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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고집

웃는곰 2010. 5. 25. 10:25

할머니 고집 (새옹지마)



1. 


나는 깜빡 잠이 들었다가 아빠와 할머니가 나누는 이야기 소리에 깼습니다.

아빠가 말했습니다.

“준구 잠들었지요, 어머니?”

“지금 막 잠이 들었다.”

“어머니 잘 생각해 보세요. 지금이 아주 좋은 기회예요.”

“안 된다.”

“안 된다고만 하지 마시고 생각해 보세요.”

“안 된다고 하면 그런 줄 알아, 고향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은 없어.”

준구는 잠이 깼지만 자는 척하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빠는 할머니한테 사정하였습니다.

“그 땅만 팔면 우리도 좀 넓은 집으로 이사도 가고 어머니도 준구하고 한 방에서 지내지 않고 편히 지낼 방도 따로 마련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하세요.”

“싫다 나는 준구하고 한 방 쓰는 게 더 좋아. 잠만 자는데 집만 크다고 좋으냐?”

“그렇지 않아요, 이제 준구도 다 커서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할 거예요.”

“아직은 아니야, 준구도 나하고 한 방에서 자는 걸 좋아해.”

“어머니, 동네 다른 사람들은 다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아주 편하게 잘들 살고 있어요.”

“아파트도 싫다.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야 하는 거야. 늦었다 가서 잠이나 자거라.”

아빠는 할머니 고집을 못 이기고 나가셨습니다.

나는 할머니와 아빠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 혼자 중얼거리시더니 주무셨습니다.

아침이 되자 할머니가 내 배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말씀했습니다.

“아직도 자냐? 내 새끼, 잠 깼어?”

나는 눈을 비비며 대답했습니다.

“네 할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오냐, 잘 잤다 너도 잘 잤지?”

“네.”

“넌 할미하고 이렇게 한 방에서 사는 게 좋지?”

“네 할머니.”

“아이고 귀여운 내 새끼.”

할머니는 나를 안아주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빠가 하시던 말씀이 싫지 않았습니다. 나도 혼자 방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할머니한테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가 출근하고 엄마와 할머니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머님, 준구 아범 말 들으셔요. 그 산속 집이 보통 때 같으면 삼천 만원도 안 나가는 것인데 이번에 큰 공장이 들어오면서 땅값이 올라간 거예요. 평당 백만 원씩 천 평을 팔면 서울서 큰 아파트를 사고도 돈이 남아요.”

“너도 아범이 하는 대로 내 고집을 꺾어 볼 생각이냐? 그런 것이라면 아예 입도 벙긋하지 마라라. 난 절대 반대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고향을 팔아먹는 사람이 어디 있냐?”

“그 동네 사람들은 모두 땅 몇 평 가지고 일억 이억을 받아 팔자 고쳤다고 온통 마을이 잔치 분위기라네요.”

“잔치도 필요 없다. 정신없는 것들 고향을 팔아먹고 좋아해?”

“이번 기회 놓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머니 잘 생각해 보세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 없다. 난 안 판다.”

할머니는 저만큼 떨어져 있는 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면 말했습니다.

“내 고향집은 장차 준구 줄 거다. 준구가 지켜야지, 너희들은 누가 돈만 준다면 팔아먹을 테니 믿을 수가 없어.”

나는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고향집이 어딘지 가 본 적이 없습니다. 고향의 무엇을 가지고 그러시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준구를 귀엽다고 바라보시며 다짐하셨습니다.

“준구야 넌 이 할미 고향을 안 팔아먹을 거지?”

“네 할머니.”

준구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대답을 했습니다. 그 뒤로 아빠와 엄마는 번갈아가면서 할머니께 고향 땅을 팔자고 사정을 했고 할머니는 점점 고집을 부리셨습니다. 그러다 몇 달이 지나서였습니다.

아빠가 할머니한테 화를 냈습니다.


2

“어머니도 참 딱하십니다. 그 집을 팔았더라면 우리도 커다란 아파트로 이사도 하고 재산도 몇 배로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넌 그 땅 우리에게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냐? 없는 셈 쳐.”

“없는 게 낫지요. 이제 물 건너갔어요. 버스 지나갔다고요.”

“그건 무슨 소리냐?”

“건축업자들이 비싸게 땅을 사놓고 부도가 나서 공사를 안 한 대요.”

“그래서?”

“다른 집들은 비싸게 땅을 팔고 나가서 재산이 몇 배로 늘었고 다들 아파트에서 뻥뻥거리고 산답니다. 우리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어야 하는데 어머님 고집 때문에 망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뭐라는지 아세요? 어머니 고집에 집안이 망했다는 거예요.”

“망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땅이 없어지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다른 집들은 평당 천만 원씩 받고 팔았는데 우리 집은 도로 옛날 값으로 돌아갔답니다. 이게 망한 게 아니고 뭡니까.”

“난 안 망했다. 내 것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망하다니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아이고 답답해 어머니하고는 말이 통해야 하지요. 안 하렵니다.”

아빠는 얼굴이 빨개가지고 나갔습니다. 그 뒤를 이어 엄마가 들어왔습니다.

“어머님, 고집도 웬만하셔야지요. 남들은 떼돈을 벌어 떵떵거리고 산다는데 우리만 우스운 꼴이 되었어요.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어요.”

