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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왕 두두

웃는곰 2022. 10. 20. 08:44

바람왕 두두

1. 개미한테 배워라

나나는 책에서 이상한 구절을 읽고 머리를 갸웃거렸어요.

너희는 개미한테 지혜를 배워라.’

개미한테 배우라고? 작은 바람에도 날아갈 듯 작고 허리가 가늘고 연탄보다 새까만 개미한테 뭘 배워?

그러다가 개미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어요. 반짝거리는 눈에 안테나 더듬이를 달고 부지런히 일하는 모양이 귀엽기도 했어요.

또 책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개미가 작다고 우습게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개미가 황소도 이기고 호랑이도 이기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지요?’

예쁘고 귀여운 나나가 개미가 무슨 힘으로 호랑이를 이긴다는 거야? 거짓말이야 하고 동화책을 읽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창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요.

달그락 달그락 두두 두두.”

창문을 누군가가 달그락달그락 두두 소리가 나도록 흔들었어요. 졸던 나나가 고개를 갸웃하고 중얼거렸어요.

누가 창문을 흔드는 거야?”

이때 달그락 소리를 타고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어요.

누구냐고? 슈슈슈. 두두두.”

나나가 문 쪽을 향해 물었어요.

누구예요?”

나야 나.”

나가 누구예요?”

쉬쉬 쉿! 나야 나. 두두.”

?”

밖으로 나와 봐.”

나나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밖으로 나왔지만 아무도 없었어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데 꽃밭에서 소리가 들려왔어요.

나나야, 이리 와 봐.”

아무도 없는데 꽃밭에서 소리가 또 들려왔어요.

누구세요?”

나야 나. 두두. 이리 와봐.”

나나는 소리 나는 쪽으로 갔어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빨갛고 예쁜 장미꽃이 살랑살랑 흔들렸어요. 나나가 물었어요.

장미야, 네가 나를 불렀어?”

장미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어요.

난 안 불렀는데…….”

장미꽃이 또 살랑살랑 흔들리고 소리가 들렸어요.

장미가 아니고 나야, 두두.”

두두가 뭐야? 넌 누구야?”

두두가 내 이름이야, 사람들은 나를 보지 못해.”

귀신이야?”

귀신이 아냐. 난 장미 얼굴을 쓰다듬고 있어.”

장미가 한들한들 예쁘게 춤을 추었어요.

네가 두두라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너를 만져줄게.”

갑자기 실바람이 불어와 나나 얼굴을 쓰다듬었습니다. 나나는 콧등이 간질간질하고 재채기가 났어요.

에이취!”

두두가 장난스럽게 말했어요.

호호호. 간지럽지?”

나나가 짜증난 소리로 물었어요.

뭐야 넌?”

샤샤샤아, 난 씽씽 바람왕 두두야.”

바람왕 두두라고?”

그래, 장난꾸러기 씽씽 바람왕 두두.”

장난꾸러기 두두?”

.”

나나가 궁금해서 물었어요.

네가 내 방 창문을 두드렸어?”

그래, 너를 불렀지.”

?”

너하고 친구하려고.”

난 싫어. 누가 바람하고 친구를 해?”

넌 나를 몰라서 그래. 내 친구가 되면 네 심부름도 해주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해줄 수 있어.”

정말?”

그래, 무서워하지 마. 내가 하는 말은 아무도 못 들어. 너만 들을 수 있어.”

거짓말. 바람이 무슨 소리를 해?”

나를 못 믿겠으면 이리 와 봐.”

어딘데?”

놀라지 마, 알았지?”

2. 날아다니는 모자

이때 할아버지가 저쪽으로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휘익 불어 할아버지 모자가 벗겨지며 날아와 나나 머리에 씌워졌습니다.

할아버지가 나나를 화난 얼굴로 꾸짖었습니다.

네가 그랬느냐?”

나나가 아니라고 하려는데 바람이 휙 불어 모자가 다시 할아버지 머리로 날아가 씌워졌습니다. 할아버지가 놀라운 듯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습니다.

별일 다 보겠네. 모자가 날아다니다니, 허허.”

할아버지가 힐끔거리며 골목길로 돌아갔습니다. 바람이 장난을 쳤습니다.

쉬유! 쉬쉿! 슈웅! 재미있지? 나나야.”

나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네 친구들이 부르는 소릴 듣고 알았지. 더 묻지 마. 대신 재미있는 구경시켜줄까?”

무슨 구경?”

황소하고 왕개미하고 싸우면 누가 이기겠니?”

나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입을 다물었습니다.

나나, 왜 대답이 없어?”

네가 나를 바보로 아는 것 같아서.”

?”

그 따위 작은 개미하고 집채만 한 황소가 싸운다고? 그게 말이 돼?”

네 생각에는 누가 이길 것 같으냐?”

당근, 황소가 이기지.”

두고 봐, 내가 황소한테 가서 하는 소리 잘 들어봐.”

바람이 휘잉 불어 풀을 뜯는 황소한테 가서 등을 쓰다듬었습니다. 황소는 시원한 바람에 눈을 스르르 감고 중얼거렸습니다.

아이고 시원해 음머어! 나는 바람이 쓰다듬으면 잠이 온단 말이야.”

이때 바람이 황소 귀에다 속닥거렸습니다.

황소야, 왕개미가 너를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

황소가 고개를 번쩍 들고 대답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따위 개미새끼가 나한테 욕이라도 한 거냐?”

바람 두두가 예쁜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황소야, 오해하지 마. ?”

무슨 소린데?”

개미가 너를 곰같이 미련하고 몸뚱이는 초가집 같다고 비웃었어.”

뭐야? 그 코딱지만도 못한 것이 감히 나를 곰 같다고?”

그러면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너하고 싸우면 제가 이긴다는 거야.”

황소가 화를 버럭 냈습니다.

? 그 놈 어디 있냐? 당장에 허리를 부러뜨려 줄 거다.”

바람이 휘익 떠나며 말했습니다.

기다려, 내가 개미 데리고 올게.”

바람은 개미한테 떠나면서 나나한테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동물이 무언지 알아?”

공작새.”

공작새보다 귀여운 건 개미야.”

개미가 뭐? 뭐가 귀여워.”

넌 개미가 가장 귀엽게 보일 때가 언제인지 모르지?”

개미가 귀엽다고?”

그래, 개미가 커다란 나뭇잎을 예쁘게 오려 물고 갈 때가 멋져. 저보다 몇 배나 큰 잎사귀를 입에 물고 가는 거 보았지?”

.”

내가 가끔 개미를 살살 밀어주기도 한다.”

거짓말.”

거짓말 같지? 내가 어떤 때는 개미를 반짝 들어다 굴 앞에 놓아주기도 하는데 개미는 내가 한 것을 모르거든.”

바람은 나나를 데라고 개미한테 갔습니다.

개미야, 황소가 너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

개미가 일하다가 물었습니다.

