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손
엄마가 밖으로 나가시면서 광수와 윤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모눈 공책을 하나씩 주면서 말했습니다.
“오늘 엄마가 나갔다 올 때까지 이 공책에 글씨를 가득히 채워라. 알았지?”
광수가 물었습니다.
“하루 종일 놀지도 못하고 이 공책에다 글씨를 채우라고요? 무슨 글씨를 써요?”
“아무거나 써서 빈 칸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써 넣으면 된다. 알았지?”
광수가 또 물었습니다.
“이 공책 칸마다 가가가가가 하고 써도 되나요?”
“그래도 좋고 다른 글씨를 채워도 좋으니 너희들 마음대로 하면 된다. 그 대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첫 칸부터 마지막 칸까지 채워야 한다. 다 채운 사람은 엄마가 상을 줄 것이고 못 채운 사람은 안 준다.”
광수는 아무래도 불만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많은 칸에다 언제 글씨를 다 채워요.”
“해 봐, 엄마는 장에 갔다가 늦게 올 거야. 쉬지 않고 쓰면 다 채울 수 있어.”
“놀지도 못하고요?”
“다 써 놓고 나가 놀면 되지 않니?”
“알았어요.”
엄마가 윤수한테도 말했습니다.
“윤수야 너도 알았지? 형하고 같이 무슨 말이든 글씨를 써서 이 공책 가득히 쓰는 거야. 빈칸이 있으면 안 된다.”
광수가 바보라고 놀리는 동생 윤수는 고개만 끄덕 했습니다. 광수가 엄마한테 물었습니다.
“엄마 상은 뭐 줄 건데?”
“글쎄, 뭐든지 네가 달라는 것으로 주지.”
“돈도 돼요?”
“돈이 갖고 싶으냐?”
“네, 만원 주세요.”
“알았다. 엄마가 왔을 때 다 채운 사람은 만원 줄게. 약속!”
엄마는 광수와 윤수 손가락을 걸고 도장도 찍고 복사도 했습니다.
엄마가 나가자 광수는 공책에다 쓰기 쉬운 글자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가가가가가가가가가
그러나 윤수는 구물거리고 무슨 글씨를 쓰고 있어었습니다. 광수가 고개를 내밀고 들여다보았습니다.
유수는 글씨를 간신히 씁니다.
엄마사랑해요엄마사랑해요엄마사랑해요
광수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야, 그렇게 쓰다가는 엄마가 돌아오실 때까지 반도 못 써 이 바보야.”
“난 쓸 수 있어.”
“넌 그래서 바보 소리를 듣는 거야. 형이 하는 것 봐. 이렇게 가가가만 쓰면 쉽고 빠르잖아.”
“난 열심히 쓸 거야.”
윤수는 광수 말도 안 듣고 엎드려서 엄마사랑해요만 열심히 쓰기 시작했습니다.
광수는 느리게 쓰고 있는 동생을 향해 주먹질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바보 이 바보야 그렇게 써서 언제 다 채우냐? 나 봐.”
광수는 동생이 보는 앞에서 빈칸에다 빠른 솜씨고 글씨를 채웠습니다. 잠깐 동안에 글씨로 한 장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윤수는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형은 잘 쓴다. 참 빠르다.”
“너도 나처럼 가가가가만 써. 그러면 금방 다 쓸 수 있어. 다 쓰고 나서 놀러 가자.”
“알았어. 다 쓰고……”
광수는 잠깐 사이에 세 장을 썼습니다. 그런데 윤수는 겨우 한 장을 썼습니다. 광수는 벌렁 누우며 말했습니다.
“난 네가 세 장 쓸 때까지 놀다가 쓸 거다.”
“알았어, 형.”
윤수는 열심히 썼습니다. 그리고 세 장을 다 써놓고 깜박 잠든 형을 깨웠습니다.
“형아. 다 다 썼어 일어나 봐.”
“알았어. 나 조금만 더 자고.”
“자면 안 돼 형.”
“이 바보야 너나 빨리 써. 난 다섯 장만 쓰면 돼. 너나 빨리 써. 네가 다섯 장 썼을 때 써도 내가 더 빨리 쓸 수 있어.”
“알았어.”
