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웃어도 무서워 1 / 올방개
1. 올방개
나 여섯 살 때입니다. 아버지가 지게에 쟁기를 지고 소를 몰고 나가셨습니다.
“아부지, 어디 가?”
“논 갈러 간다.”
“나도 따라가면 안 돼?”
“너도 가고 싶으냐?”
“응.”
“따라와라.”
착한 소는 아버지 말을 참 잘 들었습니다.
‘이랴 이랴’ 하면서 고삐를 왼쪽으로 당기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당기면 오른쪽으로 가다가 ‘워워’ 하면 발길을 멈추고 ‘물러’하면 뒷걸음질을 치고 큰 눈을 끔벅거리며 ‘주인님 어디로 갈까요?’하고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자동차가 핸들을 왼편으로 돌리면 왼쪽으로 가고 브레이크를 밝으면 서는 것처럼 소는 아버지가 ‘이랴이랴’ 하는 소리와 ‘워워’ 하는 소리를 잘 알아들었습니다.
논에 도착한 아버지는 쇠등에다 멍에를 지우고 쟁기를 맨 다음 이랴이랴 하고 몰았습니다. 소는 꾸벅꾸벅 쟁기를 끌고 가고 쟁기에 벌렁벌렁 엎어진 논에는 기다란 골이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워워 하고 소를 세우더니 벌렁벌렁 엎어진 흙덩어리를 뒤지고 다녔습니다.
그러기를 얼마 후 뭔가 한 움큼 쥐고 와서 말했습니다.
2. 아버지의 웃음
“이거 먹어봐라.”
나는 처음 보는 것이라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이게 뭐야, 아부지?”
“올방개다.”
“올방개가 뭔데?”
아버지는 넓적한 손으로 콩알같이 작은 올방개를 쓱쓱 닦더니 내 앞에 내밀었습니다.
어떤 것은 까맣고 어떤 것은 진한 갈색이 예쁘게 반짝거렸습니다.
“먹어 봐. 맛있다.”
나는 두 손으로 받아먹었습니다. 달작지근하고 고소하고 맛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맛있니?”
“응, 맛있어.”
아버지는 소처럼 착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닐
3. 살코기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에서 소를 잡아 나누어 먹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누어 받은 쇠고기를 들고 와서 화로에다 숯불을 피우셨습니다. 그리고 석쇠에다 고기를 잘게 썰어 구워 놓고 물었습니다.
“이게 뭔지 아니?”
“뭐야 아부지?”
“소 살코기다.”
“살코기?”
“그래, 연하고 맛있다.”
그러면서 잘 익은 고기를 소금에 찍어 내 입에다 대주었습니다. 나는 넙죽 받아 물었습니다.
“꼭꼭 씹어 먹어라.”
“응.”
“맛있지?”
“응.”
아버지는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시면서 또 구워 주셨습니다.
“아부지도 먹어.”
“너 먹는 게 더 좋다. 난 안 먹어도 배불러.”
4. 안 먹어도 배부르다
나는 고기를 꼭꼭 씹으면서 아버지가 참 고맙고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바보스럽게 물었습니다.
“아부지는 안 먹어도 배불러?”
“그래,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나는 아버지가 정말 안 먹어도 배가 부른가 보다 하고 구워 주시는 대로 다 받아먹었습니다.
내가 다 먹고 나자 아버지가 등을 돌려대셨습니다.
“어부봐.”
“업어줄 거여?”
“그래 많이 먹었으니 업어주어야 소화가 되지.”
아버지는 나를 업고 동네 길을 한 바퀴 돌면서 좋아하셨습니다.
“업으니까 좋으냐?”
“응.”
“날마다 업어 줄까?”
“응, 날마다.”
“알았다.”
5. 고추밭
어느 날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버지는 지게에 호미만 가지고 들로 나갔습니다. 나는 또 따라 나섰습니다.
“아부지, 나도 갈까?”
“날도 더운데 집에 있어.”
“나 아부지 따라가고 싶어.”
“그럼 따라와.”
아버지는 고추밭을 매러 가시는 것입니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데 아버지는 나를 밭 귀퉁이 나무그늘에 앉히면서 말했습니다.
“넌 여기 가만히 있어. 날이 더워서 그늘에 있어야 해.”
“응.”
아버지는 고추밭에서 풀을 뽑았습니다. 아주 가느다란 풀을 호미로 파지도 않고 쏙쏙 뽑으면서 저만큼 가셨습니다. 나는 나무 그늘에 앉아 달려드는 개미를 몰아내다가 개미가 귀찮아서 고추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밭에 난 가느다랗고 파란 풀들을 모두 뽑았습니다.
저쪽 끝까지 풀 뽑기를 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나를 보고 물었습니다.
