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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꼬부부와 거짜 귀머거리할머니

웃는곰 2018. 10. 2. 12:58

가짜 귀머거리(잉꼬부부)

 

1. 귀 좀 빌려 주실래요?

우리 엄마 아빠는요 히히히…….

이런 말 다 해도 될까요?

 

말했다가 들키면 꾸중 들 줄 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 아빠는 이상해요.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다른 엄마 아빠들도 그럴까요?

난 다섯 살이고요 형이 하나 있고 동생은 없어요. 그리고 우리 집에서 가장 사랑받는 귀염둥이는 나지요.

눈이 시원하게 크고 미국 아이들보다 살결이 더 하얗고요 키도 다른 아이들보다 커요.

집에는 할머니가 계신데 귀가 안 들리셔서 누가 말을 하면 입 모양을 보고 그 말을 들으신대요. 그러니까 엄마 아빠는 할머니가 계시면 입술을 안 보이게 얼굴을 돌리고 아무 말이나 하고 싶은 대로 하지요.

그런데요, 비밀이 둘이 있어요. 그 하나를 먼저 알려드릴 게요. 귀 좀 빌려주실래요?

2. 잉꼬 부부

어저께였어요.

엄마하고 아빠하고 이러시는 거예요.

엄마 : 당신은 아침마다 나를 깨울 때 그렇게밖에 못해요?

아빠 : ?

엄마 : 몰라서 그래요?

아빠 : 내가 뭘?

엄마 : 발가락.

아빠 : , 그거?

엄마 : 결혼하기 전에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아빠 : 그랬지.

엄마 : 나하고 결혼만 하여 준다면 내 종이 되어 발도 씻겨주고 설거지는 물론 새벽밥도 지어 먹고 출근한다고 했으면서 한 번이나 지켰어요?

아빠 : 결혼하면 다 그런 거야. 어떻게 남자가 궁상스럽게 그 약속을 다 지켜?

엄마 : 그런 당신보다 시어머님이 더 귀찮아요.

아빠 : 그게 무슨 말이오? 어머니가 어때서? 날마다 무슨 일이든 거들어 주려고 애쓰시는 걸 내가 아는데.

엄마 : 귀머거리 시어머니 모시고 사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요?

아빠 : 점점 하는 소리가! 어머니가 들으시면 어쩌려고 그러오?

엄마 : 듣기는 뭘 들어요. 말하는 입이나 보면 겨우 알아채시는데 옆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못 들으시는데 그런 걱정은 왜 해요?

아빠 : 허허!

엄마가 발가락! 하고 말한 건요, 아빠가 아침이면 엄마를 발가락으로 톡톡 치면서 일어나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도 안 일어나면 발가락으로 꼭 꼬집거든요. 우리 아빠 발가락 귀엽지요?

엄마가 할머니를 귀찮아하고 귀먹었다고 함부로 말하자 아빠가 화가 나서 어허허! 하고 화를 내려는데 옆집 아줌마가 엄마한테 부탁한 것 달라고 오셨어요.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가자 아빠가 아주 친절하게 변하여 부드러운 소리로 아줌마를 맞으시는 거예요.

조금 전에 화났던 소리는 금방 웃는 얼굴로 바꾸면서 부엌에 있는 엄마한테 친절하게 말했어요.

여보오, 손님 오셨는데 차라도 내오시구려.”

화가 나서 부엌으로 가신 엄마도 아주 상냥한 목소리로 바꾸어 대답했어요.

네에에, 아았어요옹. 곧 준비해 갈게요.”

아줌마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아빠한테 말했어요.

호호호. 이 집에는 언제 와 봐도 양지에 노는 잉꼬부부야. 부부가 늘 웃는 얼굴에 친절한 목소리까지…….”

별 말씀을요. 잉꼬부부는 무슨.”

아빠가 이렇게 말하면서 엄마 아빠는 정말 사이가 좋은 것처럼 얼굴까지 붉혔어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아줌마, 그게 아니에요. 엄마 아빠가 지금 싸우시다가 아줌마가 와서…….”

그런데 말이 안 나왔어요. 아줌마는 엄마가 가져다주는 차를 마시면서 칭찬을 했어요.

이 집은 언제 보아도 부부가 잉꼬라니까. 아이 부러워. 우리 집은 잉꼬 흉내도 못 내요.”

