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동화

두꺼비 공주

웃는곰 2010. 4. 18. 21:51

두꺼비 공주


1. 탄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왕비로 맞은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아름다운 왕비가 왕자든 공주든 낳아 주기를 바랐습니다. 왕비는 십년 만에 임신하여 임금님을 기쁘게 해드렸습니다.

임금님은 배가 불룩한 왕비를 보며 날마다 싱글벙글했습니다. 그리고 배를 쓰다듬으려 말했습니다.

“이 안에는 당신 닮은 예뿐 아기가 있을 것 같소. 당신 닮은 공주가 태어나면 더 좋을 것 같소.”

그렇게 하여 기다리던 달이 차서 왕비는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왕비의 출산을 돕는 조산원은 매우 지혜롭고 학문이 높으며 예언까지 하는 시녀였습니다.

왕비가 출산을 앞둔 날 아침 시녀가 말했습니다.

“왕비님은 출산 후에 공주님을 보시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왕자를 낳을지 공주를 낳을지 어떻게 알고 그렇게 말하시오?”

“공주님이 태어나거든 제가 지금 한 말을 믿어주시고 공주가 아니시면 벌을 내려 주시옵소서.”

왕비는 왕자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녀가 공주라고 하는 말에 적잖이 실망을 했습니다.

“만약 왕자가 태어나면 너는 죽을 것이고 공주가 태어나면 상을 주리라.”

이렇게 말을 주고받은 후 왕비는 예언대로 공주를 낳았습니다.

새로 태어난 공주를 받은 시녀는 너무 놀라 까무러칠 뻔했습니다. 몸은 아주 예뿐 여자 아이인데 얼굴이 두꺼비였습니다. 뱃속의 아기가 여자라는 것까지도 알아낸 시녀는 공주의 얼굴이 두꺼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당황하고 있을 때 왕비가 물었습니다.

“공주가 맞느냐?”

“예 공주가 맞습니다만……”

“그런데 어떻다는 것이냐. 아기 얼굴을 보고 싶구나. 이리 데려오너라.”

시녀는 차마 아기를 보여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보시지요.”

“나중이라니 언제 말이냐. 내 속에서 나온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 어서 보여다오.”

“그러시면 제 말씀을 들으신 다음 보시옵소서.”

“무슨 말이냐?”

“새로 태어난 공주님을 앞으로 이십 년 동안 임금님께 보여드리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왕비께서도 공주가 여덟 살 때까지만 데리고 계시다가 궁에서 내보내셔야 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들을수록 괴이한 소리만 하는구나.”

“제가 뱃속에 계신 공주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지금 드린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아이 얼굴 한번 보자는데 이유가 너무 많구나. 빨리 보여 다오.”

“제 말을 믿으신다면 지금 안 보고 계시다가 이십 년 뒤에 보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네가 나를 우롱하는 것이냐? 자식을 낳아 부모가 이십 년씩이나 보지 못하다니 그게 무슨 경우냐?”

“그러시면 아기 얼굴은 보지 마시고 옥체만 보시옵소서.”

“얼굴을 못 보면 몸뚱이는 보아서 무얼 하겠느냐? 어미가 자식 얼굴 보는데 무엇이 그리 복잡하냐.”

“그러시면 마음을 평안히 하시고 보시옵소서.”

시녀는 왕비의 말대로 공주를 보여주었습니다. 왕비는 갓 태어난 아기를 보자마자 놀라 ‘악’하고 돌아누워 정신을 잃었습니다. 

2

한편 산실에 든 왕비를 걱정하는 임금님은 어떤 아이가 태어날 것인지 궁금하여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여봐라 아직도 소식이 없느냐?”

“예, 아직 전갈이 없었사옵니다.”

“허허 매우 궁금하구나.”

신하들이 허리를 꺾은 채 대답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신하가 산실을 향해 달음질쳐 가 조산 시녀에게 물었습니다.

“이봐라 왕비 마마께서는 어찌 되었느냐? 상감마마께서 크게 궁금해 하고 계신다.”

조산 시녀가 말했습니다.

“왕비 마마께서 아직 몸을 추스리지 못하시니 잠시 기다리시오.”

그리고 시녀가 산실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왕비가 정신이 들어 눈을 떴습니다.

“마마 마마.”

시녀는 감격하여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왕비가 물었습니다.

“아이가 건강하기는 한 것이냐?”

“예, 매우 건강하옵니다.”

“이를 어쩌면 좋으냐.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죽일 수도 없고 살려두자니 앞일이 캄캄하구나.”

“너무 심려 마시옵소서. 공주 마마는 제게 맡겨주시옵소서.”

“어떻게 말이냐?”

“공주 마마가 여덟 살이 될 때까지는 곁에 두셨다가 그 후에는 소인이 모시고 궁을 나가겠습니다.”

“그 말은 더 알 수 없구나. 그러면 당장에 상감마마는 무슨 면목으로 뵙겠느냐?”

“제가 마마를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산실을 나선 시녀는 기다리는 신하를 앞세우고 임금님 앞으로 갔습니다. 임금님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되었느냐?”

시녀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고했습니다.

“상감마마께서 소인에게 왕비가 왕자를 잉태하였느냐 공주를 잉태하였느냐 하문하실 때 제가 올린 말씀이 있사온데 기억하고 계시온지요?”

“그러면 네 말대로 공주란 말이렷다?”

“그러하옵니다. 아주 예뿐 공주님이시옵니다. 하온데 꼭 올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무슨 말이냐?”

“임금님께서는 앞으로 이십 년 동안 공주님을 만나시면 아니 되옵니다.”

“그 무슨 해괴한 말이냐?”

“제가 태중의 공주님을 알고 있었듯이 공주님의 장래도 알고 올리는 말씀이오니 미천한 것의 충언을 들어주시옵소서.”

“내가 공주를 만나면 안 될 일이 무엇이란 말이냐?”

“이십 년 안에 마마께서 보시면 공주님은 사람의 모습을 잃고 괴물로 변하옵니다.”

임금님은 놀라움과 노여움으로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습니다.

“그런 망측한 말이 어디 있느냐? 아비가 자식을 보는데 자식이 괴물로 변하다니 네 아무리 예언을 잘 한다 하여도 그 말은 믿을 수 없구나. 내 가서 보고 말리라.”

임금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산실을 향해 어보를 옮기셨습니다.

3

조산시녀는 임금님보다 앞질러 달려가 왕비를 만나 고했습니다.

“상감마마께서 오시고 계시옵니다. 만약 상감마마께서 공주님에 대하여 물으시거든 마마께서도 아직 공주님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시옵소서.”

“그 무슨 말이냐?”

“그렇게만 하시고 아무 말씀도 마시옵소서. 그리고 소인이 하는 대로 듣기만 하시면 되옵니다.”

이때 임금님이 당도하였습니다. 조산시녀는 급히 임금님 앞에 엎드려 아뢰었습니다.

“상감마마 소인이 말씀드린 대로 공주님을 만나지 마시옵소서.”

“허허 네가 짐의 앞을 막다니 무엄하도다.”

임금님은 성큼성큼 산실로 향했습니다. 시녀는 또 임금님 앞을 막아섰습니다.

“소인의 무례를 용서하시옵소서. 지금은 때가 아니옵니다.”

임금님은 노하여 따르는 신하에게 명하였습니다.

“여봐라 이 못된 것을 당장 하옥하라.”

“상감마마 참으시옵소서. 후회할 일을 당하지 마시고 소인의 진언을 들어주시옵소서.”

“뭣들 하느냐 당장에 이 자를 하옥하라.”

