. 일들을 하지 않고?”
셋째아들이 대답했다.
“아버지, 요새 왜 이러세요?”
“뭐라고? 내가 어째서. 난 아무렇지도 않다, 이봐라, 팔다리가 청년 같고 튼튼한 허리며 아무것이나 다 먹어치우는 나를 보면서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첫째 아들이 끼어들었다.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아주 건강하십니다.”
아들들이 다 나가고 난 다음 회장은 팔다리 전신 운동을 하고 안락의자에 기대어 편안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젊은 사람이 되었지? 여행도 하고 싶고 장가도 가고 싶고 사업도 더 크게 벌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하하하.’
아버지가 이상해진 것을 안 아들 삼형제가 비밀회의를 했다.
첫째가 말했다.
“아버지가 아무래도 이상하시다. 안 그러냐?”
둘째도 같은 말을 했다.
“정말 이상해요. 예전의 아버지가 아닌 것 같아요.”
셋째가 핵심을 찌르는 말을 했다.
“아버지 치매예요 치매.”
두 형들이 이구동성으로 받았다.
“치매라고?”
“치매가 아니면 그럴 수가 없어요. 금방 하시도고 엉뚱한 소리를 하시기도 하고 비서를 추행하고…….”
인간 보링 6. 두뇌 보링
첫째가 말을 막았다.
“그런 소리마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막내는 지지 않고 하던 말을 했다.
“형님, 생각해 보세요. 삼십 년도 지난 일을 어제로 알고 계신 것도 그렇고 그동안 비서를 몇이나 갈았습니까. 1년 새에 다섯 번이나 갈았어요.”
둘째도 이번에는 막내 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문제입니다. 전에는 그렇게 점잖던 분이 비서만 보면 몸을 더듬고 심지어는 결혼하자고까지 하시지 않았습니까. 미스 박이 얌전해서 조용히 넘어가서 다행입니다. 아니면 미투라고 온 사내에 소문을 냈을 겁니다.”
막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날로 건강해지시고 그 반대로 치매증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첫째아들이 신중하게 받았다.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아버지한테 함부로 할 수도 없는 거 아니냐.”
막내가 또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건강해지시면서 여자를 좋아하시게 되었으니 아버지 두뇌를 어린이로 바꾸어 놓아야 할 거예요.”
두 형들이 놀라 물었다.
“뭐? 뭐라고?”
“왜 그렇게 놀라세요. 지금은 의술이 발달해서 뇌도 보링할 수 있다고요.”
두 형이 또 놀란 소리를 질렀다.
“보링? 보링이라고?”
“형님들 아직도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세요. 지금은 교통사고로 몸은 죽은 상태인데 뇌가 살아 있는 환자들이 병원마다 있어요.”
둘째가 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잘 아는 병원에 가면 알 수 있어요. 몸은 도저히 치료할 수 없어 죽을 수밖에 없는데 뇌는 살아있는 아이의 뇌를 구하여 아버지한테 이식수술을 하여 드리는 것이지요.”
“그게 가능하냐?”
“알아보면 가능할 거예요. 날마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발생하니까요. 아버지한테는 어른 뇌를 이식하면 성욕이 왕성해서 무슨 사고를 치실지 몰라요. 그래서 말인데요 어린이 두뇌를 구하여 이식하면…….”
첫째가 신중히 말했습니다.
“그건 안 될 말이다. 어떻게 두뇌 이식을 한다는 거냐?”
“형님, 생각해 보세요. 아버지가 관절염으로 절름거리시다가 청년처럼 된 것이나 내장을 보링해서 건강해지신 게 다 의학 기술 때문이 아닌가요. 내가 잘 아는 병원에 부탁하여 죽게 된 어린이 뇌를 구하여 보라고 해 볼게요.”
두 형들은 대책이 없으므로 이렇게 말했다.
“매우 조심스런 일이지만 어떻게 하겠느냐. 네가 좀 알아봐다오.”
인간 보링 7. 누나, 아저씨 나 알아?
그렇게 하여 젊고 시대감각이 뛰어난 막내가 친구 의사를 만나 자기 사정을 이야기했다. 대기업의 총수인 어른이 그렇게 되었다는 말에 의사 친구가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교통사고로 죽게 된 어린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비밀리에 치매에 걸린 회장의 뇌에 어린이의 뇌를 이식하였다. 늙고 기능이 떨어진 회장의 뇌에 젊은 기능의 뇌를 이식시킴으로써 큰 변화가 생겼다.
회장이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젊고 활발하게 일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날마다 내놓았다. 덕분에 사업이 날로 성장하는데 또 문제가 생겼다.
날마다 오후 여섯 시면 이상하게 점잖은 어른이 어린이로 변하여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이다.
비서가 결재서류를 가지고 회장실로 들어가자 회장이 어린애처럼 물었다.
“누나는 누구예요?”
“예?”
“누나, 나 알아요?”
“회장님, 왜 갑자기 안 하시던 농담을 하세요?”
“누나, 나 집에 가고 싶어.”
“그러세요. 서류 결재하시고 퇴근하세요.”
“누나, 나 싫어?”
“회장님, 잠깐만요.”
비서가 첫째아들한테 달려갔다.
“사장님, 회장실에 가보세요.”
“왜, 뭐 잘못이 있나요?”
“그게 아니고요…….”
첫째아들이 회장실로 들어서자 아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아저씨, 여기가 어딘가요?”
“네?”
“아저씨 나 집에 가고 싶어.”
“아버님, 왜 이러세요?”
“아저씨, 나하고 농담하시면 안 되어요. 내가 아버지라고요?”
인간 보링 8. 농담도 잘 하시우
아들은 어이가 없어서 눈길을 돌리고 대답했다.
“네, 아버지.”
아버지가 어린애 소리를 했다.
“나 집에 가고 싶어요.”
“알았습니다.”
아들은 이상해진 아버지를 집으로 모셨다. 어린애가 된 회장이 주방에 대고 말했다.
“나 밥 줘. 배고파!”
부인이 나와서 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수?”
“아줌마, 나 배고파.”
“뭐요? 아줌마라고요?”
“아줌마는 누구야?”
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어요. 당신이 어린애 짓도 하고 농담도 잘 하시우.”
“아줌마, 나 농담하는 거 아니야요.”
“호호호, 안 어울려요. 덩치는 황소만하시면서 그렇게 말하면 안 어울려요. 농담 그만 하시우,”
“농담 아니에요, 아줌마.”
“누가 그런다고 속을 줄 아시우? 평생 농담하는 걸 못 보았는데 이제 건강해지시니까 농담까지 하시는구려. 경사야 경사!”
“아줌마, 밥이나 줘.”
“기다려요. 오늘은 재미있는 농담을 해주시었으니까 더 맛있는 거 많이 해 드릴게 잠깐만 기다리시오 아기씨!”
아내는 아주 재미있어 하면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에 회장은 집을 나와서 마을버스를 타고 산동네로 올라갔다.
차에서 내린 다음 계단을 부지런히 올라 허술한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소리쳤다.
“엄마, 나 왔어.”
방문이 열리고 젊은 부인이 내다보았다.
“누구세요?”
“나야 엄마.”
부인이 놀라 문을 급히 닫으며 대답했다.
“잘못 오셨어요. 다른 데나 가보세요.”
“엄마, 내가 어디로 가?”
부인은 이상한 영감이 와서 엄마라고 부르자 미친 사람이든지 아니면 사기꾼이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못 들은 체했다. 그리고 엄마라는 소리에 귀를 막았다. 그래도 여전히 그 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야 나라고. 나 박남수야. 엄마!”
