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뱀 새끼 용
1. 아들을 얻은 뱀들
파란 풀밭에 색깔이 고운 뱀 두 마리가 엉겨 붙어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은 있어.”
“신은 없어.”
“네가 없다는 증거를 대 봐.”
“없는 건 없는 건데 무슨 증거를 대? 네가 있다고 우기는데 그럼 있다는 증거를 먼저 대 봐!”
이때 이상하게 생긴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너희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냐?”
신은 없다고 하던 뱀이 쏘아붙였습니다.
“상관 말아요. 우리는 사람만 보면 무섭고 비위가 상하니 다가오지 말아요.”
“그러냐? 그럼 내가 너희들에게 선물을 하나씩 주고 가마.”
“선물이라고요?”
뱀은 엉겨 붙어 싸우다가 떨어져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 선물을 주마. 너희들은 늘 심심하지?”
“네, 그래서 우리는 만나면 신이 없다는 저 애와 내가 싸움만 합니다.”
“알았다. 너희들은 이제 멀리 떨어져 살아도 심심하지 않게 해주마.”
사람은 주머니에서 뱀같이 생긴 용새끼를 꺼내어 하나씩 안겨주었습니다.
“이 둘 중에 하나는 머리가 아주 뛰어나고 하나는 좀 모자라지만 그래도 너희들보다는 낫다. 누가 이 머리 좋은 용을 갖겠느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뱀이 먼저 머리 좋은 용새끼를 잡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갖겠습니다.”
그러자 사람이 물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네가 이 머리 나쁜 새끼용을 가져야겠다. 어떠냐?”
“할 수 없지요. 머리가 나빠도 나보다는 좋다고 하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 길로 너희들은 떨어져 살아야 한다. 그리고 아직 어린용이니까 너희 아들로 삼아야 한다. 알겠느냐?”
하나님이 없다는 뱀이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짝이 없어서 장가도 못 갔는데 아들이 생겼으니 고맙습니다. 앞으로 잘 기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하던 뱀도 좋아하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잘 기르겠습니다.”
사람이 말했습니다.
“좋다. 그럼 나는 가겠다. 그리고 이담에 너희들이 만나는 날 나도 돌아오마.”
사람은 어디로 사라졌습니다.
뱀은 자기 아들이 된 새끼용을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2. 하나님이 없다는 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뱀은 새끼용을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새끼용은 금방 자라서 뱀보다 몸집이 더 커졌습니다. 용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자꾸만 산속으로 들어가시면 어떻게 해요?”
“넌 아버지 말만 따라라. 네가 뭘 안다고 불만이야? 뱀은 산속으로 가야 먹을 것을 구한단 말야.”
“아버지, 저는 물이 좋아요. 물가로 가요.”
“뱀의 아들이 물가로 가면 안 된다. 뱀은 뱀이 살만한 곳으로 가야 해.”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물이 없잖아요.”
“왜 없어? 저렇게 도랑물이 졸졸 흘러가고 있는데 목마르지 않을 만큼 물은 있잖으냐?”
“저는 마시는 물보다 수영을 하고 싶어요.”
“뱀 자식은 수영을 하면 못 쓴다. 산속으로 가야 개구리도 많고 들쥐도 많아서 배 안 곯고 살 수 있어. 넌 내 자식이야. 뱀의 자식이란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 아빠 뱀은 용을 좁은 계곡에서 놀게 하였습니다. 몸집이 커진 용은 이제 아빠 뱀보다 힘도 세었지만 순하게 아빠를 따랐습니다. 산 속에는 겨우 발을 담글 만한 계곡 물이 흐를 뿐이라 헤엄이 치고 싶어도 헤엄을 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빠 뱀 모르게 산 아래로 내려가 커다란 호수로 갔습니다. 호수는 아주 깊었습니다. 몸집이 큰 용은 산으로만 다녀서 헤엄을 치지 못하고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가 겨울 살아났습니다.
그것을 본 아빠 뱀이 화를 냈습니다.
“이놈아 내가 뭐랬어? 뱀의 자식은 뱀노릇을 해야지 용 흉내를 내면 안 된다고 했잖아”
아빠 뱀은 굵은 줄로 용의 다리를 매어 끌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먹이를 구해 주며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넌 내가 잡아 주는 개구리만 먹어야 한다. 알았지?”
