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예수
즐거운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온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한다고 거리가 떠들썩하고 교회마다 잔치를 합니다.
골목에는 술꾼들까지 나와 길을 누비며 친목회를 한다 모임이 있다 하여 술렁입니다. 어떤 술꾼은 이렇게 소리칩니다.
“오늘 따라 웬 예수쟁이들까지 나와서 야단이야!”
“야단이 뭐냐, 야단법석이지.”
“너희들이 야단법석을 알기나 하고 쓰냐?”
“그래, 너 똑똑해 야단법석이 뭐냐?”
“야단법석이란 기독교인들하고는 안 맞는 말이다 이 말이야.”
“그게 뭔데?”
“야단이란 불교에서 쓰는 야단 즉 밖에다 단을 쌓고 거기서 스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불자들이 와글거린다는 말이야아.”
“잘났다 너, 그럼 예수쟁이가 모여서 와글거리는 것은 무어라고 하는 거냐?”
“예배드린다는 거다.”
술꾼들이 이렇게 주고받으며 걸어가는 뒤를 초라한 차림의 사람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너무 초라하여 거지라고 하는 말이 맞습니다. 흐트러진 머리, 다 해진 바지에 축이 없는 낡은 구두, 헐렁거리는 외투는 구멍이 숭숭 나서 바람이 제 맘대로 들락거립니다.
교회마다 십자가 탑에 오색 전등이 줄줄이 걸려 반짝거리고 교회 지붕 둘레는 황금빛 등 줄을 걸어 놓아 황궁처럼 화려합니다.
교회 문 앞에는 말끔하게 차려 입은 봉사자들과 성도가 웃음으로 화장을 하고 사랑의 대화를 나눕니다. 바로 천국 모습이 거기 있습니다.
거룩한 분위기에 말끔한 교회 안으로 키다리 거지 하나가 다른 사람의 뒤를 따라 들어갑니다.
이때 봉사 집사가 그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댁은 안 됩니다.”
키다리 거지가 대답했습니다.
“왜 안 된다는 거요?”
“오늘은 예수님이 오신 거룩한 날입니다. 그런 차림으로는 안 됩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들어가야 하오?”
거칠게 보이는 사람이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말이 많군. 좋게 말할 때 꺼져.”
“미안하오. 교회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나 보고 가겠소. 그것도 안 되겠소.”
“빨리 보고 나가시오.”
키다리 거지는 교회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성도들은 모두 경건하게 앉아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강단 무대에서 무용을 하기도 합니다.
한쪽에는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마리아 모양도 만들어 놓고 벽에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글씨도 금빛 은빛 수를 놓아 아름답게 꾸며 놓았습니다.
뒤에 따라온 집사가 말했습니다.
“다 보았으면 나가시오.”
돌아서서 나오는 길에 어떤 거지 아이가 들어오려다가 봉사집사에게 막혔습니다.
“넌 들어가면 안 돼!”
“나도 사람인데 왜 안 돼요?”
“허허 쪼그만 것이 감히.”
다른 여자 집사가 끼어들었습니다.
“안 된다면 그런 줄 알고 나가.”
아이 거지는 고집을 부렸습니다.
“나도 예수 믿는다고요.”
“예수를 믿는다면서 옷이 그게 뭐냐? 오늘은 안 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날이야.”
“그런 건 저도 알아요. 그렇지만 예수님은 거지라고 내쫓지는 않으셨어요.”
이때 남자 집사가 다가들어 아이를 잡아끌고 교회 대문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오늘은 성탄절이라 곱게 보내는 줄이나 알아. 거지 주제에!”
키다리 거지가 아이 곁으로 갔습니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올려다보았습니다.
2. 별것 아닌 것이
“아찌. 아찌도 쫓겨났지?”
“그래 쫓겨났다.”
“아찌도 예수 믿어?”
“너 같다.”
“내가 어떤데?”
“배고프면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아찌, 정말 잘 안다. 난 그래, 아찌도 그랬단 말이지?”
“어디로 갈 거냐?”
“오늘은 갈 데가 많지만 어디를 가든지 찬밥이야.”
“찬밥?”
“아찌, 나하고 저기 갈까?”
“어디냐?”
“큰 교회에 가면 들어갈 수 있어.”
“그래?”
“거기는 문이 여러 개고 사람들이 많아서 들어갈 수 있어.”
“가 보자.”
아이 거지와 키다리 거지가 아주 큰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모두 옷도 곱게 차려 입고 착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층 중간 자리에 앉았습니다. 목사님도 잘 보이고 일층 사람들 머리며 옷차림도 잘 보였습니다. 아이 거지가 말했습니다.
“아찌, 여기 좋지?”
“좋구나.”
한참이 지났을 때입니다. 자리가 꽉 찼습니다. 사람들이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도 거지가 앉은 옆으로는 오지 않았습니다. 두 거지가 앉은 좌석은 비어 있고 모두가 무시하고 원망하는 눈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될 시간입니다. 봉사집사 세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두 사람 일어서시오.”
아이 거지가 빤히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왜요?”
“일어나라면 일어나. 별것들이 다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아이는 지지 않았습니다.
“아저씨는 별건가요?”