부인이 놀라 다시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뭐라고요? 박남수라고요?”
“엄마, 왜 이래? 나 엄마 아들 남수라고.”
“남수라면…….”
“엄마, 나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거짓말 하지 마!”
인간 보링 9. 남수는 죽었어요
부인이 정신이 혼란해졌다. 교통사고로 죽은 아들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가슴이 뛰고 그 동안 참고 있던 아들 생각에 눈물이 났다.
저 영감이 어떻게 우리 아들 이름을 알고 있을까. 혹시 교통사고를 냈던 그 뺑소니차 운전사가 아닐까? 그렇다면 더 보기 싫은 사람이다. 그래서 단호히 말했다.
“남의 집에 와서 이러지 말고 가세요.”
“엄마, 왜 이래? 여기가 우리 집인데 남의 집이라고?”
“그래도. 못 알아들었어요? 우리 아들 박남수는 죽은 지가 반년이 넘었어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요.”
“엄마, 내가 왜 죽었다는 거야. 난 죽지 않았어.”
“몰라요. 대답하기 싫어요. 빨리 나가요.”
말과 동시에 방문을 쾅하고 닫고 걸어 잠갔다. 밖에서 물러가지 않고 하는 소리가 계속되었다.
“엄마, 내가 그렇게 미워졌어?”
부인은 문 밖을 향해 쌀쌀맞게 대답했다.
“다시는 엄마라고 부르지 마세요.”
“엄마, 엄마, 나 배고파.”
“별꼴이야, 남의 아픈 가슴에 못질을 하면서 무슨 소리예요. 그렇게 배가 고프면 다른 집에 가 보세요.”
회장은 닫힌 문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엄마, 문 열어. 나 들어갈 거야.”
“…….”
“엄마, 왜 이러는 거야?”
“…….”
“엄마, 나 외갓집으로 가도 좋아?”
“…….”
“엄마, 나 민수네 집에 가서 밥 얻어먹어도 좋아?”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든 부인이 물었다.
“외갓집이 어딘데요?”
“남촌동.”
“남촌동 어디지요?”
“금마 아파트 3층 3호.”
부인이 다시 더 물었다.
“민수가 누구지요?”
“엄마, 왜 자꾸 물어. 민수는 민자 누나 동생이잖아?”
부인이 문을 열고 나와서 물었다.
“누구신데 우리 집 사정을 그렇게 잘 아시나요?”
“엄마, 작년 가을에 보라매공원에 놀러 갔다가 감 따먹고 관리인한테…….”
부인은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들을 너무 생각하다가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인지 꿈을 꾸는 것인지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어른님은 사람인가요? 개인가요?”
“엄마, 내가 사람이지 강아지야? 강아지는 지난번 교통사고로 죽었잖아.”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시지요?”
“엄마, 나 병원에 갔을 때 빨리 일어나라고 날마다 울었잖아.”
“뭐, 뭐라고요?”
인간 보링 10. 내 사진은 어디 있어?
부인은 이 어른이 정말 아들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여 방문을 열고 말했다.
“내가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니에요. 그렇게 배가 고프시다니 나 먹는 대로 차려 드릴게요.”
회장이 방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엄마, 고마워. 나 배고파 죽을 뻔했어.”
부인이 상을 차려 들고 들어서자 방안을 두리번거리던 회장이 벽에 걸린 사진을 보고 말했다.
“엄마, 아빠 사진은 있는데 내 사진은 왜 없어?”
“네?!”
부인은 놀라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어른님. 어른님은 누구십니까?”
“엄마, 나 박남수야. 내가 왜 어른이라는 거야?”
부인은 기가 막혀서 돌아앉았다. 그 사이에 회장은 밥을 맛있게 먹으면서 말했다.
“엄마가 만든 이 무장아치는 참 맛있어.”
부인은 점점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어른님이 그런 맛을 어떻게 아시나요?”
“엄마, 이제 농담하지 마. 내가 무슨 어른이냐고. 난 엄마가 얘 남수야 하고 부를 때가 좋아.”
부인은 점점 몽롱해졌다.
“어떻게 그런 것도 아시나요?”
“내가 모르는 게 어디 있어. 우리 집인데.”
부인은 그렇게 하는 동안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까지 끝난 다음 말했다.
“어른님, 이제 돌아가세요. 밤이 늦었어요.”
“엄마, 나 보고 어딜 가라는 거야. 오늘밤은 엄마 젖 만지고 잘 거야.”
부인은 깜짝 놀랐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나요? 망측스럽게.”
“엄마, 오늘은 젖 만지고 자고 싶어.”
부인은 충격을 받아 옆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회장이 따라 들어오려다가 어쩔 수 없이 잠자리에 들어 쿨쿨 잠이 들었다.
이튿날 날이 밝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회장은 허둥지둥 인사도 없이 대문을 나섰다. 그리고 동네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온 동네가 판자촌이로구나. 내가 왜 이 집에 와서 잤지? 내가 왜왜?”
회장이 멀쩡한 사람으로 출근하여 회장실로 들어갔을 때 회장 부인과 아들 삼형제는 밀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첫째아들이 물었다.
“어머니, 웬 일로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요?”
“너희 아버지가 하도 이상해서 왔다.”
둘째아들이 물었다.
“어머니, 무엇이 이상했어요?”
“너희 아버지가 생전 안 하시던 농담을 하시더니…….”
셋째아들이 어머니 말을 끊었다.
“엄마,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 같지 않았지?”
“글쎄다. 너는 뭐 아는 거 있니?”
“아버지가 건강해지시더니 여직원들한테 엉뚱한 짓을 하시고…….”
인간 보링 11. 비밀 가족회의
“그게 무슨 말이냐?”
첫째아들이 아우의 대답을 서둘러 막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둘째가 다른 말을 했다.
“아버지가 나를 보고 아저씨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비서한테도 누나라고 하고요.”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랬었구나. 어제 저녁에는 배고프다고 하면서 나 보고 아주머니라고 하더라.”
아들들이 놀라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네? 아주머니라고요?”
“그래서 오늘 나왔다. 이게 무슨 변이냐.”
막내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아버지가 귀신들린 거 아닐까요?”
“귀신이라고?”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면서도 귀신이 들리지 않았다면 그럴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아버지한테는 아무 내색하지 말고 지켜보자. 내가 용하기로 이름난 무당을 알고 있으니 한번 알아봐야겠다.”
형제들 중에 유일하게 교회에 다니는 둘째아들이 거부했다.
“어머니 무당이 뭘 안다고 그러세요.”
무당을 좋아하는 어머니가 둘째한테 쏘아붙였다.
“넌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귀신은 있는 거다. 귀신을 쫓아내는 덴 굿이 약이야.”
막내도 어머니 편이었다.
“맞아요, 어머니말씀대로 해요. 아버지는 귀신들린 것이 확실해요.”
둘째 아들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나 첫째가 결정을 내렸다.
“맞다, 어머니 말씀대로 무당한테 물어보면 왜 아버지가 이상해졌는지 알 거다.”
이렇게 하여 어머니가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가 상담을 했다. 결국은 무당이 귀신의 짓이라며 큰굿을 하면 그런 귀신은 당장에 쫓겨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달 스무날이 길일이라고 날짜까지 잡아 주었다.
가족 비밀회의가 끝날 무렵 회장이 여기저기 돌아보다가 그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부인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아니, 당신이 웬일로 나오셨소?”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늘 친구들 만나러 가기로 했는데 시간이 남아서 잠깐 들렸어요.”
