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할머니
1.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따로 사시는 것이 궁금한 치준이 물었습니다.
“할머니, 왜 할아버지하고 사시지 않고 따로 살아?”
“그것이 궁금하냐?”
“암만 생각해도 모르겠어.”
“무얼 모르겠다는 거냐?”
“할머니하고 할아버지가 함께 사시면 좋잖아?”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습니다.
“그건 말이다, 너의 작은아버지네 집도 방이 세 개이고 내가 사는 너의 집도 방이 세 개가 아니냐?”
“그런데?”
“양쪽 집에 방이 하나씩 비어 있으니 어쩌겠느냐. 그래서 빈 방을 쓰느라고 따로 산단다.”
치준은 궁금증이 풀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머니, 시골 사실 때가 더 좋았지?”
“그렇게 생각하니?”
“난 그 때가 좋았어. 방학 때마다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갈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갈 데가 없잖아.”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가느다랗게 한숨을 쉬시었습니다.
“좋았지, 고향에 살 때가 좋았어. 다시는 갈 수 없는 고향이지만……”
“지금은 왜 못 가?”
“집이 있어야 가지. 집도 팔고 땅도 팔고 이렇게 제각각 살고 있으니 고향이 그리워도 갈 수가 없구나.”
“고향집을 왜 팔았어?”
“그것도 궁금하냐?”
“나 같으면 안 팔았을 거야.”
“나도 그러고 싶었단다. 그러나 네가 이렇게 대견하게 자라서 단칸방 집에서는 살 수 없다고 너의 아범과 작은아버지가 사정을 하여 이 아파트와 너의 작은아버지 아파트 사느라고 다 팔아 가지고 왔단다.”
“그래서 우리가 아파트로 이사를 온 거야?”
“그렇단다. 오고 보니 양쪽 집에 방이 하나씩 비어 있어 할아버지는 작은아버지가 사는 천안에 살고 나는 너희들과 서울서 살게 되었단다.”
치준의 사촌 동생 남희도 오빠가 궁금했던 것처럼 궁금했습니다. 남희네 집에는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떨어져 혼자 쓸쓸히 지내시기 때문입니다. 남희가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할아버지는 언제나 텔레비전만 보셨습니다.
남희가 할아버지한테 여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왜 할머니하고 떨어져 살아?”
2.
할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끄고 빙긋이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별 걸 다 묻는구나. 그게 왜 궁금하냐?”
“할아버지가 쓸쓸해 보여서.”
“녀석, 제법 다 큰애 소리를 하는구나.”
“할머니도 할아버지하고 살고 싶지?”
“녀석……”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같이 살아요.”
“왜? 너까지 내가 귀찮은 게냐? 나 보고 할머니한테 가서 살라고 하고 싶은 게야?”
“아냐. 할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오면 되잖아?”
“그러면 좋지……”
“알았어. 할머니가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해야지.”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텔레비전을 켜고 돌아앉으셨습니다.
저녁에 남희가 엄마한테 말했습니다.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여 살게 했으면 좋겠어.”
“뭐야?”
엄마는 차가운 눈빛으로 남희를 쏘아보았습니다.
“혼자 계신 할아버지가 너무 쓸쓸해 보여.”
“그래서?”
“할머니가 우리 집으로 오시게 하면 좋지 않아?”
“할아버지 한 분 모시는 것도 힘든데 할머니까지 모시라는 거냐? 너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마, 알았니?”
“할아버지 모시는 게 그렇게 힘들어?”
“얘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럼 할아버지가 치준이네 집으로 가시면 되잖니? 왜 꼭 우리 집이냐? 우리 집은 작은집이야.”
“부모님 모시는데 작은집 큰집이 어디 있어? 할아버지는 집이 비었을 때 따리(개)한테 밥도 주시지 않아. 할아버지도 우리를 도와주고 계신 거야.”
“얘가 그래도 못 알아듣고, 들어가 공부나 해.”
남희는 엄마한테 꾸지람만 듣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낮에 엄마 아빠가 다 출근하고 남희까지 학교 가고 나면 혼자 계신 할아버지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희는 할아버지 말동무가 되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지?”
“그럼.”
“할머니는 왜 할아버지하고 같이 안 살고 큰아버지 댁에만 살아?”
“사정이 있단다.”
“싸웠어?”
“녀석, 싸우기는…… 우리가 싸우는 것 보았느냐? 할머니는 서울이 좋다고 서울로 가신 거고 나는 시골이 좋아서 여기 사는 거란다.”