곁에서 함께 봉사하는 집사가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3. 교회에서 쫓겨난 두 거지
“미안하지만 일어나 주세요. 예배가 시작되면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예배 장면을 촬영합니다. 만약에 여기를 촬영하면 곤란합니다.”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는 거 아냐요?”
봉사집사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차갑게 말했습니다.
“어린 게 말이 많아.”
이 장면을 보고 있던 뒷자리 뚱보 성도가 눈살을 찌푸리고 한 마디 했습니다.
“가만 두시오. 그 사람들도 사람이오.”
봉사집사가 말을 받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만약 이 자리가 텔레비전에 비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뭣이 어떻다는 거요? 예수님 탄생을 저런 사람들도 와서 경배하고 예배한다고 생각할 거 아니겠소?”
이때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 성도가 대들듯 말했습니다.
“그런 억지소리는 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예수 믿는 사람이 거지가 뭐냐고 비웃을 거 아니에요? 자리도 좁은데 두 사람이 긴 의자를 통째 차지하고 있잖아요?”
뚱보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저 사람들이 강제로 이 의자를 차지한 건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그 곁에 앉지 않으니가 이렇게 된 거 아니오?”
엄숙하던 분위기가 어지러워지자 키다리 거지가 일어서면서 아이 거지를 잡아당겼습니다.
“얘야, 가자. 우리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해 한다.”
“아찌, 조금만 더 있다가 가요. 텔레비전방송국에서 나오는 거 보고 가요.”
“그럴 것 없다. 나가자.”
키다리 거지는 아이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이는 골이 나서 투덜거렸습니다.
“사람들이 입으로는 사랑을 하라고 하면서 우리를 내쫓았잖아요. 우리가 밥을 달라고 했더라면 어떻게 했겠어요? 거지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두 잊고 있어요.”
“그렇더냐? 넌 언제 그런 말을 배웠느냐?”
“예수 믿는 사람들한테 배웠지요. 저는 이 교회 저 교회 다니면서 목사님들이 하는 말을 들어서 알아요. 아찌는 그런 것도 몰랐어요?”
“그랬구나.”
“아찌,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라 교회마다 돌아다닐만 해요.”
“그러냐?”
“잘하면 어떤 교회에서는 떡국도 주고요 과자와 사탕도 주는 걸요.”
“그러냐?”
“다녀 보면요, 큰 교회에서는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아무것도 안 줘요. 그런데 보통 교회나 아주 작은 교회에 가면 우리 같은 사람도 사람으로 쳐주거든요.”
“그러냐?”
“아주 큰 교회 사람들은 예수님보다 목사님을 더 알아줘요.”
“그러냐?”
“그리고요, 어떤 교회에 가면 자기가 예수라고 하는 목사도 있고요, 또 어떤 교회는 예수교회인 것처럼 해놓고 예수는 안 믿는 곳도 있어요. 가짜지요 가짜. 히히히 웃기는 것들도 있어. 예수를 팔아 사기를 치는 거지요. 그런 것들을 사이비라고 하기도 하고 이단이라고도 해요.”
“그러냐?”
“저기는 아까보다 훨씬 더 큰 교회가 있는 걸요.”
“그러냐?”
두 거지는 그리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4. 노숙자
아이 거지는 키다리 거지 손을 잡고 아주 큰 교회로 갔습니다. 안내 집사들이 대성전은 이미 자리가 차서 들어갈 수 없다고 다른 성전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아이 거지가 키다리 거지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아찌, 이리 오세요, 여기 말고 갈 곳이 있어요.”
“그러냐?”
“이 교회는 사람이 많아서 텔레비전으로 예배를 드리는 방이 있지만 거기도 다 찼을 거예요. 그러나 우리 같은 노숙자들이 모이는 곳이 따로 있는데 거기는 언제나 자리가 있어요.”
“그러냐?”
아이를 따라 간 곳은 퀴퀴한 냄새가 나고 우중충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우글거리는 방이었습니다. 거지 아이가 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키다리 거지에게 앉으라고 했습니다.
교회 본당에서 찬송하고 아이들 무용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비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설명했습니다.
“아찌, 저기 있는 아기 그림이 보이지요? 저건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날 아기 예수예요. 아찌도 알아요? 잘 모르시지요?”
“그러냐?”
“여기서 더 계실래요?”
이때 한 사람이 일어나 소리쳤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좋아하고 자빠졌네. 메리가 무슨 메리냐. 배고파 죽겠다.”
또 다른 사람이 지껄였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도 배부른 놈들이 하는 소리야. 우리 같은 것들을 예수님이 보신다면 뭐라고 하겠냐?”
또 다른 사람이 웅웅거리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다른 사람이 더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쨔샤 조용히 좀 해. 남 예배드리는데 방해하지 말란 말이야.”
“예배 좋아하네. 이렇게 배가 고픈데 예배는 무슨 예배냐? 여기 이렇게 죽치고 있으면 뭐 좀 나오기는 하는 거냐?”
“짜샤. 얻어 먹으려면 작은 교회로 가봐.”
“이렇게 큰 교회에서도 아무것도 안 주는데 작은 교회에서 뭐가 나오겠냐? 거기 가면 굶어 죽을 걸.”