“그늘에 있으라니까 뭐 하니?”
6. 아버지 등은 소 같다
“나도 아부지처럼 풀 뽑았어.”
아버지가 다가와 내가 한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게 뭐냐. 어린 고추 싹까지 뽑아버렸잖으냐.”
아버지가 잘했다고 칭찬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넌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고추 싹을 이렇게 뽑아놓았으니, 허허허.”
아버지는 화가 난 얼굴이었지만 꾸짖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뽑아놓은 새싹을 다시 심으시며 중얼거렸습니다.
“이것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비라도 오면 모를까.”
나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울고 싶었습니다.
“아부지, 아앙!”
“왜 울어? 바보같이.”
아버지는 나를 업고 나무 그늘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아버지 등이 크고 좋다는 생각이 들면서 울음보다 즐거운 생각이 들어서 말했습니다.
“아부지 등은 소 같다.”
“뭐라고? 내 등이 소 같아? 하하하.”
“난 아부지가 좋아, 히히히.”
7. 소꿉잔치
나 어렸을 때의 동네 아이들 이름은 참 재미있습니다.
여자애들 이름, 변소에서 낳았다고 뒤깐이라고 했다가 깐이라 하고, 달구경하다 낳았다고 달희, 여덟 번째 난 딸이라고 딸딸이, 마지막으로 낳았다고 말숙이, 언덕 밭 매다 낳았다고 언덕이, 순하다고 순둥이, 미련하다고 미욱이, 쌍둥이 언니는 경숙이, 동생은 숙경이. 다 죽은 거 살려냈다고 부뜨리.
남자 이름도 그렇다. 근영이네 집에서 낳았다고 영근이, 달을 못 채우고 낳았다고 팔동이, 막내라고 끝동이, 명 길라고 장수, 복 받으라고 복동이, 삼대독자라고 씨동이.
남들 이름은 이런 꼴이지만 내 이름은 또 어떤가? 내 이름은 더 재미있습니다. 혁창이란 이름은 발음이 어려우니까 어른들이 제각기 다르게 불렀습니다.
석창이 헉창이 흑장이 석칭이 헉칭이, 혁이라는 발음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지금도 느끼고 있습니다. 전화로 내 이름을 댈 때는 저쪽에서 여러 소리고 반문합니다. 내가 답답하여 정확히 알려주는 방법, 심청이 심, 박혁거세 혁, 창문을 열고 노래합시다 창.
이렇게 하면 확실히 상대방이 알고 바르게 내 이름을 복창합니다.
8. 배나무 밑에 꼬마잔치
내가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 것은 내 어렸을 때 여자들 가운데 누나뻘도 있고 동생뻘도 있고 남자들은 거의가 내 동갑내기가 많아서 언제나 우리 동네 골목은 시끌시끌했습니다.
날씨가 바다같이 맑은 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들일 나가시고 엄마는 장에 가시고 집안이 텅 비어 있을 때 앞에서 이름을 늘어놓은 동네 여자 남자 애들이 모두 우리 집 뒤란에 모여 소꿉장난을 했습니다.
배나무 그늘 아래 가마때기를 주르르 깔고 사방에서 주워온 사금파리로 잔칫상을 차렸습니다.
아이들은 덕순이 누나가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여자 애들은 사금파리 그릇에 물을 떠다 붓고 뒤란 바닥에 반드르르하게 자란 돌나물을 뜯어다 김치를 담그고, 빨간 봉숭아꽃 따다 곱게 썰어 고춧가루로 뿌리고, 채송화 노란 꽃을 따다 썰어서 계란꾸미를 만들어 얹고 큰 그릇에는 배를 따서 썰어 푸짐한 상을 차렸습니다.
배는 계란 크기만큼 예쁘게 자라서 가지마당 주렁주렁 매달려 따기도 좋았고 연해서 썰기도 좋았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덜 익어서 떨떠름한 배를 따서 한입씩 베어 먹기도 했습니다.
9. 신랑 신부 장난
낮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배를 모두 따서 썰고 오리고 통째로 쌓아놓기도 하여 대단히 보기도 좋았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논두렁 풀을 뜯어다 가마때기 둘레에 울타리를 만들고 대문도 만들었습니다.
순덕이 누나가 달희를 새색시로 정해주고 남자 아이 가운데 키가 가장 큰 영근이를 신랑으로 정해 주면서 혼인식을 한다고 하자 아이들 깔깔대는 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했습니다.
순덕이 누나가 영근이를 보고
“신랑 대문 열고 달희네 집으로 들어라.”
하는 말이 떨어지는 순간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놈들, 거기서 뭣들을 하는 거야? 배를 다 버렸잖아!”
