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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람 12 / 명랑한 토끼

옆 사람 12 / 명랑한 토끼 나는 언제나 가장 먼저 차에 올라 31번 석에 앉는다. 그리고 누가 옆에 오려나 기다린다. 오늘도 줄줄이 들어서는 사람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희한한 명물이 나타났다. 새하얀 모자에 새하얀 양털오버의 새하얀 아가씨 토끼였다. 게다가 더 재밌는 건 양쪽 새까만 귀가 너풀거리고 이마 위 머리에는 새까만 방울 둘이 달려 더 흥미를 끌었다. 재미있게 생긴 귀여운 토끼가 어디로 가서 앉을까 하고 바라보는데 사뿐사뿐 오더니 내 옆 32번 석에 나비처럼 앉았다. 순간 나는 마치 구슬 따기에서 구슬을 딴 기분이었다. 아가씨는 마스크 얼굴이라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눈이 예쁘게 보였다. 그런데 이 아가씨 어딘가 전화를 한참 하는데 낭랑한 목소리는 틀림없는데 무슨 소리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

문학방 2024.01.14

옆 사람 11 / 왕눈이와 새우눈

옆 사람 11 / 왕눈이와 새우눈 차 창가 31번 내 자리 옆으로 여자 둘이 왔다. 하나는 내 옆에 하나는 건너편 통로에 앉았다. 두 여자가 통로 건너 마주보며 수다를 떨었다. 서울역서 차가 떠날 때까지 10분이 넘도록 다른 사람들 생각도 않고 수다를 계속하는데 지켜보자니 안타까웠다. 바로 옆자리 여자는 늘씬한 키에 눈도 시원하고 예뻤는데 건너편 여자는 키도 작고 눈도 새우눈. 왕눈이와 새우 눈이 엄청 친한 사이 같았는데 통로에 건너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자니 얼마나 불편할까 나는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일어서며 말했다. “두 분이 여기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하시지요. 제가 건너 자리에 앉을게요.” 옆의 왕눈이 예쁜 여자가 겸손히 그러시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건너편 새우눈이 발딱 일어서며 반겼다. “고마..

문학방 2024.01.14

옆 사람 10 / 이래도 모르겠소?

옆 사람 10 / 이래도 모르겠소? 부산행 무궁화 1221호 1호칸. 나는 매일 똑같은 시간 17시 17분에 차에 오른다. 차 문을 열고 들어서서 두 번째 좌석 앞을 막 지나는데 누가 내 바지를 꽉 잡았다. 나는 누가 이래? 하고 발을 뛰려는데 또 꽉 잡고 놓지 않았다. 나는 기분이 상한 채 누가 이러나 하고 내려다보았다. 새까만 개똥모자에 마스크를 한 사람이 올려다보는데 날카로운 눈빛만 보일 뿐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약간 불쾌한 감정으로 물었다. “왜 이러시오?”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 대답 없이 내 바지자락을 잡아당겼다. 아무리 보아도 모르는 사람인데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눈을 맞추고 살펴보면서 물었다. “누구시오?” 그제야 한 마디 “나요.” “나라니요?” “나 모르겠소?” “글쎄요.” ..

문학방 2024.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