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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람 12 / 명랑한 토끼

웃는곰 2024. 1. 14. 15:54

옆 사람 12 / 명랑한 토끼

 

나는 언제나 가장 먼저 차에 올라 31번 석에 앉는다.

그리고 누가 옆에 오려나 기다린다. 오늘도 줄줄이 들어서는

사람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희한한 명물이 나타났다.

새하얀 모자에 새하얀 양털오버의 새하얀 아가씨 토끼였다.

게다가 더 재밌는 건 양쪽 새까만 귀가 너풀거리고 이마 위

머리에는 새까만 방울 둘이 달려 더 흥미를 끌었다.

 

재미있게 생긴 귀여운 토끼가 어디로 가서 앉을까 하고 바라보는데

사뿐사뿐 오더니 내 옆 32번 석에 나비처럼 앉았다.

순간 나는 마치 구슬 따기에서 구슬을 딴 기분이었다.

 

아가씨는 마스크 얼굴이라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눈이 예쁘게 보였다.

그런데 이 아가씨 어딘가 전화를 한참 하는데 낭랑한 목소리는

틀림없는데 무슨 소리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 청각이 이렇게 나빠졌나? 청각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자부했는데 그 아가씨 전화소리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갸웃거리다 통화가 끝나기에 물었다.

 

아가씨, 우리나라 사람 맞아요?”

아니에요, 중국 사람이에요.”

유창한 발음이 정확하여 또 물었다.

정말 중국 사람인가요?”

네에! 맞아요.”

우리나라에 몇 년 사셨나요?”

“2년 살았어요.”

그런데 우리말을 그렇게 잘해요?”

저는 중국서 한국어를 배우고 왔어요.”

 

중국 어디가 고향인가요?”

흑룡강이 있는 할빈이에요.”

완전한 한국어를 구사하기에 한글도 아느냐고 물었더니 한글도 잘 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울타리>를 보이며 이거 읽을 수 있느냐 했더니

아주 좋아하면서 주시면 다 읽겠다는 대답.

 

우리나라 사람도 주면 나 책 안 좋아해요하면서도 주면 열심히 읽는 사람을 보았지만

대뜸 좋아한다는 대답을 듣기는 처음이다. 책을 주면서

20211222일 날짜를 쓰고 이름을 물었더니 최ㅇㅅ라고 선뜻 대주었다.

 

그래서 왜 한국적 이름이냐 물었더니 한국에 오면 한국식

이름을 써야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어서 하나 지어서 쓴단다.

토끼 차림새도 그렇고 유창한 한국어도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어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했다. 아주 밝게 웃으면서 허락했다.

그리고 내가 서툴게 한 장 찍었더니 내 핸드폰을 달라더니

나도 같이 사진을 찍어주면서 웃었다. 그리고 울타리를 펴보면서 아주 좋아했다.

 

한국 책 주어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읽고 여기로 독후감도 써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판권의 이메일이 맞느냐고 했다.

나는 그 동안 여러 권을 사람들한테 주었지만 이렇게 좋아하고

독후감까지 써 주겠다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

특히 판권에 있는 이메일까지 말하는 사람을 앞으로 더 만날 수 있을까?

 

정말 독후감이 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아무한테도 독후감을 받아본 일이 없으니

중국 아가씨지만 써 준다면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믿고 한번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