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42 / 죽은 입술은 따듯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벽에 머리를 기댔다.
아마 머릿속의 여러 생각을 정리하거나 기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이거나.
다섯 시 팔 분 전, 팔 분이 남았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만일 그가 나에게서 권총을 피하려고 발버둥을 치면 어떻게 한다?
그곳에서 그가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그 건물은 철저히 감시되고 있었으며, 그 감방을 빠져나가려면 부엌을 통하는 길밖에는 달리 없었다.
더욱이 이층에서는 가드, 기데온, 요압, 그리고 일라나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 점은 존 도슨도 알고 있었다.
다섯 시 육 분 전, 육분이 남았다.
갑자기 나는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감방 안에 예기치 못했던 밝은 빛이 비쳤던 것이다. 이제 경계선은 그어지고 임무는 결정되어 있었다.
의문과 질문과 불확실의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나는 권총을 든 하나의 손이었고, 나는 권총 자체였다.
다섯 시 오 분 전. 오 분이 남았다.
“두려워 말라, 나의 아들아”
랍비가 다비드 벤 모세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라.”
“염려하지 말게. 난 의사니까.”
온후한 인상의 게슈타포 두목이 슈테판에게 말했다.
“그 편지.”
존 도슨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내 아들에게 보내주겠지요?”
그는 벽을 향해 섰고, 그는 곧 벽이었다. 다섯 시 삼 분 전. 삼 분이 남았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라.”
랍비가 말했다. 그는 울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다비드는 그를 보지 않았다.
“그 편지, 잊지 않겠지요?”
존 도슨이 거듭 말했다.
“보내지요.”
나는 약속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오늘 우편으로 보내지요.”
“고맙소.”
존 도슨이 말했다. 다비드가 살아서 다시 나올 수 없는 사형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형집행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온통 눈동자뿐이다. 다비드가 교수대로 올라간다. 집행인이 눈을 가리기를 바라는지 아닌지를 다비드에게 묻는다. 다비드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한 유대 전사가 눈을 뜬 채 죽어간다. 그는 죽음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이다.
다섯 시 이 분 전. 나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하나 꺼냈다. 그러나 존 도슨은 손수건을 다시 호주머니에 넣어달라고 했다. 한 영국인이 눈을 뜬 채 죽어간다. 그는 죽음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이다.
다섯 시 일 분 전. 육십 초 남았다. 감방문이 열리며 죽음의 유령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그들의 침묵이 우리를 감쌌다. 순식간에 비좁은 감방 안은 숨이 막혀 왔다. 거지가 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낮이 왔네.”
나를 닮은 소년이 얼굴에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이 처음…….”
소년은 말을 하다 말고 흐렸다. 그러고는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하다 만 말이 다시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사형집행을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야.”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함께 있었으며 백발의 스승과 친구 예라크밀도 거기 있었다. 그들의 침묵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다비드가 딱딱한 표정으로 하티크바를 불렀다.
존 도슨이 벽에 머리를 기댄 채 미소를 지었다. 그는 마치 어떤 장군에게 경례라도 붙이는 듯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왜 웃지요?”
나는 물었다.
“자네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웃는 이유를 묻는 법이 아니야.”
거지가 말했다.
“내가 웃고 있는 것은.”
하고 존 도슨이 말했다.
“왜 내가 죽어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오.”
그는 한참 사이를 두었다가 반문했다.
“당신을 알고 있소?”
“봤지?”하고 거지가 말했다.
“그러기에 내가 죽을 예정인 사람에게는 아무 질문도 하지 말라고 했었잖아.”
이십 초. 이 순간은 육십 초보다도 더 길었다.
“웃지 마세요.”
나는 존 도슨에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이런 뜻이었다. ‘나는 웃고 있는 사람에게 총을 쏠 수가 없어요.’
십 초!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소.”
하고 존 도슨이 말했다.
“우스운 이야기를.”
나는 오른팔을 올렸다.
오 초!
“엘리야…….”
이 초.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안됐군.”
하고 소년이 말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일 초!
“엘리샤…….”
인질이 말했다. 나는 권총을 발사했다. 그가 나의 이름을 발음했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총알은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죽은 사람- 그의 입술은 아직 따뜻했다- 나의 이름을 발음했다.
“엘리샤…”
그는 아주 천천히 벽의 꼭대기에서 미끄러지듯 방바닥에 가라앉았다. 그의 몸은 무릎 사이에 머리를 숙이고서 앉은 자세를 취했다. 마치 아직도 처형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자세였다. 나는 그의 곁에서 잠깐 동안 머물렀다. 두통이 일며 점점 몸이 무거워 왔다. 나는 총소리에 귀가 막히고 입이 막혀 있었다. 일은 끝났다, 하고 혼잣말을 했다. 나는 살해했다.
유령들이 존 도슨을 데리고 감방을 떠나기 시작했다. 소년은 존 도슨의 곁에 서서, 마치 그를 인도하듯 걸어갔다. 어머니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불쌍한 것! 불쌍한 것!”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부엌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방안은 전과 달라 있었다. 유령들은 떠나고 없었다. 요압은 이제 하품을 하지 않는다. 기데온은 자기의 손톱을 내려다보면서 사자의 영면(永眠)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다. 일라나가 서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가드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들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그들의 침묵은 그 날 밤 내내 나를 짓누르던 침묵과는 달랐다. 지평선 위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창문 곁으로 갔다. 도시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어디선가 어린 아이가 일어나 울기 시작했다. 개라도 짖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근처에는 어디에도 개가 없었다.
밤은 정체된 물빛인 회색의 빛을 뒤에 남긴 채 희끗거렸다. 잠시 후 창문의 저쪽 허공에는 찢겨진 어둠의 조각이 하나 걸려 있을 뿐이었다. 공포가 나의 목구멍을 졸랐다. 찢겨진 어둠의 조각에 얼굴이 하나 들어 있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고서야 공포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얼굴은 곧 나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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