그 덩치 크고 미련한 소가 뭐라고 했어?”

바람 두두가 약 올리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황소가 너를 만나면 한 번에 허리를 부러뜨려 준다고 했어.”

그 미련한 황소가?”

그 황소가 저 언덕에서 졸고 있어. 한번 가 볼래?”

좋아, 내가 황소를 가만 둘 줄 알고.”

바람 두두가 나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나나야, 들었지? 황소하고 왕개미가 싸우는 구경 한번 해볼래?”

3. 황소와 개미의 싸움

나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기만 했습니다.

그런 걸 구경하라고?”

그래. 아주 재미있어.”

나나가 물었습니다.

작은 개미가 황소한테 가려면 해가 지겠다.”

염려 마, 너도 개미도 내가 당장에 황소한테 데려다 줄게.”

그리고 바람 두두가 씨잉하고 왕개미와 나나를 태우고 황소 앞으로 갔습니다. 황소가 부드럽게 부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서 눈을 스르르 감고 벌름벌름 웃으며 중얼거렸습니다.

아아, 시원하다. 바람만 불면 졸음이 온단 말이야. 후후후. 음머어!”

두두가 황소 귀에다 대고 말했습니다.

황소야, 조심해. 개미가 너를 가만두지 않는다고 했어.”

황소가 눈을 부라리고 말했습니다.

뭐라고? 세상에서 가장 작고 새까맣고 가느다란 허리를 가진 것이 나를 감히 건드려? 으흐흥! 허허허 후후.”

이때 바람 두두가 황소한테 말했습니다.

황소야 잘 봐. 땅바닥에 개미 보이지?”

황소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비웃었습니다.

으허허허, 나를 이기겠다는 놈이 바로 저 코딱지 같은 개미새끼라고?”

개미도 지지 않고 대꾸했습니다.

히히 끼끼, 너 따위가 내 허리를 분질러 준다고?”

바람 두두가 대신 대답했습니다.

맞아, 저 곰 같은 게 너를 욕한 황소야.”

황소가 화를 버럭 내며 앞발로 땅을 벅벅 긁으면서 왕개미를 한 발로 짓이겨주려고 덤볐습니다. 바로 그 순간 바람 두두가 왕개미를 후룩 날려 황소 귀에다 집어넣었습니다.

왕개미를 찾던 황소가 갑자기 벌러덩 자빠지면서 소리쳤습니다.

아아구구 내 귀, 귀귀 간지러워. 아이구 간지러워. 귀귀 으아으응.”

벌렁 자빠진 황소는 네 다리를 쳐들고 버둥거리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이 간지러워 아이구, 아이구, 귀귀 앗, 따가워!”

바람 두두가 친절하게 물었습니다.

황소야, 왜 그래? ?”

황소가 벌렁 누운 채 다리를 버둥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아이구 나 죽는다. 귀속에 뭐가 들어가 물어뜯는다. 이아이아 우우우.”

바람 두두가 웃으며 놀렸습니다.

황소야, 그게 누군지 알아? 후후후!”

어떤 놈이냐?”

어떤 놈이냐고 하면 더 괴롭힐 걸.”

이때 개미가 귓속을 또 꽉 물어뜯었습니다. 황소가 뒹굴며 소리쳤습니다.

아이고 나 죽는다, 아이고 아파, 아이고 간지러워 귀귀귀!”

바람이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이 바보 같은 황소야, 네 귀에 개미가 들어간 거야, 히히히.”

뭐야? 개미새끼가?”

갑자기 귓속이 쨍쨍 울리는 개미의 호통소리가 들렸습니다.

개미새끼라고? 그래, 내가 개미새끼다. 앙앙앙!”

개미가 화를 바락 내면서 더 세게 물어뜯었습니다. 황소가 죽는 소리를 쳤습니다.

아이고 나 죽는다. 이 개미새끼야 나오지 못해?”

히히히, 건방진 놈 아직도 내가 개미새끼냐?”

개미가 귓속을 여기저기 박박 긁어댔습니다. 황소는 큰 몸뚱어리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소리쳤습니다.

아이고 간지러워. 나 죽는다, 아이고 아이고.”

개미가 타이르는 소리로 물었습니다.

미련한 황소야, 아직도 내가 개미새끼냐?”

아아아, 알았다. 알았다. 아니다. 아니, 아니!”

뭘 알았다는 거냐? 내가 아직도 새끼냐?”

아이고 개미 아저씨, 그만 나와 다오.”

무슨 말버릇이 그러냐? 어른이라고 해!”

아이고 개개개 어른 아, 아저씨.”

개개 어른 아저씨라고? 형님이라고 불러.”

네네, 개개 형님 형형.”

안 되겠다. 난 네 할배다. 할아버지라고 불러!”

네네, 개개 할아버지.”

아직도 개개냐? 항복해라.”

네네, 항복, 항복!”

그래도 네가 내 허리를 부러뜨리겠느냐?”

아닙니다. 형님, 아저씨, 할아버지. 제발 살려 주십시오.”

좋다. 네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게 누구냐?”

개개, 개미 형님입니다.”

나 말고. 네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누구냔 말이다. 너를 동생 삼았으니 네가 무서워하는 놈을 찾아가 혼쭐을 내주마.”

감사합니다. 그러시면 아저씨, 할아버지로 모시겠습니다.”

그게 누구냐?”

호 호랑이, 호랑이입니다.”

그 호랑이가 어디 있느냐?”

저는 무서워서 그 근처도 못 갑니다.”

이때 바람왕 두두가 나섰습니다.

내가 너를 데리고 가마. 에잇! 씨잉 씨잉!”

순식간에 바람 두두가 나나와 왕개미를 구름 위에 태우고 호랑이 굴 앞에 사뿐히 내렸습니다. 호랑이가 낮잠을 자다가 콧수염을 흔들어대는 바람에 눈을 번쩍 뜨고 부르짖었습니다.

어어흥! 누구냐?”

바람왕 두두가 호랑이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호랑아, 잘 잤니?”

호랑이가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습니다.

허허.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이 소리가 어디서 나는 거야? 어흥!”

두두가 호랑이 콧등을 간질이며 대답했습니다.

나다, 시원하냐?”

나라고? 이놈아, 네가 누구냐? 아이 간지러워.”

? 네 할아버지다.”

뭐라고? 이놈이 누굴 놀려 어흥흥 꽈아악!”

호랑아, 내가 아주 중요한 비밀을 알려줄게, 들을래?”

이놈이 누군데 나를 놀려? 비밀이라고?”

비밀이야, 저 아랫동네 황소 알지?”

안다. 황소가 뭐?”

네가 까불면 황소가 널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네 생각은 어떠냐?”

뭣이? 내 먹을거리가 감히 그런 소릴 했다고?”

그래, 황소하고 한번 싸워 볼래?”

내가 그런 먹거리하고 싸워본다고? 가소롭다 으흐흐흐.”