“너 정말 시끄럽게 굴 거냐?”
“네 말대로 작은 교회로 갈란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가르쳐다오.”
“네 놈이나 나나 다 노숙자 신세에 갈 곳이 따로 있냐? 아무데나 가면 되지.”
이때 아이 거지가 한쪽에 있는 얼굴이 넓적한 사람 앞으로 가서 키다리거지를 소개했습니다.
“예수님, 오늘 처음으로 오신 아찌입니다.”
그리고 키다리 거지에게 인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키다리 거지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예수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점잖았습니다.
“어서 오시오. 이런 곳에서 만나 반갑습니다. 이리로 앉으시지요.”
생각보다 정중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때 곁에 있던 노숙자가 비웃는 소리를 했습니다.
“이런 데 있으면서 예수 예수 하니까 자기가 정말 예수인 줄 아나 보지? 말투가 언제나 예수 흉낼 낸다니까.”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지, 너 같은 걸 보고 누가 예수라고 하기나 하냐?”
예수라는 사람이 점잖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사돈이 만나서 서로 예의를 갖추듯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거지 아이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꼭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만 하신다니까요.”
곁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대머리가 입을 열었습니다.
5.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대머리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멀리서 무화과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가까이 가서 무화과가 잡숫고 싶어서 열매를 구하였으나 나무에 열매가 없어 그 나무를 저주하였느니라.”
곁에 앉은 노숙자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석가께서는 또 무슨 말을 하시려고 이러시나?”
“이놈아 그것도 못 알아듣느냐?”
“그걸 알아들으면 왜 여기 와 있겠나.”
“지금 교회가 그렇다는 것이다.”
“교회가 어때서? 석가는 심심하면 교회를 헐뜯는 게 탈이야.”
“허허 너 같은 것한테 설명하느니 돼지 코에 금고리를 달아주는 편이 나으리라.”
“돼지 코에 금고리? 내가 돼지만도 못하다는 말이렸다?”
“네나 나나 돼지만도 못한 인사들이지.”
대머리가 예수를 향해 말했습니다.
“여봐 예수, 자네는 내가 한 말을 알아듣겠지?”
“그대 말이 맞으이. 교회가 몸 불리기만 하고 있으니 멀리서 보면 겉만 번드르르할 뿐 속은 한심해. 목사는 입으로 겸손을 외치면서 오만한 자리에 앉아 있고 장로들은 목사를 흔들면서 헌금 많이 내는 사람이 큰소리를 치고, 사랑을 외치는 사람들이 교회 주변의 이웃집을 헐값으로 사들여 교회를 넓히려고 안달을 하고,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한다는 것이지. 오만하기 그지없는 짓거리가 아닌가. 겉으로 보아 거창한 교회에 사랑이 얼마나 있는가 하여 예수님이 찾아오셨으나 사랑은 없고 잎사귀만 무성하여 예수님은 실망하셨던 거였지. 비유의 말씀이지만 이 시대를 내다보고 예수님은 경고를 하셨던 거였어.”
대머리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대는 역시 예수야. 내가 생각한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지. 나야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나를 석가니 뭐니 하지만 실은 나도 예수는 믿는 사람이라고. 예수쟁이를 못 믿는다는 말이지 예수까지 못 믿는다는 말은 아니야. 석가도 자기가 가르치는 도는 예수께서 오시는 날 기름 없는 등불과 같다고 하셨으니까.”
예수가 놀란 듯 말했습니다.
“허허 석가가 그런 말도 할 줄 안다니.”
“진리는 진리일 뿐 종교와 상관없는 거 아닌가. 진리는 종교를 끌어가는 힘이니 말일세.”
예수가 말했습니다.
“진리에는 거짓이 없고 그 진리 중에 진리는 영혼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지.”
아이 거지가 말을 잘랐습니다.
“공부나 꽤 한 사람들처럼 어려운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거지 아이가 잘했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 어린 것이 그래도 생각은 어른보다 깊다니까. 아이 배고파 못 살겠다. 밥 좀 주라! 예수야 석가야.”
석가가 받았습니다.
6. 입술로 하는 거짓말
석가는 꽤 쨍쨍한 소리를 냈습니다.
“이 사람아, 배 안 고픈 사람이 이 안에 누가 있냐? 밥 타령하려거든 작은 교회로 가 봐.”
예수가 나직이 말했습니다.
“지금은 예배 시간이니 조용히 하고 저기를 보아라. 거룩한 목사님이 나오신다.”
목사님이 하얀 가운에 넓적하고 긴 빨간 목띠를 두르고 거룩한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성도들이 할렐루야를 외치며 팔을 저었습니다.
석가가 중얼거렸습니다.
“목사가 신이야 신. 진짜 예수가 와도 저럴까?”
예수가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면 저 정도 가지고 되나. 온 세상이 뒤집힐 걸.”
“그래야 하겠지.”
예수가 키다리 거지에게 눈길을 돌렸습니다.
“키다리 선생, 어디서 여기까지 오셨소?”
“……”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라 밤을 새우고 새벽이면 동네를 돌며 새벽송을 부르게 되오. 피곤하면 잠시 저 빈 의자에 가서 눈을 붙이시오.”