엄마가 아빠한테 눈을 살짝 흘겨 뜨며 말했어요.

그 댁 어른은 언제 보아도 친절하시고 점잖으시고 예의가 바르시던데…….”

말도 말아요. 그 양반 남들한테는 기가 막히게 잘하지요. 그러면서 집안에서는 어떤 줄 아세요? 남한테 하는 것 반만 해주면 내가 날마다 업고 다닐 거예요.”

아빠가 말했어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럴 리가가 아니에요. 우리 영감은 진짜 속 다르고 겉 다르다니까요. 내 말 좀 들어보실래요?”

3. 깨 볶는 고소한 냄새

이 댁에 오면 언제나 깨 쏟아지는 소리에 깨 볶는 고소한 냄새가 가득한데 우리 집은 고드름 매달린 추녀 같고 시베리아 벌판 같아요.”

아빠가 재미있어 하실 때 지으시는 멋진 웃음을 띠고 말했어요.

우리 집이 그런 것 같습니까?”

깨 볶는 냄새가 가득한 집은 이 집뿐일 거예요.”

아줌마는 아빠를 웃으며 바라보셨어요.

참 이상해요. 나는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아줌마는 우리 집에서 깨 볶는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난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아줌마, 거짓말 하지 마세요. 우리 집에서 깨도 안 볶는데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그러나 어른들이 말씀하실 때는 어린것이 끼어들면 안 된다고 할머니가 말씀하셔서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어요.

아줌마는 또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 영감은 따리만도 못해요. 아무 밥이나 주면 좋아하고 밤이면 제 자리에 가서 잠자는 따리만도 못하다니까요.”

따리는 그 아줌마네 집에서 기르는 아주 작고 하얀 강아지인데요, 어미 쥐보다도 작아요. 그런데 그 집 아저씨가 그 강아지만도 못하다고 하면 말이 되나요?

아빠가 웃으시며 대답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따리만도 못하겠습니까?”

아니에요. 따리는 주는 대로 먹는데 영감탱이는 국이 짜다 생선은 바다로 갔나? 요새 소 값이 싸다는데 소는 어디로 갔나, 밥이 너무 되고……. 한 번도 얌전히 먹는 날이 없고 밤엔 술 마시고 밖에서 자고 오기도 하고……. 그러니 따리만도 못하다는 거 아닌가요?”

…….”

아빠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듣기만 했어요. 아줌마는 자기 집 이야기를 하다가 가셨는데요, 그 아줌마가 우리 흉을 보고 가신 것 같아요. 아빠도 그러셨거든요.

김치가 이게 뭐야, 너무 시고 짜고…….”

그러시면 엄마가 뭐라는지 아세요?

우리 김치가 다른 집 김치만 하겠어요? 당신이나 옆 집 영감이나 다를 게 뭐 있어요.”

옆집 아줌마가 우리 집 흉을 보고 가신 거라고 생각하는데 엄마가 아빠한테 그러셨어요.

당신이나 그 집 영감이나 똑같아요.”

뭐가 똑같다는 거요?”

음식투정 밥투정이 그렇고.”

그래도 나는 그 집 양반하고는 달라.”

뭐가 달라요?”

이때 할머니가 오시더니 내 귀를 잡아당기셨어요. 할머니는 귀가 안 들리신다고 말보다 몸짓으로 마음 표현을 하시는 거예요.

나는 할머니 방으로 갔어요. 그리고 할머니가 잘 보이시도록 입을 쏙 내밀고 물었어요.

할머니 왜?”

할머니는 내 입술을 보고 대답하셨어요.

엄마, 아빠가 안 좋은 말을 할 때는 그 자리에 있지 말고 할머니한테 와라.”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궁금한데도요?”

그런 것까지 다 알면 못 써.”

할머니는 엄마하고 아빠하고 싸워도 못 들으시니까 모르시지요?”

못 듣는 게 듣는 것보다 좋아. 노래하고 즐거워하는 소리는 듣고 싶지만 싸우고 짜증내는 소리는 안 듣는 게 편하다.”

그래서 할머니는 언제나 웃으시는군요.”

혼자 있을 때는 안 웃는다. 네 얼굴을 볼 때만 좋아서 웃는다. 너만 보면 세상이 다 좋아 보인단다.”