그 한 마디에 아이들이 바짝 긴장하여 발딱 일어서서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그 순간 그렇게도 사랑 많은 아버지가 내 앞으로 다가와 내 따귀를 찰싹 때렸습니다.
“앗, 아부지!”
10. 아버지는 웃어도
아버지의 서슬에 아이들은 꽁지가 빠지게 이리저리 참새들처럼 달아나고 나만 남았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우리가 정성껏 차려놓은 잔칫상과 풀로 꾸민 울타리를 허물고 자리때기를 치우면서 말했습니다.
“너,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나는 잔뜩 얼어서 고개를 뚝 떨어뜨렸습니다.
“야, 아부지.”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아버지가 마음에서 멀어졌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더 때리지도 않고 꾸중도 하지 않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웃으며 심부름도 시키고 밥도 먹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웃어도 무서운데 아버지는 전보다 더 나를 아껴주고 잘 때도 나를 안고 잤습니다. 그런데도 딱 한 대 맞은 뺨이 나하고 아버지 사이에 무서운 골을 만든 것입니다.
아버지는 나한테 여전히 사랑을 베풀어 주셨고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나한테는 아버지가 무서운 존재가 되신 것입니다.
11. 콩떡
하루는 아버지가 잔칫집에 가셨다가 돌아와 조끼주머니에서 콩떡을 꺼내셨습니다.
“너 콩 좋아하지? 그래서 콩떡 가져왔다.”
나는 콩이라면 무슨 콩이든 다 좋아했습니다. 그 중에 검은 콩을 좋아했고 봄에 나는 완두콩을 더 좋아했습니다.
아버지 조끼주머니에서 나온 검은콩 떡에는 담배 가루도 붙어 있고 담배냄새도 났습니다. 그래도 콩떡을 좋아하는 나는 콩 먹는 재미로 얼른 받아 입에 물고 물었습니다.
“아부지는 안 먹어?”
“난 먹고 왔다. 네 생각이 나서 가져왔다.”
그러시면서 사랑스럽게 웃으며 물었습니다.
“맛있지?”
“응, 맛있어.”
아버지는 웃으면서 나를 빤히 보셨습니다. 나는 아버지 웃는 얼굴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웃으시는 아버지 얼굴에 알 수 없는 뭔가가 숨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좋은 아버지가 왜 무섭게 보일까?’
12. 6.25와 다락속의 공포
내가 열 살 때 6.25전생이 터졌습니다. 북쪽 멀리서 들려오던 대포 소리가 우리 마을을 지나 남쪽으로 멀어지고 순식간에 우리나라엔 인민군이 들어와 면사무소를 점령하고 총을 멘 인민군과 빨간 완장을 두른 대장간 아저씨가 호령을 하며 동네를 헤집고 다녔습니다.
인민군은 동네 사람들이 가장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사람을 골라 동네 대장으로 세웁니다. 그렇게 선택받은 인민군 앞잡이 대장간 조씨가 빨간 완장을 차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조씨였는데 면사무소에서 인민교육을 받고 돌아와 총을 멘 인민군과 한 조가 되어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젊은 사람을 찾아내어 인민군대로 끌어갔습니다.
그 조씨가 총을 멘 인민군과 함께 우리 집으로 들어와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인민군에 끌려가기 싫은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구석방 다락에 숨었습니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겁쟁이가 되어 벌벌 떨었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아부지, 무서워?”
아버지는 내 입을 막으면서 눈짓을 했습니다.
13. 빨간 완장
부엌에 있는 엄마한테 조씨가 반말로 물었습니다.
“심○○이 어디 갔어?”
전에는 아버지 어머니한테 마님이라고 굽실거리던 사람이 갑자기 반말을 하자 어머니가 불쾌한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텃고개 누님이 아프다고 약 지어 가지고 갔네.”
“언제 와?”
어머니 화 난 음성.
“왜 반말이여?”
“왜 반말이냐고? 지금 세상이 바뀐 걸 몰라서 물어? 이 팔에 빨간 완장 안 보여? ○○이 언제 오느냐고?”
“내가 알어?”
“오는 대로 보고해. 안 하면 반동분자 이름에 올릴 거여.”
조가가 자리를 떴습니다. 아버지는 웅크린 채 주먹을 부르르 떨었지만 겁먹은 얼굴이었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난 무서워, 아버지도 무서워?”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한테는 강하고 기둥 같은 아버지인데 갑자기 작고 약하게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겁먹고 화난 얼굴로 중얼거렸습니다.
“저런 상놈의 자식이!”
14. 무구덩이 속의 아버지
그 다음 날 동네 아줌마가 무서운 소문을 전했습니다.
“교회 김집사를 인민군이 잡아다 산속에서 총살을 했대요.”