“……”
대머리 석가가 말했습니다.
“오늘 자기는 글렀고 목사님 설교나 잘 들어 보고 내일 새벽송이나 돕시다.”
대성전에서 부르는 찬송가가 들렸습니다.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 받기를 원하네
내 죄를 씻으신 주 이름 찬송합시다.
이때 대머리 석가가 시끄럽게 지껄였습니다.
“내 죄를 씻었으면 저 혼자 찬송할 것이지 왜 남들까지 찬송합시다야. 그렇지 않으려면 우리 죄를 씻으신 주 이름 찬송합시다로 해야 맞지 않느냐고? 찬송가를 잘 들어보면 어법상 오류가 많단 말이야……”
이때 다른 노숙자가 화를 냈습니다.
“이봐, 불만 있으면 안 부르면 될 거 아니야. 은혜로운 시간에 왜 시끄럽게 지껄여.”
대머리가 화가 난 듯 또 다른 찬송가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런 찬송가도 있소.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 하면서 천 원짜리 내는 것 말이오. 내게 있는 것 다 숨기고 요것만 바칩니다. 그래도 용서하고 내게 복을 주소서 하고 부르면 솔직해서 좋다고 진짜 예수님이 기뻐하실 것 아닌가. 이런 찬송가는 친송가 책에서 빼는 편이 좋을 거야. 입으로는 모든 것을 바친다면서 손으로는 인색하게……”
아이 거지가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석가님 말조심하세요. 다 그렇고 그렇다는 말이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어쩌고저쩌고 하십니까?”
예수가 말을 받았습니다.
“찬송가는 다 은혜롭게 부르면 되는 것이오.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 앞에 거짓말 하는 것이 그 찬송가뿐이오? 잘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 이익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고도 아닌 척 태연하게 사는 게 우리 아니냐 말이오.”
석가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그런 말만 하여 예수 소리를 듣는데 어쩌다 노숙자 신세가 되었소?”
7. 거지들의 새벽송
“노숙자가 그냥 되는 줄 아시오. 노숙자가 되기까지는 부자가 되기보다 더 힘든 고비를 겪는 법이오. 굳이 아무 소용없는 지난 이야기 되씹어 무얼 하겠소. 어떤 것이든 괴로운 기억은 빨리 잊는 것이 현명한 것이오.”
이때 교회 봉사집사님들이 말했습니다.
“모두들 나가십시오, 새벽송을 돌 시간입니다. 교회문을 닫고 새벽송 나갑니다.”
예수가 앞장서 말했습니다.
“모두 일어섭시다. 이 만큼 따뜻한 데서 덕을 보았으니 우리도 새벽송이나 갑시다.”
키가 작고 나이가 많은 소숙자가 말했습니다.
“예수님, 찬송가도 없이 새벽송을 돕니까?”
“다 아는 찬송가가 있잖소? 기쁘다구 주오셨네 만백성 맞으라하고, 고요한 밤만 부르면 되오.”
교인들이 모두 새벽송을 위해 떠났습니다. 노숙자 가운데 교회를 다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새벽송을 가고 안 다니다 온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거처로 갔습니다.
서울역으로 가는 사람, 영등포역으로 가는 사람, 다리 밑으로 가는 사람이 갈렸습니다.
새벽송을 부르겠다고 남은 사람은 예수와 키다리 거지와 아이 거지와 석가와 또 열 한 사람이었습니다. 석가가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 대장은 예수가 하시오. 우리는 하라는 대로 따르겠소.”
“대장이 어디 있소. 그냥 함께 갑시다. 저기 대문이 큰 집으로 갑시다.”
좋게 말하여 노숙자, 솔직히 표현하면 거지들 열네 명이 우르르 몰려들어 대문 앞에서 찬송을 했습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이때 작은 쪽대문이 열리고 한 여자 아이가 얼굴을 빠꼼이 내다보다가 대문을 꽝하고 닫았습니다.
“어마!”
거지들이 몰려와 찬송을 부르는 것을 보고 놀라서 문을 닫은 것입니다. 석가가 말했습니다.
“다른 집으로 가자. 문전박대가 심하다. 이런 집에 복을 빌어 줄 거야 없잖아,”
노숙자 떼거리는 다른 집으로 갔습니다. 몇 집을 돌아다니며 찬송을 해도 모두 문을 열어 보고 놀라서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가 말했습니다.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는 말이 진리로다.”
아이 거지는 다른 교인들이 옆집에서 새벽송하는 것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교인들이 둘러서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하고 찬송을 하자 안에서 주인이 나와 함께 찬송을 부르고 무엇인지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내주었습니다.
그것을 본 거지 아이가 말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만약 우리가 좋은 옷을 입고 가서 찬송을 불렀으면 문을 걸어 잠그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기 저렇게 선물을 주지 않아요.”
이 모양을 보던 노숙자들이 풀이 죽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여덟 명만 남았습니다. 석가도 실망하여 말했습니다.
“새벽송도 부자 놀음이로군. 거지가 사람 대접받을 곳은 없는가.”
아이 거지가 대답했습니다.
“딱 한 군데 있어요.”