나도 할머니가 좋아!”

나는 할머니 품에 얼굴을 파묻었어요. 할머니는 아무 때나 웃는 게 아니고 나를 보실 때만 웃으시는 게 맞나 봐요.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아빠한테 짜증을 냈어요.

겨울이 오는데 어머니를 겨울에도 우리 집에서 보내시게 할 작정이시우?”

4. 귀머거리는 편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더우니까 여름 동안만 모신다고 하더니 겨울이 오도록 아무 말을 안 하니까 하는 소리 아니우?”

? 겨울에 따듯이 모시면 안 되나?”

우리만 자식이냐고요?”

그래도 우리 집이 다른 집들보다 넓고 좋지 않아?”

형님 댁도 좁지는 않아요. 그리고 고모네는 얼마나 잘 살아요. 여름 동안 잘 지내셨으면 딸네 집에라도 가실 생각을 안 하시고 어쩌자는 건지…….”

허허, 당신은 어머니 옆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구려.”

어머님이야 어차피 곁에 계시던 밖에 계시던 못 알아들으시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명준이도 들어요.”

그게 들으면 어때요.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하는 어린 걸 무슨 걱정이냐고요.”

명준이는 내 이름이에요. 할아버지가 밝고 멋지게 살라고 지어준 내 이름인데 좋지요? 할머니 입에는 명준이가 붙어 있었지만 귀가 안 들린다고 하시면서부터는 나를 부를 때는 귀를 잡아당기셨지요.

명준아 하는 것보다 할머니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내 귀를 꼭 집어 당기실 때가 더 재미있어요.

할머니가 입을 못 보시게 하느라고 엄마 아빠는 벽 쪽을 향해 말하고 할머니와 나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어요.

엄마가 물었어요.

언제 어머니를 다른 집으로 모실 거예요?”

우리가 모십시다. 어머니는 형님 집에서도 쫓겨나다시피 하여 오셨고 사위집이 자식 집이 아니잖소?”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요? 딸도 자식이에요.”

할머니는 귀가 먹어서 다행이에요. 엄마가 하는 소리를 다 들으시면 얼마나 서운하고 섭섭하고 슬프시겠어요. 나도 어리다고 아무 소리나 하시지만 듣고 입을 다물어서 그렇지 다 알아 듣는다고요.

나도 할 말을 하라고 하면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어요. 나도 귀에 들어오는 소리는 다 듣고 있다고요. 그런 것도 모르고 내가 어리다고 엄마 아빠는 나를 옆집 따리같이 생각하시는 모양이에요.

그런 소리도 듣지 못하고 담담한 눈으로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시는 할머니가 불쌍해요.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요.

나는 할머니가 다른 집으로 가시면 싫어요. 나를 가장 사랑해 주시고 나를 볼 때만 웃으신다는 할머니가 나를 떠나가시면 난 어떡해요?

그런 내 맘도 모르는 엄마는 아빠한테 또 오금을 박았어요.

어떡하실 거냐고요?”

 

5. 부엉이와 앵무새

그리고 몇 날이 지났어요. 할머니가 캄캄한 밤에 나를 꼭 끌어안으시며 말했어요.

할머니가 이야기해 줄까?”

옛날이야기야?”

그래, 옛날이야기다. 들어볼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이야기를 하셨어요.

아주 깊은 산 속에 맑은 호수가 있었더란다.”

.”

그 호숫가에는 예쁜 앵무새 한 쌍이 정답게 살고 있었더란다.”

앵무새가 뭐야?”

앵무새는 비둘기보다 조금 작고 아주 예쁘고 귀여운 새인데 그 새는 암컷과 수컷이 짝이 되면 둘이서만 같이 다니고 사랑을 한단다. 얼마나 정답게 사는지 한 마리가 죽으면 한 마리는 혼자 외롭게 살다가 죽는다는구나. 사람은 아내가 죽으면 남편은 다른 여자하고 결혼하지만 앵무새는 그렇지 않단다. 그래서 그 새를 사람들이 잉꼬라고 부르기도 하고 정다운 부부를 잉꼬부부라고 한단다.”

잉꼬부부가 그런 거야? 할머니는 앵무새를 보았어?”