“오늘이 그 친구들 만나는 날이오? 그 박사장 부인도 나오겠지요?”
“어떻게 박사장 부인도 아시우?”
“우리 회사 고객인데 모르면 되겠소. 그렇지 않아도 내가 새로 고안해 낸 신상품을 박사장이 알면 아주 좋아할 것이오. 하지만 오늘은 그 이야기는 하지 마오. 아직은 회사 비밀이니까.”
“알았어요. 당신이 새 아이디어로 만든 상품이니 대박날 거예요.”
“하하하, 대박 좋지, 암암.”
회장은 건강한 모습으로 아들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인간 보링 12. 엄마 젖 먹을 거야
“어떠냐? 이번 신품은 대박감이 아니냐?”
막내가 대답했다.
“맞아요, 아버지. 대대박이 날 거예요.”
첫째아들도 거들었다.
“아버지 아이디어는 아무도 따르지 못할 겁니다.”
회장은 만족해서 나가며 말했다.
“암, 내 머리는 원래 천잰데 누가 따라와. 난 나이가 들수록 새 아이디어가 팡팡 터진단 말이야, 하하하.”
그렇게 하루가 가고 퇴근시간 되었다. 회장이 사무실에서 나서자 기사가 차를 대고 말했다.
“회장님, 오늘은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회장이 엉뚱한 대답을 했다.
“나 우리 집에 갈 거야. 따라오지 마.”
회장은 차를 두고 골목길을 부지런히 걸어 나갔다. 기사가 따라가며 물었다.
“회장님, 왜 그리 가세요?”
회장은 엉뚱한 대답을 했다.
“아저씨, 따라오지 마세요.”
“회장님, 어째서 안 하시던 농담까지 하십니까?”
“아저씨 농담이 아니에요. 난 마을버스 타고 갈 거예요.”
“예?”
회장은 힘차게 달려가 마을버스로 올랐다. 기사는 멍하니 서서 바라보다가 자기 머리를 툭툭 치고 머리를 갸웃거리며 회장차로 돌아갔다.
회장은 마을버스에서 내려 산동네 계단을 부지런히 올라갔다. 그리고 어제 그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부인이 보고 놀라 소리쳤다.
“어른님, 왜 또 오셨습니까?”
회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엄마, 내가 오는 거 싫어? 왜 또 왔냐고 하는 거야?”
“어른님, 여기는 어른께서 오실 데가 아닙니다.”
“엄마, 나 보고 자꾸 어른이라고 하지 마. 그러면 이상해. 나 배고파 밥 줘.”
“밥 없어요. 돌아가세요.”
“왜 자꾸 가라는 거야, 내가 어디로 가?”
“어른님 댁으로 가세요.”
“여기가 우리 집인데 어디로 가? 엄마 미워!”
회장은 성큼성큼 방으로 들어갔다. 기가 막힌 여인이 따라 들어서며 앞을 막았다. 회장은 부인을 덥석 끌어안으며 어리광을 부렸다.
“엄마아, 난 엄마가 좋아.”
부인은 커다란 덩치의 회장이 달려들어 안음으로 그 품에 잡힌 채 애원했다.
“어른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회장은 더 힘주어 끌어안으며 어린애 소리를 했다.
“엄마, 밥 안 줄 거야? 그럼 젖 줘.”
부인은 기절초풍할 소리에 그만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정신이 나가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소리쳤다.
“이 봐요. 영감님. 여기는 남의 집이에요. 이렇게 무례하면 경찰 부를 거예요.”
회장은 엉뚱한 대답을 했다.
“엄마, 내가 왜 영감이야? 나 남수야 박남수, 엄마 아들 남수라고.”
부인은 아들 이름을 듣는 순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간 보링 11. 귀신이다 귀신
“박남수를 아시나요?”
“엄마, 왜 그래? 내가 박남수라니까.”
“이름은 내 아들인데…….”
“그렇지? 내 이름 박남수 맞지?”
“…….”
부인은 어이가 없어서 입도 벙긋 못했다. 어른이 아이 노릇을 하고 자기를 엄마라고 부르니 머리가 복잡했다. 그래서 하나 물어보기로 했다.
“아저씨가 진짜 남수라면 하나 물어볼게요.”
“나 아저씨 아니야. 남수라니까. 좋아 뭐든지 물어봐.”
“알았어요. 외갓집에 방이 몇 개지요?”
“히히히 시시하다. 외갓집에 방 셋이 있지. 하나는 안방, 하나는 건넌방, 또 하나는 사랑방. 건넌방에는 외사촌 형이 공부하는 방이잖아.”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외사촌 형 이름 알아요?”
“외사촌 형은 강태영이고 외삼촌 이름은 강덕수이고 예쁜 여동생은 강숙자.”
“어마!”
부인은 충격을 받아 아찔했다. 넘어질 뻔하다가 회장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아저씨는 사람이요? 귀신이오?”
“엄마, 나 아저씨 아니고 귀신도 아니야. 배고파 밥이나 줘.”
부인은 일단 밥을 달라니 상이나 차려주고 달래어 내보내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아니다. 어른이 아이 노릇을 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 친정을 다 알고 있으니 귀신이 아니면 알 수가 없는 게 아닌가. 귀신한테 밥이나 잘 해주고 달래어 내보내야지.
부인은 밥상을 차려주었다. 영감은 밥을 맛있게 먹으면서 말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은 아주 맛있어.”
“고마워요”
“엄마, 고마워요가 뭐야. 고맙다 그래야지.”
“알았……. 고마워어.”
“엄마 나 밥먹었으니 자러 간다.”
영감은 옛날 아들이 하던 짓을 그대로 하고 옆방으로 갔다. 그렇게 하여 귀신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사람을 두고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건 귀신의 짓이다. 내 아들 죽은 지가 언제인데 저런 영감 귀신이 되어 나를 괴롭히는지. 내일은 점쟁이한테 가서 물어봐야지.’
부인은 밤새도록 잠을 설치고 뒤척이다가 날이 샜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옆방은 빈방이고 영감이 보이지 않았다. 부인은 생각을 굳혔다.
‘귀신이라 밤이면 왔다가 날이 밝으면 달아나는 거다. 옛날 어른들이 한 말이 맞는 거야. 확실히 귀신이 왔다 간 거다. 오늘은 까치골 보살님을 찾아가 점을 쳐 봐야지.’
한편 회장은 날이 밝은 것을 알고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대문을 나섰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왜 여기 와서 잠을 잤지? 여기가 어디야?”
인간 보링 13. 망령귀신 축신 굿
정신이 든 회장이 마을버스를 타고 자기 회사로 갔다. 그리고 이것저것 서류를 들치고 거래처에 전화를 하느라고 한나절을 보냈다. 그런데 창고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귀를 기울였다. 북소리 꽹과리소리에 저금치는 쨍쨍 소리까지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궁금해진 회장이 그리로 가자 아내가 달려와 반색을 했다. 회장은 아내가 하는 소리는 듣는 둥 마는 둥 소리나는쪽으로 갔다.
거기 큰 굿판이 벌어져 있었다. 굉장한 상에 제물을 차리고 무당이 울긋불긋한 옷을 치렁치렁 걸치고 미친 듯이 칼춤을 추면서 소리쳤다.
“망령 귀신아 물러가라! 여기는 너같이 더러운 것이 있을 데가 아니다. 감히 어디라고 하늘같은 회장님을 가지고 노느냐? 귀신아 썩 물러가라. 훠이훠이!”
무당은 칼을 휘두르며 소리치느라 회장이 가까이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회장이 멀거니 서 있다가 굿판으로 다가가 물었다.