3. 신을 믿는 뱀
한편 신이 있다고 주장하던 뱀은 새끼용을 데리고 강가로 갔습니다. 그리고 용이 다 자라기까지 정성껏 먹이를 구해 기르고 말했습니다.
“나는 뱀이지만 너는 용이다. 너하고 나는 달라. 이제부터 저 깊은 강에 들어가 헤엄을 치고 물을 마음껏 마신 다음 힘차게 토해내는 연습도 하여라.”
“아버지, 나는 용이지만 아버지 아들이니까 아버지처럼 뱀 노릇을 하고 싶어요.”
“안 된다. 뱀은 뱀이고 용은 용이야. 네가 할 일이 따로 있다. 내 흉내를 내면 너는 용의 구실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깊은 물이 무서워요.”
“처음에는 무섭지만 헤엄을 치고 물과 친하다 보면 네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이렇게 말을 한 아빠 뱀은 용을 강물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용은 깜짝 놀라 물속으로 가라앉았다가 헤엄을 치고 나왔습니다.
“아버지, 너무 하시잖아요?”
“너무한 것 없다. 다시 들어가 봐. 강보다 더 넓은 바다도 있어. 너는 강을 휘젓고 바다에 들어가 큰 파도도 일으켜야 한다. 그게 용이 할 일이야.”
새끼용은 날마다 아빠 뱀을 따라다니며 강과 호수에서 헤엄치는 연습을 했습니다.
용이 다 자랐을 때 아빠 뱀이 말했습니다.
“저 호수 가운데로 가서 물을 뒤집어 엎어라. 그리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하늘로 솟아올라 봐.”
“날개도 없는데 어떻게 하늘로 올라갑니까.”
“염려 마라. 날개가 없어도 용은 물과 구름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거야.”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어떡하고요?”
“떨어지게 되면 강이나 호수를 보았다가 그리로 떨어지면 된다. 그럴 때 신이 너를 보호해 줄 거다. 나는 그럴 때 신이 돕는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신이 있다고 하는 거다. 아무 염려 마라.”
이렇게 하여 강과 호수에서 자란 용은 아빠 뱀의 생각대로 굉장한 힘을 갖추었습니다.
아빠 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저 산속 동네는 가물어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고 나무와 풀은 모두 시들어 죽고 동물들도 따라서 목이 타 죽고 있다. 그러니 내일은 네가 큰일을 좀 해야겠다.”
“어떻게요?”
“내일 한낮에 저 깊은 강으로 들어가 힘껏 물을 휘저어 하늘로 올려라. 그리고 구름을 일으켜 끌고 산 속 마을로 가서 물을 뿌려라.”
“제 힘으로 될 수 있을까요?”
“되고도 남는다. 나는 이제 그 마을로 가서 네가 물구름을 몰고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4. 다 죽어가는 가뭄
아빠 뱀은 신에게 기도를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마을 계곡으로 갔습니다.
계곡물은 마르고 작은 호수가 하나 있는데 그것마저 말라 바닥이 쩍쩍 갈라져 있고 사람들은 지쳐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신이 있다고 믿는 뱀은 아들용이 물구름을 몰고 올 것으로 믿고 메마른 숲을 헤집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한 곳에 자기 아들만큼 큰 용이 엎어져 헐떡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곁에 진구 뱀이 늘어져 눈만 껌벅거렸습니다.
“이 친구야. 어떻게 된 거야?”
친구 뱀은 힘이 없어서 말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어어, 넌넌?”
“그래 나야 나. 이 쓰러진 용은 네 아들이 아니냐?”
“그래, 저 애도 다 죽게 되었어.”
“가뭄이 심해서 사람들도 굶어 죽을 판인 것 같더라, 그래서 내가 이리로 온 거야. 그런데 네가 이런 모양으로 있을 줄은 생각 못했지.”
“넌 얼굴이 좋구나. 어디 살다 왔니?”
“내일 낮에는 큰 비가 내려서 사람들과 풀과 너희들이 살아나게 할 거다.”
