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속의 아이들. 15 / 프란테스카와 이승만 신혼시절 ⑥
나는 조심스러워서 과속을 제지했지만 남편은 아랑곳없이 대낮에 헤드라이트를 켠 채 신호를 무시하고 논스톱으로 마구 달렸다.
곧 두 대의 기동경찰 오토바이가 사이렌을 울리며 우리 차의 뒤를 따라왔다.
남편은 더욱 무섭게 속력을 내며 달렸다. 나는 간이 콩알 만해지고 등과 손에 땀이 나다 못해 새파랗게 질렸으나 남편은 태연하고 의기양양했다.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끝까지 따라왔던 두 대나 되는 기동경찰의 오토바이에 붙잡히지 않은 채 남편의 차는 정시에 프레스클럽 강연장에 도착했다.
남편이 연단에 올라서서 열변을 토하며 청중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며 수십 번 박수갈채를 받았다. 강연장 입구에서 남편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벼르고 있던 두 대의 기동경찰도 어느새 열렬히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아마 그들도 남편의 연설에 무척 감동된 모양이었다. 연설을 끝내고 나오는 남편을 붙잡을 생각도 않고 나에게 다가와서 한마디 충고를 해주었다.
‘기동경찰 20년에 우리가 따라 잡지 못한 유일한 교통위반자는 당신 남편 한 사람뿐이오. 더 일찍 천당 가지 않으려면 부인이 단단히 조심시키시오’
하고 그들이 남편을 향해 승리의 신호를 보내고 웃고 돌아가자 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이때부터 자동차 운전만은 꼭 내가 해야 되겠다고 나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나는 남편으로부터 자동차운전을 배웠다.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겨우 ‘살았구나’ 하고 정신이 드는 남편의 차에는 나 이외엔 누구나 타기를 꺼렸다. 그러나 내가 운전할 때는 비단결처럼 곱게 몬다고 남편은 나를 ‘실키 드라이버’라고 불렀다.
운전대를 잡으면 폭풍처럼 격렬하게 달리지만 붓글씨를 쓰거나 시를 지을 때 남편은 잔잔한 물결처럼 조용했다. 늘 젊고 건강했던 남편의 특이한 성품은 무엇에나 열중하면 그 일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책을 보거나 붓글씨를 쓸 때 한번 정신을 집중하면 옆에서 창문이 깨져도 몰랐다.
일평생을 온갖 풍상 다 겪으며 해외에서 독립투쟁을 해온 남편이 그토록 건강했던 것은 늘 자연을 벗 삼아 자유롭게 지내는 어릴 적부터의 생활습관과 편안하고 욕심 없는 마음가짐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낚시질 할 때는 고기를 낚아서는 도로 놓아주고 오직 낚시질만을 즐겼다. 남편이 항상 낚은 고기를 도로 물에 놓아주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은 ‘왜 애써 잡은 고기를 놓아주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면 남편은 ‘나는 고기를 잡으려고 낚시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낚시를 즐기려고 낚시질을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항상 바쁜 일정을 나누어 주말이면 남편은 한국학생이나 동지들과 낚시하러 포토맥 강변이나 호수가로 나갔다. 미국에서 낚시할 때면 남편은 가끔 한강변의 광나루 낚시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와 함께 미국 각지를 돌아다닐 때도 남편은 늘 자기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과 정겨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려서 연날리기하며 뛰어놀던 남산과 복숭아꽃이 만발하던 고향집과 동네 과수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따먹던 복숭아와 사과 얘기를 할 때는 마치 소년 같았다. 어디 가나 남편은 철따라 나무와 꽃 가꾸는 일에 열심이었다.
남편이 어찌나 나무와 꽃을 사랑하고 잘 가꾸는지 일류 정원사들이 감탄할 정도였다. 남편을 아는 수목전문가들은 자기들이 모르는 일을 남편에게 물어오기도 했다.
남편은 늘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사람은 흙을 밟으며 흙냄새를 맡아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하면서 ‘항상 우리나라의 나무와 흙을 사랑하고 자연을 벗하라’고 일러주었다.
남편은 미국이나 하와이의 동포 어린이들과 함께 ‘아리랑’과 ‘도라지타령’을 잘 불렀고 노래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 동산에 할 일 많아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이 날에 일 가려고 그 누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강산에 일하러 가세.
님편은 늘 ‘욕심내고 화내고 남을 미워하는 것이 건강에 제일 해롭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강을 유지하는 최선의 비결은 언제나 마음을 편안히 갖고 잠을 잘 자는 것이라고 남편은 말해 주었다. 미국에서 남편은 많은 사교 모임에 나갔지만 술과 담배는 일체 입에 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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