이유는 김집사도 아버지처럼 숨었다가 인민군한테 잡혔는데 대장간 조씨가 ‘이 새끼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자 인민군이 예수를 욕하고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르면 살려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러나 김집사는 하나님은 믿어도 사람은 안 믿는다고 대답하여 그 날로 끌려가 총살을 당한 것입니다.
빨갱이 앞잡이 대장간 조가는 제 세상이라고 신이 나서 대장간도 닫고 동네 사람을 잡아다 부역을 시키고 안 나오면 인민재판을 한다고 동네 사람을 모아놓고 몽둥이질을 했습니다.
낮에 일하고 고단하게 돌아온 사람들을 교회당에 모아 놓고 밤늦도록 공산당 교육을 시키고 참석하지 않은 사람은 반동분자라고 두들겨 팼습니다. 그렇게 살벌한 가운데 우리 아버지는 숨어서 살았습니다. 낮에는 비어 있는 무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숨고 한밤중에 나와 방에서 자고 새벽이면 무구덩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가 물었습니다.
“아부지, 나도 들어갈까?”
“안 돼, 구덩이 속은 아주 더워. 누가 보기 전에 돌아가.”
아버지는 날마다 그렇게 숨어서 지냈습니다.
15. 어르고 뺨치는 빨갱이
아버지를 잡으러 온 대장간 조씨가 나를 불렀습니다.
“얘, 늬 아버지 어디 숨었니?”
나는 가슴이 벌컥 뛰었습니다.
“몰라유.”
“늬 아버지 찾으면 내가 도와줄게. 말해.”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조씨가 눈을 부릅뜨고 을렀습니다.
“너 바로 대지 않으면 잡아갈 거야. 조그만 놈이 어른이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해?”
나는 절대 대답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조씨가 빨리 가기를 바랐습니다. 조씨는 웃는 얼굴로 다시 달랬습니다.
“늬 아버지 어디 있는지 말해주면 다른 애들은 다 잡아가도 넌 안 잡아갈게. 그러니까 말해.”
“우리 아부지 고모네 집에 가서 안 오셨어유.”
“오거든 나한테 알려라. 알았지?”
“야.”
총을 멘 인민군과 조씨가 돌아가고 나자 나는 아버지한테 가서 말했습니다.
“아부지, 다 갔어. 나와.”
16. 인민군보다 무서운 것
그 날도 아버지는 숨어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엄마가 쪄주는 감자를 가지고 가서 말했습니다.
“아부지, 감자 가져왔어.”
아버지는 밖으로 손을 내밀고 감자를 받으며 말했습니다.
“누가 보면 안 돼. 빨리 가!”
“아부지, 굴속 많이 더워?”
“더위보다 무서운 게 있다.”
“인민군보다 무서워?”
“그래.”
“인민군보다 무서운 게 어딨어?
“모기다.”
“모기가 인민군보다 무섭다고? 히히히.”
“빨리 가! 누가 보면 안 돼!”
“난 모기보다 인민군이 더 무서운데.”
아버지는 굴속에서 모기와 전쟁을 하고 있었는데 어린 나는 미련한 소리만 지껄인 것입니다. 동네 아이들은 교회당에 모여 인민군 노래를 배웠습니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 어쩌고 하면서 불렀지만 나는 그 애들 앞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불러댔습니다.
17. 벼이삭을 세는 공산당
아이들은 인민군 노래를 신나게 불러댔지만 김일성과 장백산이 뭔지도 모르면서 불렀고 어른들 역시 아무것도 모르면서 인민군이 무서워서 하라는 대로 불렀고 나는 그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면 안 된다는 것도 모르고 아이들한테 거부하는 몸짓으로 애국가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9월이 되자 인민군들이 논밭으로 나와 간평을 했습니다. 나는 아버지 대신 우리 논으로 나갔습니다. 인민군 서기는 논에서 잘 된 쪽을 골라 한 평의 벼이삭 수를 세고 한 이삭에 몇 알이 붙었는지 계산하여 추수한 다음 몇 가마니를 바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집 밭에 가서도 조 이삭을 세면서 추수하여 몇 가마니를 바치라고 명령하며 집집마다 공출할 양을 지시하며 말했습니다.
“우리 인민공화국은 나라에 바친 곡식을 부자든 가난뱅이든 똑같이 배급하여 줄 것이오. 그리 알고 충성하시오.”
간평을 끝내고 그들이 돌아가자 한 어른이 말했습니다.
“뼈 빠지게 일하여 노는 사람이나 우리나 똑같이 배급을 탄다면 누가 일을 해. 별놈의 세상 다 보겠네.”
그리고 며칠 안 있어 9.28인천상륙작전으로 세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었습니다. 빨갱이 조씨의 신세는…….
18. 이 새끼 어디로 달아나?