“이게 뭐 하는 짓거리냐?”
아들이 잽싸게 거짓말을 꾸며댔다.
“우리 회사에서 이번에 내놓은 신상품이 대박나라고 축수 굿을 하는 중입니다.”
그 소리에 곁들여 아내도 한 수 더 떴다.
“우리 회사 잘되고 당신 건강하고 장수하라는 축수 굿을 한다오.”
회장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굿을 하고 복을 빈단 말인가.
이때 무당이 악을 쓰고 외쳤다.
“나간다! 저 귀신! 눈을 흘기고 나간다. 염치도 좋지 돌아갈 차비나 넉넉히 달란다, 우우, 여기 아들 삼형제 어디 갔느냐, 훠이 훵이!”
아들들이 돈 봉투를 돼지 머리에 얹었다. 무당이 자신에 찬 소리로 단언했다.
“귀신이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저기 담 너머 나무가 흔들리지 않느냐. 저놈이 장난까지 치면서 가는구나! 훠이 훠이!”
무당이 상 앞에 큰절을 올리면서 돈 봉투를 챙겼다. 그리고 북장이 상수장이한테 손짓으로 가자면서 굿을 마쳤다.
아들 삼형제를 앞에 두고 어머니가 한시름 놓았다고 좋아했다.
“영험하신 보살님이 저렇게 귀신을 쫓아냈으니 이제 아버지가 이상한 소리는 안 하실 거다. 다들 돌아가 일 보거라.”
이렇게 큰 굿판이 끝났고 회장은 기가 막혀 묵묵히 회장실로 들어갔다.
한편---
회장 집 굿하는 날 남수 엄마는 급한 마음에 하루도 틈을 두지 않고 허둥지둥 점쟁이 보살집을 찾아갔다.
인간 보링 14. 지독한 보살 점쟁이
남수 엄마가 점쟁이를 찾아가 인사를 했다.
“보살니이 용하시다는 말씀 듣고 뭐 좀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점 잘 치기로 이름난 염 보살이라는 50대 부인이 거만한 눈으로 한 마디 했다.
“아주 무서운 악귀가 붙었군.”
“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앉아서 보면 삼천 리 서서 보면 삼만 리가 훤히 보이지.”
“용하기도 하시네요.”
“그래 왜 왔는지 고해 봐.”
“네, 실은…….”
그러면서 어떤 영감이 아들이라고 찾아와 밥도 달라고 하고 잠도 자고 가고 하는데 아무리 보아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귀신 같기만 한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다 듣고 난 점쟁이가 대답했다.
“허허, 장비귀신이 붙었어.”
“장비라면 삼국지에 나오는 그 장군 말인가요?”
“그래. 맞다.”
“보살님, 그럼 장비 귀신을 어떻게 내쫓아야 할까요?”
“간단하다. 염려 놓거라.”
“감사합니다. 말씀해 주세요.”
“장비가 가장 무서워하는 장군이 누군지 아느냐?”
“모릅니다. 누군가요?”
“장비 의형 유비. 그런 귀신 내쫓는 건 간단해.”
“어떻게 하면 되나요.”
보살 점쟁이는 작은 상자를 열더니 부적을 꺼냈다. 그리고 빨간 잉크로 한쪽 귀퉁이에 이상한 그림을 그려 넣고 말했다.
“이 부적은 좀 비싼데 어쩌나. 이걸 가지고 가서 그 영감귀신이 자겠다고 하면 그가 베고 잘 베개 속에다 이것을 꼭꼭 접어 숨겨 놓으면 귀신이 쫓겨 간다.”
“고맙습니다. 보살님, 그럼 얼마를 드려야 하나요?”
“그런 귀신 내쫓는 부적은 비싼데 어떡하겠나?”
“얼마나 되는지…….”
“다른 사람 같으면 천만 원은 받아야 쓰겠지만 행색을 보아하니 넉넉한 사람이 아니니 어쩌겠나. 우리 신령님께서도 이해하실 데니 백만 원만 내놓게.”
부인은 가지고 온 돈이 별로 없었다.
“보살님 제가 꼭꼭 챙겨준 것이 삼십 만 원밖에…….”
“허허. 무엄하다. 우리 신령님께서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하시는구나. 뭐 더 없느냐?”
“예, 그러시면 제 5돈짜리 금반지를 더 올리겠습니다.”
“할 수 없지, 우리 신령님께서 그거라도 받으라며 자비를 베푸시니. 됐다. 금반지를 빼거라.”
인간 보링 15. 장비 부적을 사다
부인은 반지까지 내놓고 부적을 받아들고 물었다.
“보살님, 궁금한 거 하나 더 물어보아도 될까요?”
“무엇이든지 묻거라.”
“신령님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신령님이 계신가요?”
“있지.”
“어디 계신가요?”
보살은 갑자기 정색을 했다.
“그런 것까지 물으면 신령님이 노하신다. 이만 물러가거라.”
부인은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을 꺼낸 것인데 보살이 너무 엄하게 말하므로 물러나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귀신 영감이 베고 잘 베갯잇을 뜯고 속에다 부적을 깊이 넣으며 생각했다.
‘귀신 영감 오기만 해 봐라. 오늘 밤에 자다가 벼락을 맞듯 일어나 달아나리라.’
그러면서 저녁상까지 차려놓고 귀신영감이 오기를 기다렸다. 해가 지자 귀신 영감이 나타나 소리쳤다.
“엄마, 배고파.”
귀신 영감, 차려놓은 밥상을 보더니 좋아하면서 두 말 없이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그리고 물었다.
“엄마, 이제 나 박남수 인정해 주는 거지? 나보고 아저씨라고 하지 마. 알았지?”
“알았다. 밥 먹었으니 잠이나 자라.”
“엄마하고 더 놀다 자고 싶은데. 왜 빨리 자라는 거야?”
“알았으면 가서 자기나 해.”
“알았어. 난 잠자는 게 가장 좋아.”
귀신 영감은 옆방으로 들어가 베개를 베고 금방 잠이 들었다. 부인은 귀를 기울였다. 이제 무슨 변고가 일어날 것이니 구경이나 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코고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 변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부인도 졸려서 자리에 들고 말았다.
밤이 깊었는데 정말 변고가 발생했다. 쿨쿨 자던 귀신영감이 안방으로 들어와 잠든 부인을 끌어안았다. 부인이 까무러칠 지경으로 놀라 소리쳤다.
“아저씨! 이게 무슨 짓이에요!”
“엄마, 나 남수야, 아저씨 아니야.”
“남수고 귀신이고 다 필요 없어요. 저리 떨어져요.”
확 밀치고 일어나자 귀신영감이 놓아주지 않고 말했다.
“나 엄마 젖 만지고 자고 싶어어.”
“이 영감이 미쳤나.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 영감 아니라니까. 남수야 엄마.”
“아이고 미치겠네. 장비야 물러가라, 유비가 왔다!”
“엄마, 유비가 어디 있어?”
유비 장비 소리를 하고 장비귀신 물러가라고 소리치고 밀고 당기고 싸우다가 날이 밝았다. 귀신 영감이 갑자기 정신이 드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서 허겁지겁 달아났다.
인간 보링 16. 물벼락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좋아했다.
‘마침내 장비귀신이 물러갔구나. 만세. 보살님 고맙습니다.’
한편 회사에 출근한 회장이 비서한테 부탁했다.
“우유하고 빵을 좀 가져다주게.”
그리고 아침을 때운 회장은 평상시처럼 일을 보았다. 그것을 본 아들들이 속삭였다.