좋아, 내가 황소를 데리고 올게 기다려라.”

바람 두두는 황소와 왕개미와 나나를 날려 호랑이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왕개미를 호랑이 귓속으로 들여보냈습니다.

4. 호랑이와 황소 싸움

호랑이가 거만하게 황소한테 으르렁거리며 호통을 쳤습니다.

어흐흥! 네깐 것이 감히 나를 가만두지 않겠고 했다는데 그 말이 사실이냐?”

황소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렇다. 내 말을 안 들으면 용서하지 않겠다.”

무엇이 어어어, 째째째? 아이구, 아이구 귀귀 귀…….”

호랑이가 갑자기 귀를 잡고 뒹굴었습니다. 황소가 능청스럽게 말했습니다.

호랑아, 왜 그래? 갑자기 어디가 아프냐?”

내 귀, 내 귀에 무엇이 들어가서……. 아이구, 간지럽고 따가워, 아이구, 아이구.”

호랑이가 놀리는 소리를 했습니다.

호랑아, 내가 도와줄까?”

그 그래 도도와다오. 아이구 따가워!!”

나한테 형님이라고 하면 도와주마.”

뭣이? 너 같은 것한테 형님이라고? 아이구 따가워, 아이구 간지러워.”

호랑이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사정했습니다.

황소야, 내가, 내가.”

내가가 뭐냐?”

너 같은 것한테 사정하기는 자존심 상하지만 오늘만 형님이라고 할 테니 도와다오.”

어림없는 소리. 한번 형님은 영원한 형님이라는 말도 모르느냐? 너 지금 한 말 다시 해봐라.”

그그렇지만……. 아이구 따가워, 아이구우웅.”

형님이라고 해라. 그러면 도와줄게.”

네까짓 게 무슨 힘이 있다고 큰소리냐? 아아 아이따가워!”

그럼 난 네가 죽든지 살든지 몰라!”

혀혀형니임. 살려주세유.”

알았다. 조금만 도와주마.”

황소가 개미한태 말햇습니다.

형님. 그만 하시오.”

그 순간 개미가 물어뜯고 간질이던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호랑이가 제 정신이 들어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숙이고 말했습니다.

황소 형님, 고맙습니다.”

황소가 다짐했습니다.

너 그 말 진짜냐? 나를 형님이라고 한 말 믿어도 좋으냐?”

믿으십시오, 형님. 우리 호랑이들은 한번 무릎 꿇고 야속하면 죽을 때까지 신의를 지킵니다. 형님으로 모십니다.”

그 점은 우리 소와 같구나. 우리도 아무나 형님으로 모시지 않지만 한번 정하면 목숨을 걸고 의리를 지킨다.”

이때 개미가 귀에서 나왔습니다. 호랑이가 기분이 좋아져서 산이 쿵쿵 울리는 소리로 웃었습니다.

하하하하 형님, 이제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제가 업고 모시겠습니다.”

그럴 것까지는 없다. 이제 나는 개미 형님과 두두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이다.”

두두가 뭡니까?”

황소도 두두가 뭔지 몰라서 나나한테 물었습니다.

아가씨, 두두가 뭔지 저도 모릅니다. 저도 알고 싶습니다. 가르쳐 주시오.”

이때 바람왕이 시원하게 불어주었습니다. 나나가 묻는 말을 했습니다.

두두야, 뭐라고 할까?”

바람왕 두두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바람왕이다. 이 세상 모든 바람이 다 내 명령을 따르고 구름도 내가 이리저리 몰고 다닌다. 알겠느냐?”

바람왕?”

그렇다. 내가 바로 바람왕이다. 내가 너의 창을 두두두두 두드린 이유를 아느냐?”

나나는 바람왕이라는 말에 겸손히 말했습니다.

모르겠어요.”

이 세상에서 너같이 얼굴 예쁘고 맘씨 고운 사람이 없느니라. 그래서 너를 내가 택하였느니라.”

부끄러워요. 두두님.”

내가 왕이라고 하니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 솔직히 그렇기는 해요.”

그럼 내가 하는 지휘하는 것을 보고 믿도록 하라.”

갑자기 바람이 휘익 쌩쌩 불어 나나와 호랑이와 황소가 말아 올려져 구름 위로 올랐습니다. 개미도 호랑이 등에 타고 있었습니다. 호랑이가 내려다보며 황소한테 말했습니다.

황소 형님, 어지럽지 않으시오?”

괜찮네. 그런데 저 아래 우리 주인님이 보이는데 나 없이 혼자 땅을 파고 계시다.”

나나가 두두를 불렀습니다.

두두님, 어디로 가십니까?”

저 산 봉우리로 간다. 잠시 후에 제일 높은 곳에 내려주고 좋은 세상 구경을 시켜주겠노라.”

잠깐 사이에 모두가 산봉우리에 내렸습니다. 바람왕 두두가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명령을 하면 온갖 바람이 순종할 것이다. 잘 보아 두어라.”

나나가 물었습니다.

두두님은 어디 계신가요?”

허허. 내가 어디 있느냐고?”

. 보고 싶어요.”

넌 꼭 나를 보아야만 믿겠느냐?”

호랑이가 대신 대답했습니다.

바람왕님, 어디 계신지 한번 보여주세요.”

세상에는 보이지 않고 만져지는 것이 있고 보이면서 만지기 어려운 것이 있는가 하면 보이면서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만물을 지배하느니라. 나를 보지 않았어도 믿으면 나도 너를 믿을 것이니라.”

나나가 물었습니다.

5. 기적

그런 게 어디 있나요?”

나는 너희를 품고 있지만 너희가 보지 못하고, 물은 보이지만 움켜잡을 수가 없고 햇빛도 보이지만 잡을 수가 없지 않으냐?”

개미가 깨깨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두두왕님.”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모두를 쓰다듬어주며 대답했습니다.

역시 개미가 똑똑하구나. 이제부터 내가 명령하면 세상 바람이 모두 내가 하는 대로 순종할 것이다. 잘 보아라.”

바람왕 두두가 명령했습니다.

회리바람 모여 쳐라!”

갑자기 넓은 계곡 가운데로 강한 회리바람이 일어나며 울창한 나무들을 마구 흔들어댔습니다. 바람왕 두두가 다른 명령을 했습니다.

태풍은 저 강물을 뒤집어엎어라.”

갑자기 큰 바람이 강물에 파도를 일으키고 소용돌이치며 온 둑을 넘어 사람들이 가꿔놓은 농작물을 덮었습니다. 이번에는 바람왕이 다른 명령을 했습니다.

산들바람은 내가 데리고 온 것들을 시원하게 쓰다듬어 주어라.”

그 순간 부드럽고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자 황소와 호랑이가 눈을 스르르 감고 벙긋이 웃었습니다. 바람왕 두두가 물었습니다.

어떠냐? 그래도 나를 못 믿겠느냐?”