“너도 애비하고 같은 소리 할 거면 입 다물거라. 어째서 내 것을 못 팔아 안달이냐.”

“안달이 아니에요. 황금 값으로 땅을 판 사람들이 부러워서 그러지요.”

“부러울 것 없다. 난 그 동네 사람이 다 떠나도 내 고향을 버리지 않았으니 억울할 것도 없다.”

엄마는 기가 차서 더 말을 못하고 불만이 가득한 채 할머니 앞을 떠났습니다. 할머니가 준구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준구야. 그 땅은 네 것이다. 네가 지켜야 해. 네가 팔자면 할 수 있지만 네 엄마 아빠 말을 들을 수는 없다.”

“저는 할머니 고향이 어딘지도 모르는데요.”

“몰라도 괜찮아 네가 다 자라면 알게 해 줄 테다. 그리고 네 앞으로 땅문서도 내줄 거고.”

이렇게 할머니가 말씀하신 뒤에 또 일 년이 지나갔습니다. 일 년 동안 아빠와 엄마는 할머니한테 불만을 품고 사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아파트 값이 올라서 더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들은 엄마 아빠는 더 불만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파트 값이 아무리 올라 부자들이 되었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똑같은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 땅이 어디 가냐. 찾아갈 고향이 돈으로 계산할 수는 없지.”

준구는 엄마 아빠가 할머니 원망하는 것을 보면서 할머니가 불쌍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할머니를 만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 새옹지마

“할머니, 그 고향 땅을 저희에게 파십시오.”

할머니는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안 되오. 그 땅은 내 손자 주기로 약속했소.”

“손자가 어디 있습니까?”

“학교에 가서 아직 안 왔어요.”

“할머니, 아직은 그 땅이 할머니 앞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손자한테는 그만한 것을 물려주면 되는 것이고 할머니는 좋은 값으로 파시면 됩니다.”

“좋은 값이라니 얼마나 준다는 게요?”

“평당 이천만 원씩 쳐 드리겠습니다.”

“고작 그 값에 고향을 판단 말이오?”

“할머니, 그러시지 마세요. 그 동네 사람들은 그 반값에 팔고도 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공장을 짓는 것이 아니라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그 땅을 다 샀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네 땅이 그 한가운데 있어서 골프장 허가가 안 납니다.”

“내가 왜 그런 걱정까지 해야 하오?”

“할머니, 이러시지 말고 말씀만 하시지요. 달라고 하시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안 되오. 내 손자한테 물어봐야 하니까.”

“할머니, 그 땅을 이천 오백만 원에 쳐드릴 테니 그 대신 그 동네 앞에 있는 가장 큰 마당배미 땅을 사십시오.”

할머니가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마당배미를 내놓았단 말이오?”

“네. 지금 논 시세는 비싸봐야 이십만 원도 안 갑니다. 할머니와 비밀 약속을 하고 그 논 주인에게 평당 오십만 원만 준다고 하면 얼씨구나 할 것입니다. 할머니는 땅 천 평 팔아 그 논 이천 평을 사시고도 많이 남지 않습니까. 땅을 팔아 더 큰 땅을 사시는데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손자하고 의논하여 대답하리다.”

할머니는 준구와 한 약속 때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마당배미로 말하면 할머니가 젊은 시절 고향에서 가장 부러워하던 땅이고 그 땅을 가진 사람은 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였습니다. 늘 가난하게 살던 할머니한테 마당배미를 사게 해 준다는 말에는 마음이 약해지신 것입니다.

자기 땅을 이십오억 원에 팔아 마당배미를 평당 오십만 원씩 주어도 십억이면 됩니다. 그래도 십오억이 남으니 마음을 돌려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자기 집을 팔고 마당배미를 사서 땅 주인을 손자 앞으로 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할머니 고집 때문에 있었던 일을 손자에게 알려주었습니다.

할머니가 더 큰 돈을 받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배가 아파하면서 부러워하고 아들 부부는 좋아서 날마다 헤헤거리며 어머니 앞에 어린애 노릇을 했습니다.

할머니는 손자를 품에 안고 말했습니다.

“준구야 이런 것을 새옹지마라고 한단다.”

준구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습니다.

“새옹지마가 뭔데요?”

 

할머니가 자상하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새옹지마란 말이다. 옛날 북방 나라 변두리에서 말을 기르던 한 노인이 겪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하루는 노인이 기르던 말이 국경선을 넘어 달아났단다. 그것을 안 동네 사람들이 안됐다고 혀를 차며 측은히 여겼더란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이 말이 저쪽 나라에서 아주 좋은 말 한 필을 데리고 돌아왔더란다. 사람들은 또 저 집 경사 났다고 부러워했단다. 말 타기를 좋아하는 그 집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놀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또 불행한 일이라고 했단다. 그런데 얼만 안 있다가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젊은 청년들이 다 군대에 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아들은 한 다리가 없어서 군대를 못 갔고, 전쟁이 끝났을 때 동네 청년들은 다 죽고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했단다. 그러자 사람들은 불구로 살아남은 노인의 아들을 부러워했다는 이야기에서 새옹지마라는 말이 나왔단다. 사람은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또 나쁜 일이 더 좋은 일로 바뀌기도 하여 세상일이란 미리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다. 이만하면 알아듣겠니?”

“네, 할머니 고집도 새옹지마네요.”

손자가 놀리자 할머니는 주름살을 활짝 펴고 웃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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