면사무소를 장악했던 공산당 간부들이 모두 달아났습니다. 장총을 메고 거들먹거리며 위협하던 인민군도 달아났습니다. 세상이 뒤바뀐 것을 안 대장간 조씨도 달아나려고 대장간에서 짐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안 동네 청년들이 몽둥이를 들고 대장간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조가 나와라! 조가 나와!”
동네 사람들 소리에 놀란 조씨는 달아나려고 뒷문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미리 막고 있던 청년들이 멱살을 잡았습니다.
“이 새끼 어디로 달아나?”
조씨는 청년들에게 잡혀 마당으로 끌려나왔습니다. 온 동네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것을 본 조씨는 죽을상을 하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빌었습니다.
“동네 마님들 잘못 했어유. 용서해 주셔유.”
사람들이 당장 때려죽일 기세를 보이자 조씨는 이리저리 올려다보며 싹싹 빌었습니다.
“마님들, 마님들 살려주셔유. 제가 잘못 했어유.”
이장이 물었습니다.
“공산당이 뭔지 알고나 날뛴 거냐?”
“저는 높은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만 했어유.”
19. 마님, 마님, 살려주셔유
성질 급한 황씨 아저씨가 소리쳤습니다.
“이장님, 개만도 못한 놈한테 무슨 말을 하십니까. 당장 때려죽이자고요!”
다른 아저씨도 조씨 따귀를 때리면서 소리쳤습니다.
“굴러들어와 동네 사람 덕으로 산 놈이 빨간 완장을 찼다고 상전 노릇을 해? 죽일 놈!”
이장이 말렸습니다.
“한글도 모르는 사람이 한 짓이니…….”
다른 사람이 말을 막았습니다.
“그런 소리 마세요. 한글 아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놈은 동네 사람을 종 부리듯 부역을 시킨 놈입니다.”
다른 청년이 몽둥이로 조씨 어깨를 내리쳤습니다.
“이 쌍놈의 새끼, 우리 아버지 이름을 함부로 불러댔지? 그 아가리로 한 번 더 불러 봐라. 당장 죽여 버릴 테니!”
조씨는 퍼질러 엎어지며 죽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구구 마님, 마님들, 살려주셔유.”
이장이 점잖게 말했습니다.
“공산당 앞잡이질한 건 밉지만 어쩌겠소. 죽이진 말고 동네에서 내보냅시다.”
20. 쫓겨난 빨간 완장
화가 풀리지 않은 동네 사람들이 몽둥이로 대장간을 와장창 퉁탕 때려 부수었습니다. 조씨는 고개를 들고 무너지고 깨지는 것들을 바라보며 겨우겨우 일어나 싸놓은 보따리를 끼고 한쪽 어깨를 늘어뜨린 채 남쪽 길로 정처 없이 떠났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뒷동산으로 올라가 그 사람이 가르마처럼 가느다란 들길을 거지처럼 멀리 가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음 약한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습니다.
“저게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까.”
내가 물었습니다.
“아부지, 저 사람이 아버지 이름을 막 불렀는데 그래도 불쌍해유?”
“불쌍하지. 공산당이 쳐들어오기 전에는 동네 사람들한테 마님 마님 하면서 잘하고 호미, 곡괭이, 쟁기보습 고장이 나면 잘 고쳐 주어서 편했는데, 저 사람이 떠났으니 대장간도 없어질 것이고…….”
“아부지도 저 사람이 미웠지유?”
“미웠지만 무서운 공산당이 한 짓이 더 밉다.”
나는 바보 소리를 했습니다.
“아부지는 공산당보다 모기가 더 무섭다고 하셨지유?”
21. 후퇴하는 인민군 무리들
“그건 무구덩이 속에서 그런 거다.”
이렇게 말하면서 아버지는 조씨가 간 쪽을 가리켰습니다.
“저기 좀 봐라.”
“야?”
“저기 군대가 떼를 지어 오고 있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누런 군복의 군대가 가까이 왔습니다. 아버지는 겁먹은 얼굴로 내 손을 잡고 집으로 달려가 무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면서 말했습니다.
“넌 방으로 들어가 숨어라.”
나는 아버지 말대로 다락으로 올라가 숨었습니다. 그리고 꾸벅거리고 졸다가 이웃집 할아버지 목소리에 깨었습니다.
“이 집에는 아무도 없나?”
나는 얼른 내려가 대답했습니다.
“저 여기 있어유.”
“너의 아버지는?”
“왜유?”
“후퇴하는 인민군이 배티고개 쪽으로 넘어갔다.”
나는 그제야 마음 놓고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아부지, 나와.”
22. 양코배기
아버지가 무구덩이 속에서 나왔습니다.
“자네는 이 더위에 그 속에 숨어 살았나?”