윤수는 열심히 썼습니다. 그러나 너무 느려서 다섯 장을 다 썼을 때는 엄마가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자고 있는 광수를 깨웠습니다.
“광수야 일어나 봐. 너 다 써놓고 자는 거야?”
광수는 깜짝 놀라 발딱 일어났습니다.
“금방 다 써 놓을게 엄마.”
엄마는 윤수 공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넌 따 썼니?”
“다 썼어 엄마.”
엄마는 광수를 향해 말했습니다.
2. 잠 잔 벌
“넌 쓰다 말고 잠만 잔 거야?”
광수는 몸을 꼬며 헤헤거렸습니다.
“엄마, 미안, 잠깐 누웠는데 그만 깜빡했어, 헤헤헤.”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엄마는 공책 두 권을 또 가지고 와서 나누어 주며 말했습니다.
“네가 다 쓰지 못한 벌이야. 이 공책에 또 써라. 윤수는 먼저 공책을 다 썼으니까 상금 만원 준다.”
엄마는 만원을 윤수한테 주었습니다. 윤수는 주저했습니다.
“엄마, 정말 받아도 되는 거야?”
“그럼.”
광수가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습니다.
“빨라 받아, 나하고 반씩 나누어 쓰면 되지.”
엄마가 말을 막았습니다.
“안 돼, 너도 공책을 다 채우고 나서 받아 써.”
광수는 공책을 들여다보며 물었습니다.
“엄마, 저것도 다 쓰고 이것도 다 써야 해?”
“그럼.”
“난 쓰기 싫은데.”
“쓰기 싫으면 돈도 안 주지. 내일 엄마가 할머니 댁에 다녀올 때까지 다 써서 채우는 거다. 알았지?”
광수는 불만스럽게 말했습니다.
“이게 뭐야, 날마다 빈 공책에다 글씨만 채우는 건 재미가 없어.”
“그러니까 빈 공책에다 같은 글자만 쓰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말들을 써서 채우는 거야, 윤수 봐라.”
광수가 비웃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엄마사랑해만 썼는데?”
“그럼 너는 아빠 사랑해요라고 쓰면 되지 않니? 너희들이 하고 싶은 말을 아무것이든 빈칸에다 써 보는 거야. 친구 이야기도 좋고 새나 고양이나 나무한테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런 것도 쓰면 되는 거야. 엄마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좋고.”
윤수가 물었습니다.
“글짓기를 하는 거야, 엄마?”
“그래 그렇게 쓰는 것이 바로 글짓기란다.”
광수가 또 불만스럽게 말했습니다.
“난 글짓기 싫은데.”
“그러면 아무 글자나 빈칸에 써 넣어 채우면 된다. 아까 쓰던 대로 가가가만 써도 돼 알았지?”
“알았어. 난 가가가가만 쓸 거야.”
다음 날 엄마가 밖에 나가고 광수와 윤수만 남았습니다.
“유수야 그 돈으로 뭐 사먹자.”
“뭐?”
“아이스크림.”
“그게 먹고 싶어 형아?”
“음 그리고 또……”
“알았어. 자, 이거 가지고 가서 형아가 사와.”
광수는 돈을 받아들고 신이 나서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3.
광수는 슈퍼로 갔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사고 과자, 사탕, 빵, 싱싱한 과일 이것저것 많이 사왔습니다. 윤수가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형아, 이렇게 많이 사왔어?”
“응, 신나게 먹자.”
“돈 다 썼어?”
“아직 많이 남았어.”
“나 줘.”
“아니야. 내가 가지고 있다가 또 사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올게.”
“그래도 될까?”
“형이 가지고 있어야 해. 넌 동생이잖아.”
“알았어, 형.”
형제는 맛있게 먹었습니다. 광수는 다 먹고 나서 벌렁 누웠습니다. 윤수가 말했습니다.
“형, 일어나 글씨 써.”
“조금만 누웠다가.”
광수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방바닥에는 과자 봉지가 여기저기 광수와 함께 흩어져 뒹굴었습니다.