조산시녀는 신하들의 손에 잡혀 옥에 갇혔습니다. 임금님은 산실로 들어가 왕비를 보고 위로했습니다.

“수고하시었소. 시녀를 통하여 건강한 공주를 출산하였다는 말과 아이가 아주 예쁘다는 말은 들었소. 당신 보시기에는 어떠합니까?”

“저는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아직도 못 보았다는 말이오?”

“조산시녀 말이……”

“허허 그 요사스런 것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모르겠구려.”

임금님은 다른 시녀를 향해 하명했습니다.

“공주가 있는 영아실로 안내하라.”

임금님 명을 거역하지 못하는 시녀는 공주가 있는 영아실로 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왕비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 졸였습니다. 그러나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산시녀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임금님은 영아실로 들어가 갓 태어난 공주를 보는 순간 놀라서 앗! 하고 소리치며 물러섰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돌아서 나왔습니다. 임금님 얼굴은 노여움과 실망으로 일그러졌습니다.

실심한 임금님은 묵묵히 돌아오면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내가 실수를 했구나. 시녀가 하는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이 어찌된 일인가. 내가 들여다본 죄로 아이가 괴물이 되었으니 산모한테는 또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답답하도다.’

임금님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왕비 곁으로 갔습니다. 왕비가 물었습니다.

“아이를 보셨습니까?”

“보았소.”

“어떻게 생겼던가요. 조산시녀 말대로 귀엽고 예쁘게 생겼는지요?”

임금님은 기가 막혀 주저하다가 힘 빠진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조산 시녀가 보여주면 그 때 보시오.”

이금님은 왕비 곁을 떠나 밖으로 나오자마자 명을 내렸습니다.

“조산 시녀를 당장 데려오너라.”

4.

감옥에서 나온 시녀가 임금님 앞으로 나아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임금님은 시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고개를 들라. 너의 말을 가벼이 들은 것이 후회스럽다. 좀 더 완곡히 짐의 앞을 막았더라면 좋을 뻔하였지만 이제 앞으로 어찌해야 좋겠는지 말해 보거라.”

시녀는 겸손히 고했습니다.

“이왕 일이 이리 된 것이오니 소인의 청을 들어주소서.”

“말해 보거라.”

“앞으로 이십 년 동안 마마는 공주님을 잊고 사셔야 합니다. 왕비님이 팔년 동안 돌보신 후에 이 신이 공주님을 모시고 궁 밖으로 나갔다가 이십 년이 되는 오월에 돌아오겠사옵니다.”

“짐이 너의 말을 믿기로 했으니 그리 하라. 내가 공주를 본 죄로 이리 되었으니 왕비에게는 무슨 말로 위로해야 좋을지 고하라.”

“그 일은 소신이 원만히 하겠사오니 아무것도 모르시는 양 하시고 이십 년간 함구하여 주옵소서. 전하께서 소인의 청을 들어주시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옵니다. 이 일은 절대로 더 이상 말씀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그리 하겠노라. 좋은 일이 있도록 하라.”

조산시녀는 임금님의 윤허를 받고 왕비 곁으로 갔습니다. 왕비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습니다.

“임금님께서 보시고 어찌 되었는지 말하여 주시게.”

“예, 소신이 잘 말씀드려서 전하께서는 공주님을 보시지 못하였사옵니다. 다만 저에게 곱게 자라도록 돌보라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하오니 아무 염려 마시고 이제부터는 공주님의 외모를 생각지 마시고 곱게 성장하게 하옵소서.”

“내 분신인데 얼굴이 문제겠는가. 부모의 사랑은 다를 수 없는 것, 더욱 불쌍히 보고 더 사랑하여야 할 것이네.”

“황공하옵니다. 그리 하시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팔년 동안은 이 비밀을 아는 시녀들과 공주만 별궁에서 지내게 하시고 외부인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시옵소서. 팔년이 차면 소인이 모시고 궁을 나가 장성하도록 돌본 후 공주님이 스무 살이 되는 해 오월에 부마를 모시고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왕비는 놀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오죽 좋겠나. 모든 것을 알아서 하게. 그런 날을 기다리겠네.”

이렇게 하여 공주는 별궁에서 성장했습니다. 공주는 얼마나 영특했던지 팔 년째 되는 해에는 모든 경서를 다 읽고 풀었습니다. 몸매도 예쁘고 목소리도 예쁘고 하는 짓도 예쁘고 어느 것 하나 흠할 데가 없는 소녀가 되었습니다.

얼굴은 두꺼비지만 눈빛이 얼마나 맑았던지 시녀들이 눈빛에 매혹되어 얼굴이 다르게 생긴 것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임금님은 시녀의 말대로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뉘우치며 팔 년을 지냈습니다.

조산시녀는 공주의 머리와 얼굴에 맞는 예쁜 가리개를 만들게 하여 씌운 뒤 한밤중에 궁궐을 나서서 어둠속으로 사라졌습니다.

5

공주를 떠나보낸 왕비는 눈물로 밤을 새웠습니다. 그리고 시녀가 남기고 간 문서를 펴 보았습니다.

[떠나올 때 확인하여 드린 공주님 양쪽 복숭아뼈 아래 작은 점이 둘씩 나 있는 것을 잊지 마소서.]

왕비는 시녀가 왜 그런 글을 남겼는지 짐작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고맙기도 하지. 앞으로 12년 뒤에 그 아이가 처녀가 되어 돌아올 때 내 딸인 것을 잊지 말고 확인하라는 증표지. 지혜롭고 좋은 사람이야. 그런 사람한테 맡겼으니 걱정은 안 해도 좋을 거야. 그가 한 말을 믿어야지 암.’

왕비는 이렇게 생각하며 그 문서를 깊이 간직했습니다. 그리고 임금님은 공주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매우 궁금했지만 이십 년을 기다리기로 하고 정사에만 몰두하였습니다.


한편 공주를 데리고 길을 나선 시녀는 밤을 새워 걸었습니다. 공주를 걸리기도 하고 걷다가 힘들어 하면 업고 걸어서 새벽이 될 때는 아주 먼 곳까지 와 있었습니다.

마음씨가 비단결 같은 공주는 시녀가 하는 대로 따랐습니다. 궁에서만 살던 공주는 세상 풍경이 모두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날이 완전히 밝아지자 멀리 강이 보이고 뒤로는 아주 높은 산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습니다.

공주는 신기한 생각을 하며 물었습니다.

“여기가 어디야?”

“여기는 소인이 어렸을 때 살던 고향입니다. 앞에 보이는 저 동네가 소인의 고향입니다. 소인이 고향집에 당도하면 공주님은 그때부터 남이 보는 앞에서는 소인을 어머니라고 부르셔야 합니다. 그리고 둘이 있을 때는 제가 공주마마라고 부를 터이니 그럴 때는 지금처럼 편히 부르셔도 됩니다.”

“정말 어머니라고 불러도 된다고?”

“그러하옵니다.”

“아이 좋아라. 나는 궁에 있을 때도 엄마라고 불러보고 싶었는데 정말 그렇게 불러도 돼요?”

“그러하옵니다 마마.”

공주는 아주 맑고 명랑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저한테 마마라고 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엄마마마.”

“농담이 심하시옵니다 공주마마.”

“농담이 아니옵니다 어머니.”

공주는 시녀를 와락 끌어안고 아기 짓을 했습니다. 시녀는 공주의 하는 짓이 정답고 귀여워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공주가 즐거운 듯 까치걸음을 치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있는 줄 몰랐어요. 좁은 궁궐에서 날마다 보는 사람도 그 사람뿐이고 하는 말도 그 말뿐이고 싫증이 났었는데 이렇게 나오니 가슴이 터질 듯 즐거워요.”