“거기가 어디냐?”
8. 언덕 위의 예배당
“저기 산동네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가 하나 있어요. 나는 아무것도 못 얻어먹는 날은 거기 가서 얻어먹어요.”
예수가 물었습니다.
“넌 그 교회에 다니느냐?”
“아니지요. 교회는 안 다녀도 배가 고프면 가는 곳인데요, 거기 목사님은 아주 좋아요. 거기는 어른은 없고 아이들만 모여요. 조무래기 교회지요. 교회에서 주는 사탕과 빵을 얻어먹으려고 오는 산동네 아이들이지요.”
석가가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라면 얼마나 작은 교회냐? 우리가 들어갈 자리도 없는 거 아니냐?”
“가 보시면 알아요.”
날이 밝았습니다. 노숙자 일행이 교회에 도착했을 때 동네 아이들은 아침 예배를 마치고 우르르 몰려나갔습니다.
산동네 언덕 높이 십자가가 보이고 십자가 탑 밑에는 커다란 종이 달려 있었습니다. 석가가 손짓을 하며 말했습니다.
“저것 좀 보시오. 십자가도 있고 요새는 보기 드문 종까지 있소. 교회 건물도 저만하면 오십, 아니 백 명이 들어가도 넉넉하겠소.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라더니 크기만 하네.”
그러면서 석가가 아이 거지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이 거지가 대답했습니다.
“교회 건물만 크면 뭘 해요. 사람이 있어야지.”
너덜너덜한 차림의 거지 무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젊은 목사가 친절하게 맞았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어서들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생각 밖으로 노숙자들은 한 목소리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고 서로 바라보며 모처럼 밝은 웃음을 나누었습니다. 묵묵히 따라오기만 하던 키다리 거지도 보일 듯 말 듯한 웃음을 짓다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목사님 외에 머리가 희끗하고 점잖게 생긴 어른이 다가와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같이 좋은 날 여러분이 이렇게 오시니 하나님도 기뻐하시겠습니다. 저는 이 교회 장로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작은 교회라면서 장로까지 있었습니다. 노숙자들은 한쪽으로 몰려 앉았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장로님과 목사님은 강단 위에 자리를 하고 성도는 목사님 자녀 남매와 사모 그리고 장로님 부인이신 권사 한 분이 전부입니다. 두 가정에 여섯 명이니 가장 작은 교회가 맞을지도 모릅니다.
장로님이 대표 기도를 마치고 아래로 내려와 노숙자들 곁에 앉았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다 기록할 수는 없고 목사님이 하신 말씀 중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은 이렇습니다.
9. 벙어리가 된 새벽종
사람은 몇 안 되는데 목사님은 수만 명이 모이기라도 한 것처럼 크고 힘찬 소리로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우상과 사신을 모시던 시절에는 암울하고 희망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 땅에 전파된 지 백여 년 만에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 말씀이 전파되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십자가가 세워지고 새벽마다 전국 방방곡곡에 새벽 종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목사님은 노숙자들에게 눈을 돌리고 묻는 눈으로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지요? 가난 마귀, 질병 마귀가 이 나라를 휩쓸고 있을 때 우리 나라에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하나님을 왜 믿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육이오 전쟁이 나고 불과 60년 사이에 우리는 어떻게 변했습니까? 세계 십대 부강한 나라 축에 드는 부자 나라가 되었습니다. 제 말씀이 맞지요?”
석가가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할렐루야!”
이 소리에 노숙자들이 와아 하고 웃었습니다. 할렐루야는 어느 교회에서나 하는 소리라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이런 순간에 화답하는 소리인 것은 압니다. 목사님도 웃으시며 다음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살게 된 것은 새마을 운동 때문이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을 잘 아시지요? 새마을 노래 한번 불러볼까요?”
“할렐루야!”
이번에는 예수가 할렐루야 했습니다. 목사님이 먼저 시작하자 모두 따라 불렀습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새나라 / 우리 힘으로 가꾸세
이 노랫말이 얼마나 신선합니까. 새마을 노래는 여러분 모두가 알고 있고 함께 부르니 힘이 납니다. 안 그렇습니까?”
“할렐루야!”
이번에는 아이 거지가 화답했습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계속했습니다.
“새마을 운동 노래에 맨 먼저 나오는 말이 새벽종 아닙니까? 그 새벽 종소리를 모두 기억하고 그 소리를 들으면 추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새벽종소리가 교회에서 새벽마다 울릴 때 국민이 나태의 잠에서 깨어났고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났습니다. 새마을 노래는 바로 교회의 종소리로 시작하고 종소리는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그렇게 고마운 종소리가 지금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이때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교회 종소리는 어리석은 정치인에 의해 벙어리가 되었고 교회 종소리가 떠난 도시에 환락과 무질서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누가 무어라 해도 새벽종을 울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저와 장로님은 새벽종소리가 주는 축복의 소리를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하여 계속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박수를 치면서 할렐루야를 외치자 모두가 박수를 쳤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 창립 이래 이렇게 큰 박수소리가 나기는 처음입니다. 저는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벙어리 종들이 일제히 일어나 정치인이나 불신자들이 거부하더라도 새벽을 깨우고, 새벽까지 술과 도박에 취해 있는 사람들 귀에 맑은 구원의 종소리를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정치에 잡혀 먹힌 교회 종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교회 종을 벙어리로 만든 정치인은 이제 또 더 나쁜 짓을 하려고 획책합니다.”