윤수는 그 곁에서 엄마가 주신 공책에다 글씨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형아가바보라고하는말은괜찮은데남들이나보고바보라고하는말은싫다아빠가돼지야하는말도좋은데남들이돼지야하는말은싫다엄마가나보고꿀돼지라고하는말은좋은데남들이그렇게부르는말은싫다…>
누웠던 광수가 자는 줄 알았더니 발딱 일어나 가가가가가만 쓰다가 깔깔거리고 웃었습니다.
“윤수야 야야야, 신난다! 난 안 쓰고 놀 거야.”
윤수가 착한 눈으로 형을 바라보았습니다.
“형아, 안 쓰면 안 되는데.”
“바보야 그러니까 너는 바보란 말야 히히히히.”
“왜 그래 형?”
“난 안 써도 네가 다 쓰면 엄마가 너 돈 주잖아. 그 돈으로 너하고 나하고 사먹으면 된단 말야. 이 바보야.”
“그럼 안 되는데…….”
광수는 신나게 깝죽거리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참 놀다가 돌아와 뒹굴며 쿨쿨 잤습니다. 그 옆에서 윤수는 빈칸에다 글씨를 채웠습니다.
<파리한마리가밥을훔쳐먹으러날아다닌다나는파리를밖으로몰아냈다그런데다른파리가또날아왔다파리는몇살일까파리는한살이다나보다어리다파리는나이도어린것이날아다닐줄도안다나는파리보다힘이세지만파리만큼날지못한다사람들이밥을안주면무얼먹고살까불쌍하다다시들어오면먹을것을주어야지>
엄마가 어느 틈에 오셨습니다. 자고 있는 광수를 깨우셨습니다.
“일어나 광수.”
광수는 발딱 일어나 엄마를 장난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깜빡했는데 엄마한테 들켰네 헤헤헤헤 엄마아!”
엄마는 두 아이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너희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 들어보았니?”
광수가 까불며 대답했습니다.
“우공이산이요? 네, 알아요.”
“그래 말해 보아라.”
“우공은 축구할 때 오른쪽 날개라는 말이고요 이산은 저쪽 산이 아니라 이쪽 산이라는 말이에요.”
동생 윤수는 저보다 많이 아는 형이 부럽다는 듯 바라보고 엄마는 어이없는 얼굴로 광수를 바라보았습니다.
“누가 그렇게 가르쳐 주었니?”
“동네 형들이요.”
“까불지 말고 잘 들어. 내가 가르쳐주는 우공이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이담에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말아 알았어?”
윤수가 유순하게 대답했습니다.
“알았어요, 엄마.”
광수는 장난기가 가득한 눈으로 대답했습니다.
“나두야 나두.”
엄마는 우공이산이라는 말을 알아듣기 쉽게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4. 부자가 되는 방법
엄마는 하얀 종이에다 높고 큰 산 두 개를 그리고 그 산마다 아래에 작은 집 한 채씩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넓은 바다를 그렸습니다.
“여기 산 둘이 있고 앞에는 바다를 안고 있는 집이 있다. 두 집에는 바보 친구와 약은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뒤에는 산이 막혀 있고 앞에는 바다가 있어서 농사지을 땅이 좁아 두 친구는 늘 가난하게 살았다.”
윤수는 엄마가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여 엄마 눈만 바라보는데 광수는 발가락만 주물럭거렸습니다. 엄마 이야기가 계속되었습니다.
“가난한 두 친구는 어느 날 바닷가 바위에 앉아 어떻게 하면 부자로 살 수 있을까 하는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염이 하얀 한 노인이 나타나 물었다.”
이때부터 엄마는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말했습니다. 노인의 목소리로
“두 젊은이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시오?”
하자 바보 친구가 대답했다.
“예, 우리는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보셔서 아시다시피 우리가 사는 곳은 앞은 바다가 막고 뒤는 산이 가려서 농토가 부족하여 늘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삽니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이 꼭 알고 싶소?”
“네 가르쳐만 주십시오.”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다 먼 동네에 가서 팔아도 되지 않겠소?”
“고기는 많이 잡히지만 이 산을 돌아서 먼 마을까지 가는 동안 고기가 상하여 팔 수가 없습니다. 이 산만 없으면 고기를 팔아 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음, 산이 막혀 고기를 잡아다 팔 수도 없고 농토가 좁아 농사도 제대로 못 짓는단 말이로군. 하지만 내가 가르쳐 주는 대로 한다면 반드시 부자가 될 것이오.”