“아버지가 이제 제 정신이 드신 것 같지 않으냐?”
맏형이 하는 말을 막내가 듣고 대답했다.
“맞아요, 형님. 이제 귀신이 쫓겨나갔으니 별일 없겠지요.”
둘째가 고개를 저었다.
“귀신은 무슨…….”
맏형이 꾸짖었다.
“넌 그게 문제야.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다 그런 거냐? 교회 목사한테 아버지 귀신 물러가라고 해 봐라. 목사가 무슨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겠느냐? 무당이 아니면 귀신은 아무도 못 건드린다. 두고 보면 알 거야. 아버지는 이제 아무 일도 없으실 거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저녁때가 되었다. 아들들이 오늘은 아무 일도 없으려니 믿고 회장실을 찾아갔다. 아들 삼형제가 몰려들어 말했다
“아버지, 퇴근하셔야지요.”
회장은 갑자기 어린애 짓을 했다.
“아저씨들 누구세요?”
삼형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큰아들이 다가섰다.
“아버지, 왜 이러세요?”
회장은 달아나며 소리쳤다.
“나 우리 집 갈 거예요.”
그리고 부지런히 찻길로 나가 마을버스를 탔다. 삼형제는 택시를 불러 타고 뒤를 따랐다. 마을버스에서 내린 회장은 높은 계단을 올라가 허술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며 소리쳤다.
“엄마, 나 왔어.”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부인이 외쳤다.
“왜 또 왔어, 이 귀신아!”
“엄마, 나 귀신 아니야. 엄마 아들 박남수, 남수라고. 엄마는 이상해.”
“뭐라고?”
“어저께는 아저씨라더니 오늘은 귀신이라고? 엄마, 나하고 재미있게 놀라고 그러는 거지?”
“아이고, 이 장비 귀신아 네 집으로 가아!”
문 밖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삼형제가 우르르 몰려 들어가며 한 소리로 불렀다.
“아버지, 아버지.”
갑자기 장정들이 들이닥쳐 아버지라고 부르는 소리에 부인은 까무러치게 놀랐다.
“이놈의 귀신이 쫓겨 간 줄 알았는데 새끼 귀신들까지 몰고 왔네! 어쩌면 좋아, 이 귀신들아 물러가라!”
이때 삼형제가 몰려든 것을 본 회장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아저씨들 왜 이러세요? 우리 엄마 잘못 없어요.”
아들들도 같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왜 이러세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부인은 그 꼴을 보다가 기가 막혀 이렇게 생각했다.
‘귀신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별짓을 다하는구나. 아비귀신에 새끼귀신들까지 왔으니 또 무슨 짓을 할 줄 알아. 에라 이 귀신놈들 물러가라.’
그러면서 부엌에서 큰 바가지에 물을 가득 퍼다 확 끼얹으며 소리쳤다.
“장비귀신 물러가라. 새끼 귀신 물러가라!”
회장을 비롯해서 무릎 꿇은 사부자가 물벼락을 맞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큰아들이 외쳤다.
“아주머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부인도 지지 않았다.
“뭐라고? 무슨 짓? 저 늙은 귀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
둘째 아들이 부인 앞에 겸손이 허리를 숙이고 말했다.
“부인, 죄송합니다. 우리들은 귀신이 아닙니다.”
“귀신들이 아니면 뭐요? 남의 집에 와서. 내가 남편 자식 다 잃고 혼자 사니까 우습게보고 이러는 거 아니냐고요?”
이때 회장이 아들들한테 빌었다.
“아저씨들 가세요. 왜 엄마한테 이러세요?”
삼형제는 어이가 없어서 머리에 흐르는 물을 씻으며 말했다.
“아버지 이러지 마세요. 정신 차리세요.”
회장이 어린애 소리로 대답했다.
“아저씨, 왜 나보고 아버지라고 하세요. 난 우리 엄마 아들이에요.”
인간 보링 17. 무당도 점쟁이도 다
언제나 친절하고 점잖은 둘째아들이 말했다.
“형님, 이러고 있을 게 아닙니다. 잠깐 밖에 나가서 대책을 세우시지요.”
“무슨 대책이냐?”
“일단 나가서 이야기해요.”
그러면서 부인한테 정중히 말했다.
“아주머니도 잠깐만 밖으로 나가서 말씀 좀 나누실까요?”
부인이 의심하면서도 그 말에 따르기로 하고 문밖으로 나섰다. 부인 뒤를 따라 나오려는 회장이 어린애 소리를 했다.
“엄마, 어디 가? 아저씨 따라가지 마, 아저씨들 미워요.”
문 밖으로 나서는 순간 막내가 대문을 막았다. 그 사이 뒤쪽으로 간 아들과 부인이 둘러섰다.
둘째아들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 죄송합니다만 아들 이름이 남수였다고요?”
“네, 내 아들 남수는 교통사고로 죽은 지가 오랩니다. 그런데 저 영감이 나타나 자기가 내 아들이라면서…….”
둘째아들은 순간 감이 잡혀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주머니, 놀라지 말고 들어주세요.”
“알겠어요. 말씀하세요.”
“저 어른은 우리 아버지가 맞습니다. 그리고 아주머니 아들도 맞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부인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나요? 쉽게 말해 주세요.”
“네. 사실대로 말씀드리지요.”
그리고 삼형제가 늙은 아버지를 위해 다리 관절수술과 척추수술을 해 준 것과 치매 증상이 있어서 치매를 고쳐드리려고 교통사로 죽은 아이 뇌를 구하여 머리에 이식수술을 해서 치매도 고치고 건강도 완전히 회복시켜 드렸다는 사정을 밝혔다.
부인은 놀라서 털썩 주저앉았다.
“이를 어쩌면 좋아요. 저 어른이 외모만 어른이고 나한테 한 짓은 죽은 아들이 하던 그대로였어요. 어려서 보고 들은 기억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말하므로 귀신의 짓이라고 생각했어요. 말씀 듣고 보니 그런 것이 아니었네요. 저 어른이 하는 말은 꼭 내 아들 같은데, 외모는 전혀 다르니 이제 어떡해야 하나요?”
둘째아들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제 말을 알아들으셨으니 이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부인이 자기 말을 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저는 보살 점쟁이를 찾아가 점도 쳐 보았답니다. 점쟁이 말이 장비귀신이 붙어서 그런 것이라면서 부적을 비싸게 팔았습니다. 그것을 점쟁이 말대로 베개 속에다 숨져놓고 이제는 장비귀신이 나갔거니 했는데 나가기는커녕……. 호호호…….”
“왜 웃으세요?”
“그런 것도 모르고 장비귀신이 새끼들까지 몰고 왔다고 물벼락까지 뒤집어 씌워드렸니 어쩌지요.”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급한 건 그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큰아들이 한 마디 했다.
“네가 뭘 알아서 고친다는 거냐? 무당이 큰 굿을 하고 귀신이 나갔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무당도 못 고치는 병을 네가 고친다고?”
부인이 놀랍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댁에서는 굿까지 하셨다고요?”
둘째아들이 대답했다.
“예, 큰굿도 했답니다. 무당도 점쟁이도 사람들 홀려서 돈 뜯는 재주가 있을 뿐 실은 아무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아버지가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가 되시고 이 댁에 오시면 아주머니 아들이 되는 수밖에 없지요.”
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그렇게는 못해요. 아무리 아들이라고 생각해도 안 되고요. 밤에 엄마 곁에 잔다고 덤비는 건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러시군요. 일단 제가 아는 목회상담으로 유명한 목사님이 계시니 상담을 하여 좋은 방법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큰아들은 목사 말만 나와도 화를 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한테 목회상담 어쩌고 하자 화를 냈다.
