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 17. 하늘 꾀꼬리
열차 1호칸 31번 석은 내가 정해 놓고 타는 자리다.
표를 예매하려 했더니 전체 71석 중 29,30석만 남고 내가 좋아하는 자리는
어떤 아가씨 둘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밀려나 29번석에 앉았다.
저것들이 내 자리를 빼앗았네 하고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파랗고 청명했다.
내 옆 빈자리는 누가 와서 앉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기차가 떠날 순간
깜찍하게 생긴 아가씨가 헐레벌떡 달려와 내 옆에 살짝 앉으며 생끗 웃었다.
아! 저 하늘같이 맑은 눈!
나는 순간 하늘같이 참 맑은 아가씨 눈을 보았다.
아가씨가 꾀꼬리같이 맑고 예쁜 소리로 물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아가씨는 하늘…….”
“예? 하늘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요. 아가씨가 하늘…….”
“제 이름을 아세요?”
“네?”
“저를 아시나요?”
“초면인데요.”
“그런데 어떻게 제 이름을 아세요?”
“아가씨 이름이 뭔데요?”
“하늘이에요.”
인상이 좋아서 울타리를 내보이며 물었다.
“독서 좋아하시나요?”
“저는 책 싫어해요.”
“싫어도 이 책 받아요.”
아가씨는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책을 받아들고 생끗 웃어주었다.
그리고 책을 펴들더니 꼼짝 않고 읽었다.
싫다는 책을 저렇게 읽다니 책장만 넘기는 거 아닌가? 그래서 물었다.
“정말 읽으셨나요?”
“예, 아홉 살 소녀의 사랑, 조미미가 그렇게 애국정신이 대단한 인물인 줄 몰랐어요.”
“정말 읽으셨군요. 고마워요.”
“제가 더 고맙지요. 어디까지 가세요?”
“수원이오. 아가씨는?”
“구미까지 가요. 가면서 이 책 다 읽어 볼게요.”
“고마워요. 잘 가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참 신기하다.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만나면 할 이야기가 있고
대화를 하다 보면 마음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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