“정말 그렇게 즐거우십니까 마마.”

“또 마마! 딸한테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엄마 마마!”

“너무 그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그렇게 아니 하시면 소인도 딸 노릇을 할 수 없사옵니다 엄마 마마.”

그리고 두 사람은 끌어안고 가슴이 시원하도록 웃어댔습니다.

시녀는 고향집에 돌아온 것이 감격스러웠습니다. 한 번 궁에 들어가면 죽어서나 나오는 것으로 아는 고향 오빠는 궁으로 들어간 동생이 온 것을 보고 반가워하면서도 걱정스러워 물었습니다.

“네가 거기서 어떻게 나왔단 말이냐? 이게 꿈이 아니냐?”

“꿈이 아니에요 오라버님.”

오빠는 함께 온 공주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이 아이는 누구냐?”

6.

시녀는 진지하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궁에서 만난 귀인의 따님이신데 저하고 정이 들어 수양딸로 삼았습니다. 앞으로 오라버님도 딸처럼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냐? 어차피 너는 자식을 둘 수 없는 몸이니 그렇게라도 어미 노릇하고 엄마 소리 들으면 좋겠지. 그런데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어떻게 생긴 아이인지 궁금하구나.”

“오라버님께 간곡히 부탁드려요. 이 아이는 아주 귀한 몸으로 그 얼굴을 아무에게나 보여주면 안 되어요. 만약 다른 사람이 보기라도 하면 그 순간 괴물로 변한다고 해요. 그래서 이리로 피신 온 거예요. 제가 머물다 가기까지 오라버님도 아이의 얼굴을 절대로 보시면 안 돼요. 명심하세요.”

“알았다. 그런 일이라면 조심해야지.”

“고마워요 오라버님.”

이렇게 하여 공주와 시녀는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구석방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 시녀의 오빠는 궁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 아이는 이때까지 들어보지 못한 곱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어. 목소리뿐 아니라 몸매가 저렇게 예쁜데 얼굴은 얼마나 예쁠까? 얼굴이 너무 예뻐서 아무나 보지 못하게 하느라고 동생이 그랬을 거야. 내가 본다고 사람이 괴물이 된다는 말은 믿을 수 없지. 언제든 기회가 있으면 딱 한번만 볼 거야.’

이런 생각을 하는 시녀 오빠는 날이 갈수록 궁금증이 더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동생이 밖에 나가고 없을 때 방에 혼자 있는 공주를 문틈으로 몰래 훔쳐보았습니다.

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 공주를 숨어 본 오빠는 너무 놀라 벌러덩 나자빠졌습니다.

“아아, 아니야, 아니야 사람이 아니야.”

공주의 방문 앞에서 돌아온 시녀 오빠는 자기 방으로 가 이불을 들쓰고 누웠습니다.

“아아! 이를 어쩌면 좋을꼬. 내가 큰 죄를 짓고 말았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 예쁜 아이가 두꺼비로 변했어. 두꺼비, 내가 아이를 두꺼비로 만들고 말았어. 우응우응.”

밖에서 돌아온 시녀가 이불을 들쓰고 누워 앓는 소리를 내는 오빠에게 물었습니다.

“어디가 편찮으셔요?”

“아니다 아니야.”

“얼굴이 왜 그래요? 병이 나도 크게 나신 것 같아요.”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렇게 병자 노릇을 하는 오빠는 여러 날을 두고 문밖출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픈 것도 아니면서 병자처럼 누운 오빠를 보던 시녀가 물었습니다.

“오라버님, 어디가 아픈 게 아니고 마음에 비밀이 생기신 거지요?”

“……”

“오라버님이 기어코 실수를 하신 게 맞지요? 제가 드린 말씀을 어기고 저 아이를 괴물로 만들어 놓으셨지요?”

오빠는 일어나 앉아 동생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용서해다오. 내가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내가 실술 했어.”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약속을 어기시면 어떻게 해요. 오라버님 죄가 커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오빠가 저 아이 책임을 지셔야지요.”

“책임이라니?”

“길러서 시집까지 보내셔야지요.”

오빠는 기가 막혔습니다.

“저 아이를 시집을 보내라고?”

7.


7. 

얼굴이 두꺼비인데 어떻게 시집을 보내라는 말인가 하여 놀란 오빠에게 시녀가 다그쳐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아아, 아니다. 아니야.”

오빠는 이렇게 말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누가 두꺼비 색시를 데려간다고 시집까지 모낸단 말인가? 누가…… 큰일 났구나.’

오빠는 생각할수록 기가 막혀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오라버님, 이제 죄 값을 치른다는 각오로 제 말을 명심하셔요.”

“암암, 무슨 말이든 네 말이라면……”

“저 아이가 다 자라 시집갈 때까지 이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시면 안 되어요. 그 비밀을 퍼뜨리면 그 사람은 죽는다고 했어요. 오래 사시려면 입 꼭 다물고 저 아이가 스물이 될 때까지 정성껏 돌보아 주세요,”

“알았다.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하마.”

이때 공주가 다가왔습니다. 오빠는 멈칫 물러서며 물었습니다.

“얘야, 네 이름이 무어냐?”

시녀가 얼른 대답했습니다.

“오빠는 이제부터 이 아이를 공주님이라고 부르세요. 저도 공주님이라고 부르겠어요.”

오빠는 마뜩치 않았습니다.

“공주가 뭐냐. 임금님 딸이나 공주라고 하지 누가……”

시녀가 정색을 하고 말을 막았습니다.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그렇게 못하시겠어요?”

오빠는 죄인이 된 심정이라 꼼짝 못했습니다.

“알았다 알았어, 공주라고 부르면 어떻고 뭐라고 부르면 어떠냐. 공주라고 부르마. 그러나 너까지 공주라고 부를 거야 없잖으냐?”

“저한테도 공주예요. 오빠 죄는 저도 벗을 수 없어요.”

“알았다 알았어.”

이렇게 말은 했지만 오빠는 속으로 불만스러웠습니다.

‘공주, 공주 아무나 공주라고 부르다니……’

시녀는 오빠에게 앞으로의 일을 말했습니다.

“오라버니 죄로 저는 여기서 살 수가 없어요. 공주를 데리고 아무도 안 보는 산속으로 들어가 초막을 짓고 약초 재배를 하겠어요. 그리고 공주가 스무 살이 되는 해에 돌아올게요.”

“그렇게 오래 산속에서 지낸단 말이냐?”

오빠는 괴물로 변한 공주와 하루도 한 집에 살기 싫었습니다. 누가 그 얼굴을 보기라도 하면 안 될 것이고 자기도 싫은 터에 집을 나가겠다고 하니 반가웠습니다.

시녀는 오빠의 도움을 받으며 공주를 데리고 아주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공주는 산과 들과 아름다운 새들의 노래 소리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에 취하여 떠나온 궁궐은 까맣게 잊고 책 읽고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살았습니다.

세월이 가고 어느덧 공주가 열여덟이 되었습니다.

산속에 살아서 세상을 모르고 지냈지만 시녀의 도움으로 많은 공부를 하여 훌륭한 인격을 갖추었습니다.

어느 날 공주가 물었습니다.

“정성들여 가꾼 이 약초는 다 어디 쓸 건가요?”

“이것은 모두 귀한 것으로 장차 임금님이 쓰시게 될 것입니다.”

“임금님이라면 아바마마 말씀인가요?”