황소와 호랑이가 넙죽 엎드려 내답했습니다.

두두왕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바람왕이 개미와 나나한테도 물었습니다.

너희는?”

개미가 머리를 땅에 박고 나나도 허리를 숙이고 대답했습니다.

바람왕님, 이제부터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겠습니다.”

좋다. 나 바람왕 두두는 온 누리에 무소 부재한 존재로 너희에게 사명을 맡기겠다. 나나는 사랑의 천사로, 호랑이는 일꾼으로, 황소는 봉사자로, 개미는 마귀 역할을 담당하라.”

개미가 가느다란 허리를 펴고 물었습니다.

바람왕님, 저한테는 왜 마귀 역할을 하라 하십니까? 사람들이 싫어하는 마귀는 싫습니다.”

허허 건방지도다. 네게 맡기는 이유는 묻지 말고 순종하라. 알겠느냐?”

개미는 마지못해 대답했습니다.

네네, 바람왕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만…….”

개미가 불만을 하다가 허리를 굽히자 황소도 호랑이도 나나도 입을 열지 못하고 바람왕이 무슨 말을 할는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바람왕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했습니다. 그러자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나뭇잎도 풀잎도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흘러가던 구름마저 멈추어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잠잠하여 답답증이 난 호랑이가 머리를 휘두르며 부르짖었습니다.

바람왕인지 뭔지는 어딜 간 것이냐? 어흐흥!”

황소도 앞발로 땅을 벅벅 긁으면서 소리쳤습니다.

바람왕! 어디 숨었느냐? 후후 나와라, 씩씩 씨힝!”

나나가 말했습니다.

기다려. 바람왕님은 아무데도 가시지 않았어.”

호랑이가 성급하게 받아 말했습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런 소릴 해? 세상이 죽은 듯 고요하고 나뭇잎 하나 까딱하지 않는데 뭘 기다리라는 것이냐? 우리가 바람왕인가 뭔가한테 속은 거다. 어어흥!”

황소도 거들었습니다.

넌 아직 어린 애라 잘 모르는 것 같다. 이 세상에는 속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알겠니? 후후후흥!

이때 개미가 큰 나뭇가지 위로 훌쩍 올랐습니다. 그것을 본 호랑이가 갸웃거리며 중얼거렸습니다.

개미가 마귀 짓을 하는구나. 날개도 없는 것이 거기는 어떻게 올랐느냐?”

이때 호랑이가 갑자기 붕 떴다가 떨어져 벌러덩 뒹굴며 죽는 소리를 쳤습니다.

아이구우, 구구. 나 죽는다. 어떤 놈이냐?”

그 모양을 비웃으며 바라보던 황소도 갑자기 붕 떴다가 호랑이 배 위로 떨어졌습니다. 호랑이가 깜짝 놀라 옆으로 잽싸게 구르면서 소리쳤습니다.

왜 이래 황소, 미쳤니?”

황소가 자빠진 채 눈을 흘기고 버둥거리며 외쳤습니다.

나한테 하는 말이냐?”

호랑이가 배를 깔고 엎드려 머리를 숙이고 대답했습니다.

미안해요. 형님. 내가 너무 놀라서 반말이 나왔으니 용서하시오.”

자빠져 버둥거리던 황소가 앞다리를 꺾고 엎드리며 대답했습니다.

알았다. 놀라서 그랬다니 용서하마. 그런데 넌 왜 붕 떴다가 나뒹굴었느냐?”

모릅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번쩍 들어서 팽개쳤습니다. 형님은 왜 나뒹구셨습니까?”

나도 모르겠다. 갑자기 몸이 무엇엔가 밀려 붕 뜨더니……. 후후후 미안하다. 형 체면이 말이 아니다.”

나뭇가지 위에서 내려다보던 개미가 낄낄거렸습니다.

이히히, 덩치 큰 것들이 뒹구는 꼴이라니, 볼만해. 끼끼끼.”

이때 바람왕의 꾸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6. 함정에 빠진 호랑이

못된 배신자들, 호랑이도 황소도 들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바람왕 소리가 들리자 모두가 땅바닥에 머리를 박았습니다.

예예. 바람왕님.”

호랑이도 황소도 개미도 모두 내려가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과 가장 못된 것 하나씩 알아오너라.”

호랑이가 불만스럽게 말했습니다.

그게 뭡니까. 너무 어렵습니다.”

나나가 말했습니다.

두두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좋을 거예요.”

바람왕이 모두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대답했습니다.

당장 내려가서 내 명대로 하라. 착한 일을 하고 착한 사람을 데려오는 자에게는 상을 내리겠다. 사흘 뒤에 나를 불러라.”

황소가 물었습니다.

어디 계신 줄 알고 부릅니까?”

바람왕이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아무데서든 불러라. 아무 때나 어디서든 두두하면 즉시 대답하겠다.”

갑자기 바람왕이 어디로 갔는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습니다. 호랑이가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다들 떠나 바람왕이 지시한 대로 좋은 일도 하고 착한 사람도 찾아보자.”

황소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야지 어디든 가 보자. 난 먼저 떠난다.”

황소가 뛰뚱뒤뚱 산을 내려갔습니다. 호랑이는 힘차게 숲속을 뚫고 달려갔습니다. 뒤에 개미와 나나만 남았습니다. 개미가 물었습니다.

누나는 어디로 갈 거야?”

나를 누나라고? 호호호 내가 개미누나가 된 거야?”

개미들한테는 누나가 없어. 모두가 수개미들이니까. 누나라고 해도 좋지?”

좋아, 넌 어떻게 산비탈을 내려가지?”

그리고 등을 대고 말했습니다.

내가 태우고 갈게. 내 등에 올라와 봐.”

그래도 될까 누나?”

개미가 웃으며 나나 등에 올랐습니다. 그 순간 잠잠하던 바람이 일어나며 구름 한 조각이 배처럼 다가와 나나를 태우고 산을 한 바퀴 휘돌아 어느 동네 산속에다 내려주었습니다.

산을 내려온 나나는 숲속에 숨어있는 호랑이를 발견했습니다. 나나가 보고 물었습니다.

어느 틈에 그렇게 빨리 내려왔어요?”

호랑이가 소리를 내지 않고 으흐흐 웃어 보이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산속의 챔피언 숲속의 왕이 아니냐. 그런데 너는 어떻게 나보다 먼저 왔느냐?”

우리는 구름을 타고 왔어요.”

구름을?”

.”

바람왕님이 그러신 것 같구나.”

범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조금 전에 농부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다. 밤이면 멧돼지가 내려와서 농부가 가꾸어 놓은 고구마를 파먹고 엉망으로 만든다는구나. 그래서 오늘은 멧돼지들이 고구마 밭을 파헤치지 못하도록 혼을 내 줄 생각이다.”

좋은 생각이에요. 그러면 농부들이 좋아할 거예요.”

그러면 내가 한 가지 좋은 일을 한 것이 아니겠느냐?”