보았지. 아주 예쁘고 귀여운 새인데 사람 목소리 흉내도 내는 것을 보았다.”

나도 보고 싶어, 할머니.”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볼 때가 있을 게다.”

그 새를 잉꼬부부라고 하는 거야?”

그렇지. 그런데 겨울에 그 잉꼬 한 쌍이 정답게 살고 있는 집에 늙은 부엉이 한 마리가 찾아온 거야.”

부엉부엉하고 밤에 산에서 으스스한 소리를 내는 새?”

그걸 어떻게 알았니?”

텔레비전에서 보고 소리도 들었어. 그런데 부엉이가 왜 잉꼬부부한데 왔어?”

늙은 부엉이가 살던 둥지가 무너져서 갈 데가 없었더란다.”

불쌍해, 부엉이.”

겨울이라 추어서 둥지를 예쁘게 꾸미고 정답게 사는 앵무새 집으로 가서 함께 살게 해 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마음 착한 앵무새 수컷이 겨울 동안만 같이 살다가 봄에 떠나라고 했단다.”

다행이다!”

그런데 앵무새 암컷이 화를 내면서 우리 살기도 좁은데 어디서 같이 살자는 거야하면서 안 된다고 못 들어오게 했더란다.”

…….”

내가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자 할머니가 물었어요.

명준이 자니?”

아니.”

할머니 이야기가 재미없어?”

재미있어.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부엉이는 할 수 없이 잉꼬부부 둥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산속 큰 나무 밑동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갔단다.”

거기는 춥지 않을까?”

추웠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앵무새 수컷이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그 나무 밑동에 있는 부엉이를 보았단다.”

반가웠겠네?”

할머니는 한참 동안 가만히 계셨어요. 그래서 내가 물었지요.

할머니 자?”

안 잔다.”

그런데 왜 가만히 있어?”

부엉이가 불쌍해서…….”

?”

부엉이가 얼어 죽었더란다.”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났어요. 불쌍한 부엉이 얼마나 추웠으면 나무 밑동에서 얼어 죽었을까요.

할머니도 부엉이가 불쌍하여 목이 멘 소리로 말했어요.

이제 그만 자자.”

나는 할머니 품에 꼭 안겨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할머니는 벌써 일어나 나가시고 안 보였어요.

아빠가 문 밖에서 아침 인사를 하셨어요.

어머니, 편히 주무셨어요?”

내가 대답했지요.

할머니 자리에 안 계셔요. 벌써 나가셨나 봐요.”

언제 일어나셨냐?”

몰라요.”

아빠가 화장실을 노크해 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며 할머니를 찾으셨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안 계신 거예요.

내가 크게 할머니를 불렀지요.

할머니이! 할머니이!”

할머니는 집안에 안 계셨어요. 아빠하고 나하고 할머니를 찾는데 옆집 아줌마가 급히 찾아와 물었어요.

혹시, 우리 따리 못 보셨나요?”

내가 말했어요.

아줌마, 우리 할머니 못 보셨어요?”

아줌마는 화난 것같이 말했어요.

조그만 게 뭘 안다고 이래? 우리 따리가 없어져서 속상해 죽겠는데 할머니를 왜 나한테 묻니?”

옆집 아줌마가 팩하고 돌아가자 아빠는 할머니를 찾으러 동네 공원으로 나가셨어요.

6. 할머니의 가출

아빠는 공원으로 경로당으로 돌아다니다가 돌아오셨어요. 엄마가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왜 혼자 오세요?”

아무데도 안 계시었소.”

할머니가 안 계신 집은 갑자기 빈집 같았어요. 나는 할머니가 친하게 지내시는 자라할머니 생각이 났어요.

엄마, 내가 할머니 찾아보고 올게요.”

네가 어디서 찾는다는 거야?”

자라할머니한테 가 볼 거여요.”

자라할머니가 뭐냐?”

목이 쏙 들어간 할머니인데 나만 보면 자라고 하시는 할머니가 있어요.”

너 혼자 다녀올 수 있겠니? 안 되겠다. 어딘지 나도 같이 가 보자.”

엄마는 걱정이 많이 되시는 것 같았어요. 자라할머니 댁은 동네 골목을 몇 번 돌아야 되거든요. 엄마가 물었어요.

이렇게 먼 곳을 너 혼자 오겠다고 했니?”