“넌 그게 문제야. 목사가 뭘 안다고 상담 어쩌고 하는 거냐? 무당도 점쟁이도 못 고치는 병을 목사가 뭘 고쳐. 다 돈이나 뜯어먹고 사는 사람들이야. 쓸데없는 소리 마.”
“형님,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무당도 못 고치고 점쟁이도 헛소리나 하고 병원서는 치료가 잘 되어서 건강하고 젊게 장수하실 거라고 했는데 그렇게 되었나요?
“너 같은 예수쟁이들 말은 잘하지.”
부인이 듣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인간 보링 18. 심리 상담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무슨 일은 못하겠어요. 무당이나 점쟁이보다는 목사가 낫겠지요.”
큰아들이 또 비아냥대는 소리를 했다.
“흥, 또 돈 뜯길 일만 남았군.”
둘째아들이 말했다.
“목사님은 돈 같은 건 바라지 않아요. 목사님이 아버지 병을 고쳐주신다면 어떡하실래요.”
“뭘 어떻게 해, 달라는 대로 돈이나 몇 푼 주면 되지.”
“형님, 매사를 돈으로 해결한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돈으로 아버지를 이렇게 만들어 놓지 않았나요.”
부인이 끼어들었다.
“다 좋은 말씀이신데 일단 목사님한테 가 봐요. 무슨 수가 있을지 누가 알아요.”
“그럽시다.”
이렇게 하여 막내아들은 아버지를 지키고 첫째와 아주머니가 둘째를 따라 교회로 갔다.
둘째가 목사님을 만나 그간의 사정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다 들은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일단 어른의 머릿속에 아이하고 어른 둘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하나님밖에 고칠 수 없습니다.”
첫째아들이 비웃는 소리로 말했다.
“무당도 점쟁이도 병원 의사도 못 고친 병을 보지도 못한 하나님인지 뭔지가 고친다니 말이 됩니까?”
목사님은 조금도 노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는 것처럼 서두는 분이 아니십니다. 시간을 두고 고치십니다.”
“시간을 두고 고친다고요? 어느 세월에 고칩니까?”
“네. 제 말씀을 믿으시면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첫째아들이 화를 버럭 냈다.
“하나님을 믿으라고요?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우리가 몰려오니까 그런 식으로 교회 나오라고 할 생각이신 것 같은데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목사님은 여전히 침착하게 받았다.
“사람은 늙으면 치매가 생기기도 하고 어린애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린이는 나이가 들면 어른으로 변합니다. 말하자면 한 머리에 갇힌 어른은 세월이 가면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 두 머리가 어느 순간 하나로 되면 아주 건강한 사람으로 변합니다.”
첫째는 머리를 외로 꼬고 둘째는 기대감으로 눈빛이 빛났다. 목사님 말에 귀 기울이던 부인이 말했다.
“목사님 말씀을 들으니 뭔가 희망이 보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하나님은 인간이 태어날 때 아름다운 심성을 주십니다. 그런데 살다가 변하여 나쁘게 되기도 하고 천성대로 곱게 유지되기도 합니다.”
첫째가 엉뚱한 소리로 물었다.
“그럼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하지요?”
목사님이 차분히 대답했다.
“어른님을 위하여 굿도 해보고 점도 쳐보고 병원에도 가보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에서 사람이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찾아갈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둘째는 고개를 끄덕이고 밝은 얼굴을 짓는데 첫째가 얼굴을 붉혀가며 대꾸했다.
“내가 다 그럴 줄 알았지. 목사라는 사람들이 하나님도 아니고 예수 팔아먹고 사는 장사꾼이지 뭐 다른 게 있소. 둘째야, 그만 가자.”
둘째는 목사님 앞에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데 첫째는 성큼성큼 교회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부인은 달랐다.
“제가 듣기에 목사님 말씀이 옳은 것 같아요. 목사님이 하시라는 대로 교회에 나오시라면 나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기적적인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둘째아들도 좋아하면서 부인한테 말했다.
“아주머니, 잘 생각하셨어요. 아버지가 오시거든 교회로 모시고 오세요.”
“그런데……. 그 어른을 어떻게 교회까지 모시고 올 수 있을까요?”
목사가 말했습니다.
“그 어른은 아주머니를 엄마로 알고 하자는 대로 잘 따르실 겁니다. 저녁에 오시거든 이제부터 교회에 나가기로 했으니 엄마를 따라 교회 가자고 하시면 따라 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그렇게 생각한 부인이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못 열게 하여 갇힌 어른은 막내아들하고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부인이 들어서자 애가 된 채 울면서 맞았다.
“엄마, 어디 갔다 이제 와.”
막내아들은 물러서서 그 모양을 보고 가슴을 쳤다.
“어이그, 어쩌다 아버지가…….”
부인이 막내아들을 돌려보내며 말했다.
“일이 잘 될 것 같아요. 어른은 나한테 맡기고 돌아가세요.”
그리고 회장한테 옛날 엄마로서 아들 취급을 하던 식으로 반말을 했다.
“남수야. 엄마 말 잘 들을 거지?”
“엄마, 나 엄마 말 잘 들을 거야. 뭐든지.”
“알았다. 오늘 밤 엄마가 교회에 가서 목사님 만나고 왔다.”
“왜?”
“오늘 저녁 먹고 교회 철야예배에 가기로 했다. 빨리 저녁 먹고 교회 가자.”
“엄마, 나 데리고 갈 거지?”
“그래.”
“아이 좋아, 난 엄마가 달아날까 봐 무서워. 엄마가 교회에 가면 나도 갈 거야.”
이렇게 하여 저녁마다 회장을 아들 취급하면서 철야예배에 참석했다. 남수는 착실하게 부인을 따라 교회에 잘 나가고 있었고 교회에서 돌아와 자고 나면 어른으로 변하여 허겁지겁 달아나 아들들이 기다리는 회사로 갔다.
인간 보링 19. 호랑이굴이라도 좋다
아버지가 아들들한테 말했다.
“이번 신상품을 대량으로 팔자면 그 구미물산 허사장을 알아야 하는데 그분하고는 손이 닿지 않는다. 무슨 묘책이 있겠느냐?”
이때 둘째아들이 대답했다.
“아버님, 좋은 길이 있습니다.”
“무슨 길이냐?”
“그런데 그 길을 트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고 뚫리는 길이 어디 있느냐. 도전하는 자에게 길은 열리는 법이다.”
“아버지 그렇게 생각하세요?”
“암.”
“아버지한테는 아주 어려운 일인데요.”
“내가 무엇이 무서워서 못한단 말이냐. 호랑이굴이라도 들어가라면 들어간다.”
“호랑이굴보다 더 무서운 곳인데요.”
“그게 뭐라는 거냐. 일단 들어보자.”
“거기만 가면 아버지가 허사장을 만나실 수 있고 대박도 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뭘 그리 뜸을 들이는 거냐?”
“제가 교회에 나가는 건 아시지요?”
“알지. 너 좋아 나가는 거 막고 싶지 않아서 내버려 두었다.”
첫째가 끼어들었다.
“너 아버지까지 거기로 가시게 할 생각이냐?”
회장이 첫째한테 물었다.
“거기라니? 거기가 어디냐?”
“아버지하고는 안 어울려요.”
“목적을 가지고 가는데 안 어울리면 어떠냐. 어울려주면 되지.”
둘째아들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거기가 어디냐 하면요.”
“그래, 호랑이굴보다 무섭다는 거냐?”