“그러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르지 못한 약재가 있는데 그것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오십 년 넘은 산삼을 구해야 하는데……”

“산삼은 아주 깊은 산속에서 자란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그럼 제가 구해 보겠어요.”

“산삼을 보지도 못하고 어떻게 구하시겠다고……?”

“책에서 그림을 보아 알고 있습니다.”

공주는 약초 재배에 관한 책을 꺼내 놓고 산삼 그림을 가리켰습니다.

“이 그림이 맞지요?”

“저도 실물은 보지 못한 것이라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제가 저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구해 오겠습니다.”

공주는 활기차게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시녀는 따라 갈 수가 없었습니다.



공주는 하늘만큼 높이 올라갔습니다.

안개가 산허리에 걸쳐 흐르고 구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자

어디선가 폭포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상하다, 이 소리는 폭포 소리가 분명한데 이렇게 높은 산속에 폭포가 있다니……’

발길을 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옮겼습니다.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고 지나가는 바람결에 처음 맡아 보는 진한 향기가 풍겨왔습니다.

‘아! 이 달콤한 향기! 무슨 향기일까?’

공주는 향기에 취한 채 정신없이 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산 위에서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린 물줄기가 높은 낭떠러지 밑으로 비단 폭이 흘러내리듯 은빛으로 쏟아지고 그 아래로 커다란 호수가 출렁거렸습니다.

수정같이 맑은 호수 둘레는 온갖 꽃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향기를 뿜었습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아름다운 꽃들은 저마다 색다른 향기를 날리고 파란 잎들은 야들야들한 윤기로 반짝거렸습니다.

하얗게 내리꽂히는 폭포 둘레로 일어난 물보라 속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떠올라 구름다리를 놓았습니다.

신선이 사는 낙원이 있다더니 여기가 낙원인가?’

공주는 아름다운 꿈에 젖어 꽃들이 방실거리는 비탈을 조심조심 밟고 내려갔습니다. 물가로 갈수록 탐스럽고 화사한 꽃이 반기고 마음을 빨아들이는  향기가 진하게 풍겼습니다.

공주는 비탈 아래로 갈수록 더 예쁜 꽃과 진한 향기에 취하여 위험도 모르고 내리 밟다가 발을 헛딛고 말았습니다.

“아악!”

공주는 폭포의 물보라 속으로 빨려들어 깊은 호수에 풍덩 빠졌습니다.

물살에 밀린 공주는 물속 깊이 들어갔다가 솟구쳐 오르면서 물을 먹고 다시 빠져들어 정신을 잃었습니다.



이때 공주의 모습을 호수 건너편 숲속에서 경계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우람한 체격에 피부가 새순 같고 눈매가 호수같이 맑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폭포수 건너편 들꽃이 어우러진 꽃 속을 향기를 맡으며 내려 밟는 공주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얼굴은 가려서 안 보이지만 꽃을 어루만지는 하얀 손과 야릿한 허리, 동그랗고 작은 어깨와 등은 보는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렇게 높은 산속에 가녀린 아녀가 어떻게 올라왔을까? 그것도 혼자……’

청년은 세상에 태어나 여자를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여자뿐 아니라 자기와 아버지 외에 다른 사람을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여자가 산속에 있다는 것만도 신기하고 마음이 떨렸습니다.

그런 아가씨가 눈 깜짝할 사이에 깊은 호수 속으로 풍덩 빠진 것입니다. 청년은 걸치고 있던 호랑이 가죽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호수 속으로 몸을 날렸습니다.

공주가 정신을 잃고 물속에서 떠오르는 순간 청년이 한 손을 내밀어 가는 허리를 당겨 안고 한 손으로는 헤엄을 쳐 밖으로 나왔습니다. 공주는 정신을 잃어 아무것도 모른 채 청년이 하는 대로 몸을 맡겼습니다.

청년은 공주를 자기가 벗어던진 호랑이가죽 옷을 펴고 그 위에 눕혔습니다. 그리고 공주의 가슴을 눌러 배에 찬 물을 빼내고 이어 입으로 공주 입에서 물을 빨아냈습니다.

공주가 정신은 잃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안 청년은 물에 흠뻑 젖은 공주의 옷을 벗겼습니다.

백옥같이 뽀얀 속살이 드러나도 공주는 정신을 놓고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청년은 자기 옷으로 공주를 덮어 주고 젖은 옷을 빨아 나뭇가지에 걸어 말렸습니다.

물에 빠진 공주는 청년의 도움으로 살아났습니다. 공주는 정신을 잃고 있다가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몸을 뒤척였습니다. 청년이 반가움에 다가가 물었습니다.

“정신이 드시오?”

갑작스런 남자의 목소리에 놀란 공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청년은 공주의 눈빛에 빠져 버렸습니다.

‘아! 저 맑고 깊은 눈빛!’

얼굴은 두꺼비지만 사랑이 가득하고 꿈이 고인 아름답고 신비한 눈빛이었습니다. 그는 순간 잃어버린 구슬에서 찾던 어머니의 눈빛을 떠올렸습니다.

청년은 공주의 눈빛에 넋을 잃었습니다. 공주가 재차 물었습니다.

“누구신가요?”

청년은 당황하여 주저했습니다.

“저… 저는……”

“여기가 어딘가요?”

“여기는 아주 높고 깊은 산속입니다.”

“제가 어떻게 된 건가요?”

“폭포 둘레의 꽃구경을 하다가 물에 빠지셨습니다.”

공주는 발을 헛딛고 물에 빠진 생각이 났습니다.

“저를 구해주신 분인가요?”

청년은 대답 대신 빨아 넌 옷을 걷어다 내밀었습니다.

“제가 옷을 빨아 말려 놓았습니다. 이제 입으시지요.”

청년은 주머니에서 알약을 꺼내어 내밀었습니다.

“이걸 입에 넣고 침으로 삼키시지요. 놀란 데 먹는 약입니다.”

공주는 약을 받아들고 허리를 숙여 보이며 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한데 여기는 어떻게 오셨나요?”

“여기는 제가 사는 곳입니다. 아가씨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는지가 더 궁금합니다.”

청년은 말을 하면서도 공주의 맑고 따듯한 눈빛에 취하여 두꺼비 얼굴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저 아래 골짜기에 살고 있습니다. 이 산 높은 곳에 가면 산삼이 있다기에 그걸 캐러 왔습니다.”

청년은 매우 놀라 물었습니다.

“산삼아 있다고 한 분은 누구십니까?”

“우리 엄마마마십니다.”

“엄마마마시라고요?”

“예.”

“엄마한테 마마라고까지 부르시니……”

“저를 길러주신 엄마 같은 분인데 제가 그렇게 부른답니다. 그리고 엄마 마마는 저를 공주님이라고 부르지요.”

“공주님이라고요? 산속에 살면서 궁궐에 사는 줄로 오해를 하고 사는 분들 같군요.”

“그래요 우리는 어디 살아도 마음이 궁궐에 살고 있으니까요.”

“참 재미있습니다. 어디 살아도 마음먹기 따라 궁궐이 될 수도 있지요. 하하하.”

청년의 웃음소리가 얼마나 우렁차고 시원했던지 산바람보다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남자 웃음소리를 처음 들었어요.”

“그렇습니까? 저는 공주님처럼 아름다운 눈빛은 처음 보았습니다. 하하하.”

“저보고 공주라고 하셨어요? 호호호.”

청년은 공주의 눈빛에만 넋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목소리가 얼마나 맑고 고운지 선녀의 목소리가 저런 것 같다고 생각하였는데 웃음소리는 더 아름다웠습니다.