맞아요.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거예요.”

그렇게 하여 호랑이와 나나가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저쪽에서 멧돼지 떼들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호랑이가 납작 엎드려 기다렸다가 멧돼지들이 밭으로 들어설 때 큰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어흐흥! 와앙!”

그 소리에 놀란 멧돼지들이 까무러칠 듯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호랑이가 어흥 와앙 부르짖으며 뒤를 따르다가 갑자기 쿵 하는 소리를 내고 잠잠했습니다.

나나가 그쪽으로 다가가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들이 멧돼지를 잡으려고 깊이 파놓은 함정에 호랑이가 빠진 것입니다. 캄캄한 구덩이 속에서 호랑이가 나오려고 껑충 뛰어오르다가 쿵하고 떨어져 나뒹굴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어어흐흥. 아이구 나 죽는다. 어어흥.”

나나가 내내려다보고 물었습니다.

많이 아파요?”

아이구, 나 좀 건져다오. 구덩이가 너무 깊어서 올라갈 수가 없다.”

개미가 말했습니다.

호랑아, 기다려. 내가 굴을 옆으로 파서 구해 줄게.”

호랑이가 대답했습니다.

형님, 고마워요 도와주세요.”

알았다. 내가 땅굴 파는 데는 불도저보다 빠르다. 옆으로 파들면 굴이 넓어져서 나올 수 있을 거야.”

나나가 한마디 했습니다.

아무리 땅굴 파기가 기계보다 잘 판다 해도 그 작은 입으로 얼마나 파겠니. 내가 칡넝쿨을 끊어다 줄을 내려뜨리면 나올 수 있을 거야.”

나나가 숲속으로 들어가 칡넝쿨을 끊어다 아래로 내려 보냈습니다. 호랑이가 칡넝쿨을 입으로 물고 기어오르다가 끊어져서 쿵 하고 또 떨어졌습니다.

아이구우, 나 죽네. 어어흐흥!”

호랑이는 두 번씩이나 떨어져 방둥이가 아파 뒹굴고 나나는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에 날이 밝았습니다. 이때 함정을 파놓은 동네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왁자지껄 모여들었습니다.

나나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숲속으로 숨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함정 안을 내려다보다 소리쳤습니다.

야아! 멧돼지가 아니라 범이 잡혔다아 범!”

왕호랑이다 호랑이!”

몽둥이로 때려잡자!”

호랑이가 납작 엎드려 빌었습니다.

어어 흐흐흥, 살려주세요. 사람님들.”

그러나 사람들은 몽둥이를 내리쳤습니다. 맞아죽게 된 호랑이가 급하게 부르짖었습니다.

두두! 두두두두우!”

이때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둘러서서 몽둥이질을 하려던 사람들이 뒤로 벌러덩 뒹굴어 떨어지며 아우성 소리를 쳤습니다.

아구우, 어이구!”

아구구구 사람 살려, 어이구우!”

그러는 사이 함정 속에 잡혔던 호랑이를 회리바람이 휘감아 올리더니 동네 뒷산을 너머로 날려 보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여기저기 나뒹굴면서 바람에 날려가는 호랑이를 보고 어이가 없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한편 바람에 날린 호랑이는 골짜기 밭에서 고구마를 한 바구니 캐어 놓고 들여다보며 이걸 어떻게 이고 갈까 하고 중얼거리는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바람은 호랑이를 그 할머니 옆에다 내려놓고 잠잠해졌습니다.

무거운 고구마 바구니를 이고 갈 걱정을 하던 할머니가 갑자기 옆에 호랑이가 다가오자 혼비백산 놀라며 호랑이 앞에 납작 엎드리며 빌었습니다.

신령하신 범님, 이 늙은이를 보아주십시오. 나는 아직 장가 못 보낸 아들이 있어서 죽으면 안 됩니다.”

호랑이는 해칠 생각이 없었고 할머니를 어떻게 도와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할머니를 호랑이 등에다 태웠습니다. 호랑이 등을 탄 할머니가 놀라서 사정했습니다.

산령하신 범님, 이 늙은이를 살려주세요. 어디로 가시렵니까?”

할머니가 벌벌 떨고 있는데 고구마 바구니가 바람에 날리듯 호랑이 입에다 물려주더니 부드러운 바람이 일며 공중으로 붕 떠올렸습니다. 할머니는 안 떨어지려고 호랑이 목을 꽉 잡고 이제 호랑이밥이 되는구나 하고 눈을 꼭 감고 달라붙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호랑이를 태운 바람이 작은 농가 마당에 내려놓고 잠잠해졌습니다.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하여 이상히 여긴 할머니는 눈을 뜨고 깜짝 놀랐습니다.

신령하신 범님, 어찌 이러십니까? 여기는 이 늙은이 집입니다.”

호랑이는 내가 바람왕님 덕분에 죽지 않고 할머니한테는 좋은 일을 한 것 같다하고 중얼거리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지나가던 이웃집 영감이이 할머니네 마당에 호랑이가 할머니 곁에 있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한테 호랑이가 할머니를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몽둥이와 도끼와 쇠스랑을 들고 달려와 호랑이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본 할머니가 막아서며 소리쳤습니다.

다들 물러가시오. 이 범님은 나를 도와주신 신령님이시오.”

쇠스랑을 든 영감이 물었습니다.

할멈, 그 말을 우리가 믿으라는 것이오?”

할머니는 호랑이 목을 끌어안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나를 먼저 그 쇠스랑이로 죽이시오.”

땅바닥에 넙죽 엎드린 호랑이가 착한 눈으로 사람들을 둘러보고 할머니를 감싸며 저를 치라는 몸짓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호랑이가 사람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고 온 몽둥이와 쇠스랑을 내려놓고 호랑이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습니다.

산신령님 섭섭히 생각 마시고 우리를 용서하시오. 우리가 오해를 하였소.”

호랑이도 사람들이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벌떡 일어나 사람들한테 머리를 수그리고 절을 했습니다. 순식간에 호랑이가 좋아진 사람들이 제각기 집으로 가서 먹을 것을 들고 왔습니다. 그 동안 할머니는 고구마를 쪄서 마을 사람들 앞에 내놓으며 말했습니다.

이 고구마는 범님이 밭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다들 오셔서 잡수세요.”

마을 사람들이 고구마를 하나씩 집어 들고 호랑이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범님, 고맙습니다.”

범님, 잘 먹겠습니다.”

이렇게 어른들이 무서운 호랑이를 만지는 것을 본 개구쟁이 아이가 호랑이 등을 타고 소리쳤습니다.

호랑아, 나하고 친구하자. 하하 개보다 좋다아!”

이렇게 하여 호랑이는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는데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호랑이가 나타나고부터는 동네 사나운 개들도 기를 펴지 못하고 밤마다 나타나서 농사를 망쳐놓던 멧돼지 떼가 사라진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좋아서 매 끼니마다 호랑이가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만들어다 주었습니다.