“그걸 어떻게 믿어?”
“넌 못 믿는 게 병이야. 제 고집대로만 생각하니 이 지경이지.”
“넌 아직도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암.”
“신이 있다면 이렇게 사람이고 나무와 풀 동물이 다 죽도록 버려둔단 말이냐?”
“신은 살아 있는 것들이 죽지 않을 만큼 고생을 시키다가 살려준다고 했다.”
“넌 한심한 소리만 하는구나. 신은 원래 없는 거야.”
“누구나 신이 없다고 말하면 신도 그를 버리지만 자기를 믿어주는 대상은 신도 그를 버리지 않는다는 말 못 들었는가?”
“그거야 너 같은 광신자들이 하는 소리잖아.”
“내일 한낮까지만 죽지 말고 살아 있거라. 그러면 산다.”
5. 용의 위력
다음 날 한낮이 되었습니다. 산 너머에서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며 소낙비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내리자 시들었던 풀들이 어깨를 세우고 일어나고 죽을 듯 쓰러져 있던 동물들이 일어나 계곡에 흐르는 물을 마시며 생기를 찾았습니다. 농부들은 들로 나가 농사준비를 했습니다.
뱀 옆에 쓰러져 죽을 듯하던 친구용이 일어나 물을 받아 마시고 힘을 내어 아빠 뱀 곁으로 왔습니다.
이때 안개가 자욱한 속에서 커다란 용이 머리를 내밀고 아빠 뱀 옆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버지, 정말 신기합니다. 아버지 말대로 물을 휘저었더니 큰 구름이 일어나고 그 위를 제가 날아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게 다 신이 도우시는 힘이다. 신에게나 감사드려라. 그리고 이 뱀은 내가 젊었을 때 절친한 친구였다. 그리고 이 용도 네 친구야.”
이때 살아난 동물들이 모여들어 구름을 타고 내린 용에게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무도 풀도 파란 잎을 저으며 존경한다고 허리를 숙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용 두 마리와 뱀은 한자리에서 반갑게 만났습니다. 이때 신은 없다고 하던 뱀이 자기 아들용을 향해 화를 냈습니다.
“못 난 놈 같으니라구, 다 같은 용이면서 저 애는 저렇게 강물을 휘저어 구름을 타고 다니며 가뭄을 해결하고 온갖 것들의 인사를 받는데 넌 그 꼴이 뭐냐? 창피하다 창피해!”
아빠 뱀이 화를 내자 아들용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한쪽에 죄수처럼 숙이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신을 믿는 뱀이 말했습니다.
“같은 용이라도 산으로 끌고 들어오면 용이 할 구실을 못하는 거야. 저 아이가 잘못했다고 나무라지 말게. 책임은 자네한테 있어.”
이때입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람이 큰 소리로 웃어댔습니다.
“하하하하하핳!”
두 뱀과 용이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나를 알겠느냐?”
신을 믿는 뱀과 용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나 신을 믿지 않는 뱀은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오랜 가뭄으로 사람들이 다 죽어가는 마당에 당신은 어디 살다 왔소? 얼굴은 좋구먼.”
“그러냐? 넌 언제나 불만이 많아.”
“제가 언제 불만을 했습니까?”
“너만 잘났다고 네 맘대로 살다가 안 되면 화를 냈잖으냐? 네 아들이 물이 좋다고 할 때 넌 뭐라고 했느냐? 용은 물로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제가 뱀이니까 뱀이 하는 짓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저 용을 바보로 만들지 않았느냐? 그러고도 저 애한테 사과는 못할망정 원망을 해? 제대로 길러 놓고 그런 소리를 해야지. 그리고 신은 없다고 너 혼자만 잘난 척한 것도 실수였다. 네가 뭘 얼마나 알아서 신이 없다고 했느냐?”
사람은 신을 믿는 뱀과 용을 향해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신을 인정하고 믿었으니 신의 보호를 받아 마땅하다. 신을 안 믿는 자들은 죽어 땅에 묻혀야 하고 신을 믿는 너희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나라고 가야 한다. 자, 나를 따라 오너라.”
사람은 신을 믿는 용과 뱀을 품에 안고 구름 위로 올라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