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생 40년 (7) / 책상 위의 결투
내가 언젠가 「좀머 도사」라고 하여 카페에 글을 쓴 일이 있는데 그 좀머도사가 바로 이항복 선생이다. 그는 고대 사학과를 나와 학교 선생을 하다가 한양대학의 모 교수와 출판 기획을 하다가 그 교수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직장을 잃고 출판사로 들어와 일어, 영어 번역을 하다가 나와 만난 분이다.
이선생이 말했다.
“그것은 나치스라고 써야 합니다.”
“문 소리를 하노? 아이다. 나찌쯔이다.”
“허허 사전에도 나치스라고……”
“이 쌔끼가 한번 붙어 보자카는기가? 나찌쯔라면 나찌쯔지 네가 뭘 안다꼬 지랄이가?”
“뭐? 이새끼라고?”
“함마, 니가 뭘 아노?”
김선생은 육군 중령으로 제대하고 일본어를 하여 입사한 분이지만 군대에서 하던 습관이 있어서인지 다혈질이었다.
두 사람은 책상 맞은편에서 바라보고 욕을 주고받다가 화가 치밀자 김중령 선생이 먼저 책상 위로 올라서서 발로 이선생을 찼다. 이선생도 대단한 실력자, 그도 책상 위로 올라가 두잡이질을 시작, 책상에 원고며 교정지가 날아다니고 직원들은 누구 편을 들 수도 없고 우왕좌왕하는데 사장이 쑥 들어왔다.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
두 사람은 벼락 맞은 나무처럼 허리를 꺾고 책상 아래로 내려갔다. 사장이 화를 내며 두 사람을 쏘아 보았다. 내가 말했다.
“교정 보다 보면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책을 잘 만들자고 싸우는 것이니 이해하여 주시면 됩니다.”
이렇게 하여 일단락되었지만 전에도 미스터 이와 전서생이 솔직히와 솔직이를 가지고 한바탕 싸운 일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이’라 하고 한 사람은 ‘히’라고 고집하여 편집을 마칠 수가 없었다.
둘은 각기 사전을 내놓으며 자기 주장이 맞다는 것이었는데 같은 민중서관 사전에 큰사전에는 ‘히’로 작은 사전에는 ‘이’로 되어 있었다. 그걸 누가 심판할 것인가. 편집부장이 결정하자면 한쪽의 불만을 감수해야 한다.
나는 그 사전 편자인 이희승 선생을 전화로 찾았다. 이희승 선생도 애매한 대답을 했다.
“하다가 되면 히로 쓴다고 되어 있고 서울말을 표준어로 한다고 할 때 서울말은 연한 소리 이로 발음이 나옵니다. 지방에서는 히가 많고 서울은 이가 많으니 서울말을 따르자면 이가 맞고 하다를 따르자면 히가 맞습니다. 허허허허.”
이게 대답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그 두 사람 모르게 오케이를 놓을 때 ‘이’로 했는데 88년도 개정안에서는 ‘히’로 결정을 해놓아 이제는 그 단어 가지고 싸울 일들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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