혼자 갈 수 있어요.”

엄마가 마을 게시판을 들여다보면서 들릴 듯 말 듯 하게 말했어요.

저게 뭐야? 개를 찾자고 사례금을 백만 원씩이나 준다고?”

내가 물었어요.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넌 몰라도 돼.”

개를 찾는다고 한 거야?”

그렇구나. 옆집 아줌마가 따리를 찾아주는 사람한테 백만 원씩이나 준다는구나.”

엄마, 우리도 할머니 찾아주면 돈 준다고 하면 안 될까?”

무슨 돈이 있어서…….”

따리 같은 작은 개를 찾는데도 돈을 많이 준다는데 할머니를 찾아주면 더 많이 주어야 할 거 아니야?”

……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따라오고 나는 자라할머니 집으로 갔어요.

할머니!”

할머니가 내다보셨어요.

아니, 명준이 아니냐?”

.”

웬일로 이렇게 일찍 온 거냐?”

엄마가 대답했어요.

죄송해요. 혹시 우리 어머님이 오셨나 해서 찾아왔습니다.”

할머니를……? 무슨 일이 있어요?”

집을 나가셨는데 어디 계신지 알 수가 없네요.”

자라할머니가 걱정스런 말을 했어요.

아니, 이 할망구가 어디로 간 거야? 귀도 안 들리는 사람이.”

여기도 안 오셨나 보군요. 할머니, 죄송합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빠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소?”

거기도 안 계신데요.”

혹시 형님 댁으로 가신 건 아닐까?”

아빠는 큰아버지 댁으로 전화를 했어요. 거기도 안 오셨다고 하자, 엄마가 고모님 댁으로 전화를 했지만 거기도 안 오셨다고 했어요.

잠시 후에 큰아버지가 오시고 뒤따라 고모님이 오셨어요. 고모님이 말했어요.

어머니를 어떻게 모셨기에 집을 나가시게 했어요?”

아빠가 대답했어요.

내가 잘못 모셔서 그랬다.”

고모가 엄마를 보고 말했어요.

올케가 또 뭐라고 하신 건 아니시지요?”

엄마가 골난 얼굴로 말했어요.

내가 뭐, 잘못 모시기라도 했나요?”

7. 늙은 부엉이

엄마는 거짓말을 하셨어요. 엄마는 아빠한태 할머니 모시기 싫다고 하신 거 나도 들어서 알아요. 그런데 잘못한 게 없다고 하시잖아요.

엄마, 거짓말 하지 마셔요.’

하고 싶었는데 맘대로 안 되어서 입을 꼭 다물었어요. 나보다 아빠가 더 잘 알고 계시니까 이럴 때는 아빠가 무어라고 해야 할 거예요. 그런데 아빠는 엄마편이 되었어요.

명준 엄마도 잘못한 거 없었다.”

저런! 아빠가 엄마편이 되면 나는 누구 편이 되어야 하나요?

이때 큰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우리 신문에다 천만 원이라도 걸고 어머님을 찾아보자.”

앞집 따리 찾는데 백만 원이라고 했는데 할머니를 찾는데 그것밖에 안 드려도 되는 걸까요?

큰아버지 말씀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나는 거예요.

늙은 부엉이가 고목 밑동으로 들어갔단다.’

이런 생각이 나면서 할머니는 틀림없이 고향으로 가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빠, 할머니 고향 아시지요? 할머니 고향으로 가 보시면 안 될까요?”

아빠도 큰아버지도 놀란 듯 나를 보시는 거예요.

네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줄 아느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대답을 어떻게 할지 몰라서지요.

큰아버지가 서두르셨어요.

명준이 말이 맞을 것 같다. 우리 모두 고향으로 가 보자.”

고모가 고개를 저으셨어요.

거기 떠난 지가 언제인데 어머니가 거기를 가시겠어요. 우리는 집도 땅도 다 팔고 여기 와서 사는데 거기 누가 있다고 가시겠어요.”

아니다. 늙으면 생각나는 것이 고향이다. 슬프고 어려우면 고향밖에 생각나는 게 없더라. 내 경험이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우리 차에 타고 큰아버지 차에는 고모와 큰엄마가 타시고 시골로 달려갔어요.