예수도 석가도 그게 무엇일까 생각하며 서로 바라보았습니다.
10. 공격받는 십자가
목사님은 설교를 계속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새벽마다 울리던 종소리는 하늘나라에서 들으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이 작은 동방의 반 토막 난 한국으로 돌려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종소리 나는 곳마다 십자가 탑이 높이 서서 이 땅을 억누르는 마귀의 세력을 물리쳤던 것입니다. 마귀가 싫어하는 십자가가 전국 방방곡곡에 세워지자 가난 마귀, 질병마귀, 싸움 마귀가 달아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우리는 복을 받아 부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정치를 잘하여 부자가 되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정치를 잘하게 한 것은 기독교정신이었습니다.(김용기 장로님과 기독교인 고 박정희 대통령의 이야기가 있었으나 생략)”
목사님은 잠시 사이를 두고 말을 이었습니다.
“제가 크게 염려하는 것은 종을 벙어리로 만든 자들이 밤마다 하늘 높이 서서 마귀를 물리치는 십자가를 어떻게든지 없애버리려는 술책이 국회를 통과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점입니다. 정치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것이어서 어떤 구실을 붙이든지 십자가를 장님으로 만들려는 자들이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이 땅의 기독교인들은 결코 물러서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 새벽종이 벙어리가 되고 십자가 탑이 장님이 된다면 하나님도 이 땅에서 얼굴을 돌리실 것입니다. 그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벙어리가 된 종을 꺼내어 모든 교회가 일제히 다시 울리고 십자가를 무너뜨리려는 자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정치적 탄압을 전제로 한 법에 의해 기독교가 희생된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모든 교회가 일어나 일제히 종을 울리면 탄압정치가 물러가고 하나님의 은총이 이 땅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정치인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목사님은 진지하게 설교를 하고 예배를 마쳤습니다. 어느 교회나 헌금을 하는데 여기는 헌금시간이 없었습니다. 석가가 작은 소리로 예수에게 말했습니다.
“헌금시간이 없는 것 같다?”
“왜?”
“그냥 지나가잖아.”
“헌금할 돈이나 있고?”
“없으니까 걱정이라 하는 말이지. 아무리 거지라도 헌금은 해야 하는 거 아냐. 난 큰 교회에 어쩌다 가서 어슬렁거리다가 헌금시간이 되면 슬그머니 빠져나왔거든.”
“헌금은 부자가 하는 만 원보다 가난한 과부가 바친 20원이 더 귀하다고 하셨다는 것은 알지?”
“그것도 모르면 석가가 아니지.”
목사님이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참 즐겁고 기쁜 성탄절입니다. 여러분이 오셔서 우리 교회 창립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성탄예배를 드렸습니다. 잠시 후면 아침 식사가 나올 테기 기다려 주십시오.”
“할렐루야!”
배고픈 노숙자들한테 이보다 기쁜 소식은 없습니다. 그들은 일제히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언제 준비를 했는지 떡국과 과일이 푸짐하게 나왔습니다. 굶주린 노숙자들은 모처럼 배를 두드리며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언제나 석가가 궁금한 것은 먼저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라고 하더니 정말 작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어떻게 헌금도 안 받고 생활을 하십니까? 오늘 같은 날 이렇게 여럿이 먹을 만큼 상을 차리시는 게 신기합니다.”
목사님이 겸손히 대답했습니다.
11. 작은 일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교회는 두 가정에 여섯 명이 예배를 드립니다만 여기 계신 장로님의 도움으로 어려움 없이 지냅니다.”
곁의 장로님이 더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오늘 설교를 들어서 아시겠지만 목사님은 저보다 연세는 낮으셔도 생각하시는 것은 제가 못 따라 갑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존경하고 무엇이든 힘이 되어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예수가 물었습니다.
“장로님이 교회 주인이신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고 성자 예수님을 모시는 집이지요. 목사님과 저는 종일뿐입니다.”
거지 아이가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더 큰 교회에 가셔서 목에 힘도 주시고 크게 활동도 하시지 않고……”
석가가 말을 막았습니다.
“네가 뭘 안다고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끼어 드냐?”
장로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습니다.
“큰 교회는 큰 장로님들이 모시면 되고 저 같은 사람은 작은 교회에서 할 일이 있습니다. 모두가 큰 교회로만 몰리면 하나님 나라는 좁아집니다. 그리고 큰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가 잘못하면 오만한 자리에 앉으려는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가 아는 체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느니라.”
목사님이 웃으며 받아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만한 자리에 앉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 같지만 우리보다 더 작은 교회도 많습니다.”
곁에서 듣고 있던 노숙자가 한 마디 했습니다.
“교인이 여섯 명도 안 되는 교회가 또 있습니까?”
장로님이 대답했습니다.
“예 있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우리보다 작은 교회를 돕고 계신답니다.”
석가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그런 교회도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우리같이 작은 교회는 작은 일을 감당합니다.”