한번은 옆집 아이가 늦잠이 들어서 학교에 지각을 할 뻔했는데 호랑이가 그 아이를 등에 태우고 학교까지 데려다 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부터는 마을 사람들이 급한 일이 생기면 호랑이를 택시처럼 타고 다녔습니다. 호랑이는 동네 택시가 되어 사람들이 부릴 때마다 즐거워서 어흥어흥 노래를 하며 도와주었습니다.

7. 황소가 엿들은 이야기

한편 산에서 내려온 황소는 주인집을 찾아가려고 길을 가다가 강을 만났습니다. 황소는 강을 헤엄쳐 건너려고 뛰어들었다가 강물에 빠져 떠내려가며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바람왕 두두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강물에 떠내려가면서 머리를 들고 외쳤습니다.

두두 어푸 두두 어푸 두두!”

그 순간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강물을 휘저어 소를 강둑으로 밀어 올렸습니다. 황소는 강 언덕에 배를 깔고 엎드리며 바람왕님께 큰절을 했습니다.

두두님 고맙습니다. 살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게 살아난 황소는 멀리 산 아래 외딴 집이 있는 것을 보고 그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뒷문 곁에 웅크리고 방안에서 이야기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버지인 듯한 사람이 아이한테 어려운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 주마.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게 뭔가요?”

아버지가 긴 이야기를 했습니다.

조선 철종 때 경상도 상주 땅에 서()씨 성을 가진 농부가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서생원이라고 불렀더란다. 원래 생원이란 과거 시험에 급제는 했으나 아직 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지만 이 사람은 급제와는 상관없이 이웃 일을 자기 일처럼 돕고 사는 착하고 무던한 사람이었더란다.”

황소는 귀를 문에다 바짝 대고 기울였습니다.

서생원은 봄이 되었는데 농사지을 볍씨를 살 돈이 없었더란다. 생각다 못해 부산 쌀가게에서 일하는 큰아들을 찾아가 사정을 알리자 효자 아들은 주인께 드려 1년 치 월급을 미리 받아 아버지께 드렸단다. 서생원은 300리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다가 어느 고개를 넘던 중 돈 자루를 잃어버리고 말았더란다. 서생원은 30리를 더 가서야 돈 자루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 눈앞이 캄캄했더란다. 이때 반대쪽에서 한 노인이 지나갔는데 고개를 넘던 노인이 길에 돈 자루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세어보니 100냥이나 되는 큰돈임을 알았단다. 몸종 하인이 그것을 보고 횡재라고 좋아하자 노인은 착한 사람이라 이렇게 말했다.

돈을 잃은 사람 심정이 어떻겠느냐. 목숨같이 귀한 돈을 잃은 사람은 속이 타서 반드시 찾으러 올 것이다.”

그리고 노인은 길을 멈추고 돈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과연 몇 시간 후 서생원이 죽을상을 하고 나타났다. 노인이 주운 돈을 돌려주자 서생원은 어른께서 제 목숨을 살려 주셨다며 은혜에 보답하는 사례를 하려고 하자, 노인은 은혜랄 게 뭐가 있소. 이 돈은 당신 돈인데……. 하고는 유유히 사라졌단다.

서생원은 인사만 하고 집으로 가다가 큰 강가에 이르렀는데 마침 건너편에서 오던 배가 뒤집혔더란다. 사공은 헤엄을 쳐서 강둑으로 나왔지만, 타고 있던 소년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구경꾼은 많았지만 아무도 구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단다. 그때 서생원이 큰소리로 외쳤다.

누구든지 저 애를 구해주면 내가 백 냥을 주겠소!”

그러자 한 장정이 뛰어들어 소년을 구해냈단다. 서생원은 그 장정에게 목숨과도 같은 백 냥을 주저 없이 선뜻 건넸단다. 그러자 익사할 뻔한 도령이 선달에게 고맙습니다. 어른이 아니었으면 저는 살아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집은 안동입니다. 함께 가시면 백 냥을 갚아 드리겠습니다.” 했단다. 서생원은 사례를 받고자 한 일은 아니었으나 자기의 사정도 딱한 터라 안동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안동의 도령 집은 고래 등 같은 큰 부잣집이었단다. 소년이 들어가 부친에게 몇 마디 고하자 그 부친이 버선발로 달려 나왔단다. 그런데 그 부친이란 사람이 다름 아닌 서생원의 돈을 찾아준 바로 그 노인이었다지 뭐냐.

감사합니다. 전 재산을 털어 제 아들을 구해주시다니 당신은 진정 의인이요! 정말 고맙소이다.” 하자 아닙니다. 댁의 아드님은 어르신께서 살려내신 것입니다. 제가 잃은 돈을 찾지 못했다면 무슨 수로 아드님을 살렸겠습니까?” 했고 노인은 겸손의 말씀이십니다. 7대 독자 외아들을 살려주신 은혜 백골난망이옵니다.” 했단다.

그러고 아버지는 아들한테 이렇게 이야기를 마쳤다.

안동 부자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살려준 보답으로 후한 대접과 함께 돈 천 냥을 나귀에 실어 서생원에게 주고 나중에 다시 서생원이 사는 상주 고을을 찾아와 백 섬지기 전답까지 사주고 돌아갔단다. 사람은 언제나 덕을 베풀면 좋은 이웃이 생기고 또 복()도 받는다는 이야기다. 알겠느냐?”

황소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강에 빠져 죽을 뻔하다가 구해준 바람왕을 생각하며 어디 계신지 알 수 없어서 하늘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주인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8. 소싸움에 밀린 황소

나갔던 소가 돌아온 것을 본 주인이 반기면서 말했습니다.

어디를 갔다 오는 것이냐. 낼 모레가 시합 날이다. 오늘부터 콩 쇠죽을 쑬 테니 많이 먹고 힘내야 한다.”

며칠 동안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강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황소는 이틀 동안 콩 쇠죽을 먹었지만 전같이 힘이 솟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주인은 장마당에서 벌어지는 황소싸움에 누렁이를 끌고 나갔습니다.

소싸움 장에는 많은 장꾼들이 둘러서서 싸움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황소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누렁아, 오늘 힘 좀 써야 한다. 네가 이겨야 내가 쌀 열 가마니를 타고 너한테 날마다 콩죽을 쑤어 줄 수 있단 말이다. 알았지?”

황소는 고개를 끄덕여 주인을 안심시켰지만 힘이 전 같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이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앞에는 등에 검은 점이 얼룩얼룩하고 다부진 몸을 가진 대단히 사납게 생긴 소가 발로 땅을 벅벅 긁어대며 누렁이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누렁이는 기싸움에 주눅이 들었습니다.

소싸움 장꾼이 큰소리로 으라차차! 붙어라!’하고 싸움 시작을 알렸습니다. 누렁이가 겁을 먹고 주춤거리고 있을 때 나나와 개미가 바람에 실려와 사람들 틈에 끼어들었습니다.

