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생 40년 (6) / 음지에 볕들면 양지는 스러진다
나는 몇 마디 용어를 모르는 이유로 치욕을 극복하기 위해 그 출판사에서 3년을 보냈다.
입사하여 1년째 되었을 때는 그런 용어들을 다 이해하고 활용할 줄도 알았고 편집 진행록을 만들어 편집실의 업무 진행 상황표를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글을 쓰고 교정하고 나면 술집으로 곧장 간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에 그 날의 전체 진행 상황표를 만들었다. 모두가 주인 의식이 없었다. 그래서 각기 자기 한 일을 하고 나면 정리할 줄을 몰랐다. 그리고 시간만 되면 퇴근하고 술 마시고 어영부영.
하루는 사장이 편집실에 들어와 물었다.
“김부장, 지금 하고 있는 책의 진행 상황이 어떤가?”
우물쭈물하던 김부장은 나를 불렀다.
“심선생,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었지?”
사장이 눈을 부라리며 말을 막았다.
“김부장한테 물었는데 왜 거기다 물어?”
“그건……”
사장이 나한테 눈길을 돌렸다.
“그럼 설명해 보시오.”
나는 상황표를 내놓고 진행 정도를 설명했다. 사장은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더니 나갔고 그 달부터 내 월급만 50%를 올려주었다. 그 사실을 안 김 편집부장과 주간은 나를 마땅치 않게 여기기 시작했다. 기회만 있으면 나를 헐뜯는 말을 사장한테 해대자 사장이 화를 냈다.
“그렇게 불만이 많으면 당신들이 물러나면 될 거 아니오.”
그리고 일주일도 안 되어 두 사람을 아르바이트로 바꾸고 편집부장 자리를 비워 두었다. 지금 같으면 난리가 날 일이지만 당시는 사장 마음대로다. 목을 떼었다 붙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당장 아르바이트라도 시켜주지 않으면 일자리를 구하던지 굶어야 한다. 두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십년 가까이 높았다. 주간 김선생은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뛰다가 나온 사람으로 큰 아들딸이 있는 사람.
2년째 들 무렵 내가 편집부장이 되자 함께 입사한 전씨는 서울신문사 편집부로 가고 이씨는 삼성물산 비서실로 갔다.
내가 편집부장이 되자 주간 김선생도 김편집부장도 조석으로 와서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원고 가필거리나 교정지를 얻어다 실적급을 받아가게 되었다. 처지가 바뀌고 자리가 바뀌니 인생 꼴이 바뀌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세심한 마음을 썼다. 내 진심을 안 두 사람은 나중에 나를 위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을 열심히 도와주었다.
나는 사장에게 새로운 출판을 권했다.
“이런 출판은 그만 하시지요. 저는 무협소설이라는 것이 있는 것을 여기서 배웠습니다. 이런 책을 내는 것은 의의가 없습니다. 세계 명작을 기획하는 것이 앞으로 유리할 것입니다.”
박사장은 내 말에 당장 호응했다. 그래서 출판 방향을 바꾸기로 하고 착수한 것이 일본 추리 공상소설과 세계 명작,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이었다. 제2차세계대전을 만들 때였다. 일본어 번역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김선생과 이선생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싸움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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