석가가 또 물었습니다.
“작은 일이라니요?”
“우리같이 산동네 작은 교회는 장년 전도가 어려우므로 어린이들을 위한 예배 프로그램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칩니다. 오실 때 보셨지만 아이들은 어른과 달라 교회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많이 옵니다.”
“뭐라도 주나 보지요?”
“그렇습니다. 아이들한테 아주 작지만 선물을 주면 그것 받는 재미로 옵니다.”
“낚싯밥을 던지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사탕 몇 알을 나누어 줌으로써 아이들이 사탕에 말씀을 발라 먹지요,”
예수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탕에 말씀을 발라 먹는다는 말씀은 아주 그럴 듯하고 멋지게 들립니다. 그런데 큰 교회는 무슨 일을 하기는 합니까? 난 지금까지 큰 교회에서 밥 한 그릇 못 얻어먹었고 사람대접 한 번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데요.”
목사님이 대답해습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킵니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지요. 큰 교회라고 해서 국가도 못하는 가난 구제를 할 수는 없지요.”
“우리 같은 거지들한테 밥 한 그릇을 안 주면서 무슨 큰일을 한다는 겁니까?”
12. 큰 일
이번에는 장로님이 대답했습니다.
“큰 교회에서 아무한테나 식사를 제공하면 나라에 걸인을 더 많이 만드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큰 교회는 대단한 일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파견한 선교사가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습니다. 우리는 60년 전에 해외 선교사의 도움으로 굶주림에서 벗어난 나라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그들의 덕으로 잘 살게 되었으므로 수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우리보다 못 살고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에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석가가 말했습니다.
“그 말씀이 일리는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아직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눈을 남의 나라에 돌린다는 건 잘못이 아닐까요?”
“아까도 말씀했지만 교회에서 잘못하면 나라를 더 어지럽힐 수 있습니다. 그런 문제는 나라에서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가난한 가정의 심장병 어린이 만 명 이상에게 수술비를 대주었고 가난하여 무너져 가는 집을 수리해주고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정부에서도 하기 힘든 일이지요.”
“그렇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 교회 말고 다른 교회들은 무얼 합니까?”
“모두가 남모르게 가난한 이웃이나 미자립교회와 후진국 사람을 돕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들이 한 일을 절대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는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교훈이니까요.”
석가가 웃으며 예수에게 농담을 했습니다.
“이봐 예수, 목사님 말씀이 맞아?”
이 말에 모두가 와아하고 웃었습니다. 석가가 또,
“장로님은 무얼 하시는 분이신데 그 연세에 목사님을 도와주십니까?”
이 대답은 목사님이 하셨습니다.
“우리 장로님은 학교법인 인평학원 재단이사장님이시며 전 문교부 차관을 지내셨으며 작가이시기도 합니다.”
노숙자들은 놀라 입을 벌리고 다물지를 못했습니다. 석가는 기가 차서 예수를 보고 말했습니다.
“예수, 자네가 아무리 예수라도 장로님만큼 할 수 있어? 그런 훌륭한 분이 이렇게 작은 교회에 와서……”
예수가 머리를 숙였습니다.
“장로님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별명이 예수일 뿐 노숙자 거지입니다. 죄송합니다.”
석가가 의외로 예수를 추켜세웠습니다.
“장로님, 이 친구가 예수라는 말을 그냥 듣는 건 아닙니다. 비록 이 꼴로 살지만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은 예수님입니다.”
장로님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예수님이라는 말을 아무나 듣기는 힘들지요. 별명이 석가이신데 그 별명 역시 그냥 얻은 건 아닐 것입니다.”
예수가 석가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13. 농군 목사
“이 친구는 석가라는 말을 들어도 좋을 만큼 노숙자 세계에서는 알아주는 정의파입니다. 진짜 석가모니가 그 속에 끼어도 그만은 못할 것입니다.”
목사님이 아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모두들 훌륭한 분들이십니다. 그런 분들이 우리 교회를 찾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석가는 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이 교회보다 더 작은 교회를 목사님은 돕고 계시다는데 그런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잘 물으셨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날이라 오후에는 그 교회를 갈 계획인데 한번 동행해 보시겠습니까?”
예수도 석가도 좋다고 하면서 아이 거지와 키다리 거지에게도 같이 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목사님을 따라 가기로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장로님 승합차에 올라 두 시간을 달려간 곳은 아주 깊은 산골입니다. 산 아래 십자가가 있는 작은 교회가 보였습니다. 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교회는 벽돌집으로 작았습니다. 그러나 종탑과 십자가만은 큰 교회 못지않게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는 목사 부부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하나 있고 칠십이 넘은 할머니 권사 등 네 명이 전부입니다. 중학 다니는 아이는 서울 산동네 목사님이 보내주는 후원금으로 학교를 다니고 그 목사님은 하루는 전도를 하고 하루는 동네 농사꾼으로 하루거리 품을 팔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석가가 기가 막힌 듯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도 너무 하시지. 어떤 목사는 고급 승용차에 비서를 두고 오만한 자리에 앉아 호의호식하는데 이런 산골 목사는 날품팔이를 한다니 허허허.”