시골은 서울처럼 시끄럽지도 않고 파란 하늘이 호수처럼 맑고 조용했어요. 가을이라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아름답고 산에는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어요.

아빠 차는 동네 앞 느티나무 아래 세웠고 큰아버지 차는 동네 위로 올라가 넓은 빈터에 세웠어요. 차가 나란히 들어서도 마을은 조용하기만 하고 아무도 내다보는 사람이 없었어요.

아빠가 말했어요.

어느 집을 찾아가야 하나…….”

엄마가 생각난 듯 말했어요.

전에 여주 댁이라고 있었잖아요. 그분이 아직도 건강하실까……?”

그 집으로 가 봅시다.”

여주 댁 할머니 집 마당에 들어서자 평상에 두 노인이 앉아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누구겠어요. 할머니가 그 댁에 와 계셨던 거예요.

갑자기 아들과 딸이 몰려오자 할머니가 놀라 물으셨어요.

아아니! 여길 어떻게 알고 너희들이 온 거야?”

아빠와 큰아버지, 고모가 모두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어요.

어머니, 저희가 잘못 했습니다.”

너희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냐? 남 보기 부끄럽다 일어서거라.”

엄마가 할머니 손을 잡고 허리를 숙였어요.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거냐?”

저희와 함께 서울로 가세요.”

서울 안 간다. 난 여기가 좋아. 말동무도 있고 바람도 맑고 인심 좋은 동네를 두고 내가 왜 서울을 가겠느냐?”

엄마가 놀라운 듯 물었어요.

어머니, 귀가 안 들리셔서 답답했는데 어떻게 되신 거예요?”

난 서울이 싫다. 서울만 가면 귀가 멍멍하고 아무 소리도 안 들려서 답답했는데 이렇게 고향으로 돌아오니 귀가 뻥 뚫리고 코도 시원하고 좋구나.”

고모도 놀란 듯 말했어요.

엄마, 서울서는 일부러 귀가 안 들리는 척하신 거지요?”

아니다. 서울만 가면 난 귀가 멍멍하고 안 들린다. 여기 오니 귀도 잘 들리고 밥맛도 꿀맛이다.”

그래도 엄마 서울로 가셔야지요.”

이때 여주 댁이 끼어들었습니다.

모셔가고 싶어 하는 효성은 알겠는데 늙으면 나같이 늙은이가 아들 며느리보다 좋은 거라오. 나도 자식을 다 도시로 보내고 혼자 외로웠는데 마침 이 늙은이가 와서 나를 살맛나게 하여주고 있다오. 제발 모셔가지 마시게.”

할머니도 손을 저으셨어요.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해도 안 간다. 난 여기서 여주 댁과 살다가 죽을란다. 죽거든 장사나 지내다오.”

큰아버지가 다짐하듯 물었습니다.

어머니, 정말로 안 가고 싶으세요? 아우네 집이 불편하시면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안 간다. 서울 가면 귀가 안 들려서 못 산다. 여기 오니 귀도 잘 들리고 살맛이 난다. 나 좀 편히 재미있게 살다 가게 내버려 다오.”

할머니 고집은 꺾을 수가 없었어요. 아빠가 여주 댁 할머니한테 말했어요.

아주머니, 어머니께서 이러시니 아주머니 신세를 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봉투 꺼내어 드렸어요. 여주 댁 할머니는 아무 소리 없이 받으시더니 할머니한테 넘겼어요.

이거 받아 잘 챙기게. 두고두고 내가 과자 사 달라거든 군소리 말고 사 줘.”

큰아버지도 고모도 엄마도 주머니를 털어 할머니 손에 잡혀드렸어요. 할머니가 나를 잡아당겨 꼭 안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여기 와 있는 걸 네가 알려주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했어요.

네가 제법 생각도 할 줄 아는구나. 이다음에 네가 빨리 자라서 장가갈 때 올라가마.”

, 약속 꼭 지키셔야 해요.”

. 나는 서울만 가면 귀가 안 들렸어. 잘 가거라.”

나는 돌아오면서 생각했어요.

잉꼬부부와 부엉이 이야기를 해 주실 때 할머니는 내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으셨었어. 할머니는 서울이라 귀가 안 들리는 게 아니야. 할머니 맘 내가 다 알아. 그건 할머니하고 나의 비밀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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