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웃어도 무서워
올방개
나 여섯 살 때입니다. 아버지가 지게에 쟁기를 지고 소를 몰고 나가셨습니다.
“아부지, 어디 가?”
“논 갈러 간다.”
“나도 따라가면 안 돼?”
“너도 가고 싶으냐?”
“응.”
“따라와라.”
착한 소는 아버지 말을 참 잘 들었습니다.
‘이랴 이랴’ 하면서 고삐를 왼쪽으로 당기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당기면 오른쪽으로 가다가 ‘워워’ 하면 발길을 멈추고 ‘물러’하면 뒷걸음질을 치고 큰 눈을 끔벅거리며 ‘주인님 어디로 갈까요?’하고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자동차가 핸들을 왼편으로 돌리면 왼쪽으로 가고 브레이크를 밝으면 서는 것처럼 소는 아버지가 ‘이랴이랴’ 하는 소리와 ‘워워’ 하는 소리를 잘 알아들었습니다.
논에 도착한 아버지는 쇠등에다 멍에를 지우고 쟁기를 맨 다음 이랴이랴 하고 몰았습니다. 소는 꾸벅꾸벅 쟁기를 끌고 가고 쟁기에 벌렁벌렁 엎어진 논에는 기다란 골이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워워 하고 소를 세우더니 벌렁벌렁 엎어진 흙덩어리를 뒤지고 다녔습니다.
그러기를 얼마 후 뭔가 한 움큼 쥐고 와서 말했습니다.
“이거 먹어라.”
“뭐야, 아부지?”
“올방개다.”
“올방개가 뭔데?”
아버지는 넓적한 손으로 콩알같이 작은 올방개를 쓱쓱 닦더니 내 앞에 내밀었습니다. 어떤 것은 까맣고 어떤 것은 진한 갈색이 예쁘게 반짝거렸습니다.
“먹어 봐. 맛있다.”
나는 두 손으로 받아먹었습니다. 달작지근하고 고소하고 맛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맛있니?”
“응, 맛있어.”
아버지는 소처럼 착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좋아하셨습니다.
살코기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에서 소를 잡아 나누어 먹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누어 받은 쇠고기를 들고 와서 화로에다 숯불을 피우셨습니다. 그리고 적쇠에다 고기를 잘게 썰어 구워 놓고 물었습니다.
“이게 뭔지 아니?”
“뭐야 아부지?”
“소 살코기다.”
“살코기?”
“그래, 연하고 맛있다.”
그러면서 잘 익은 고기를 소금에 찍어 내 입에다 대주었습니다. 나는 넙죽 받아 물었습니다.
“꼭꼭 씹어 먹어라.”
“응.”
“맛있지?”
“응.”
아버지는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시면서 또 구워 주셨습니다.
“아부지도 먹어.”
“너 먹는 게 더 좋다. 난 안 먹어도 배불러.”
나는 고기를 꼭꼭 씹으면서 아버지가 참 고맙고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부지는 안 먹어도 배불러?”
“그래,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나는 아버지가 정말 안 먹어도 배가 부른가 보다 하고 구워 주시는 대로 다 받아먹었습니다.
내가 다 먹고 나자 아버지가 등을 돌려대셨습니다.
“어부봐.”
“업어줄 거여?”
“그래 많이 먹었으니 업어주어야 소화가 되지.”
아버지는 나를 업고 동네 길을 한 바퀴 돌면서 좋아하셨습니다.
“업으니까 좋으냐?”
“응.”
“날마다 업어 줄까?”
“응, 날마다.”
“알았다.”
고추밭
어느 날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버지는 지게에 호미만 가지고 들로 나갔습니다. 나는 또 따라 나섰습니다.
“아부지, 나도 갈까?”
“날도 더운데 집에 있어.”
“나 아부지 따라가고 싶어.”
“그럼 따라와.”
아버지는 고추밭을 매러 가신 것입니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데 아버지는 나를 밭 귀퉁이 나무그늘에 앉히면서 말했습니다.
“넌 여기 가만히 있어. 날이 더워서 그늘에 있어야 해.”
“응.”
아버지는 고추밭에서 풀을 뽑았습니다. 아주 가느다란 풀을 호미로 파지도 않고 쏙쏙 뽑으면서 저만큼 가셨습니다. 나는 나무 그늘에 앉아 달려드는 개미를 몰아내다가 개미가 귀찮아서 고추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밭에 난 가느다랗고 파란 풀들을 모두 뽑았습니다.
저쪽 끝까지 풀 뽑기를 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나를 보고 물었습니다.
“그늘에 있으라니까 뭐 하니?”
“나도 아부지처럼 풀 뽑았어.”
아버지가 다가와 내가 한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게 뭐냐. 어린 고추 싹까지 뽑아버렸잖으냐.”
난 아버지가 잘했다고 칭찬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넌 가만히 있는 게 날 도와주는 거야. 고추 싹을 이렇게 뽑아놓았으니, 허허허.”
아버지는 화가 난 얼굴이었지만 꾸짖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뽑아놓은 새싹을 다시 호미로 심으시면 중얼거렸습니다.
