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소설

서랍 속의 아이들. 5 / 세상에 가장 맛있는 국맛

웃는곰 2025. 5. 5. 10:11

서랍속의 아이들. 5 / 세상에 가장 맛있는 국

 

하루는 학교에서 가장 먼 산속 마을 외딴집에 사는 민구네 집을 방문했다.

 

십리도 넘는 마을이지만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은 많았다.

그 가운데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 박민구다.

부반장도 하고 반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는 아이라 가정이 원만할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민구네 집은 동네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었고 초가집 한쪽 귀퉁이가

주저앉아 산비탈을 타고 있는 커다란 코끼리 등 같았다.

그런데 지붕 위에는 달덩이 같은 박이 여기저기 타고 뒹글뒹굴 곧 아래로 굴러 내릴 것만 같이 보였다.

 

집에는 민구 아버지만 있고 어머니는 안 보였다.

민구가 아버지한테 선생님이 오셨다고 하자 시커멓고 수염이 덥수룩한

삼십은 넘어 보이는 민구 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인사를 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나요? 집이 이래서 부끄럽네요.”

나는 겸손히 허리를 숙여 보이며 인사를 했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오셨으니 방으로 들으시지요.”

 

그렇게 하여 컴컴한 방을 들여다보자 민구가 앞장서서 들어갔다.

방바닥은 눅눅하고 황토벽 구석에는 횃대 옷걸이엔 무슨 옷인지 하나가 달랑 매달려 있었다.

나는 한쪽에 앉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으니 이 꼴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인가.’

 

민구는 성실하기도 했지만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아이라 바로 바닥에 엎드려 숙제를 했다.

민구 아버지는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한참 하더니

작은 밥상에 국과 산나물과 새까만 보리밥을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

 

이렇게 먼 길을 오시느라고 시장하셨을 텐데 대접할 것이 없어서 이렇게만 차렸습니다. 한 술 뜨시지요.”

이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 아직 배고프지 않습니다.”

다 압니다. 학교에서 여기까지 오자면 누구든지 시장합니다.”

 

사실은 점심을 제대로 못 먹고 온 터라 배가 고팠다.

그러나 체면을 생각하여 말은 이렇게 했지만 구수한 국 냄새를 맡으니 숟갈이 저절로 잡혔다.

 

무슨 국인지 한 숟가락 떠먹고 놀랐다.

배가 고파서였는지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 모를 입맛에 사로잡혀

국물을 맛있게 뜨며 산나물과 보리밥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부잣집 서영칠이네 집에서 먹어보던 진수성찬보다 국물맛이 입에 짝짝 달라붙었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맛있는 것은 처음 먹어본 진미였다.

 

식사 후 몇 마디 물어보는 중에 민구 엄마는 먼 산속으로

나물을 뜯으러 갔는데 밤이 되어야 온다고 했다.

그리고 민구 아버지는 논 네 마지기를 지어 겨우겨우 먹고 산다고 했다.

 

나는 민구가 모범생이라 부모님을 한번 뵙고 싶어서 방문했노라며 인사를 하고 학교로 돌아왔다.

그 후 나는 어디서도 민구 하버지가 차려준 밥상과 국맛을 더 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