청년이 나직이 물었습니다.

“공주님은  산삼을 보셨습니까?”

10.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러시면 다음에 찬아 보시고 오늘은 내려가십시오. 여기는 깊은 산속이라 해가 바로 떨어집니다. 잠시 후면 어두워집니다.”

“그렇게 빨리나요?”

“평지보다 세 시간 이상 어둠이 빨리 찾아옵니다. 제가 앞설 테니 따라 오십시오.”

“아니에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안 됩니다. 빨리 제 말대로 하시지 않으면 못 내려가십니다.”

청년이 앞장서 걸었습니다. 공주는 마지못해 뒤를 다르며 물었습니다.

“궁금한 것 물어봐도 괜찮아요?”

“궁금한 건 나중에 물으셔도 됩니다.”

“이 산속에도 동네가 있나요?”

“없습니다.”

“그럼 누구하고 사시나요?”

“혼자 삽니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부지런히 따르십시오.”

“해가 아직 저렇게 있는데요.”

“여기 해는 순식간에 집니다. 지체하면 캄캄해집니다.”

“그래도 좀 천천히 걸으셔요.”

그러는 사이에 높이 보이던 해가 산을 넘고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무슨 해가 이렇게 빨리 지지요?”

공주는 비틀거리며 발을 제대로 떼지 못했습니다. 청년이 다가와 팔을 잡았습니다.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자 않으면 안 됩니다. 더 어두워지면 산짐승이 나타납니다.”

그렇게 얼마를 걸어 공주는 청년의 손에 잡힌 채 시녀가 기다리는 초막으로 돌아왔습니다. 시녀는 애타게 기다리다가 청년이 부추기고 오는 것을 보고 기뻐 소리쳤습니다.

“공주님! 어디를 가셨었어요?”

그러다가 곁에 있는 청년을 보고 멈칫하고 허리를 숙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와주신 은혜 하늘같습니다.”

공주가 시녀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마마, 이 분이 아니었더라면 죽을 뻔했어요.”

청년은 두 사람이 정말로 공주님, 엄마 마마하고  부르는 것이 신기해서 빙긋이 웃었습니다.

시녀는 두 사람을 방으로 들였습니다. 그리고 밥상을 차려 내놓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대접할 것이라곤 이런 것뿐이니 변변찮지만 함께 드시지요.”

“아닙니다. 저는 밥을 먹지 않습니다.”

“그렇게 겸손해 하실 것 없어요. 은인께 드릴 것이 이것뿐이니 섭섭히 생각 마시고 드시지요.”

“아닙니다. 두 분은 식사를 하시지요. 저는 물 한 그릇만 주시면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물 한 그릇만 드릴 수는 없지요.”

청년은 주머니에서 알약 몇 개를 꺼내 들고 보여주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양식입니다. 물 한 그릇에 이 알약 몇 개만 먹으면 됩니다.”

시녀는 부엌에서 물을 떠들고 들어오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이상한 사람이야. 식사를 알약으로 대신하는 사람이 또 있다니…… 그 사람은 세상을 뜬 지가 오래 되었는데…….’

시녀는 궁금증을 품고 청년이 하는 거동을 살피다가 물었습니다.

11. 

“정말로 밥은 먹지 않고 그 약만 먹고 산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언제부터 그러셨소?”

“아주 어려서부터입니다.”

“어려서라면?”

“다섯 살부터입니다.”

시녀는 무엇인가 손으로 계산해 보다가 또 물었습니다.

“지금 몇 살이시오?”

“스물 셋입니다.”

“이름은……?”

“허숭입니다.”

“허?”

시녀는 놀라운 듯 말을 못했습니다. 공주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놀라셔요?”

“아, 아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시녀가 입을 열었습니다.

“어쩌다가 이 산속까지 오셨소?”

“어려서 일이라 잘 모릅니다. 아버님은 어의(임금님을 돌보는 의사)셨다고 합니다.”

“어의?”

시녀는 더 놀라 다시 물었습니다.

“어의셨다고?”

“네.”

“지금까지 아버님과 둘만 사셨소?”

“예.”

“그때부터 밥 대신 알약만 먹고 사시었소?”

“그렇습니다. 저는 밥을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시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습니다.

“아버님 이름이 허윤이 아니셨나요?”

이번에는 청년이 더 놀랐습니다.

“그걸 어떻게……?”

시녀는 청년의 손을 와락 잡았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아버님이 살아 계시오?”

“모릅니다.”

“모르다니?”

“아버님은 3년 전에 저한테 의학서적과 문서를 주시면서 제가 스물다섯 살이 되거든 산을 내려가 궁궐로 찾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문서는 봉한 채 어떤 일이 있어도 열어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앞으로 안 보이더라도 찾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안 보이다니?”

“아버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산 높이 올라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셨습니다.”

“찾아보지도 않았소?”

“찾아보았습니다. 며칠을 두고 산속을 헤맸지만……”

시녀는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의선이셨어 의선……”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있던 공주가 끼어들었습니다.

“참 이상한 말씀들을 하시네요. 의선은 무슨 말인가요?”

“그건 궁궐에서 의사(의원)끼리 하던 말인데 의술이 높은 신선이라는 말로 아무한테나 붙이는 이름이 아니었지요.”

청년은 시녀의 신분을 모르기 때문에 놀라는 한편 경계심을 가지고 물었습니다.

“혹시 궁궐에서 일하신 적이 있으셨나요?”

시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없어요. 우리 같은 게 어찌……우리는 이렇게 아무렇게나 살면서 서로 공주님 마마님 하고 재미있게 살았다오.”

공주는 시녀가 거짓말 하는 것을 알면서도 한 눈을 감았습니다.




12

 12


허숭의 말을 들은 시녀는 잊고 있던 궁궐에서의 옛일을 떠올렸습니다.


‘어의 허윤이라면? 이 청년은 그 아들이 틀림없어. 당파 싸움에 휘말려 어려운 처지에 있다가 어느 날 궁에서 홀연히 사라진 인물이었지. 고결하고 청렴한 인물이었는데. 그가 이 산속으로 피신해 살았을 줄이야……’


세 사람은 날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청년 허숭이 산으로 들어가면서 말했습니다.


“언제든지 산에 오르시면 폭포수 건너편 큰 바위 아래로 오십시오. 거기가 저의 집입니다.”


“알았소. 며칠 후에 찾아가 보기로 약속하오.”


이후부터 그들은 이년 동안 산을 오르내리며 정을 나누었습니다. 허숭과 공주는 친남매보다 더 친하여 날마다 만나고 싶어 했고 시녀도 두 사람이 친하게 지내는 것을 도왔습니다.


허숭이 스물다섯이 되고 공주가 스무 살이 되는 해 정월 시녀가 허숭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그 동안 지켜보니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고 있고 내가 보기에도 좋아 보여서 인연을 맺었으면 하는데 우리 공주를 어떻게 생각하오?”


허숭은 밝은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공주님이 허락만 하신다면 저는 엄마 마마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고맙소. 내가 공주의 마음도 알아보겠소.”


이렇게 하여 공주도 만족해하므로 두 사람은 혼인하기로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하고 기쁨에 넘쳐 날마다 싱글벙글했습니다.


시녀가 두 사람을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이 혼인을 하자면 여기서는 할 수 없으니 서둘러 우리 집이 있는 고향으로 가야겠소. 떠날 준비를 합시다.”


이렇게 하여 이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허숭의 짐은 간단했습니다. 호랑이가죽 덮개 하나와 의서와 비밀문서 보따리가 전부였습니다. 시녀와 공주도 간단히 짐을 챙기고 떠났습니다.


