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수필

돌에 글자를 파듯

웃는곰 2008. 5. 5. 21:57

 

돌에 글자를 파듯

《혼불》 작가 최명희의 원고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난다.

1만 매가 넘는 대하소설을 쓰면서 원고지 칸마다 한 자 한 자 적은 글자에 정성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그가 생전에 '나는 원고지 칸마다 돌에 글자를 파듯 정성 들여 쓴다'고 했다는 그 말이 그대로 원고지에 살아 있다.

또 그는 한 마디 한 구절을 쓸 때마다 '철자 하나, 부호 하나도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쓴다'고 하였다.

원고지에 씌어 있는 글자는 작품 이전에 겉 사람이고 작품은 속 사람이라고 생각해 오던 나는 그의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원고지 칸에 글씨를 새긴다던 말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용어도 적당히 얼버무려 쓰는 법이 없이 '있어야 할 말이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던 그 말대로 그는 빈자리에 들어가야 할 '주인 말'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적의한 말을 찾기에 고심하고 없으면 조어하기 위해 切磋琢磨하던 자세가 존경스러웠다.

돈으로 인격을 바꾸지 않고 인격으로 돈을 버리고 영원히 살아 숨쉴 글을 남기고 또 자기가 가야 할 때에, 자기가 있어야 할 곳으로 외롭게 살다가 혼자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난 그의 상여 꽃차는 부럽도록 화려했다.

또 이외수라는 작가의 글 쓰는 삶의 자세도 나를 감동시킨다. 쓰는 글마다 독자의 반응이 좋기로 유명한 그는 머리도 안 깎고, 안 감고, 세수도 안 한다고 하던가? 좌우간 겉보기보다는 속 사람이 멋진 건 틀림없다. 겉모양에만 신경을 쓰는 나는 그것이 부러운 것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집에다 감옥을 만들어 놓고 8년간 들어가 글 '쓰기 징역살이'를 했다는 이야기는 나를 반성하게 한다. 나는 글도 제대로 못 쓰지만, 작품을 쓰기 위하여 8일만 감옥에 들어가 있으라고 해도 8시간을 참지 못하고 기어 나올 것이다.

뱃속의 자식 보기가 아무리 급한 사람이라도 임신하고 10개월이 차지 않으면 아기는 태어나지 않는다. 만약 급하다고 먼저 나오게 한다든가 제왕절개라도 해서 꺼내면 아기는 자라지 못하고 죽고 만다. 그렇듯 작품도 작가가 작품 하나를 가슴에 품고 그것을 꺼내어 남의 앞에 내놓을 때까지는 임신부가 당하는 고통 이상으로 가슴에서 기르고 손끝으로 써놓고 다듬는 아픔을 겪어야 그 작품이 죽지 않고 생명 있는 작품으로 독자의 가슴에 살아 숨쉬리라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대가라는 것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원고를 휘갈겨 써서 내놓는 사람을 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작품 하나를 쓰기 위해 고심한다는 작가들을 생각한다.

남이 써놓은 원고나 들여다보며 세월을 저며먹고 사는 나는 그 솜씨를 부러워하면서도 글 같은 글을 써 보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쉽다. 원고를 쓰되 거기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돌에 글자를 파듯이 쓰고,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어야 할 말이 있어야 할 곳에 꼭 있는 글을 쓴다'는 말은 내 마음 판에 깊이깊이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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