첫째아들이 심술이 난 소리를 했다.
“아버지는 못 가세요. 저 애가 가자는 곳이 어딘지 아세요? 예배당이에요.”
“예배당?”
둘째가 대답했다.
“형이 말한 대로 예배당이에요.”
“예배당이 호랑이굴보다 무섭다고? 착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데 어째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아버지가 놀라시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거기 그 교회에 나가시면 허사장을 만날 수 있어요.”
“그러냐?”
“네. 그 교회 장로님인데 아주 좋으신 분이에요. 앞으로 저를 따라 교회에 나가시면 그 장로님을 만나시게 됩니다.”
“그러냐? 그럼 나가야지. 호랑이굴도 아닌데 못 갈 이유가 없지. 사업에 도움이 되는 일인데 교회면 어떠냐.”
인간 보링 20. 코 꿴 장로
둘째아들이 다짐했다.
“그러시면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가세요. 저하고 같이 가시면 목사님도 만나고 허장로님도 소개받으실 거예요.”
“그러냐? 당장이라도 가자.”
마침내 사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회장은 둘째아들을 따라 교회를 나갔고 거기서 허장로를 만났다. 허장로한테 잘 보여야 된다는 목적 때문에 교회를 빠지지 않고 나갔고 허장로 말이라면 무엇에나 앞장섰다. 체면도 내려놓고 순종했다. 그러면서도 해만 지면 어린애가 되어 엄마네 집으로 달려갔다.
이미 목사님과 약속한 바가 있어 부인은 회장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엄마 노릇을 제대로 했다.
“엄마, 배고파.”
“알았다, 저녁 먹고 교회 가자.”
“좋아, 엄마 따라갈 거야.”
어른이 아닌 아들이 된 회장은 철야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속사정을 모르는 교인들은 부인이 남편하고 같이 나오는 것으로 오해했지만 비밀을 아는 사람은 목사 이외는 아무도 몰랐다.
주일 낮 예배에는 허장로한테 잘 보이려고 나가고 밤이면 엄마를 따라 교회로 가 철야 예배를 드렸다. 그러기를 2년 넘게 설교를 듣다가 전혀 생각지도 않은 변화를 맞았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날마다 자라듯이 주일과 철야예배에 참석한 회장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신앙심이 깊어졌다. 그래서 전에 없던 봉사심이 생겼고 진짜 예수 제자가 되어 허장로보다 더 열심 성도가 되었다. 또한 허장로는 적극적으로 사업을 도와주어서 그 덕으로 신생품이 대박이 났다. 회장은 기쁜 마음으로 봉사도 잘하고 헌금도 잘했다.
예수 믿으러 나간 것이 아니라 사업 목적으로 나간 교회인데 목적이 믿음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가는 기적이 일어났고 아들들이 집사가 되고, 부인 남수 엄마도 집사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아들들이 남수네 집을 장만해 주어 회장이 저녁마다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었고 생활비까지 대주어 구차하게 살던 부인도 생활이 폈다.
회장은 얼마나 모범적으로 봉사하고 믿음생활을 잘하는지 교회 출석 3년 만에 장로가 되고 허사장과는 친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하루는 목사님이 세 아들들과 부인집사를 한 자리에 앉혀놓고 회장 장로를 향해 말했다.
“장로님은 심성이 고우시기가 마치 어린이와 같으십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앞으로는 주일학교 교장 직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장로 회장이 놀라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교회에서 저한테 무엇이든 하라고만 하시면 다하겠지만 그것만은 다른 장로님한테 맡겨주십시오.”
목사님이 비유를 들었다.
“장로님, 저 큰 기둥을 보세요. 저것이 처음부터 저렇게 반들반들한 나무였을까요?”
“아니지요. 거친 껍데기를 벗기고 톱으로 베고 대패로 다듬어서 저렇게 된 것이지요.”
“기둥감은 목수가 보고 정합니다. 그렇듯 하나님의 훌륭한 일꾼은 목사가 정합니다. 제 말씀을 따라 주세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저하고는 다릅니다.”
목사가 친절하게 말했다.
인간 보링 21. 목사님 농담도 잘하십니다
“장로님 제가 동화책을 몇 권 드리겠습니다. 동화를 읽으시고 마음에 새겨두셨다가 아이들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겁니다. 초등학교 다니실 때 선생님이 해주시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지요?”
“예, 그렇기는 합니다만.”
“선생님이 동화 이야기를 하면서 손짓도 하고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활짝 웃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는 몸짓을 보셨지요?”
회장이 갑자기 하하대고 큰소리로 웃어젖혔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내가 3학년 때였는데 우리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인지 하시면서 신나게 뛰시다가 쿵 하고 벌러덩 넘어지시더니 못 일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부추겨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서 웃었습니다.”
이 말에 아들들과 부인 집사도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그치자 회장 장로가 부인을 향해 엉뚱한 말을 했다.
“집사님, 웃는 목소리도 좋지만 입이 아주 예쁘십니다.”
이때 목사님이 받았다.
“그렇지요? 집사님 웃는 소리가 꾀꼬리소리처럼 예쁘지요?”
회장 장로가 의아한 눈으로 부인 집사한테 물었다.
“집사님은 댁이 어디신가요?”
“저는…….”
미처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며 얼굴이 빨개졌다. 그 순간 목사가 말했다.
“회장님은 아직도 모르셨나요?”
“제가 어떻게 압니까.”
“차차 아시게 됩니다. 오늘은 궁금하셔도 참으시고 다음 주일 날 교회학교 교장님 신고식 준비나 하시지요.”
그렇게 하루가 가고 저녁때 회장이 전에 없이 기쁜 얼굴로 아들들을 불렀다.
“오늘 저녁은 목사님 모시고 우리 집에 가서 파티를 하자.”
아들들이 모두 놀랐다. 전 같으면 지금쯤 남수가 되어 달아날 시간인데 집에 가서 파티를 하자고 하시니 어이가 없었다. 회장은 마치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말했다.
“우리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우리 집으로 가십시다. 목소리 예쁜 집사님도 함께 갑시다.”
목사가 넌지시 물었다.
“장로님 댁이 어디신가요?”
“목사님 농담도 잘하십니다. 우리 집에 한두 번 오셨나요? 우리 가족이 모두 교회에 나온 지가 몇 년입니까. 그 동안 가정심방도 하시지 않았습니까?”
목사님이 한 수 더 떴다.
“제가 그만 깜박했습니다. 나이가 들다 보니 가끔 깜박도 잘합니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나는 날이 갈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젊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이것도 병이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모두들 깜박깜박하는데 장로님은 젊어지는 병이 드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이렇게 한바탕 웃고 난 다음 모두가 장로님 댁으로 몰려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밤이 되어도 엄마 찾아 간다는 생각은 잊은 듯 서재로 들어가 동화책을 읽으며 밤을 보냈다.
남수 엄마는 갑자기 아들을 빼앗긴 느낌이 들었다. 회장네 집에서 즐겁게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매우 허전했다. 그리고 회장이 어린애 짓을 하는 소리가 그리워졌다.
주일날 부인 집사는 일찍이 교회로 가 목사님과 상담을 했다.
“이제 장로님이 안 오시니 기다려지고 서운하기도 합니다.”
“그러실 겁니다. 그렇지만 집사님만 남수를 빼앗긴 것이 아닙니다. 장로님 아드님들도 옛날의 아버지를 빼앗긴 것입니다. 지금 육신은 누구의 아버지도 아니고 집사님 아들도 아니십니다. 전혀 새로운 젊은 사람이며 유능한 어린이 지도 선생님입니다.”