“야, 조가가 날마다 잡으러 오기 때문에 낮에는 저 속에 숨어 살았지유.”
“잘했네. 안 그랬다가는 잡혀갔을 테니까. 이 동네에서 세 사람이나 잡혀갔지 않나.”
이때 아랫집 키다리 아저씨가 달려와 할아버지한테
“아저씨, 우리 집으로 가 보셔유.”
“왜 무슨 일이 있나?”
“인민군이 저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그 쪽에서 양코배기가 나타나 우리 동네로 들어왔습니다.”
“양코배기가? 그래 어디 있는가?”
“달아나는 인민군이 떼를 지어 지나가는데 그쪽에서 양코백기가 살아왔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위험하여 우리 집 헛간 짚더미 속에 숨겼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키다리 아저씨네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나는 따라가지 않고 집에서 엄마가 쪄놓은 감자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돌아와 물었습니다.
“감자 쪄놓은 것 다 먹었니?”
23. 마을 사람들의 애국심
내가 감자를 내놓으면서 물었습니다.
“아부지, 왜?”
“양코배기 갖다 주어야겠다.”
아버지가 감자를 가지고 가고 키다리 아저씨는 보리밥을 지어 된장에 풋고추를 미군병사한테 주었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왔습니다. 나는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아부지가 준 감자 잘 먹어?”
“그래, 아주 맛있게 먹더라. 부대에서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느라 많이 굶어서 배가 고픈 것 같았다.”
“양코배기가 뭐라고 말했어?”
“벙어린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우리가 하는 말에는 귀가 먹었는지 대답을 안 했다. 벙어리가 귀까지 먹어서 길을 잃은 모양이더라.”
인민군들은 며칠 동안 우리 동네를 지나 배티고개로 넘어갔습니다. 우리나라가 공산당을 물리쳤다고 좋아하는 어른들은 양코배기가 인민군한테 걸리면 위험하다고 열흘이 넘도록 숨겨놓고 음식을 만들어 먹였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파병된 미군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한 마음이 되어 미군을 보살피며 쉬쉬하고 숨겼습니다.
24. 구걸하는 인민군 낙오자
무리를 지어 후퇴하는 인민군은 며칠 사이에 다 지나가고 이따금 뒤떨어져 허둥거리고 동네를 지나는 낙오자 인민군은 아무 집에나 들어가 밥 좀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우리 집에도 비쩍 마르고 왜소한 인민군 하나가 들어와 아무거나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불쌍하다는 눈으로 그 사람한테 물었습니다.
“몇 살이나 되었수?”
“열일곱 살이우다. 배가 고파 죽갔시요. 아무 거나 좀 주시라요.”
“밥도 없고 먹을 것이라곤 감자밖에 없는데 쪄줄 테니 기다리슈.”
엄마가 감자를 바가지에 담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자 인민군이 달려들며 말했습니다.
“내래 날 감자라도 먹겠시우다. 그냥 주시라요.”
그러면서 날 갑자를 우적우적 먹다가 몇 개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습니다.
“고맙수다. 급해서 갈기요. 안녕히.”
그 인민군은 감자를 씹으면서 북쪽 산속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엄마가 중얼거렸습니다.
25. 사랑받는 사람 미움받는 사람
“불쌍한 것. 어린 것이 총을 질질 끌고 가니 살아서 돌아갈 수나 있을까?”
나는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밉다는 생각이 더했습니다.
“엄마, 저 놈은 우리 적군이어유. 그런데 불쌍하다고 감자까지 줘유?”
“적군이지만 아들을 내보낸 엄마는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니. 김일성이가 나쁘지 끌려나온 애들이 무슨 죄가 있니.”
“그래도 때려죽이고 싶은 공산당인데…….”
얼굴이 새까맣고 깡마른 인민군은 자기키보다 긴 장총을 끌고 다른 인민군이 간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쩌면 그 인민군은 산을 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엄마는 그가 안 보일 때까지 걱정스럽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동네 어른들은 숨기고 있는 미군을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부대로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의논했습니다. 그 결과 미군만 내보내면 인민군과 만났을 때 인민군은 총을 가지고 있고 미군은 맨몸이라 위험하다고 마을 청년들이 앞장서서 가고 안전을 확인 후에 미군이 따라오게 하자고 하고 안성서 평택까지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끼리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미군을 안전한 곳까지 안내하고 왔습니다.
26. 중공군 인해전술과 1.4후퇴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국군과 유엔군은 평양을 점령하고 압록강까지 쳐올라갔다는 소식에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되자 중공군 백만대군(80만명)이 인해전술로 반격해 와 아군이 후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겨울의 1.4후퇴! 중공군은 무기도 없이 죽창만 들고 밀물처럼 몰려왔다고 했습니다. 중공군은 아군의 충에 앞사람이 맞아 죽으면 그 시체를 밟고 넘어 다른 사람이 총받이가 되어 죽어 쓰려지는 전술에 국군과 유엔군은 감당할 수 없어 밀리게 된 것입니다.