남희는 할아버지가 서울로 가시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를 싫어해서 그런 말을 한다고 하실까봐 그렇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남희 엄마 아빠는 주말마다 등산을 가신다. 그런 날은 할아버지도 가끔은 어디를 다녀오셨습니다.
3.
서울에 사는 할머니도 가끔 집을 떠나 어디론가 다녀오셨습니다.
천안에 사시는 할아버지도 같은 날 집을 나서시는데 그런 날은 수염도 깎고 옷도 깔끔하게 차려 입고 가시지만 어디를 갔다 오시는지 아무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들한테 얹혀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고 계셨던 겁니다.
천안과 서울의 중간쯤인 수원에서 두 분은 만났습니다. 집에서 열 시에 떠나면 수원에 같은 시간에 도착했고 경로 우대 교통카드로 다니기 때문에 찻삯 걱정은 안 해도 되었습니다.
두 분이 만나는 장소는 작은 만두집이었습니다. 40년 전부터 한 자리에서 만두만 파는 가게로 할아버지가 수원에서 학교 다닐 때 자주 찾던 가게입니다.
가게 주인도 할아버지가 다니실 때의 뚱보 아주머니가 아니고 그 아들이 대를 이어 하는 전통 만두집입니다.
거기서 학창 시절에 꿈을 키우던 할아버지는 늙어서도 그 집을 못 잊고 찾았던 것입니다.
오늘은 두 분이 만나기로 한 날. 할아버지가 먼저 도착해 할머니를 기다리셨습니다.
부지런히 걸어오는 할머니도 머리를 곱게 빗고 화장도 한 듯 주름살 속으로 화장품 바른 표가 났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먼저 오셨수?”
“마침 급행열차를 탔더니 다른 날보다 이십 분이 빠릅디다.”
“그 동안 아픈 데는 없으셨고요?”
“당신은?”
“아직은 견딜 만해요. 작은애와 남희도 잘 있지요?”
“별일 없어. 치준 아범은?”
“다 여전해요.”
주인이 다가왔습니다.
“두 분은 참 보기 좋습니다. 만나실 때마다 주고받는 눈빛에 정이 가득하고 대화가 듣기 좋고 다정해 보이십니다. 첫사랑의 연인이 만나시는 듯 행복해 보이십니다.”
할아버지가 크게 웃으시며 받았습니다.
“하하하 우리가 그렇게 행복해 보이시오?”
“그렇습니다. 연인 사이신가요?”
할머니가 한 마디 했습니다.
“행복은 겉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우. 사람마다 보기보다는 속사정이 다 다르니……”
할아버지가 말을 막았습니다.
“주인장 말대로 우리는 연인이라오. 행복해 보인다니 우리는 행복한 것이오. 주문한 만두나 내오시오.”
4.
할머니가 좀처럼 안 하시던 말을 했습니다.
“우리야 이제 다 늙었고 자식들한테 전 재산을 넘겼으니 할 말은 없지만 아무래도 잘못한 것 같아요.”
“무슨 말이오?”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가 살던 집은 팔지 말았어야 해요. 자식들 생각하여 고향을 팔고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고 보니 후회가 막심해서 하는 말이에요.”
“그러니 어쩌겠소.”
“고향이 있어도 땅 한 평 없으니 고향이 아니고 …… 고향을 버리니 고향도 우리를 버리는구려.”
“그래도 고향에는 우리의 꿈이 있지 않소? 생각해 보오. 당신과 내가 결혼할 때 당신이 얼마나 예뻤는지 아오? 당신이 내 아내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려요. 난 당신을 천사로 생각하고 날마다 싱글벙글했다오. 당신 처녀 때는 정말 예뻤어.”
“지금은 안 예쁘다는 말씀이시우?”
“지금도 곱지. 그러나 세월이 다 뺏어가고 얼굴에 주름만 남겨 놓아 그 예쁜 얼굴을 다시 찾을 수 없구려.”
“당신도 젊었을 때는 멋졌어요.”
“그랬소? 하하하. 난 젊어서 밖에 나갈 때마다 누가 와서 당신을 업어갈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몰랐다오.”
“거짓말도 적당히 하시구려. 늙었다고 놀리시는 건 아니우?”
“아니오, 우리가 옛날 처음 회사에서 만나던 날 나는 혼이 빠져 버렸는걸. 얼굴이 뽀얗고 깜찍한 아가씨가 들어와 내 책상 맞은편에 앉는데 나는 눈이 부셨어요. 당신은 정말 예뻤소.”