집을 떠났던 동생 시녀가 돌아오자 오빠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 저 청년은 또 누구고?”


“공주 신랑감이라우.”


“뭐야? 공주 신랑감? 저렇게 잘 생긴 사람이 그 두꺼비공주와 결혼을 한다고?”


“못 할 것도 없지요. 두고 보시우 잘 살기만 할 테니.”


“한심한 친구로군. 눈이 멀었어. 저 인물에 두꺼비하고 결혼을 한다고? 나라면 저런 여자하고는…… 허허허.”


“웃음이 나오세요, 그게 누구 책임인데?”


오빠는 찔끔하여 말을 못하고 수그러들었습니다. 그 전에 자기가 보아서 공주가 괴물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알았다. 알았어. 앞으로 뭘 도와주랴?”


“삼월에 혼인식을 올리려 해요. 혼인 준비를 해 주세요.”


“알았다. 혼인 날 찬치를 크게 벌여주면 되겠느냐?”


“그래요.”


“동네에 소문을 내고 사람들을 많이 불러야겠지?”


“마음대로 하세요. 다만 그 날 신부 얼굴을 아무도 못 보게 해야 하는 건 아시겠지요?”


“암, 혼인식은 안에서 하고 손님들은 밖에서 모시면 될 거 아니냐.”


그렇게 하여 공주는 허숭과 혼례식을 올렸습니다.


시녀는 자기 방을 신방으로 꾸미고 신랑 신부가 첫날밤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시녀는 공주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공주님, 오늘 밤은 공주님이 허물을 벗으시는 날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혼인을 하고 첫날밤을 보내면 허물을 벗는다는 말이 예전부터 있습니다. 새 사람이 된다는 말이지요.”


“새 사람이 어떻게 되나요?”


“아주 딴 사람이 되는 거랍니다.”


“저는 딴 사람 되는 거 싫어요.”


“싫다고 안 되는 게 아니라 여자는 남자와 첫날밤을 보내면 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시녀가 공주와 말을 마치고 신방에서 나오자 허숭이 공주와 한 방에 들었습니다.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습니다. 신랑 허숭은 공주가 아직도 단꿈을 꾸고 있구나 생각하며 신부의 얼굴을 살짝 훔쳐보았습니다.


“앗!!”


허숭은 소스라치게 놀라 허둥지둥 밖으로 나와 시녀를 불렀습니다.


“엄마 마마! 엄마 마마!”


13


바로 가까이 있던 시녀가 다가오며 물었습니다.


“왜 그러시나?”


시녀는 태연히 허숭의 놀란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엄마 마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되다니?”


“공주님이, 아니 신부가……”


“무엇이 어떻다는 건가?”


“신부가 바뀌었습니다. 신부가 바뀌었어요.”


“어떻게?”


“제가 아는 공주님 아니라…… ”


“아니면? 말해 보게나.”


“딴 사람입니다.”


“어떻게 딴 사람이란 말인가.”


“저하고 결혼한 사람은 공주님인데 저 사람은 선녀입니다. 천사……”


시녀가 담담히 말했습니다.


“난 알고 있소. 신랑 허숭의 착한 심성과 어의이셨던 아버님의 음덕으로 허숭에게는 하늘의 은총이 내린 거라네. 공주는 그 허물을 남자와 하룻밤을 자야 벗을 수 있는 것이었고……. 그 허물을 벗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훌륭한 인물이어야 하는데 두 사람은 하늘이 정해 준 천생 연분이었던 거지. 앞으로 공주한테 옛 모습을 절대로 말하면 안 되네. 그걸 명심하게, 알겠는가?”


이때 단잠에서 깬 공주가 일어나 나왔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시녀는 눈이 부셔서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공주는 막 피어난 꽃처럼 맑은 피부에 눈빛이 영롱한 미인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그 모습은 왕비가 젊었을 때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놀라움을 숨기고 예전처럼 대했습니다. 공주는 부끄러운 듯 낯을 붉혔습니다.


“엄마 마마 감사드려요. 저를 키워주시고 보살펴 주신 은혜 잊지 않을 거예요.”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오늘 따라 공주님이 더 예뻐 보이십니다.”


“부끄러워요. 엄마 마마.”


새신랑이 된 허숭은 어지러웠습니다. 아내가 된 공주는 눈빛만 예전과 같을 뿐 얼굴이 너무 아름답게 변해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공주는 예전처럼 허숭을 대했습니다.


“숭이 오라버님, 오늘은 전 같지 않게 수줍어하시는 게 이상해요. 저도 부끄러운데 오라버님도 부끄러우신가 보지요? 우리 전처럼 지내요.”


“알았……”


“이제는 제가 어떻게 불러야 하나요? 오라버님이 아니잖아요.”


시녀가 말을 받았습니다.


“이제 오라버니라고 부르시면 아니 되십니다. 여보, 당신 하고 부르셔야 합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놀란 소리를 냈습니다.


“여보 당신이라고요?”


“예, 그렇게 부르셔야 합니다.”


시녀의 말에 따라 두 사람은 여보 당신이 되었습니다. 시녀는 두 사람에게 길을 떠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가을에 거두어들인 약초를 챙기고 허숭에게 물었습니다.


“그 호랑이가죽으로 산 보따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허숭이 나직이 대답했습니다.


“산삼과 호랑이뼈가 있습니다. 제가 스물다섯이 되는 해에 산삼과 호랑이뼈를 가지고 이 문서와 함께 임금님께 바치라고 아버님께서 말씀하셔서 내려올 때 준비하였습니다.”


시녀는 허숭의 깊은 속을 알고 내심 감탄했습니다.


“잘하셨네. 이 길로 궁궐로 가세.”


시녀를 따라 공주와 허숭이 궁궐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14


시녀가 왕비 앞에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습니다.


“마마 그간 강녕하시었사옵니까.”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고맙소.”


왕비도 어느덧 나이가 들어 중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곱게 늙은 모습은 아름답고 예전보다 기품이 있었습니다. 왕비가 시녀를 가만히 보며 말했습니다.


“그 동안에 다른 사람이 되었구려. 곱던 얼굴은 어디다 두고 오셨소?”


“세월이 가져가고 늙은이만 남겼습니다.”


“호호호 말재간은 여전하시구려.”


“오늘 공주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왕비는 공주라는 말이 나오자 반가워하는 얼굴이다가 바로 어두워졌습니다.


“그 아이가 지금은 어떠하오?”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이어 공주와 허숭이 들어왔습니다.


허숭은 아무것도 모르고 어리둥절한 채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시녀가 공주에게 말했습니다.


“왕비 마마시며 어마마십니다. 인사 올리시지요.”


왕비는 공주를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아아니! 이 아이가 내 딸이란 말이오?”


시녀가 대답했습니다.


“그러하옵니다 왕비 마마.”


“믿을 수가 없어. 저 아이가 공주라니 이럴 수가……”


공주가 인사를 드리자 왕비는 옆에 선 허숭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시오?”


시녀가 대답했습니다.


“부마(임금님 사위)이시옵니다.”


허숭이 넓죽 엎드려 절을 올렸습니다.


“왕비 마마 문후드리옵니다.”


왕비는 정신이 어지러운 듯 손을 이마에 얹고 두 사람을 번갈아보다가 물었습니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단 말이냐?”

공주가 대답했습니다.

“그러하옵니다. 어마마마.”

“그대들은 거기 있고 의녀만 나를 따라 오게.”