약은 친구가 얼른 말했어.
“말씀해 주십시오.”
“반드시 지켜야 하오.”
한 친구는 착한 바보라 순진하고 한 친구는 약기가 여우같았어.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당신들은 아주 큰 부자가 될 것이오. 자, 들어보시오.”
5. 우공이산
“두 사람이 다 젊고 힘이 있어 보이니 내 말만 잘 들으면 틀림없이 부자가 될 것이오. 오늘부터 자기 집 뒷산의 흙을 퍼다 바다에 부으시오. 그러면 바다가 메워지며 고기도 더 많이 잡힐 것이오. 아시겠소? 오십 년 뒤에 돌아와 보겠소.”
이 말을 남기고 노인은 구름처럼 사라졌어.
똑똑한 친구가 고개를 저으며 불만스럽게 말했어.
“늙은이가 어림도 없는 소리를 하고 사라졌어. 저 산을 어느 세월에 퍼다 바다를 메운단 말이야. 죽을 때까지 해도 못할 거다. 별 늙은이 다 보겠네.”
바보 친구가 말했다.
“그분은 괜한 소리를 하실 분이 아니야. 난 그분과 약속했으니 오늘부터 산을 파다 바다에 부리겠네. 내가 못 다 하고 죽으면 자식들한테 맡기겠네.”
“이런 미련 곰탱이, 저 큰 산을 언제 다 파다 바다에 넣는다는 거야. 될 일을 해야지. 그래서 너는 바보 소리를 못 면하는 거야,”
“아니야, 그래도 그분의 말씀대로 해 볼 거야.”
다음 날 새벽부터 바보는 산을 파서 끙끙거리며 삼태기로 흙을 날랐다. 그 모양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약은 친구는 짜증을 냈지.
“이 바보야, 미련한 짓 그만 해, 네가 무슨 수로 이 큰 산을 다 파다가 바다에 넣는다는 거야? 아이고 답답해 그 꼴 보느니 아예 난 여기를 떠날란다.”
약은 친구는 짐을 싸들고 먼 타향으로 떠났습니다. 바보 친구는 혼자 남아 날마다 산을 파다 바다에 넣었습니다.
바보 친구는 오십 년 동안 쉬지 않고 산을 바다에다 옮겼단다. 산이 있던 자리가 펀펀한 들판이 되고 바다도 메어져서 큰 들판이 되었지. 얕은 물가에는 물고기가 모여 들어 고기잡이가 쉬워졌어.
바보 청년은 어느덧 노인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아들딸이 생기고 손자들이 늘어났다. 바보 친구는 넓은 들을 가진 큰 부자가 되었지. 그리고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산을 파낸 들판에 길을 곧장 내고 그 길로 싱싱한 물고기를 내다 팔아 돈을 많이 벌었다. 집도 이층으로 짓고 떵떵거리며 살았어. 그런 어느 날 바보네 대문 앞에 초라한 거지 하나가 동냥을 하러 와 엎드려 빌었단다.
“주인어른 한 푼만 줍쇼오.”
바보 친구가 나가 거지를 가만히 뜯어보다 깜짝 놀라 달려들어 거지를 끌어안았어.
“친구여 어서 오게,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나를 알겠는가?”
거지는 눈이 휘둥그레졌어.
“아아니! 이 거지를 친구라고 하시니 뉘시오?”
“나야 나, 바보 친구 알겠나?”
“그 바보 친구가 주인이시라고요?”
“그렇다니까. 어서 들어오게.”
이렇게 바보는 거지가 된 친구를 맞아 들였단다. 그 후 거지가 된 친구는 바보 친구네 머슴으로 일하게 되었다.
엄마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마치고 말씀했습니다.
“광수, 윤수야 재미있었니?”
“네, 네.”
형제는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너희들은 약은 친구처럼 살면 안 된다. 무슨 일이든지 꾸준하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성공을 한다는 말이 우공이산이라는 말이다. 우공이산이라는 고사성어는 중국에서 전해 오는 것으로 내가 들려준 이야기와 같단다. 알았지?”
바보 같은 윤수는 순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약은 광수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