“그때가 몇 년 전이우? 오십 년이 넘었어요. 치준 아범이 육십이 가까우니……”
“당신 생각나우? 회사에서 야외놀이 갔을 때 짝 맞추기 게임이 있었지. 전 사원이 둥그렇게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다가 사회자가 다섯 사람! 하면 다섯이 모이고 세 사람! 하면 세 사람이 모여 똘똘 뭉치는 놀이 말이오. 그 날 두 사람! 하는 사회자의 소리에 짝을 구하지 못하여 이리저리 찾고 있을 때 저쪽에서 당신이 달려와 내 품에 안기어 짝을 맞추었던 기억 말이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어쩌자고 짝을 못 맞추고 헤매다가 나를 발견한 당신이 달려와 안겼는지. 그날의 감격은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오. 내가 가장 좋아하던 당신이 내 짝이 되었으니 말이오. 그 날 이후 나는 당신만 생각했지.”
“그 인연이 오늘까지 이어진 것 아니우?”
“정말 멋진 인연이었어. 그리고……”
할머니가 일어서면서 말을 막았다.
“시간 되었어요. 그만 가요.”
“조금만 더 있다 갑시다.”
“늦으면 며느리 눈치 보여서 안 돼요.”
“언제부터 우리가 며느리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했지?”
“늙은 죄지요.”
5.
학교에서 돌아온 손자 치준이 큰 소리로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할머니, 왜 문을 열어 놓았어?”
“문을 열어 놓다니 누가?”
“할머니가 열어 놓았잖아!”
“글쎄다. 난 모르고 있었는데……”
치준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달려와 꼬리를 치며 반기던 로라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안을 둘러보던 치준이 물었습니다.
“할머니, 로라 어디 있어?”
“로라라니?”
“로라가 안 보여.”
집안을 샅샅이 찾아보아도 로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치준이 이쪽저쪽으로 뛰어다니며 찾다가 밖으로 나갔다 한참 뒤에 돌아오는데 얼굴이 새빨갰습니다.
“할머니, 로라가 아무데도 없어.”
“그게 어디로 갔단 말이냐.”
할머니도 밖으로 나가 찾아보았지만 강아지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고 사람들한테 물어보아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치준이 할머니를 원망하듯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로라가 나가는 것도 몰랐어?”
“알았으면 가만 두었겠니?”
“엄마가 오기 전에 찾아야 할 텐데?”
“큰일이로구나.”
할머니는 손자보다 더 답답했습니다.
“그것이 어디로 가서 안 온단 말이냐.”
눈물이 글썽한 할머니를 바라보던 치준이 제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문 앞에서 들어보니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로라야, 어디 간 거야, 어디로 간 거야? 빨리 돌아와.”
할머니는 치준이보다 더 울고 싶었습니다.
‘이 놈이 어디로 간 거야? 어디로 가……’
마음을 끓이는 동안 큰아들이 퇴근하여 돌아오고 이어 며느리가 들어왔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맑고 큰소리로 엄마 아빠를 부르면서 달려 나오던 치준이 문을 꼭 닫은 채 꼼짝 않고 있었습니다. 이상히 여긴 아들이 손자를 불렀습니다.
“치준아, 뭐 하니?”
그래도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손자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습니다.
“아니, 너 울고 있잖으냐? 왜 그래?”
“로라가 없어졌어요.”
“로라가?”
아들은 밖으로 나와 할머니를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니도 모르세요?”
“모른다.”
“집에 계시면서 그것도 모르고 계셨어요?”
“글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문이 열려서 나간 모양이다.”
이때 며느리가 들어왔습니다.
6.
며느리가 물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앉지도 않고 하세요?”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로라가 없어졌다오.”
“로라가요?”
며느리는 눈길을 할머니한테 돌렸습니다.
“어머니는 뭘 하셨어요? 그것도 하나 못 보시고.”
아들은 슬그머니 서재로 가고 며느리는 치준이 방으로 갔습니다.
“너 뭐 하니? 울고 있는 거 아냐?”
며느리는 치준을 달래며 밖으로 나가 로라를 찾아보다가 들어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현상금을 걸고라도 로라를 찾아봅시다.”
“현상금을 걸어요?”
“그럼 어떡해요. 누가 거저 찾아줄 것 같아요.”
“얼마나 걸고?”
“최소한 50만 원은 걸어야 될 거예요.”
“50만 원씩이나요?”
치준이 물었습니다.