얼룩검둥이 소가 무서운 기세로 밀어붙이자 누렁이가 뒤로 밀렸습니다. 검둥이 황소는 뿔로 누렁이를 번쩍 밀어 올리는가 싶다가 갑자기 우웨웩 머엉머엉 소리를 지르며 앞발을 번쩍 들더니 땅바닥으로 나뒹굴었습니다.

바람이 개미를 얼룩황소 귀에다 집어넣은 것입니다. 개미가 귓속을 물어뜯자 검은 얼룩소는 벌러덩 자빠져 버둥거렸습니다.

머어엉! 아이쿠 귀귀!”

소 주인이 허둥지둥 달려 나와 검은 황소를 잡아끌며 소리쳤습니다.

일어나! 이 곰탱아, 왜 갑자기 지랄이야!”

그래도 황소는 일어서지 못하고 뒹굴었습니다. 심판 장꾼이 그 모양을 한 동안 지켜보다가 누렁이편에 손을 들며 소리쳤습니다.

누렁이황소 승리!”

소 주인은 상금으로 쌀 열 가마니를 탔습니다.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구경꾼들이 소 싸움이 싱겁게 끝나자 재미없다고 투덜거리며 돌아가고 넓은 장마당에는 누렁이황소와 주인만 남았습니다.

주인은 쌀가마니를 들여다보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상 받은 건 좋은데 이걸 어떻게 우리 집까지 끌고 가나! 허허 큰일이로다.”

그리고 둘러보다가 바로 곁에 서있는 나나를 발견하고 물었습니다.

넌 누구냐? 왜 안 가고 섰느냐?”

아저씨 도와드리려고요.”

하하하, 네가 뭘 도와주겠다는 거냐? 쌀 한 말도 들지 못하게 생긴 예쁜 것이. 말만 들어도 고맙다.”

말만 한 거 아니에요. 정말 아저씨를 도와드릴 거예요.”

어른한테 장난하면 못 써. 빨리 집으로 가.”

아저씨, 저 쌀가마니를 어떻게 집으로 가져가실 거예요?”

그런 걱정은 마라. 싸움에 이긴 황소가 있잖으냐.”

황소가 저걸 다 등에다 싣고 갈 수 있어요?”

허허, 별 걱정을 다하는구나.”

걱정이 되어서 아저씨를 도와드리려고요.”

네가 무슨 힘이 있어서 도와준다는 거야?”

아저씨 잠깐 눈을 감고 계셔요.”

내가 눈을 감고 있으면 네가 소라도 끌고 가지는 않겠다는 것이냐?”

아무 걱정 마시고 눈만 감으세요.”

소 주인은 실눈을 하고 나나를 훔쳐보았습니다. 나나가 작은 소리로 불렀습니다.

두두.”

이때 갑자기 회리바람이 휘이익 일어나고 하늘에 떠가던 구름이 내려와 쌀가마니와 소 주인까지 태우고 하늘로 떠올랐습니다.

구름을 타고 가면서 황소 누렁이가 개미한테 말했습니다.

개미형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나나도.”

개미가 끼끼끼 하고 대답했습니다.

너 하마터면 얼룩소한테 크게 다칠 뻔했다. 나는 네가 위험하다고 느낄 때 두두 하고 바람왕님을 부를 줄 알았는데 안 부르니까 바람왕님이 나를 검은 소 귓속으로 들여보내셨다. 알겠느냐?”

황소가 머리를 아래위로 주억거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위기를 느끼는 순간 아무 생각도 못 했지요. 두두님을 불렀어야 하는데……. 바람왕님 죄송합니다.”

이때 바람왕이 나나 귀에다 속삭였습니다.

너희가 농부네 집까지 가는 동안 각자의 소원이 무엇인지 눈을 감고 생각하라고 일러라.”

.”

모두가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것이 신기하고 신나기도 하여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하고 있을 때 나나가 두두의 명대로 알렸습니다.

아저씨도 눈을 감으시고 다들 자기가 그렇게 되어 보았으면 하는 소원을 마음으로 정하고 빌어 보세요.”

개미가 물었습니다.

누나. 왜 그래?”

두두님 명령이야. 모두 눈을 감고 나는 우리 가운데 누구처럼 되고 싶다고 소원을 빌어봐.”

알았어, 누나. 호랑이도 황소도 아저씨도 눈을 감으세요.”

그 말을 따라 모두가 눈을 감고 마음으로 나는 이렇게 되고 싶다고 정하고 빌었습니다. 나나는 농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개미는 힘 좋은 황소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호랑이는 저를 쓰러뜨린 개미를, 황소는 제일 부러워했던 호랑이를, 농부는 예쁜 나나 아가씨가 되고 싶다고 빌었습니다.

8. 호랑이의 소원성취

호랑이는 눈을 감고 개미가 되고 싶다고 하는 순간 허리가 잘록한 개미로 변했습니다. 개미가 된 호랑이는 앞에 있는 높은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무 기둥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며 재미있다고 깔깔 웃는 순간 바람이 휘익 불어 바람에 날려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이때 마침 지나가던 큰 개미 등에 떨어졌습니다. 큰 개미가 달려들어 다리 한쪽을 물고 잡아끌며 꾸짖었습니다.

이런 건방진 놈. 넌 누구냐? 감히 남의 머리를 밟다니! 당장 우리 굴로 가자. 우리 여왕님께 무례한 네놈한테 벌을 내리시라고 하겠다.”

죄송해요, 아저씨. 그만 바람이 불어서 그랬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러나 큰 개미는 호랑이가 변한 개미를 끌어다 여왕개미 앞에 세웠습니다. 여왕개미가 새빨간 눈으로 노려보며 물었습니다.

네가 우리 부장의 머리를 밟았다는 것이 사실이냐?”

저는 바람에 날려 어딘지 모르고 떨어졌습니다.”

건방진 놈 그것도 말이라고 하느냐?”

죄송합니다. 여왕님.”

넌 가만히 보니 내 부하도 아니다. 어디서 온 간첩이냐?”

간첩이 뭡니까? 저는 원래 호랑이입니다. 개미는…….”

뭣이라고? 미친 소리. 네가 호랑이면 나는 황소니라. 어디서 감히 호랑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 여봐라, 당장에 이놈의 허리를 잘라버려야겠다. 작두를 대령하라.”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는 본래 호랑이인데 개미가…….”

말이 많다. 당장에 저 주둥이를 불로 지지고 허리를 잘라버려라!”

개미가 된 호랑이는 위급하게 되자 소리쳤습니다.

두두님!”

10. 농부가 된 나나

한편 농부가 되고 싶다고 소원한 나나는 턱에 수염이 나고 팔다리가 굵고 튼튼한 농부로 변했습니다. 농부로 변한 나나는 동네로 들어가 여기저기 살피고 있을 때 한 아이가 달려오며 불렀습니다.