거지 아이도 덩달아 한 마디 했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목사가 농사꾼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안 그래요 아찌?”
키다리 거지는 조용히 웃을 뿐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석가는 또 입이 근질거리는 듯.
“목사님, 이런 산골에서 무슨 전도를 합니까? 농사를 하든지 아니면 도시로 가서 전돌 하셔야지 여기서 무슨 전도를 하신다는 겁니까?”
농부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농촌에는 어른들 전도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말씀을 전하지요. 어린 영혼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은 농부가 가을을 위해 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에서는 아이들을 돌보며 설교하고 들로 나가서는 농사꾼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저 같았으면 농부들과 어울려 들일을 하며 하늘나라를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저는 들에서 마을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
“그렇게 하여 전도된 교인도 있습니까?”
예수가 묻자 농부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어른들은 들을 때뿐입니다. 옳은 말이오, 그 말이 맞소 하면서도 교회에는 안 나옵니다.”
어느새 해가 서산에 걸렸습니다. 목사님이 제안했습니다.
“잠시 후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성탄 축하 예배를 드립니다. 함께 예배드리고 내일 가시지요.”
노숙자들은 내일 가라는 말에 귀가 번쩍 열렸습니다. 어쨌든 오늘 밤은 편히 보내고 밥도 배불리 먹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장로님이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14. 탄일종
“해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저녁 예배를 여기서 드려 왔습니다. 여러분도 오늘은 우리와 함께 하십시다.”
석가가 시원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봐, 예수 그렇게 할 거지?”
“물론 해야지.”
이렇게 하여 날이 어두워지자 농부 목사님이 나가서 종을 쳤습니다.
<땡그렁 땡. 땡그렁 땡……>
평화롭고 아름다운 종소리가 멀리멀리 산을 넘고 들을 지나 하늘 끝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종소리를 들으면서 예수가 감격스럽다는 듯 중얼거렸습니다.
“아, 잃어버린 종소리가 그립다. 내 고향에도 내가 어렸을 때 저 종소리가 울려 퍼졌었는데 어느 날부터 끊어졌어. 이 얼마나 평화로운 소리인가…….”
석가도 중얼거렸습니다.
“절에서는 정치 바람도 안 쏘이고 지금도 종이 울리는데 교회 종은 누가 묶어 놓았는가. 새벽마다 듣던 교회 종소리가 추억 속에 아련하다……”
종소리에 모두가 추억을 더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들어 교회 안은 한동안 와글와글하였고 아이들이 돌아가며 찬송가를 부르고 여자 아이들은 무용도 하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찬송가와 무용 지도는 농부 목사 사모님이 맡아 하였습니다.
아들딸을 교회에 보낸 마을 사람 중에 몇이 와서 자기 아이들 재롱을 보고 돌아갔습니다. 간소한 예배가 끝나고 산속 교회에는 아이들 찬송소리가 오래오래 쟁쟁하게 맴돌았습니다.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속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탄일종은 도시에서 사라진 지 오랩니다. 거지 아이가 작은 소리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탄일종이 땡땡땡
산속에서 들린다
저 종을 잃은 도시 사람 가슴마다
추억종이 울린다.
석가가 듣고 한 마디 했습니다.
“어쩌다 이런 꼴이 된 거냐? 종소리가 얼마나 고마운 소리였는지 오늘 새삼 느껴진다. 아침에 산동네 목사님 설교가 명설교였다.”
밤이 깊고 모두 교회 안에서 자리를 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들 잠든 줄 알았는데 아이 거지와 키다리 거지는 자지 않고 있었습니다. 키다리 거지가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15. 사라진 거지
“네 덕분에 즐거운 크리스마스이브도 보냈고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 진짜 예수가 너를 만나 소원이 무엇이냐 내가 들어 주마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저 같은 것한테 진짜 예수님이 나타날 리도 없지만 만약에……”
거지 아이는 잠시 뜸을 들였습니다.
“어렸을 때 잃어버린 엄마를 찾고 싶고요, 또 중학에 가서 공부도 하고 저 장로님처럼 출세도 하고 부자가 되어 장로님처럼 작은 교회에 가서 예수님을 찬양하며 봉사하고 싶어요.”
“또?”
“말해 봐야 소용없는 말을 더 해 무엇해요. 지금 말한 대로만 된다면 예수님도 좋아하시지 않겠어요?”
“그렇겠지. 꼭 그렇게 하거라. 네 소원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아찌가 예수님이나 되나요? 그렇게 말하게……”
“사람은 소원이 있으면 소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게 되어 있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일부터는 저 예수를 따라가거라. 저 예수가 네 소원을 이루어줄 것이다.”
“그런 걸 어떻게 믿어요. 저 예수도 노숙자 신세인데요.”
“꿈이 있는 사람은 노숙자일지라도 반드시 일어선다. 저 노숙자는 꿈이 있는 사람이야. 내 말 명심하고 내가 안 보이더라도 찾지 말고 저 사람을 따라라. 네 꿈이 이루어지거든 반드시 오늘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물론지지요. 아찌는 어디로 가시나요?”
“간다. 오늘 나는 네 덕에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다음날 아침입니다.
모두가 일어났으나 키다리 거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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