“현상금을 걸면 찾을 수 있을까요?”
며느리는 남편에게 명령하듯 말했습니다.
“내일 아침 동네 전봇대나 벽에다 붙일 수 있도록 컴퓨터로 광고문을 만들어요.”
“그걸 누가 붙이고 다니겠소.”
이때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찾을 수 있다면 내가 붙이마.”
“어머니가요?”
아들이 놀란 눈으로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그러세요. 어머니가 잃어버리셨으니 그렇게 하시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다음 날 아침 할머니는 아들이 만들어준 광고지를 들고 나가 전봇대마다 붙였습니다.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다리가 아팠지만 가지고 나온 건 모두 붙이고 가리라 생각하고 헤매다가 다 붙이고 난 다음에는 어디가 집인지 돌아갈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7.
할머니는 아파트 골목길을 헤매다가 방향을 잃고 파출소로 찾아갔습니다.
경찰을 붙잡고 길을 잃어버리게 된 사정을 말했습니다. 친절한 경찰관은 다 듣고 나서 물었습니다.
“할머니 사시는 아파트 이름을 아세요?”
“알면 찾아 갔지요. 어디가 어딘지 거기가 거기 같고 아무리 골목을 헤매도 우리 아파트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할머니도 못 찾는 집을 제가 어떻게 찾습니까.”
“아드님 이름은 어떻게 되십니까?”
“김명수…… 그럼 찾을 수 있나요?”
경찰관은 컴퓨터로 김명수라는 이름을 검색하다가 머리를 저었습니다.
“김명수가 전국에 수 천 명이 있으니 동네도 모르는 김명수를 어떻게 찾는담.”
“김명수가 우리 아들 말고 그렇게 많은가요?”
“엄청나게 많습니다. 며느님 이름은 아십니까?”
“그 애 이름은 몰라요. 성은 박씨라고 하던데.”
“작은아들 이름은 아시나요?”
“그 애 이름은 김철수지요.”
경찰관은 아예 찾아보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김철수는 김명수보다 더 많습니다. 한강에 빠진 금반지 찾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할머니는 아주 낙심했습니다. 오갈 데 없는 처지에 누구를 잡고 하소연해야 집을 찾는단 말인가. 경찰관이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습니다.
“할머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아닌 강아지 한 마리를 찾기 위해 50만원씩 상금을 거는 분들인데 할머니가 안 들어가시면 사방으로 찾을 것입니다. 기다려 보시지요.”
할머니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경찰관은 안됐다는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봇대에 강아지 찾는 광고물을 붙이셨다면 어딘가 전화번호가 적혀 있을 것입니다. 전봇대를 찾아 가실 수 있습니까?”
“여기저기 붙여 놓아서 알 수가 없어요.”
“그것도 내일 아침이면 청소부들이 다 떼어 낼 것입니다. 내일은 틀림없이 아드님이 할머니 찾는다는 신문광고나 전봇대에 5백만 원 이상의 현상금을 걸고 찾으실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오늘 밤은 제가 안내해 드리는 곳에 가서 하룻밤 지내시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서는 편히 쉬실 수가 없습니다.”
“이 늙은이를 찾자고 오백만 원씩이나 상금을 건다는 말씀이신가요?”
“자식이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는데 오백만 원이 문제입니까. 어머니를 돈으로 따질 수는 없지요.”
“그래도…….”
“개를 찾으려고 상금을 거는 분들인데 어머님이야 당연히 더 큰 상금을 걸고 찾지 않겠어요.”
할머니는 아들이 오백만 원씩이나 들여가면서 찾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8.
경찰관의 안내로 할머니는 가까이 있는 경로당으로 갔습니다. 경로당에는 할머니 또래의 노인들이 둘러앉아 화투를 치고 있었습니다.
경찰관이 할머니를 간단히 소개했습니다.
“길 잃은 할머니가 계셔서 이리로 모셨습니다. 파출소에는 노인이 머물만한 방이 없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하루만 여기서 함께 계시게 해 주세요.”
뚱보 노인이 시원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알았어요. 경찰관 아저씨, 염려 붙들어 매고 돌아가서 도둑이나 모조리 잡으시오. 이 할머니는 내가 보살펴 드리리다.”
경찰관이 돌아가고 나자 잠깐 멈칫했던 화투판이 다시 벌어졌습니다. 노인들은 눈이 어두워서 안 보인다고 엄살을 떨면서도 화투장은 척척 알아보고 계산도 컴퓨터였습니다.