왕비는 시녀를 데리고 별실로 들어갔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저렇게 곱고 예쁜 얼굴이  내 딸이 맞는가?”

“맞습니다.”

“그 아이 얼굴이 아니잖은가?”

“그러나 사람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쩌자고 내 말도 안 들어보고 혼인까지 시켰는가?”

“공주는 스물 살에 좋은 남자를 만나 첫날밤을 치러야 지금의 얼굴로 돌아오는 운명이었습니다. 용서하옵소서. 소인이 알고 한 일이었고 그 비밀을 말하면 그리 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 하였사오니 용서하옵소서.”

“그랬구먼. 저 아이가 정말 내 딸인지 확인을 좀 해도 되겠는가?”

“그리하시옵소서.”

이어 공주는 별실로 들었습니다. 왕비는 양쪽 다리 복숭아뼈 아래 나 있는 점을 확인하고서야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딸을 와락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맙다, 네가 이렇게 예쁘게 자라 주었으니 내 가슴에 맺힌 한이 풀렸다.”

왕비는 사위가 되어 온 허숭을 가까이 불러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고맙네. 이렇게 출중한 인물이 내 사위라니 고마워.”

시녀가 말했습니다.

“이제 상감마마님께 인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비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15

안색이 어두워진 왕비가 힘없는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래야 하겠지…… 그러나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네.”

시녀가 물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편찮으시옵니까?”

“그걸 자네가 어찌 아는가?”

“그래서 제가 이십 년 뒤에 돌아온다고 한 것이옵니다. 지금 임금님께서는 오랫동안 독성이 있는 음식을 드셨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이십여 년 전의 허윤이라는 어의를 기억하시는지요?”

“암, 그 분이 어느 날 궁을 떠나자 마마께서 얼마나 상심이 크셨는지 모른다네.”

“그때는 당파 싸움이 심하여 제가 아는 대로 말할 수도 없었고 허윤 영감도 무슨 말을 해도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의들이 당파싸움에 휩쓸려 임금님을 해하려는 무리와 반대하는 쪽으로 갈렸는데 허윤 영감이 반대를 하므로 영감을 반대파가 죽여 없애버리려고 하자 아들 하나만 데리고 산속으로 피하셨습니다. 그 뒤에 저는 공주님을 모시고 제 고향으로 갔사옵니다.”

왕비는 놀라워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가?”

“허윤 영감은 임금님 음식에 독을 넣지 않으려 했고 다른 의원들은 이십 년 동안 먹으면 병이 드는 약재를 썼사옵니다.”

“그런 걸 알면서 어찌 입을 다물고 있었는가?”

“당시 의원들도 권세 잡은 자들의 압력을 당기지 못하여 그리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염려 마시옵소서. 모든 것이 바로 될 것이옵니다.”

“그렇게 된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시녀는 공주를 데리고 임금님 뵙기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왕비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마마는 병세가 심하여 공주를 만나면 충격을 크게 받으실 것일세. 공주 얼굴을 자기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후회하시며 평생을 마음 아파 하셨네. 시간을 좀 두고 보세.”

그렇게 하기로 한 시녀는 왕비의 허락을 받고 허숭을 데리고 별실로 갔습니다. 그리고 임금님도 모르는 비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6

“자네는 이제 임금님의 사위가 되었으니 나도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네. 부마님이라고 부르겠네.”

“엄마 마마, 갑자기 그러시면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이제 엄마 마마라고 부르셔도 안 됩니다. 마마는 임금님과 왕비 마마께만 부르셔야 합니다. 부마 어른, 이제 부마의 대우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나하고 있을 때만은 마음 편히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허숭은 시녀가 갑자기 부마라고 부르자 당황했습니다.

“저는 엄마 마마를 어머니로 알고 무슨 말씀이든 드리겠습니다.”

“그리 하세요. 당장 우리는 내가 공주와 기른 이십일 년 넘은 장생도라지에다 부마가 가지고 온 호랑이뼈와 오십 년 넘은 산삼으로 약을 지어 임금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나도 공주가 태어날 때 조산원 의녀기 때문에 그 정도는 알고 있고 아버님이 남기신 그 의서에도 처방 비법이 적혀 있습니다.”

“놀랍습니다. 제가 그 동안 구하려고 헤매도 못 구한 것이 이십일 년 넘은 장생도라지였습니다. 이제 중요한 약재를 가졌으니 약을 짓도록 하시지요.”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임금님께 드릴 탕약을 지어 왕비께 올렸습니다. 왕비는 시녀의 말대로 탕약을 임금님께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은 손을 저으셨습니다.

“이제 약은 그만 먹겠소. 무슨 약을 먹어도 나빠지는데 뭘 더 먹겠소.”

“아니옵니다. 이 약은 특별히 제가 지은 것이오니 …….”

“어의들도 못 짓는 약을 어찌 당신이 지었단 말이오.”

“저도 어의들이 지어 올리는 약이 마음에 내키지 않아 특별히 지었사오니 한번만 들어 보시지요.”

“난 아무도 안 믿소. 허윤이 지은 약이라면 먹을까 다른 사람이 지은 약은 싫소.”

“이 약이 바로 허윤이 지은 것이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약을 지어 온단 말이오?”

“제가 드리는 말씀을 믿어주시옵소서.”

“허윤을 데리고 오시오. 그럼 믿겠소.”

“저마저 못 믿으시면 마마는 병을 고치시지 못하옵니다.”

“그러니 허윤을 불러오라 하지 않았소?”

“먼저 저를 믿어 주시옵소서. 그리하면 허윤뿐만 아니라 평생 두고 마음 아파하시며 그리던 공주도 데려오겠나이다.”

공주라는 말에 임금님은 눈을 번쩍 떴습니다.

“뭐요? 공주라고?”

“그러하옵니다. 이 약을 드시면 공주도 보시고 허윤도 보실 것이옵니다.”

“정히 그러하시다면 마지막으로 그 약을 먹어 보리다.”

임금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약탕기를 들고 입속말로 중얼거리셨습니다.

“공주, 그 불쌍한 것이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꼬. 올해 스무 살이 되었을 터…… 처녀가 다 되었을 텐데 아비를 잘못 만나 괴물이 되었으니 어찌 할꼬……”

“이 약만 드시면 마마가 아파하는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옵니다.”

임금님은 쓰고 떫은 탕약을 한숨에 쭉 들이키셨습니다.

“아아, 쓰다 내 평생에 이렇게 쓴 약은……”

임금님은 말끝을 못 맺고 힘없이 쓰러져 정신을 잃고 중태에 빠졌습니다.

17

당황한 왕비가 시녀를 불렀습니다.

“여보게 이 어찌 된 일인가? 마마께서 정신을 놓으셨네.”

시녀가 허숭을 임금님 곁으로 보냈습니다.

“가서 맥을 잡아 보시지요.”

허숭이 걱정스런 얼굴로 다가가 임금님 맥을 짚었습니다. 한참 후에 더 어두운 낯으로 말했습니다.

“저로서는 판단이 안 갑니다. 엄마 마마께서 좀……”

“그리 부르지 말라 이르시었거늘 어찌 망극하게 그러십니까.”

시녀가 낯을 붉히자 왕비가 말했습니다.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지 않은가. 전하의 병세를 보시게.”

시녀가 임금님 맥을 짚어 보고 말했습니다.

“조금도 염려하실 것 없으십니다. 마마께서는 많이 약해지신데다 약효가 강한 기운을 못 이겨 잠시 혼수상태일 뿐입니다. 사흘만 지나면 쾌차하실 것입니다.”

