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게시판/출판인생 40년

(3) 오천 원짜리 인생

웃는곰 2007. 10. 15. 11:04

출판인생 40년 (3) / 오천 원짜리 인생들

 

60년대는 신문 광고비가 1단 5행에 5천원이었다. 한 줄에 천 원꼴이다. 나는 그 광고를 보고 출판사를 옮겼다. 세 사람을 쓴다는데 수십 명이 모였지만 운이 좋은 것인지 뭔지 거기 합격을 했다.

 

당시는 신문에 아무리 작은 광고가 나도 사람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만큼 일자리가 없었다. 초봉은 거의가 만 오천 원.

 

입사하고 나는 공연히 옮겼다고 후회했다. 세상에 나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책을 만드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한문투성이에 쓰고 있는 용어는 하나도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외국어 대학에 교수로 계시는 형님한테 모르는 용어들을 정리하여 가르쳐달라고 했다. 형님도 처음 보는 말들이라며 며칠 동안 이 사람 저 사람 교수들에게 물어 보았지만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들은 사전에도 없었다.

 

스물 세 명이 빽빽이 등을 돌리고 벽쪽을 향해 둘러앉아 원고를 쓰고 교정을 보는 자리에서 내 자리는 맨 끝이었다. 나는 용어들을 몰라 가까이에 있는 윤원택 선생한테 나직이 물었다.

 

“선생님, 무림이 무엇인가요?”

“저도 모릅니다. 그냥 적당히 원고대로 씁니다.”

“그럼 오성의 공력은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건 열 중에 반 쯤 쓴다는 말 같습니다.”

“장풍은 무엇인가요?”

 

“손바닥으로 미는 바람입니다.”

“지풍은 무엇인가요?”

“손가락으로 뭐 어쩌는 모양인데 잘 모릅니다.”

“중원은 무엇인가요?”

 

이때 주간으로 있는 김하빈이라는 선생 한 마디.

“별 *같은 것들이 쥐뿔도 모르면서 뭘 한다고 껍적거려?”

그러니까 곁에 있던 편집부장이 한 수 더 떴다.

 

“갈아야지 잘못 뽑았어. 오천 원이면 얼마든지 구하는데 뭘.”

주간 말씀.

“당장 잘라버려, 오천 원이면 되는 걸.”

가장 끝자리에 새까만 신입자들 셋이 그 소리를 들었고 그 말은 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나는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아직도 내가 못 다 배운 것이 많다는 것만 생각하고 그들을 원망할 생각은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오천 원이면 얼마든지 잘라내고 새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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