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이 예쁘면 길은 절로 난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십년 동안이나 가슴에 묻어두고 있던 이야기가 있다.
1990년 8월 둘째 주일이었다. 제2교육관 5층에서 예배를 드리고 문화예술인선교회가 있는 9층으로 가기 위해 비상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 때 8층과 9층 계단에서 조두천 장로님을 만났다. 연로한 장로님은 풀다발(즙을 내어 쓰는 약초인 듯)을 한 아름 안고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오고 계셨고 뒤에는 사모님이 성경책을 안고 따르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저렇게 무거운 것을 안고 어쩌자고 계단을 내려오실까. 도와드려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니야, 도와 드리면 제 댁이 전도사니까 이러지… 하실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앞을 막았다. 나는 그만 인사도 못 드리고 계단을 빗겨 오르고 말았다. 그러나 마음이 놓이지 않아 계단 위에 돌아서서 바라보았다. 풀다발에 가려 내가 곁으로 지나친 것도 모르시는 장로님은 조심조심 계단을 밟고 계셨다.
나는 끝내 도와드리지 못하고 선교회로 오고 말았다. 그런데 하루 종일 그것이 마음에 걸려 찜찜했고 그 마음은 두 주일이 지나도록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날마다 후회만 더해 가는 것이었다.
'아내가 전도사면 어떤가. 오해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도와드렸어 하는 건데, 옹졸한 내 소갈머리…'
나는 그 짐을 벗어 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달이 지난 9월 주일 오후 장로님과 조용히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기에 이실직고하였다.
"장로님,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장로님께 죄를 이었습니다."
"심집사가 무신 죄를 지었다카노."
"지난 달 주일에 장로님께서 사람 키보다 더 큰 풀다발을 안고 계단을 내려가셨지요? 크고 넓은 잎이 있는 풀다발 말입니다."
"그걸 우찌 아노?"
"그날 9층 계단에서 장로님을 뵈었습니다. 그런데 도와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제 집사람이 전도사니까 이러지 않나 하고 생각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 인사마저 못 드리고 스쳐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제 짧은 소견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게 무신 죄가 되노?"
"아닙니다. 그건 아주 큰 잘못입니다. 제 마음이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용서를 빌기로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모 하모."
장로님은 노안에 파안대소하시며 나를 용서하셨다.
"장로님, 그 무거운 것을 어떻게 들고 내려가셨습니까? 엘리베이터도 있는데 그걸 타시지 않으시고요. 저라면 엘리베이터를 탔을 것입니다."
"내야 뭐 그리 바쁘다고 엘리베이터까지 타것나. 엘리베이터야 바쁜 사람들이 타야 하지 않겠나."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장로님의 참모습이며 예수님의 모습이 아닌가. 제자의 발을 씻기셨다는 예수님의 겸손이 바로 장로님의 몸소 행하시는 이러한 겸손이 아니었을까. 내가 장로님이었더라면 남들이 타려고 해도 노인이라는 것을 앞세우든지 아들이 누군 줄 알고 이러느냐는 듯 떡 버티고 엘리베이터를 독점하지 않았을까.
우리 교회가 타교단으로부터 심한 공격과 시비에 말려들었을 때였다. 나도 다른 교회에 25년이나 나가다가 여의도로 왔지만 여의도 교회에 나오는 사람 중에는 타교인이 많았다. 그렇듯 다른 교회에서는 좋은 교인들이 자꾸 빠져나가고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여의도로 가는 것이 통계적으로 큰 수치를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타교단에서는 여의도로 향하는 성도들을 막기 위해 이단시비를 더 강조하였고 별별 허물을 내세워 길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교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이 나가던 교회를 떠나 여의도로 왔고 그에 따라 많은 공격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루는 장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복사꽃이 예쁘면 길은 절로 나는 기라. 아무 것도 없는 곳에 길이 날 리 없고 꽃이 예쁘게 피어 있으면 길을 막아도 사람들이 꽃구경을 할라꼬 모여들기 때미로 길은 절로 나는 기라. 그걸 우이 막을꼬."
이 말씀에서 장로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았었다. 언제나 장로님은 학같이 고고하고 천사 같은 분이다. (고 조두천 잘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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