“그렇게 되시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게 됩니다. 집사님은 주일날 교회에서 만나실 때는 장로님 속에서 성장한 아들을 보시는 줄 생각하시고 장로님 아들들은 신앙 깊은 장로님을 모시게 될 것입니다.”
상담을 마친 후 목사님은 장로님을 모시고 주일학교 교실로 갔다.
인간 보링 22. 눈감고 생각하기
목사가 물었다.
“장로님 재미있는 동화를 준비하셨지요?”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동화책을 다 읽어보았지만 제 마음에 드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시면 어떡하지요?”
“나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무슨 이야기가 하시고 싶으신데요?”
“그냥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고 있는지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목사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읽고 참고하라는 동화는 안 하고 무슨 다른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해져서다. 하지만 한번 믿고 맡겼으니 지켜보자고 생각했다.
장로님은 목사님을 따라 어린이 학교 교실로 들어갔다. 어린이 교실에는 백 명도 넘는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새로 오신다는 장로 교장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사님이 아이들한테 새로 오신 교장님이라고 장로님을 소개하고 옆자리에 앉았다.
사업에는 자신이 넘치는 회장이지만 막상 많은 아이들을 앞에 놓고 보니 약간 위축도 되었다. 그러나 생각한 대로 하기로 했다.
강단에 선 장로님이 아이들을 둘러보고 한마디 했다.
“어린이 여러분 모두가 예쁘고 귀여운 천사처럼 생기셨습니다. 오늘 나는 교회학교 교장을 하라고 하시는 목사님 말씀을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장로님이 그 아이한테 말했다.
“손 든 학생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요?”
아이는 엉뚱한 것을 물었다.
“장로님 몇 살이에요?”
무슨 질문을 하려고 그러나 하고 기다리던 아이들이 그 질문에 모두 까르르 웃었다. 장로님은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은 나이가 많아지면 어린이가 된다고 했어요. 나도 마찬가지로 보기에는 어른이지만 속은 여러분과 동갑내기 아이랍니다. 또 이런 말도 있지요? 어른 같은 아이라고 하는 말, 들어보셨지요?”
아이들이 모두 네네 하고 대답했다. 장로님은 아이들을 다시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 이제 눈을 가만히 감고 생각해 보세요. 나는 어떤 아이인가?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선생님이 가르칠 때 정신을 집중하여 공부를 했는지, 친구들과 싸우지는 않았는지, 나이 어린 동생들을 때리고 미워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세요,”
아이들이 모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모두가 장로님이 말하는 대로 나는 어떻게 했는지를 반성했다.
장로님이 이런 말도 했다.
“여러분 마음으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까 하고 생각해 보고 또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나 마음으로 물어 보세요.”
아이들은 또 장로님 말씀대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생각해 보기도 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 다음 장로님이 말했다.
“여러분 이제 눈을 뜨세요. 무엇이 보이나요?”
한 아이가 대답했다.
인간 보링/23. 무엇이 보이나요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다른 아이가 말했다.
“앞자리에 미숙이 머리만 보입니다.”
아이들이 와르르 웃었다. 장로님이 물었다.
“하나님은 안 보였나요?”
“예예, 안 보였어요.”
“그럼 자기 마음을 본 사람이 있나요?”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어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싶지요?”
“네네.”
“옛날에 임금님이 많은 백성들을 모아놓고 양동이를 하나씩 주면서 명령을 했어요.”
장로님은 아이들을 둘러보며 임금님이 내는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여봐라, 너희는 짐이 내린 양동이를 들고 모두 저 앞에 있는 호수로 가서 물을 가득히 떠오너라.”
그리고 백성들이 하는 소리를 했다.
“예에이! 예에이!”
백성들은 우르르 달려가서 양동이에 물을 담아 들고 돌아왔다. 어떤 사람은 물을 양동이 가득 채워 가지도 오고 어떤 사람은 무겁다고 반통만 떠가지고 오고, 어떤 사람은 빈 통으로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해가 지고 동쪽에서 둥그런 보름달이 떠올랐다. 임금님이 보름달을 올려다보시더니 백성들을 향해 말했다.
“백성들은 내 말을 따르라. 모두 자기 물통을 들여다보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렷다.”
백성들은 모두 임금님이 무슨 명을 내릴까 기다렸다. 장로님이 역시 임금님 목소리로 물었다.
“물통 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백성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달이 보입니다. 전하.”
그런데 빈양동이를 가지고 온 사람이 한쪽에 있는 사람한테 물을 나누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물을 주지 않았다. 임금님이 큰소리로 명령했다.
“양동이에 달이 뜨지 않은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
물 떠오기가 싫다고 빈양동이를 들고 있던 사람이 무릎걸음으로 앞으로 기어 나갔다. 그 백성을 향해 임금님이 명령했다.
“빈 양동이를 들고 온 사람이 어찌 이리 많으냐? 너희는 여기에 머리를 땅에 박고 내가 일어나라고 할 때까지 그렇게 있도록 하여라.”
장로님이 아이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어린이 여러분. 양동이에 물을 떠온 사람과 빈손으로 온 사람들 중에 누구를 닮고 싶은가요?”
아이들은 한 목소리고 대답했다.
“물을 퍼온 사람들이에요.”
“그렇지요? 그럼 물을 안 퍼온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장로님이 말을 이었다.
“달이 양동이 물에 안 떠 있는 사람 있나요?”
인간 보링 23. 물동이에 달뜨듯이
“없어요.”
“그래요. 물이 차 있는 양동이에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달이 떠 있지요?”
“네네네.”
“바로 여러분은 물이 가득 찬 양동이와 같은 어린이에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시기를 양동이에 비친 달 같은 거예요. 그런데 달이 비치지 않은 양동이는 무엇 때문인가요?”
한 아이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물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장로님이 그 아이를 귀엽다고 바라보시면서 말했다.
“그래요. 잘했어요. 양동이에 물이 없기 때문에 달이 비쳐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예요. 그렇듯이 하나님은 온 세상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하나님을 몰라 하고 외면하는 사람은 양동이에 물이 없는 사람 같은 거예요. 어린이 여러분은 교회에 와서 찬송도 부르고 하나님 말씀도 듣는 것은 양동이에 물을 담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래서 물에 뜬 달을 보듯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는 거예요. 여러분은 마치 물이 가득 담신 양동이 같은 어린이에요. 알았지요? 이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어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고 박수!”
모든 아이들이 와아 하고 웃으며 박수를 쳤다. 옆에서 지켜보던 목사님이 장로님 손을 잡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어느 동화책에서도 볼 수 없는 좋은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는 처음 상담할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 장로님은 지금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상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머릿속의 어른은 어린이가 되어가고 어린 뇌는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의식의 일치점에 이르고 있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어린 뇌는 어른으로 변화되고 어른은 젊은 뇌의 지원을 받아 청년에 가까운 새 인간상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는 얼마 안 있어서 저녁이 되어도 엄마를 찾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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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반대하던 큰아들과 둘째아들이 목사 사무실에서 마주앉아 밝은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아버님은 어떠실까요?”
“앞으로는 옛날 어른도 아니고 엄마 찾는 남수도 머리에서 사라집니다. 전혀 새로운 인물로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실 것입니다.”
큰아들이 전과는 달리 겸손하게 말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이 도와주시어서 우리 아버님이 더 젊고 건강한 사업가가 되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맞습니다. 이제 다음 주일부터는 아주 훌륭한 주일학교 교장 선생님이 되시고 구연동화로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꿈을 펼쳐주는 별 같은 장로님이 되실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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