아부지!”

나나는 아버지라고 부르며 달려드는 아이 손을 잡았습니다. 아이는 손을 잡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며 소리쳤습니다.

엄마, 아빠 왔어!”

부엌에서 부인이 나오며 반겼습니다.

여보, 어디를 갔다가 이제 와요?”

…….”

나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 엄마가 걱정스런 소리를 했습니다.

여보, 당신이 건너편 동네 부잣집에 들어가 돈과 금가락지를 훔쳐갔다고 나라에 신고를 해서 경찰이 잡으러 온대요. 빨리 숨어요.”

바로 그때 경찰이 들이닥치더니 달려들어 두 손을 꽁꽁 묶어 경찰서로 끌고 갔습니다. 나나는 잡혀가면서 소리쳤습니다.

나는 농부가 아니에요. 나는 초등학생이에요.”

경찰이 웃으며 조롱했습니다.

흐흐흐, 별 소리를 다 듣겠네. 영감이 초등학생이라고? 네가 도둑질을 하더니 거짓말도 기막히게 하는구나.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미친 소리까지 지껄여?”

잡혀가는 아버지 뒤를 딸이 울면서 따라오고 아이 엄마는 멀리서 서서 울며 소리쳤습니다.

우리 남편은 그럴 사람이 이니여유!”

나나는 경찰차에 강제로 태워지고 온 동네 사람들이 둘러서서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나나는 경찰차에 실려 가며 급한 소리를 쳤습니다.

두두!”

9. 호랑이가 된 황소

또 한편 호랑이가 되고 싶은 황소는 소원대로 큰 호랑이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호랑이가 산속으로 들어오자 산토끼, 노루, 사슴, 들쥐, 살쾡이까지 모두 달아나서 산속에는 먹잇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산속을 며칠 동안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았지만 아무 동물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다 다람쥐가 나타났지만 얼마나 빠르게 나무를 타고 달아나는지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운도 없고 용기도 없게 된 호랑이는 풀밭에 배를 깔고 누워 생각했습니다.

, 내가 왜 호랑이가 되었나. 황소 소리를 들으며 산과 들로 다니며 풀을 마음껏 뜯어먹고 집 주인이 맛있는 콩을 넣은 쇠죽을 쑤어 배가 터지게 먹고 누워 잠도 잤는데 이게 뭔가…….’

주인 일을 도와주는 소로 살 때 편하게 먹고 자고 살던 생각을 하며 후회하고 있을 때 갑자기 커다란 독사 떼가 몰려들어 등과 꼬리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너무 아프고 징그러워서 소리쳤습니다.

두두님, 두두님!”

12. 소가 된 개미

소가 되고 싶다고 소원을 빈 개미는 궁둥이가 넓적하고 허리가 두리두리한 황소가 되었습니다. 산기슭에서 맛있는 풀을 실컷 뜯어 먹고 있을 때 주인 농부가 쟁기를 매어주며 밭을 갈아야 한다고 채찍으로 방둥이를 때리면서 몰았습니다.

이랴, 이랴 우주주주.”

개미는 주인이 하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몰라 산비탈로 부지런히 올라갔습니다. 농부가 놀라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이런 미친 소 봤나. 밭으로 가자는데 왜 산으로 가?”

그러면서 회초리로 강하게 후려갈겼습니다.

아야! 아야!”

소가 된 개미는 놀라서 펄쩍 뛰어 산비탈을 내리 달렸습니다. 그 순간 뒤에 달려있던 쟁기가 더 빠르게 굴러 앞지르며 다리를 걸었습니다. 그만 소가 된 개미는 쟁기와 한 몸이 되어 산비탈을 공처럼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아아! 난 개미가 좋아. 소는 싫어!”

그러면서 급히 부르짖었습니다.

두두, 두두우우!”

개미가 깩깩거리고 소리치는 순간 누렁이 황소, 호랑이, 나나, 농부가 똑같은 시간에 두두 소리를 치며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개미는 소가 아닌 개미로 돌아온 것을 알고 기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아, 난 소가 싫어. 개미가 좋아!”

이때 호랑이가 되었던 소가 듣고 말했다.

뭐라고? 내가 싫다고? 난 호랑이 싫어! 소가 좋아!”

농부가 되었던 나나는 이마에 땀까지 흘리며 중얼거렸습니다.

아빠는 너무 힘들어, 난 딸이 좋아. 아아, 난 아빠 하지 않을래.”

이렇게 모두 눈을 감고 소원했던 부러운 것들이 다 자기한테는 안 맞는다는 것을 깨닫고 원래의 자기 모습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구름은 바람을 타고 둥실둥실 떠서 농부네 집 마당에 모두 내려주었습니다. 농부는 누렁이 황소를 외양간으로 들이고 호랑이는 슬금슬금 동네를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개미도 어디론가 부지런히 기어서 알 수 없는 제 굴을 찾아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홀로 남은 나나는 혼잣말을 했습니다.

다들 어디로 간 거야? ?”

이때 창문이 두두 두두 소리를 내고 흔들렸습니다. 나나가 눈을 번쩍 떴습니다.

깜박 잠이 들어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았는데 또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구세요?”

나야, .”

두두?”

그래 두두다. 뭘 하고 있니?”

몰라. 난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

넌 꿈을 꾼 거다. 그렇지만 지금은 꿈이 아니야.”

꿈이 아니라고?”

그래. 넌 꿈을 꾸면서 뭘 깨달았지?”

난 어른이 되는 게 무서워.”

그래도 넌 어른이 되는 거다. 내가 전에 이런 말을 했지. ‘세상에는 보이지 않고 만져지는 것이 있고 보이면서 만지기 어려운 것이 있는가 하면 보이면서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만물을 지배하느니라. 나를 보지 않았어도 믿으면 나도 너를 믿을 것이니라.’ 한 말.”

. 그런데 넌 왜 나한테 안 보여주는 거야? 보여줄 수 없어?”

보여줄 순 없지만 만져주었잖아?”

그랬지. 넌 몇 살이야?”

나는 나이가 없어. 바람이 왜 일어나는지 알아? 바람은 가만히 있을 땐 공기야. 사람들은 공기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모르고 살아. , , 공기 셋 중에 하나만 없어도 사람은 죽지. 공기는 물처럼 안 건드리면 잔잔하지만 누가 심하게 건드리면 폭군이 되는 거야.”

너도?”

그럼. 나는 사람이 무슨 일이 있든지 나를 간절히 찾고 소원을 부르짖으면 도와주지.”

알았어. 꿈에 보았어.”

나는 살아 있는 것들을 도와주는 공기야. 하늘에는 해가 있고 땅에는 물이 있고 나는 해와 땅 사이에서 사람을 지키는 공기야.”

맞아, 고맙다 공기야.”

됐어. 난 네가 어디서든 간절히 찾으면 도와줄게. 안녕!”

두두는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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