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생 40년 (8)/ 이불 속의 음담
일본 책인데 그게 무슨 책인지 기억은 없지만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이었다.
길을 가는 나그네 앞에 여우가 아주 예쁜 여자로 둔갑을 하여 남자를 유혹하는 이야기인데 둘이 한 이불 속에 들어가 나누는 대화장면에 문제가 생겼다.
나는 당시 미혼이고 김중령 선생은 기혼. 그가 쓴 원고는 일본어 그대로 직역을 한 것으로, 그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차마 그 여우와 나그네가 나누는 음담을 쓸 수가 없지만 당시 나로서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원고를 처음 받은 사람도 자기가 처리할 자신이 없다며 나한테 넘긴 것이었는데 이건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원고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선생이 건너다 보고 말했다.
“잘 못 된 데가 있으면 고치시소. 난 아주 재미있게 썼으니께.”
“알았습니다. 약간 손질을 해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모, 심부장이 고치시는데 우짜겠노.”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약간만 고치려 했는데 이불 속의 대화는 도저히 그대로 넘길 수가 없었다. 그대로 냈다가는 출판윤리 심의위에 걸려들어 크게 욕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소한으로 말을 바꾸며 고쳤고 김선생은 일어서서 내 주위를 뱅뱅 돌았다. 그리고 빨간 볼펜 자리가 점점 늘어나자 머리를 내 어깨에 들이박고 식식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의식하자니 마음이 어지러웠는데 그는 갑자기 내 어깨를 탁 치며 소리쳤다.
“야. 이쌔끼야. 뭘 그렇게 많이 고쳐?”
“왜 이러십니까.”
“네가 뭘 안다꼬 새빨갛게 고치나 말이다.”
“이렇게 책을 내면 출판 윤리법에 걸립니다.”
“윤리법? 일본 책에 그렇게 되어 있는데 네가 뭘 안다꼬 지랄이야?”
“일본에서는 이 정도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우리나라는……”
“뭐라꼬? 네가 장개도 안 간 놈이 ×을 해 보았으면 몇 번이나 해 보았다꼬 이래 고치고 저래 고치고 지랄이야. 난 ×을 수천 번 해 본 사람이고 이불 속에서는 다 그렇게 이야기해야 제 맛이 나는기라.”
나는 기가 막혀서 말을 못했다. 여자 직원도 있는 자리에서 원색용어를 그대로 지껄이고 흥분하여 날뛰고. 나보다 십년은 위이니 맞대어 함부로 할 수도 없었다.
“김선생님이 이러신다면 나는 원고 처리 못합니다.”
“암것도 모르는기 뭘 안다꼬 어른이 써 놓은 원고를 이래 고치고 저래 고치고 지랄이야!”
“원고를 쓰는 사람은 최소한 출판 윤리라는 것은 알고 써야 합니다. 이대로 책이 나갔다가는 사장도 김선생님도 영창 갑니다.”
“영창? 영창 좋아하고 자빠졌네.”
이때 밖에서 돌아온 사장이 쑥 들어왔다.
“왜들 이렇게 시끄러워요?”
김선생은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달아나 자기 자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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