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44 /무서운 적은 사람의 내부에 있다
그녀의 태도는 분명했다. 율 브리너냐, 아니면 우리들의 사랑이냐, 둘 중의 하나였다.
“정 그렇다면 그걸 보러 가지.”
순간 캐들린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보일 듯 말 듯 스치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듯이
손가락을 펴 나의 팔을 꼭 움켜잡았다.
우리는 보도의 가장자리로 걸음을 옮겨갔다. 거기에서 멈추어야 했다.
빨간 불이 파란 불로 바뀔 때까지. 자동차의 홍수가 멈출 때까지,
교통경찰관의 손이 올라가고 택시들이 지정된 장소에서 멈추게 될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TWA 항공사의 창문을 통해 시계를 바라보았다. 10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요. 파란 불이에요.”
캐들린이 팔을 끌며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차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캐들린은 나보다 빨리 걸었다. 나의 오른쪽에서 몇 인치 나를 앞서고 있었다. 이제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은 우리에게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 밤 나는 그들 형제들을 만나보지 못했다.
나는 처음에 무엇을 들었던가? 브레이크의 기괴하고도 날카로운 금속성이었던가? 어느 부인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였던가? 나로서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
내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나는 차도의 한복판에 등을 대고 누워 있었다. 흐릿한 거울 속에서 수많은 머리들이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사람의 머리는 사방에 있었다. 오른쪽, 왼쪽, 위쪽 그리고 아래쪽에도 있었다. 모두가 비슷비슷했다.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공포와 호기심에 차 있었다. 똑같은 입술들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똑같은 말들을 속삭이고 있었다.
나이 든 한 사람이 무엇인가 나에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짧게 깎은 머리에 콧수염을 달고 있었다. 캐들린도 이제는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아름답고 까만 머리의 여인이 아니었다. 그토록 발랄하고 젊던 얼굴도 꼴사납게 일그러져 있었다. 죽음의 면전에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었고, 어처구니없게도 그녀 역시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잠에서 깨어나면 이내 잊어버리게 될 꿈이거니 싶었다. 꿈이 아니고서야 내가 무엇 때문에 차도 위에 누워 있어야 한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내가 죽기라도 한 듯이 사람들은 나를 에워싸고 있단 말인가? 더욱이, 캐들린이 갑자기 콧수염을 단 건 또 뭐란 말인가?
사방에서 몰려오는 소음들이 통과할 수도 없는 두꺼운 안개의 장막에 부딪쳐서는 간단없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나는 말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한 마디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그들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꿈을 꾸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작은 소리 한마디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그 꿈은 나를 귀머거리와 벙어리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밤의 어둠 속으로 조용히 침잠해 들어가지 말고, ‘밝은 빛의 소멸에 대항하여 격노하고 격노하라’는 딜런 토마스의 시구가 간단없이 떠오르곤 했다.
격노하라고? 그러나 농아자(聾啞者)는고함을 지르지 않는다. 그들은 조용히, 그리고 온순하고 소심하게 밤의 어둠 속으로 침잠해 간다. 그들은 빛의 소멸에 대항하여 고함을 지르지 않는다. 입안에 피가 가득하므로 고함을 지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입에 피를 가득 머금은 채 고함을 지른다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사람들은 그 피를 볼 뿐, 고함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또한 한 여름 밤에 나의 몸이 얼어붙는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름밤의 열기는 병이 날 지경이었으며 사람들의 얼굴 역시 저마다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땀방울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지고 있었다. 그 열기 속에서 나는 추위에 떨며 죽어가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런 꿈속에서 어떻게 고함을 지를 수 있겠는가? 밝은 빛의 소멸에 대항하여, 차갑게 식어가는 생명에 대항하여, 넘쳐흐르는 피에 대항하여 어떻게 고함을 지를 수 있겠는가?
내가 위험에서 생명을 건지고 났을 때, 캐들린이 사고가 일어났던 전후 사정을 들려준 것은 그로부터 훨씬 후의 일이었다.
나의 왼쪽에서 달려오던 택시가 나를 덮쳐 몇 야드나 밀려갔다는 것이다. 그때 캐들린은 갑작스런 브레이크의 파열음과 한 부인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군중이 나의 주위를 에워싸기 전까지만 해도 주위를 거의 돌아보지 않았었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구경꾼들의 발밑에 누워 있는 사람이 나인 줄도 몰랐다는 것이다.
