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수필

개만도 못한 사람

웃는곰 2008. 5. 5. 22:03
 

사람보다 개를 더 좋아하는 사람



인형이라는 단어는 사전에 '사람의 모양' '사람의 형상을 본떠 만든 장난감' '제 구실을 못하고 남의 뜻대로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광화문 육교를 건너가는데 인형 장수가 작은 사람 모양의 인형을 깔아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두 마리에 천원, 두 마리에 천원" 하고 향해 외쳐댔다.

사람을 본따 만든 인형을 가지고 두 마리에 천 원이라니? 인형을 짐승을 셀 때 쓰는 '마리'라는 단위 명사를 쓰는데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은 적이 있다.

그런데 또 나를 황당하게 하는 것은 강아지 형상의 장난감이다. 그걸 가지고 인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못 마땅하다. 그건 견형(犬形)이지 인형이 아니지 않은가.

어느 날 이웃집 아이가 아주 예쁜 강아지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아저씨, 이 인형 예쁘지요?' 했다. '예쁘구나.' 하고 말은 했지만 견형(?)인데 인형이라고? 하고 생각하며 무슨 말로 아이에게 그건 인형이 아니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사람 꼴 장난감은 인형이 맞겠지만 개꼴 장난감을 인형이라고 가르친 것은 누구일까.



김교수와 나는 성난 눈으로 서로 노려보았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개는 갭니다. 개는 개밥을 먹어야 해요. 먹다 남은 음식도 많은데 고기를, 그것도 돈을 따로 주고 좋은 고기만 골라 산다는 건 이해가 안 갑니다."

"당신은 정서적으로 메마른 사람이라는 증거예요. 동믈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증겁니다."

"정서요? 그것도 정서와 관계가 있습니까?"

"당신 같은 사람하고 말을 하는 게 잘못이지."

"교수님 같은 분을 사람으로 본 것도 잘못 같네요."

"뭐야?"

"이러다가 개싸움 나겠습니다."

동석한 서사장이 끼여들며 말렸다.


그런 일이 있고 한참 후에 김교수가 개를 그렇게 사랑하는 이유를 알았다. 그 후부터 나는 사람과 개 중에 어느 편이 더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김교수는 자식이 없었다. 그러니까 더 사람이 소중히 생각될 터인데 그렇지 않았다. 그에게 사람은 개만도 못한 존재라는 생각이 깊이 뿌리박고 있었던 것도 늦게 알았다.

나도 아는 어느 대학의 노교수가 자식이 없어서 40에 부부가 합의하여 고아원에서 남자 아이 하나를 데려다 키웠다.

그 아이는 3살 때부터 그들의 슬하에서 컸기 때문에 그 부부를 친부모로 알고 있었고 아무도 그 비밀을 말해 주지 않은 중에 성장했다.

그런데 놈은 개구쟁이로 자랐다. 어려서는 재롱으로 알고 받아준 응석이 자라면서 폭력으로 변했다. 공부를 억세게 못하는 놈은 대학을 못 가고 번둥거렸다.

아버지는 대학 교수요 어머니는 고등학교 교감이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이 귀공자로 자라 건달이 된 것이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것이 사업을 하겠다고 돈을 내라고 졸랐다. 아직 사업할 나이로는 이르다고 말리는 부모를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날마다 술을 먹고 들어와 부모를 두들겨 팼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척하더니 그것도 잠시뿐 몽둥이를 들고 들어와 70이 다 되어 가는 노인들을 위협했다. 퇴직금 받아 예금한 돈을 다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 모양을 안 가까운 교수들이 그런 개자식, 어떤 놈의 씨인지도 모르면서 왜 고생이냐? 당장 사실을 밝히고 끝내라고 했지만 그 노교수는 마음이 약해서 그렇게도 못하고 고민에 빠졌다

망나니 자식은 날마다 술을 마시고 노부부를 때리고 가구를 부수는가 하면 동네 부랑자를 끌어들여 집안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었단다.

그 꼴을 보다 못한 노부부는 아들이 없는 틈을 타 짐을 싸가지고 도망을 가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친척을 찾아갔으나 아들이 찾아 헤매며 들락거려 친척집에도 오래 숨어 있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경찰에 신고하여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했지만 정 들여 키운 아들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도 못했다.

결국 부부는 친척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친구들을 찾아가 숨었다. 개만도 못한 아들놈은 아무데나 찾아가면

"이 늙은 것들이 나만 두고 도망을 쳐? 잡히기만 해 봐라. 다리를 부러뜨려 다시는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 놓을 테다." 하고 소리를 치다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노부부는 안동 산 속에 사는 친구를 찾아갔고 그 친구가 김교수 손위 처남이었다. 처남은 자식 없는 매부(김교수)에게

"자식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게, 팔자에 없는 자식 억지로 두면 원수가 된다네." 하고 자식 없어 외로워하는 동생 부부를 위로하고 "근본 모르고 데려다 키우면 개만도 못하다니까."라고 했단다.

그리하여 김교수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개나 길러 보자. 개는 의리를 알고 주인에게 복종할 줄은 안다 하고 개를 기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정을 듣고 김교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무리 개가 귀엽더라도 개에게는 개밥을 주어야 한다.

고기는 개밥이 아니다. 사람이 먹다 남은 것이면 족한 것이다. 그런데 고기를 먹이다니! 이러한 생각이 20년이나 내 마음에 차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사다 놓은 시추라는 개가 내가 나를 바꾸지 못한 마음을 돌려놓고 있다. 시추는 얼굴이 아무리 봐도 아주 못생겼다.

납작한 코는 입에 붙었고 콧등은 움푹 들어가 사실은 코가 없는 것과 같다. 입을 벌리면 아가리는 동굴처럼 크고 먹을 것만 보면 왕방울 같은 눈을 휘번득이며 덤빈다.

그런데 그것을 보면서 온 가족이  귀엽다고 깔깔거린다. 우리는 어른끼리만 사는 집이라 웃을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다 직장 생활에 매여 밤에나 돌아온다. 내가 가장 먼저 돌아오면 온 종일 외롭게 하루를 보낸 강아지가 꼬리를 치고 배를 깔고 납작 엎드려 앞발을 쭉 뻗어 절하는 듯이 구르고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여 발등을 물기도 하고 양말을 물고늘어진다. 그러다가 놈은 곁에 와서 등을 내 신체 부위에 대고 동그랗게 눕는다.

발을 물고 달려들면 귀찮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열렬히 환영하고 반가워하는데 그걸 어찌 밉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개라도 정이 깊어서 저렇구나 하는 생각에 개의 환영을 받으면서 비어 있는 집의 적막을 잊는다. 

개는 개인데 그것도 사람 못지 않게 형언할 수 없는 생명으로의 한몫을 하고 있다는 사랑이 개를 무시하던 내 마음이 이해하는 쪽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람이 과연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바꿀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이 개를 사랑하던 김교수를 이해하게 만든다.

개만도 못한 놈이 있었기에 그는 사람을 버리고 개를 택했던 것이다. 그래도 사람이 개보다 귀하다는 생각만은 버릴 수가 없다. 사람이 귀한 것은 사실이나 개만도 못한 놈이 사람 중에 끼여 산다는 것이 문제다.


荷蒔耶蘇來 吾道之油無燈也


八萬大藏經 라마다經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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