할머니는 친절하게 도와주는 뚱보 노인 덕에 따뜻한 자리로 갔습니다. 거기서 주는 간단한 음식을 먹고 나니 다리가 풀리고 힘이 쑥 빠지며 잠이 쏟아졌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고 생각하며 졸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어 아침까지 자고 말았습니다.
아침에 경찰관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근방에 할머니를 찾는 광고문이 어디 나붙은 곳이 있는지 알아보았지만 아직은 없다고 했습니다. 연락할 때까지 경로당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경찰관은 갔습니다.
할머니는 뚱보 노인이 친절하게 보살펴 주어 하루를 편히 지내며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경로당 노인들이 친절하게 해 주어 불편 없이 며칠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옆에서 보던 백발 할머니가 딱하다는 듯 한 마디 했습니다.
“너무 애타게 기다리지 말아요. 요새 젊은이들은 개를 잃어버리면 현상금을 걸고 찾아도 자기 부모 잃어버리면 찾지도 않아요.”
이 말에 다른 노인이 말했습니다.
“갖다 버리고 싶은데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늙으면 죽어야 해.”
“우리 집도 보면 아들이 더 문제예요. 마누라한테 꽉 잡혀서 오금을 못 펴고 마누라가 이래라 하면 그러고 저래라 하면 저러고……”
이때 곁의 할머니가 말을 막았습니다.
9.
“누구 흉을 보시우? 바로 당신도 그랬을 걸?”
“난 그렇지 않았어요. 우리가 젊었을 때는 남편한테 감히 누가 대들기를 하우? 당신이 그랬던 것 아니우?”
“호호호호 난 남편한태 독재를 좀 썼지 호호호.”
백발노인이 한숨을 쉬면서 나직이 말했습니다.
“참 한심한 일이에요. 저희들도 머지않아 늙으면 우리 꼴이 될 텐데 자기들은 안 늙을 것처럼 거드럭거리니 두고 보면 알겠지.”
뚱보할머니가 어디서 났는지 광고지를 내놓으며 큰소리로 읽으며 사람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둥이를 찾습니다. 둥이가 뭔지 아시것수?”
다른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둥이가 우리 막둥이 아닌가?”
뚱보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둥이는 둥인데 막둥이가 아니라 흰둥이 개를 말하는 것이라우. 개를 찾는다는 광고예요. 찾아주면 사례금 100만 원을 준다우. 우리 개나 찾아 주고 백만 원 법시다.”
가장 나이가 많은 장수노인이 바람 새는 소리로 말을 받았습니다.
“개에 한 마리가아 을마나아 간다고 백만 원씨익 주면서어 찾는다는 거여어.”
뚱보할머니가 광고를 계속 읽었습니다.
“더 들어 보시오오. 흰색 말티즈, 수컷, 중성화 수술. 몸무게 5.5kg, 3월 25일 집을 나갔습니다, 8년을 함께한 가족입니다.”
머리가 하얀 노인이 끼어들었습니다.
“수컷을 중성화 수술했다면 개를 사랑하다고 하면서 고자를 만들어 놓았다는 말 아닌가. 못된 인간들 같으니.”
장수할머니가 혀를 찼습니다.
“문제여어. 아무리 개가아 사람이이 아니라지마안 병신을 만들어어 놓고서어 8년을 살았다는 가족이라고오. 그게 무스은 가족이여어.”
백발노인이 가소롭다고 비웃었습니다.
“뭐, 몸무게가 5.5kg라고? 그것들이 제 어미 아비 몸무게는 다 알고 있을까. 어떻게 제 부모는 개만도 못하게 보면서 개를 자식 보듯 하는지 요새 젊은 사람들 이해가 안 가. 쯔쯔즈.”
뚱보할머니가 받았습니다.
“너무 흥분들 하지 마시오. 3월 25일에 집을 나갔다니 우리가 찾아봅시다. 반드시 사례하겠다고 했습니다, 연락처010-9654-26** 010-5487-34**라고 했으니……”
장수노인이 치준 할머니를 보고 물었습니다.
“댁은 어쩌다아 길을 잃으셨수우? 자식드을이 개 찾드시이 돈 주을 테니 어머니이 찾아 주시오오 하고 광고오 붙일까아……?”
10.
할머니는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개 찾는 광고문 붙이러 다니다 길을 잃었으니 할 말도 없고 남이 알까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늙은이가 자식들도 안 붙이는 개 찾는 광고문을 붙이러 다녔다면 동네 개도 웃을 것 아닌가.
