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동화

돌멩이의 꿈

웃는곰 2010. 6. 17. 12:40



민들레와 돌멩이 /청송문학에

* 경기 안성 출생
* 「아동문학세상」 동화로 등단
*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한국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회 회원.
* 동화 : ꡔ문어선생님ꡕ ꡔ헌책방 할아버지ꡕ 외 60권
* 한국크리스천문학상, 국방부장관상, 아름다운글문학상, 글사랑문학상,
* 현) 도서출판 한글 대표
* simsazang@hanmail.net



나는 학교 길옆에 불쑥 솟아 있는 돌멩이야.
아이들은 지나가다 나를 피하며 눈을 흘기지.
내가 아이들을 피해 주고 싶지만
난 한쪽이 땅에 박혀 있어서 어쩔 수가 없어.
그래서 아이들이 지나갈 때는 미안해서 머리를 푹 숙이고
“얘들아, 조심해. 내 머리 그냥 밟고 지나가.”
하고 말하지.

어떤 아이는 내 맘도 모르고
내가 밉다고 발로 걷어차고
제가 더 아프다고 우는 아이도 보았어.
아이가 그렇게 아픈데 나는 어떻겠어?

여름엔 해가 너무 뜨거워 머리가 펄펄 끓고
가을엔 아이들 소풍가는 날 나도 따라가고 싶었어.
겨울엔 눈이 내려 얼어붙으면 얼마나 추운지 몰라
그러나 봄이 오면 따듯한 볕에 졸음이 오지.
봄이 와서 나는 두 팔을 벌리고 하품을 했어
“아아, 봄이다 봄!”
이때 발바닥이 간지러워지더니 내 허리 곁에
개미날개보다도 작은 떡잎 하나가 간들간들 얼굴을 내밀고 종알거렸어.
“아아! 세상이 보인다, 세상이다!”
떡잎이 얄밉게 나를 힐끔 보았어. 내가 물었어.
“넌 누구냐?”
“나! 민들레야, 넌 누구야?”
“나? 너의 아저씨.”
떡잎은 금방 상냥하게 말했어.
“아저씨? 반가워요. 난 민들레예요.”
“쪼그만 게 인사도 잘 하네.”
“아저씨는 여기서 몇 년이나 사셨어요?”
“모른다. 난 머리가 나빠서 내 나이를 몰라. 이 학교 지을 때부터 있었어.”
“아저씨, 난 한 살이에요”
“빨리 쑥쑥 자라라.”

봄이 깊어지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그런 동안 민들레는
톱날 잎이 다섯 가닥이나 자랐어.
민들레는 잎으로 돌멩이를 쓰다듬으며 물었어.
“아저씨, 시원하시지요?”
“음, 네가 해를 가려서 시원하구나.”
돌멩이는 오랜만에 이마를 그늘에 묻고 웃었어.
 
어느 날 민들레는 가슴이 불룩하게 솟았어.
바위가 웃으며 놀렸어.
“너 제법 가슴이 불룩하고 아가씨 티가 난다.”
“아저씨, 부끄러워요, 놀리지 마셔요.”
“때가 되면 다 그런 거야. 학교 아이들도 그랬어.”
또 하룻밤을 자고 난 민들레는 불룩한 봉오리에
노란 꽃을 달았어.
돌멩이가 들썩거리며 축하했어.
“참 예쁘다. 아주 예뻐. 축하한다.”
“아저씨 부끄러워요.”

어디서 알았는지 나비가 날아왔어
“민들레 안녕?”
민들레가 방긋 웃으며 인사했어.
“나비 아가씨, 안녕하세요?”
나비가 말했어.
“네가 활짝 피었으니 결혼해야지.”
“결혼이 뭐예요?”
“기다려 가르쳐 줄게.”
이때 어디서 붕붕 소리가 들려왔어.
얼굴에 털이 텁수룩한 호박벌이 날아온 거야.
나비가 벌을 밀어냈어.
“넌 저리 가. 왜 왔니?”
“민들레가 예뻐서 왔다.”
“이 민들레는 내가 먼저 맡았어.”
나비는 뾰족한 침으로 민들레 꽃 속을 꼭 찔렀어.
민들레가 놀라 소리쳤어
“아! 아야!”
나비가 가느다란 소리로 다정히 속삭였어.
“참아, 처음에는 다 그런 거야.”
나비는 꽃 속에서 꿀을 빨아 먹고 멀리 날아갔어.
붕붕붕붕 맴돌던 벌이 또 꽃 속에다 침을 찔렀어.
민들레는 아파서 눈물을 흘리며 돌멩이를 불렀어.
“아저씨, 도와주세요.”
돌멩이는 도와줄 수가 없어서 떨리는 소리로 말했어.
“바람이 불 때는 널 가려줄 순 있어도 벌 나비는….”
벌도 배가 차도록 꿀을 빨고 날아갔어.
그리고 여름이 올 무렵 민들레는 배가 불룩해졌어.
씨방이 둥그런 배를 안은 민들레는 하얗게 늙었어.
돌멩이가 물었어.
“많이 무겁지?”
“부끄러워요.”
“넌 젊은 얼굴도 예뻤지만 하얀 머리도 보기 좋다.”
“놀리지 마셔요.”
“아니야, 넌 엄마가 된 거야.”
“아저씨는 언제 할아버지가 되시나요?”
“나는 나이가 들수록 어린애가 된단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예전에 나는 커다란 바위였단다.”
“정말요?”
“그래, 지금은 땅에 박힌 돌멩이가 되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되시나요?”
“세월이 가면 작아져서 모래알이 되어 여길 떠나게 된단다.”
“어디로 가시나요?”
“장마가 지면 강을 따라 가다가 바다로 가겠지.”
“제가 있는 동안은 가지 마세요.”
“너나 떠나지 말아라.”
“저는 아저씨하고 오래오래 살 거예요.”
돌멩이는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너는 곧 떠나게 되겠지만 네 뿌리는 지켜주마.”

어느 날 민들레는 하얀 차림으로 인사했어.
“아저씨, 안 되겠어요, 바람이 자꾸 잡아끌어요.”
“바람 따라 가거라.”
“아저씨만 두고요?”
“암, 품고 있는 홀씨를 안고 멀리멀리 날아야 한다.”
민들레는 눈물을 흘렸어.
“아저씨 떠나기 싫어요.”
“하늘로 올라가 봐. 여기보다 더 좋은 세상이 보일 게다.”
민들레 홀씨는 바람에 끌려 멀리멀리 날았어.
“아저씨 안녕!”
민들레 홀씨가 울면서 떠나가자 돌멩이도 목이 메었어.
“잘 가거라. 잘 가! 아주 멀리 멀리 가거라.”
돌멩이는 민들레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저으며 말했어.
“나도 널 따라 날고 싶다…. 날고 싶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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