한여름에 피란보따리를 메고 남으로 내려갔다가 돌아와 자리 잡은 사람들이 다시 한겨울에 고향을 등지고 피란길에 오르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당시 서른 살 아래는 현역군으로 가고 서른 살에서 서른여덟의 젊은이들은 보급대로 동원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서른두 살, 보급대로 나가고 엄마는 서른 살, 동생은 7세와 3세로 남들은 피란을 떠나는데 우리 가족은 길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가 나한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시니 네가 가장이다. 동생들 돌보고 나뭇광에도 나무가 떨어지지 않게 해놓아야 한다. 알았지?”
27. 미련퉁이 나무꾼
이렇게 말한 어머니가 덧붙였습니다.
“나뭇광에 땔나무가 없으면 가난해지고 땔나무가 가득하면 부자가 된단다. 알았지?”
“응, 엄마.”
그 날부터 지금까지 한번 결심하면 변할 줄 모르는 나는 미련퉁이입니다.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아버지가 벗어놓은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산으로 갔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어울려 놀기에 바빴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지요. 아버지의 지게를 짊어지면 긴 지게 다리가 끌리고 부딪쳤습니다. 어떤 때는 지게 다리에 걸려서 넘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무를 해왔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나뭇광도 차고 헛간도 차고 집 둘레 뜰에서 추녀 밑까지 빈 곳이 한 곳도 없도록 땔나무로 채웠습니다.
마을사람들이 나무만 해대는 나를 보고 놀라워했습니다. 어린것이 일욕심이 많은 거냐 아니면 미련한 것이냐 하고.
그렇듯 지금도 나는 출판을 하면서 책을 서고마다 창고마다 산더미처럼 채워놓고 있지만…….
1953년 정전협정이 이루어진 해 아버지가 돌아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집안 가득한 나무를 보고 물었습니다.
28. 학교 그만 가
“이 나무가 웬 것이냐?”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저 애가 날마다 해온 것이라우.”
아버지가 나를 내려다보시며 웃으셨습니다.
“네가 해왔다고?”
“야.”
아버지는 또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아부지는 내가 해온 것 같지 안어유?”
“너같이 작은 것이 저렇게 많은 나무를 해왔다는 게…….”
엄마가 끼어들었습니다.
“쟤는 학교 가는 일 외에는 밥만 먹으면 나무를 해오고 놀지도 않았다우.”
아버지는 그 날부터 나를 대견스럽게 보셨는데 4학년이 되었을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너 한글 다 알지?”
“야.”
“편지도 쓸 수 있지?”
“야.”
“그러면 됐다. 이제 학교 그만 가.”
29. 일소나 사람이나
나는 기가 막혔습니다.
“아부지, 내가 반장인데 학교를 안 가면 안 되어유.”
“네가 안 가면 다른 애가 반장할 거다. 내 말대로 학교는 그만 가.”
나는 속이 상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동안 웃어도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무서웠습니다.
나는 1학년 때부터 반장을 했는데 갑자기 학교를 못 간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 아부지가 학교 그만 가라고 하는데 어떡해?”
엄마도 기가 막힌 듯 당장에 아버지한테 항의를 했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 아이를 왜 학교를 그만 다니라고 했우?”
“글자 읽을 줄 알고 편지 쓸 수 있으면 된 거여. 지금 학교를 못 다니게 해야지 머리가 더 커지면 안 되는 거여.”
“뭐가 안 된대유”
“일소를 못 봤어? 때를 놓치고 일소한테 일을 잘못 가르치면 엇배기가 되어 아무 쓸모없이 되는 거여.”
“아들이 일소라는 말이우?”
“일소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여.”
30. 농사꾼 아들은 농사를 배워야
엄마는 지지 않고 대꾸했습니다.
“자식을 일소로 만드는 부모가 어디 있어유?”
아버지는 동네 형들 이름을 대며 대답했습니다.
“저 아랫말 중구, 건너 마을 민수, 또 광구를 보고도 몰라?”
“그 사람들하고 우리 애하고 같아유?”
“그 애들이 학교를 안 다녔으면 지금 상일꾼이 되어 부모 속 썩이지 않을 것이여. 보고도 몰라?”
“그 사람들은…….”
“이 멍텅구리 같은 여편네야. 섣불리 공부시키면 날마다 빈둥거리고 일은 안 하고 대가리에 머릿기름이나 번드르르하게 바르고 건달노릇을 한단 말이여. 쟤한테 그 꼴이 보고 싶어?”