다음 순간에야 그것이 바로 나라는 느낌이 들어 허겁지겁 발길을 돌려 군중 사이를 뚫고 나를 확인했던 것이다. 나는 그때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으로 무릎 사이에 고개를 처박은 채 차도 위에 고꾸라져 있더라고 했다.
구경꾼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고 있었다.
“저 사람, 죽었구만.”
“아니야, 죽진 않았어. 보라구, 움직이고 있잖아.”
이십여 분이 지난 후에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당도했다. 그 동안에 나는 어떤 생명의 징후도 보이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고 신음하지도 않았으며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나는 구급차에 실린 후에 몇 번인가 잠깐씩 의식을 되찾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짧은 순간을 이용하여 종이쪽지에 정확한 내용을 기재하여 캐들린에게 앞으로의 일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즉, 내 친구 한 사람을 찾아가 우선 나를 대신하여 집세며 전화요금이며 세탁비 따위를 지불해 줄 것을 부탁해 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 다급한 문제들을 캐들린에게 쪽지로서 부탁한 이후에는 눈을 딱 감은 채 닷새 동안이나 눈을 뜨지 않았다고 했다.
캐들린의 말에 의하면, 구급차에 실려 간 나를 첫 병원에서는 입원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병실이 꽉 차 있다고 했다. 그러나 캐들린이 보기에 그것은 한낱 구실에 불과했다. 의사들은 나를 보자마자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던 것이다. 그들로서는 죽어나갈 사람이라면 일찌감치 손을 대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하고 현명한 일이었을 테니까.
구급차는 나를 실은 채 ‘뉴욕 병원’으로 갔다. 다행이 그 병원에서는 죽어가는 사람들 겁내는 눈치가 없었다. 나를 담당한 의사는 침착하고 인정 있어 보이는 레지던트였는데, 환자를 맞자마자 서둘러 진찰을 하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 어떤가요?”
캐들린이 황급히 물었다. 뜻밖에도 그녀는 닥터 폴 러셀이 나를 진찰하는 동안 응급실 밖으로 내보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한 눈에 보아도 상태가 나쁘군요.”
젊은 의사가 대답했다. 그는 직업적인 말투로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왼쪽 뼈들이 모두 부서졌습니다. 내출혈에 뇌진탕이 겹쳤어요. 그리고 눈은 손상을 입었는지 어떤지 아직은 모르겠군요. 뇌도 정밀 검사를 해보아야 확실히 알겠지만, 손상을 입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니다.”
캐들린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제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돼죠?”
“기도하십시오.”
“아주 위독한가요?”
“위독합니다.”
젊은 의사는 나이답지 않게 음성이 침착했다. 그는 캐들린을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누구시죠? 부인이신가요?”
히스테리 직전에 있던 캐들린은 재빨리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약혼자이신가요?”
“아니에요.”
“여자 친구분?”
“네.”
의사는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부드럽게 물었다.
“이 분을 사랑하십니까?”
“네.”
“그러시면 희망을 버리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사랑이란 기도만큼이나 값진 것이니까요. 때로는 그보다 훨씬 낫지요.”
이 말에 캐들린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삼 일 동안의 정밀진찰과 대기 후에 의사들은 결국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느 경우이든 나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누가 알겠는가, 다행히 운이 좋아 수술에 성공을 한다면…
수술에는 아주 긴 시간이 걸렸다. 다섯 시간 이상이나 걸렸다. 의사 두 사람이 교대로 수술을 진행해야만 했다. 맥박이 형편없이 떨어져 죽음 일보 직전의 최악의 상태였으므로 수혈과 주사, 그리고 산소호흡으로 나를 소생시켜 놓아야만 했다.
의사들은 수술부위를 엉덩이로 국한시켰다. 발목과 늑골, 그리고 그 밖의 골절상은 그런대로 견딜 말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출혈을 막아야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파열된 동맥을 꿰매고 절개된 부위를 봉합해야만 했다.
나는 병실로 옮겨져 이틀 동안 삼과 죽음의 갈림길을 오락가락했다. 나를 헌신적으로 돌보고 있던 닥터 러셀마저도 수술 결과에 대하여 아직도 비관적이었다. 열이 너무 높을 뿐만 아니라 출혈도 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닷새째 되는 날, 나는 마침내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언제고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그날 나는 눈을 떴었다. 그러나 이내 감지 않으면 안되었다. 방안의 흰빛이 너무나 눈부셨기 때문이다. 몇 분이 지난 다음에야 천천히 다시 뜰 수 있었으며, 그제야 시간과 공간을 막연히나마 의식할 수 있었다.