“이것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비라도 오면 모를까.”
나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울고 싶었습니다.
“아부지, 아앙!”
“왜 울어? 바보같이.”
아버지는 나를 업고 나무 그늘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아버지 등이 크고 좋다는 생각이 들면서 울음보다 즐거운 생각이 들어서 말했습니다.
“아부지 등은 소 같다.”
“뭐라고? 내 등이 소 같아? 하하하.”
“난 아부지가 좋아, 히히히.”
소꿉잔치
나 어렸을 때의 동네 아이들 이름은 참 재미있습니다.
여자애들 이름 가운데 변소에서 큰일 보다 낳았다고 뒤깐이라고 했다가 깐이라 하고, 달구경하다 낳았다고 달희, 여덜 번째 난 딸이라고 여들희, 마지막으로 낳았다고 말순이, 언덕 밭 매다 낳았다고 덕순이, 순하다고 순둥이, 미련하다고 미순이, 언니는 경숙이, 동생은 숙경이.
남자 이름도 그렇다. 근영이네 집에서 낳았다고 영근이, 달을 못 채우고 낳았다고 달수, 막내라고 끝동이, 명 길라고 명수, 복 받으라고 복동이, 삼대독자라고 씨동이.
남들 이름은 이런 꼴이지만 내 이름은 또 어떤가? 내 이름은 더 재미있습니다. 혁창이란 이름은 발음이 어려우니까 어른들이 제각기 다르게 불렀습니다.
석창이 헉창이 흑장이 석칭이 헉칭이, 혁이라는 발음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지금도 느끼고 있습니다. 전화로 내 이름을 댈 때는 저쪽에서 여러 소리고 반문합니다. 내가 답답하여 정확히 알려주는 방법, 심청이 심, 박혁거세 혁, 창문을 열고 노래합시다 창.
이렇게 하면 확실히 상대방이 알고 바르게 내 이름을 복창합니다.
내가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 것은 내 어렸을 때 여자들 가운데 누나뻘도 있고 동생뻘도 있고 남자들은 거의가 내 동갑내기가 많아서 언제나 우리 동네 골목은 시끌시끌했습니다.
날씨가 바다같이 맑은 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들일 나가시고 엄마는 장에 가시고 집안이 텅 비어 있을 때 앞에서 이름을 늘어놓은 동네 여자 남자 애들이 모두 우리 집 뒤란에 모여 소꿉장난을 했습니다.
배나무 그늘 아래 가마때기를 주르르 깔고 사방에서 주워온 사금파리로 잔칫상을 차렸습니다.
아이들은 덕순이 누나가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여자 애들은 사금파리 그릇에 물을 떠다 붓고 뒤란 바닥에 반드르르하게 자란 돌나물을 뜯어다 김치를 담그고, 빨간 봉숭아꽃 따다 곱게 썰어 고춧가루로 뿌리고, 채송화 노란 꽃을 따다 썰어서 계란꾸미를 만들어 얹고 큰 그릇에는 배를 따서 썰어 푸짐한 상을 차렸습니다.
배는 계란 크기만큼 예쁘게 자라서 가지마당 주렁주렁 매달려 따기도 좋았고 연해서 썰기도 좋았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덜 익어서 떨떠름한 배를 따서 한입씩 베어 먹기도 했습니다.
낮은 나뭇가지에 달린 배는 모두 따서 썰고 오리고 통째로 쌓아놓기도 하여 대단히 보기도 좋았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논두렁 풀을 뜯어다 가마때기 둘레에 담을 만들고 대문도 만들었습니다.
순덕이 누나가 달희를 새색시로 정해주고 남자 아이 가운데 키가 가장 큰 영근이를 신랑으로 정해 주면서 혼인식을 한다고 하자 아이들 깔깔거리는 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했습니다.
순덕이 누나가 영근이를 보고
“신랑 대문 열고 달희네 집으로 들어라.”
하는 말이 떨어지는 순간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놈들, 이게 다 뭐야? 배를 다 버렸잖아!”
그 한 마디에 아이들이 바짝 긴장하여 발딱 일어서서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그 순간 그렇게도 사랑 많은 아버지가 내 앞으로 다가와 내 따귀를 찰싹 때렸습니다.
“앗, 아부지!”
아버지의 서슬에 아이들은 꽁지가 빠지게 이리저리 참새들처럼 달아나고 나만 남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차려놓은 상을 엎고 울타리를 허물고 자리때기를 치우면서 말했습니다.
“너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야, 아부지.”
나는 그 순간 아버지가 무섭다고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를 더 때리지도 않고 꾸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딱 한 대 맞은 뺨이 나하고 아버지 사이에 무서운 골을 만들었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나한테 여전히 사랑을 베풀어 주셨고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나한테는 아버지가 무서운 존재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아버지가 웃는 얼굴로 말씀하셔도 일흔 살이 되도록 나는 무서웠습니다.
어른님, 어린 아이가 실수를 했을 때 절대 손찌검을 하시면 안 됩니다. 때린 후 어른이 아무리 잘해 주어도 한 대 맞은 매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습니다.(이 말이 하고 싶어서 이 동화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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