“그 집 애들은 공부를 못해서 학교에서도 꼴찌만 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도 뒷돈으로 다녔기 때문에 취직도 못해서 빈둥거리지만 쟤는 달러유.”
“다를 게 뭐 있어. 공부하면 다 그 꼴이여. 농사꾼 아들은 농사를 잘 배워야 밥도 안 굶고 제대로 사는 거여.”
“아무리 그래도 학교는 보내야 해유.”
엄마와 말씨름을 하던 아버지가 나한테 다짐을 받았습니다.
“너 내가 한 말 잘 들었지?”
31. 학교가 그렇게 좋으냐
나도 보아서 압니다. 동네에서 소 팔고 땅 팔아 고등학교까지 보냈으나 취직도 못하고 농사일도 안 하고 빈둥거리며 동네 누나들이나 괴롭히는 형들을 보아서 압니다.
아버지 말이 맞습니다. 섣불리 공부해서 건달이 되는 것보다는 농부가 되어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일하는 것이 효도일 것입니다.
아버지한테는 그런 형들을 보면서 농부 아들은 농사꾼으로 길러야 한다는 것이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초등학교라도 졸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는 아버지도 엄마도 일어나기 전에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 들고 학교로 갔습니다. 엄마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날마다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 밥을 짓고 학교로 도망쳤습니다.
그렇게 아버지 말을 안 듣고 학교에 가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가 얼마나 화를 내실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아버지 눈치를 살피자 웃어도 무서운 아버지가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학교가 그렇게 좋으냐?”
32. 국군대장이나 작가가 꿈
나는 머리를 숙이고 대답했습니다.
“야.”
아버지가 화를 벼락같이 낼 줄 알았는데 여전히 웃어도 무서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내가 학교 가지 말라고 해서 골났지?”
“야.”
“나는 네가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야. 제 이름만 쓸 줄 알고 구구단만 외울 수 있으면 세상 사는데 불편할 거 아무것도 없어. 촌에서 태어났으니 제대로 된 농사꾼이 되어야 하는 거다. 알았지?”
“야.”
“내가 보기에 너는 일을 꾀 안 부리고 잘하는 것 같다. 다른 집 애들은 몰려다니며 노는데 너는 집안 구석구석 나무를 해다가 쌓아놓은 걸 보고 너는 장차 큰 농사꾼이 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다.”
<큰 농사꾼?> 나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물었을 때 국군 대장이 되든지 아니면 셰익스피어 같은 유명한 작가가 될 거예요 했는데 아버지는 나를 일등 농사꾼으로 만들고 싶어 하시니 아버지한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33. 나는 배신자
나는 국군대장도 유명한 작가의 꿈도 버리고 아버지가 바라는 큰 농사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초등학교를 마치기까지 밤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낮에는 들로 나가 일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아무 일이나 열심히 잘하니까 언제나 나를 보시면 웃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웃는 얼굴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서운 그늘이 있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 경기도도지사 상을 받았습니다. 모두들 공부 잘한다고 칭찬했지만 나는 조금도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중학교로 진학을 하는데 나는 논밭으로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중학생 모자를 쓰고 학교 가서 영어도 배우고 한문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다 포기하고 묵묵히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들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몰래 말했습니다.
“너를 농사꾼 만들기가 아까워. 내일 아버지 몰래 외갓집으로 가라. 내가 외삼촌한테 다 말해 놓았어. 가서 공부해라.”
외삼촌은 초계정씨 문중의 일을 보시는 유지로 학자였습니다. 그렇게 나는 외가에서 아버지께 배신하고 중,고학생 모자를 쓰고 공부하여 농사꾼이 못 되었습니다.(다음은15년뒤에)
34.
13. 3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
14. 담배와 오해
15 .쌀220 사과드림
16. 잔치집에서
17 .집에 모시고/물 축여라
18. 집에 가서 편히 자
19. 일곱 살의 얼굴
20.
외로운 아버지
어머니 안 계신
횅한 고향집
아버지 쪼그라진
얼굴
찌그러진 냄비
국이 타도록 조시다가
새까만 냄비
숙이고 앉아 닦으시는
처량한 어깨에
달아난 세월이 걸려
찢어진 헝겊처럼 흔들린다
눈물처럼 슬프게
메마른 인정 속을
모질게 살다 가신
어머니 손자국은
아직도 문고리에 명주처럼 남아 있다
아버님 서슬은
부서진 지게처럼 녹이 슬었다.
1999년 4월 월간 목회171쪽
위 시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내시고 다 떠난 고향집을 혼자서 지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들의 고양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젊은 날의 기개와 꼿꼿함이 사라지고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이 오직 찢어진 헝겊처럼 흔들거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시평 김지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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