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시

나무는 왜?

웃는곰 2008. 5. 3. 19:55
 

외면한 나무는

 

놀이터에

지팡이도 없이 여름내 서 있는

늙은 느티나무


남쪽은 술집들

북쪽은 초등학교 


나무는 가지를 남으로 뻗고 산다는데  

느티나무는 

학교 담 너머 북쪽에 팔을 벌리고

고개마저 돌렸다


"나무야, 너는 왜

남쪽을 외면하고

북쪽으로 팔을 뻗었지?"


"나는 학교가 좋아요

예쁜 아이들이 있고요

선생님이 계시고요

노래 시간에는

노래도 배우는 걸요."


나무는 긴 가지로

4분의 3박자 지휘를 하고

허리를 돌리며 자랑해요

"이렇게

무용도 하는 걸요"


그리고 잎새 끝에 노래를 발라

구름 위에 색칠을 하며

"지금은 미술 시간이에요."


나무가 남쪽에다

눈 흘기며 하는 말

"밤에 잠 좀 자게 해 주세요

술꾼들이 싫어요

숨좀 쉬게 해주세요

담배 냄새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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