“그 말을 믿어도 되겠는가?”

“믿으시옵소서.”

궁 안의 시녀들 중에는 임금님을 해하려는 무리의 하수인이 있어 임금님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말이 곧 밖으로 새어나갔습니다.

임금님을 해치려는 사악한 무리들이 어의를 불러 이 기회를 이용하려고 계략을 짰습니다.

“잘 된 일이 아닌가. 이번에 약을 지어 바친 의녀를 없애 버리고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야. 그렇게만 되면 이 나라는 우리 주먹에 들어올 게 아닌가.”

임금님께 독약을 지어 오던 어의가 간사한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렇습지요, 이십 년 전에 사라졌던 의녀가 돌아와 임금님을 치료한답시고 저 지경을 만들어 놓았으니 이번에 모두 쓸어버려야 합니다요.”

“그러니 자네가 임금님 병실로 가서 돌보는 척하고 사정을 알아보게.”

“예예.”

간교한 어의는 임금님의 병환을 돌보러 왔다는 구실로 들어가 조산 시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시녀를 조용한 곳으로 불러내어 호통을 쳤습니다.

“네 따위가 뭘 안다고 전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는가? 그러고도 목숨이 온전할 것 같은가?”

“저를 믿어주시지요.”

“네가 뭘 안다고 믿어달라는 거냐? 당장에 내가 전하의 탕약을 지어 오늘 중으로 일어나시게 하겠다. 그러니 넌 물러나 있거라.”

지위가 높은 어의의 말에 시녀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간사한 어의는 돌아가 한 패거리들과 낄낄거리며 말했습니다.

“이 기회야말로 하늘이 준 것이옵니다. 임금이 즉사할 수 있는 약을 지어 입에 넣으면 임금은 곧장  숨이 넘어갈 것이고 죄는 시녀가 뒤집어쓰게 만들면 마당 쓸고 돈 줍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입지요.”

“알아서 하게나 그렇게 된다면 자네한테 그만한 상급이 주어질 것이야.”

간신 어의는 임금님의 입 안에 흘려 넣기만 하면 자는 듯이 죽는 약을 지어 들고 왕비를 앞으로 갔습니다.

“마마 얼마나 상심이 크시옵니까? 전하께서 이렇게 정신을 놓고 계시면 승하(이금이 죽음)하시옵니다. 소신이 잠을 못 이루고 연구한 끝에 특효약을 지었사옵니다. 이 약을 전하의 입에 몇 방울만 넣어드리면 곧 일어나실 것이옵니다.”

왕비는 태연히 받았습니다.

“고맙소.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약을 지어 오셨으니 그 공은 훗날 치하하리다. 나가 계시면 내가 전하의 입에 넣어 드리겠소.”

17

간교한 어의가 물러나자 왕비는 약을 아무도 손이 안 가는 곳에 숨겨두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어의와 악한 신하들은 임금님을 해치려고 독약을 지어 드렸다는 둥 여러 이유를 붙여 시녀와 허숭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시녀가 감옥에 갇힌 지 사흘이 되는 날 아침 임금님이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밤잠을 못 이루고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왕비를 발견하고 물었습니다.

“아아! 잘 잤다. 그런데 어찌 아직도 안 주무시고 그렇게 계시오?”

임금님은 전혀 딴 사람이 되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왕비는 감격하여 울면서 말했습니다.

“전하 쾌차하심에 감축드리옵니다.”

“고맙소. 아주 깊이 단잠을 자고 났더니 전신이 개운하고 힘이 솟아나오. 이 어찌 된 일이오?”

“전하의 탕약을 허윤 영감님의 아들과 조산시녀가 지어 올렸습니다.”

“조산시녀라면? 공주를 데리고 궁을 나간 그 의녀 말이오?”

“그러하옵니다. 그 의녀가 공주를 곱게 키워 허윤 영감의 아들과 혼인을 시켜 데리고 왔습니다.”

“허윤 영감이라면 그 어의 말이오?”

“그러하옵니다.”

“그 아들이 살아 있단 말이오? 지금 그들은 어디 있소?”

“감옥에 갇혀 있사옵니다.”

“감옥이라니 그 무슨 말이오?”

“그들이 지어 올린 약을 마마가 드신 후 정신을 잃은 때문이었지요. 당장 시위대장으로 하여금 그들을 불러오도록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임금님은 감옥에서 두 사람을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임금님 앞에 나온 허숭이 몸에 지니고 있던 문서를 올렸습니다.

“이것은 소인의 부친께서 저에게 맡기시면서 제가 궁에 들어와 전하를 뵙게 되는 날 풀어서 전하게 올리라 하셨습니다.”

“허윤 영감은 지금 어디 계신가?”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후 산 높이 올라가신 뒤에 돌아오시지 않으십니다.”

“허허 별 일도 다 있도다. 그 문서를 이리 다오.”

임금님은 문서를 읽고 나자 청년처럼 쨍쨍한 목소리로 두 사람을 가두게 한 어의를 불러 들였습니다.

“듣거라. 네가 지금까지 내게 한 일을 모두 고하도록 하라.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으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씀이든지 하문하시옵소서.”

임금님이 역적모의한 자들의 이름을 대면서 그 동안 벌여온 악행을 말하자 어의는 절대 아니라고 잡아떼었습니다.

그 모양을 보던 왕비가 숨겨두었던 독약 그릇을 내놓으며 말했습니다.

“어의 말씀에 거짓이 없다면 이 보약을 먼저 마시시오. 이건 전하께 드리라고 그대가 지어 올린 탕약이오.”

그것을 본 어의는 얼굴이 새파래졌습니다.


18

임금님이 엄히 명하셨습니다.

“그 탕약이 보약이라 하니 네가 마시고 모든 비밀을 사실대로 고하라. 그리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리라.”

“전하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신을 죽여주시옵소서.”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죽기 전에 그 보약이나 마시고 죽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어서 마시거라.”

어의는 머리를 박고 엎드려 빌었습니다.

“전하께 올린 보약을 어찌 신이 마실 수 있사옵니까. 거두어 주시옵소서.”

“그러하면 내가 마시랴?”

“아니 되옵니다.”

“어찌 아니 된다는 말이냐? 너도 안 마시고 나도 못 마시게 한다면 개에나 먹여야겠구나. 여봐라, 개를 데려오너라.”

임금님은 이렇게 명한 다음 허윤이 남긴 문서를 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임금님을 해하려던 신하들의 이름과 꾸민 비밀을 읽었습니다. 어의는 임금님이 문서를 읽는 동안 온 몸을 비틀며 벌벌 떨었습니다. 임금님이 하문하였습니다.

“짐이 읽어준 문서에 잘못이 있느냐? 바로 고하거라.”

어의는 대답을 못하고 떨기만 했습니다. 임금님은 신하가 데리고 온 개한테 탕약을 먹이라 명하였습니다. 개는 약을 마시자마자 다리를 뻗고 죽었습니다. 그것을 본 임금님이 노하여 벼락같이 소리쳤습니다.

“이래도 이것이 보약이란 말이냐? 여봐라, 당장에 이 자를 옥에 가두고 이 문서에 이름이 올라 있는 자들을 잡아들이라.”

건강해진 임금님은 악한 신하들을 몰아내고 사위가 된 허숭을 어의 우두머리로 삼았습니다.

두꺼비 공주가 돌아온 궁궐은  사랑이 가득하고 나라는 평화로워졌습니다. 


아름다운 공주의 손을 잡고 날마다 정원을 거닐며 웃으시는 임금님의 웃음소리는 궁궐 밖 멀리 백성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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