내 병상의 양편에는 혈장이 든 병이 벽에서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두 팔에는 각각 반창고가 부착된 채 커다란 주사바늘이 꽂혀있었으므로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긴급 수혈을 위한 조치였다.
나는 다리를 움직여 보려고 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순간 다리가 절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 당장 사실여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간호원이나 의사, 아니면 어느 누구라도 부르려고 초인적인 노력을 해보았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허약했다. 고함을 지른다고는 했으나 소리가 목구멍에 걸린 채 입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는 목소리마저 잃어버렸구나 하고 생각했다.
순간 외롭게 버려진 듯한 비감이 들었다. 새삼스레 한 가닥 후회가 마음속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것을…….
한 시간쯤 후에 닥터 러셀이 들어와 내가 살아났음을 알려주었다. 사실인즉 나의 다리는 절단된 것이 아니었다.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깁스붕대 때문에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겨우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은 머리와 팔, 그리고 발끝뿐이었다.
“당신은 아주 먼 곳에서 돌아온 겁니다.”
닥터 러셀이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아주 먼 곳에서 돌아온 것을 나는 여전히 후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 감사하시오.”
의사의 말이었다. 나는 그를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병상의 모서리에 앉아 호기심이 가득한 눈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하죠?”
나의 음성은 겨우 속삭임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는 그제야 말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말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왈칵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실에는 거의 무관심했으면서도,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나는 넘쳐오는 감동을 억제하지 못했다.
의사는 어린애 같은 얼굴을 했다. 그의 머리는 금발이었고 빛나는 파란 눈동자에는 무궁무진한 선의(善意)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는 친절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런 그의 눈길도 나를 어쩌지는 못했다. 나는 너무나 허약해 있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하죠?”
나는 되물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덧붙이고 싶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에게 감사한단 말이오? 도대체 하나님이 인간에게 값어치 있는 일을 한번이라도 한 적이 있었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오 라고.
의사는 말없이 주도면밀한 눈길로 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눈동자에는 어떤 이상한 섬광-어쩌면 그것은 어떤 이상한 그림자였는지도 모른다-이 어려 있었다.
그 섬광에 부딪치는 순간, 갑자기 나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와 아울러 무서운 생각이 엄습해 왔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혹시 그가 나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춥습니까?”
의사는 나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 물었다.
“네, 춥군요.”
나는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건 당신의 열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의사들이란 대개 환자의 맥박을 재거나 손 등으로 이마를 짚어보게 마련이다. 그러면서도 아무 처방도 않는다. 그것은 환자의 증상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열에 대해서는 처방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주사를 맞아야 해요. 아주 많은 양을. 매시간, 밤과 낮 매시간 페니실린 주사를 맞아야 해요. 이제 당신의 적은 열이니까요.”
의사는 말을 끊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오랫동안 나의 얼굴을 주시했다. 마치 나의 얼굴에서 어떤 숨겨진 비밀이나 징후 같은 것을,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문제를 풀 해결책을 찾고 있는 듯했다.
“우린 감염을 염려하고 있어요. 만일 열이 계속 오른다면 당신은 위험해요.”
“적이 승리하겠죠?”
나는 의사의 말을 비꼬듯이 대꾸했다.
“닥터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인간의 가장 흉악한 적은 그 사람의 내부에 있는 겁니다. 지옥이 별다른 게 아니에요. 우리 자신이 곧 지옥이지요. 열병이야말로 우리를 추위에 떨게 하는 지옥이거든요.”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라고 규정짓기 어려운 유대감이 형성되고 있었다. 우리는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 쓰는 성숙한 언어롤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려 했으나, 너무 추운 탓으로 겨우 싱긋 웃는 정도에 그쳤다. 그것이 바로 내가 겨울을 싫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겨울에는 웃음마저도 추상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닥터 러셀이 일어섰다.
“간호원을 보내지요. 주사 맞을 시간이 되었으니까요.”
그는 더 좋은 생각을 떠올리려는 듯이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있다가 덧붙였다.
“당신이 좋아지면 그때 충분한 얘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나는 다시 한 번, 그가 나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적어도 무엇인가를 눈치 채고 있다는 불안한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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