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도 설명했지만 궁전은 태양왕 루이 14세가 한번 멋지게 살아보고 싶어 백성의 고혈로 지은 건물이다. 처음에는 주로 사냥을 즐기던 곳에 있는 작은 별장에 정원(지금의 후원)을 설계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루이 르 보(Luis Le Vau)가 1661년에서 1665년까지 르메르시에가 세운 기본건물을 증축하였다. 그 뒤 1676년부터 1688년 사이에 아르두엥 망사르(Jules Hardouin Mansart)가 대확장공사를 실시하여 남북으로 계속되는 거대한 익부를 건축하였는데, 원래 서쪽 테라스였던 부분을 "거울의 방"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이 증축때였다.
마지막 증축은 1756년에서 1764년 사이에 가브리엘이 맡았는데, 북쪽 끝부분에 오페라극장(궁정극장)을 세우는 것이 목표였다.
건축사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역시 바로크건축의 대표작 중 하나인데, 당시의 바로크 건축은 요즘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비견할 정도로 파격적인 양식이었다. (바로크란 말의 의미가 이상하다, 낯설다란 뜻이란다)
베르사유 궁전은 크게 3개로 나누어져있으며, 궁전을 일일이 둘러보려면 하루이틀로 모자란다고 할 정도로 큰 규모지만, 대개 "거울의 방"은 꼭 봐야할 곳으로 꼽고있다.
벽화
프랑스군이 승리한 그림을 수백 개의 벽화로 그려 놓은 전쟁승리사 벽화실
벽화를 많이 찍고 싶었는데 이때 카메라 바테리가 나가서 중단
아래 그림은 손자가 찍은 것을 사용
궁전 동편에 있는 냅륜 분수대
대트리아농(Grand Trianon)과 소트리아농(Petit Trianon)으로 불리는 작은 궁 두 개가 더 있는데, 대트리아농은 루이 14세가 은거용으로 지은 별장이며 현재는 영빈관으로 활용되고 있고, 소트리아농은 루이 15세가 자신의 애인(...몰래한 사랑?)을 위해 지은 건물인데 후에 마리 앙트와네트 왕비의 별궁이 되었다.
원래 이 지역은 늪지대였으나 그걸 메꾸고 집터를 잡았으며, 정원의 분수를 위해 강물의 물줄기까지 돌려놓을 정도로 사람-돈을 쏟아부은 건물이기도 하다. 공사 기간 중 루이 14세는 공사현장 순찰을 주요일과로 삼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는데, (관심인가 간섭인가) 결과적으로 이때의 무리가 루이 16세 시절 프랑스혁명으로 터져나왔다고 본다.
왕비의 집으로 가는 길목은 잘 가꾼 수목 공원이었다.
왕비의 집 실내
왕비 화장대
왕자 침상
왕비 화장실
왕비 애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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