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40년 (2)/ 인사로 하는 거짓말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름 없는 작가들은 슬펐다. 이름이 나 있으면 출판사가 달라붙고 아니면 외면.
무명작가는 출판사에 돈이나 싸가지고 가면 책을 만들어 줄까 아니면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지금도 아직 살아 계신지 모르는 숙대 교수였던 김교수님의 수필집을 만들면서 겪은 이야기다. 60년대는 수필집이라는 것이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고 작가래야 안병욱, 김소운, 김형석 교수 등 손꼽을 정도.
지금은 수필을 한 문학 장르로 인정하고 무수한 수필가가 나오지만 40년 전만 해도 수필이 문학 장르에 들 수 있느냐, 수필도 문학이냐 하는 시비가 심심치 않던 때였다.
김교수는 수필집을 내기 위해 상도동 집을 40만원에(1967년 당시는 지금의 800만 원이 넘을 금액에 해당) 저당 잡히고 돈을 만들어 책 2천부를 박았다.
책을 내면서 김교수는 벅찬 꿈을 꾸고 있었다.
아는 사람들에게 수필집을 낸다고 하니 모두가 축하한다면서 누구는 20부를, 누구는 50부를 사 주마고 하여 사주겠다는 숫자를 헤아려 보니 3천부 이상이 필요했다. 그러나 허수를 감안하여 2천부만 일단 출판하기로 했다.
2천부를 정가 700원에 다 팔면 140만원이다. 그러면 제작비 40만원을 갚고도 100만원이 남는다. 이 정도면 명예 얻고 수지맞는 장사 아닌가.
그러나 인심은 책을 내기 전과 후가 천당과 지옥이다. 수십 부씩 팔아준다던 사람들이 막상 책을 내어 배부하려 하니 부수를 50%씩 줄여서 달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전혀 외면해 버렸다.
“인사로 하는 말을 진심으로 하는 줄 믿은 내가 바보였어.”
이것이 김교수의 실망담이었다. 언제나 착하게 웃으며 다니시던 키다리 교수님의 다리에는 힘이 쏙 빠졌고 책 몇 권 보내놓고 수금이 될까 하여 가는 곳마다 책값은 반도 안 걷히고 선배 후배들이 보내는 측은한 눈길을 의식하며 감사하다고 술이나 한잔 하자, 식사나 하자 대접하다 보니 술값이 책값을 상회했고 차라리 안 받음만 못했다.
그뿐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는 증정본을 주었더니 ‘당연하지, 제가 책을 냈으니 내가 받아주지’ 하는 식으로 받는가 하면 증정본을 주지 않아 책을 못 받은 친구들은 ‘네가 그럴 수가 있느냐? 너와 나 사이에 그 책값 몇 푼이나 된다고 누군 주고 누군 안 줘?’ 하여 인심마저 잃게 되었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서운 도둑이더라구.”
이렇게 되자 남은 책값을 받으러 갈 자신감도 잃고 받아 보았자 교통비와 시간 낭비일 뿐이라 모두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김교수님은 은행에서 꾼 돈을 못 갚아 집을 줄이고 기자촌으로 이사를 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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