뚱보 노인이 끼어들어 변명을 해주었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신문에도 방송에도 나올 거예요. 아들며느리가 있는데 가만히 있겠어요?”
“그렇겠지이, 어떤 자식이 어머니가 나가아 안 들어오는 데에 안 찾겠어어.”
이때 백발노인이 저쪽에서 엉뚱한 말을 했습니다.
“어떤 집에서는 며느리가 얼마나 못됐는지 남편이 퇴근하여 어머니한테 먼저 문안하면 화를 낸다는구려. 그 집 며느리도 그런 건 아니것지?”
뚱보 할머니가 가로막았습니다.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어가지고 아무한테나 그러시우. 할머니 섭섭하게.”
할머니는 단호히 대답했습니다.
“우리 며느리는 그렇지 않다우. 얼마나 사람이 좋은데……”
이렇게 말하는 할머니 머릿속에는 냉장고도 함부로 못 열게 하던 며느리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쓸데없이 냉장고 문을 자주 열면 전기 요금만 많이 나가요. 어머니는 가만히 앉아서 해주는 밥이나 잡수세요.’
할머니는 며느리 생각을 하다가 귀여운 손자를 떠올렸습니다.
‘아들 며느리는 남보다 못한 때가 많았어도 손자 치준이는 그렇지 않았어. 귀여운 것이 생각이 얼마나 깊은지…… 내가 손자 보고 살지.’
이때 경찰관이 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할머니, 아드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할머니는 반가워서 함께 온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확인도 안 하고 할머니 앞에 넓죽 절을 올렸습니다.
“여기 계셨군요. 접니다 어머니.”
그 광경을 둘러서서 보던 할머니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아들이 어머니 찾아오는 건 당연하지 당연하고말고.”
“할머니는 좋겠다. 아들이 찾아 왔으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할머니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머니라고 절을 하다니 정신이 어지러웠습니다.
“댁은 뉘신데?”
11.
사나이는 허둥지둥 절을 하고 머리를 들어 할머니를 보고 놀란 눈을 떴습니다.
“아아니!”
경찰관이 물었습니다.
“왜 그러시오? 어머니가 아닙니까?”
사나이는 실망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를 찾았다는 기쁨이 앞서서 그냥 어머니로 알고 실례했습니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뚱보 할머니가 더 놀랍다는 듯 할머니한테 물었습니다.
“그럼 기다리던 아들이 아니란 말이우?”
할머니는 실망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내 아들은 아니지만 정말 고맙구려. 어쩌다 어머니를 잃고 이렇게 고생을 하시우?”
사나이는 무릎을 꿇고 겸손히 말했습니다.
“저의 어머님은 치매에 걸리셔서 집을 나가신 지 이틀이 되도록 돌아오시지 않습니다.”
“이틀이오?”
할머니는 집에서 나온 지 닷새가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이 찾는다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얼마나 고마운 아들인가. 치매 걸린 어머니를 애타게 찾고 있으니 효자도 큰 효자가 아닌가.
사나이가 돌아가자 기대에 차 있던 노인들이 실망하여 입을 꼭 다문 채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12.
할머니가 집을 나가신 뒤 돌아오지 않자 치준이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습니다.
“엄마, 할머니 찾아보자.”
“어떻게 찾니? 로라도 못 찾는데.”
“로라보다 할머니를 찾아야잖아?”
“할머니야 입이 있으니 찾아오시겠지만 로라는 말도 못하는 것이 어디서 잘 있는지……”
이때 현관문이 열렸습니다. 치준이 아버지를 보자 인사도 안 하고 할머니 걱정을 먼저 했습니다.
“아빠 오늘도 할머니 못 찾으셨어요?”
“찾지 못했다. 아무데서도 연락 온 데 없었니?”
“없었어요. 할아버지한테 가신 것 아닐까요?”
“거기도 안 오셨다는구나. 여보, 당신은 안 찾아 보았소?”
아들이 묻는 말에 며느리는 아무 대꾸도 않고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들은 손자 치준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화났니?”
“할머니보다 로라 연락이 없다고……”
“그래?”
치준이 말했습니다.
“아빠. 내일 우리 반 아이들한테 광고를 해 볼까요.”
“무슨 광고를 한다는 거냐?”
“우리 반 아이들은 여러 동네에서 오는 아이들이니까 자기 동네 파출소나 경로당에 다니면서 할머니를 찾아보라고 하면 되지 않겠어요?”
“음……”
해YT얼굴이 거짓말을 하기 귀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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