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41 / 사형 10분 전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있소?”
나는 수첩 몇 장을 찢어 연필과 함께 건네주었다.
“아들에게 보낼 짤막한 편지를 쓰려고 그러오. 주소와 성명도 써야 되겠지요.”
나는 받침으로 사용하도록 수첩도 건네주었다.
그는 수첩을 침대 위에 놓고 선 자세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감방 안에는 종이 위를 스치는 연필 소리만 들렸다.
나는 길고 날씬한 귀족적인 손가락을 가진 그의 매끈한 손을 정신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런 손을 갖고 있으면 살아가기에 아주 편리할 거야, 하고 생각했다.
허리를 구부려 아첨을 하거나 웃을 필요도 없을 것이고, 구질구질한 말을 하거나
인사를 하거나 꽃으로 장식할 필요도 없을 거야. 저런 손을 가지면 못할 일이 없을 거야.
로댕은 저런 손을 조각하기를 좋아했지…….
로댕을 생각하니 슈테판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독일인으로 내가 부켄발트에서 알게 된 사람이었다.
그는 전쟁 전에는 조각가였으나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의 오른손은 나치에 의해 절단되어 있었다.
히틀러가 집권한 첫해에 슈테판은 몇몇 친구들과 함께 베를린에서 초기의 저항단체를 조직했었다. 그러나 즉각 게슈타포에 의해 발각되고 말았다. 슈테판은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다. 이름을 대라, 그러면 너를 석방해 주겠다. 케슈타포는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슈테판을 구타하고 굶겼다. 그러나 그는 이름을 대지 않았다. 그들은 밤마다, 날마다 잠을 못 자게 하고 고문했다. 그래도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슈테판은 베를린의 게슈타포 본부로 이송되었다. 본부의 두목은 약간 소심하고 온후한 사람이었다. 두목은 부드러운 어조로, 마치 아버지 같은 태도로, 바보 같은 고집을 버리라고 그를 타일렀다. 그래도 슈테판은 돌 같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봐, 우리에게 협조하는 표시로 이름만 대면되는 거야.”
그러나 끝내 슈테판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두목이 말했다.
“안됐군. 봐주려고 했더니 화를 자초하다니.”
두목의 지시를 받은 두 명의 친위대원에 의해 슈테판은 수술실로 보이는 곳으로 옮겨졌다. 창가에는 치과의사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 옆에는 하얀 유포(油布)가 덮인 탁자가 하나 있고, 그 위에는 각종 수술기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친위대원들은 창문을 내리고 슈테판을 의자에 앉혀 묶은 다음, 그에게 담배를 한 대 물렸다. 조금 후에 예의 온후한 인상의 두목이 들어왔다. 그는 의사의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두려워할 것 없어. 나는 의사였으니까.”
하고 두목이 말했다. 그는 수술기구들을 짐짓 점검하는 체하고 나서 슈테판의 의자 앞에 앉았다.
“오른팔을 이리 내주게.”
슈테판이 팔을 내밀어주자 그는 눈을 가까이 대고 관찰한 다음 말을 이었다.
“자네가 조각가란 걸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도 할 말이 없단 말이야? 좋아. 무슨 뜻인지 알겠네. 그렇담 자네의 손이 말하게 해주지. 사람의 손이란 그 사람에 관해서 많은 것을 얘기해 주거든. 내 손을 한번 보게. 아마 자넨 내 손을 의사의 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겠지, 그렇지? 그건 사실이야. 나는 한 번도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니까. 나는 화가나 음악가가 되고 싶었지. 결국 못 됐지만 말이야. 하지만 아직도 예술가의 손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다를 것이 없지. 내 손을 한번 보라구.”
“나는 그의 손을 바라보았지. 정말 매혹적인 손이었어.”
하고 슈테판은 나에게 말했었다.
“일찍이 나는 그토록 아름답고 그토록 천사 같은 손을 본 적이 없었어. 자네가 그 손을 보았더라면 천상(天上)의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손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조각가에게는 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겠지.”
하고 게슈타포의 두목은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그게 필요 없다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슈테판의 손가락을 하나 잘랐다.
다음날에는 두 번째 손가락을 잘랐다. 그 다음날에는 세 번째, 그리고 닷새째에는 다섯 번째 손가락을 잘랐다. 그리하여 슈테판의 오른손에서는 다섯 손가락이 몽땅 잘려나가고 말았다.
“염려하지 말게. 의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수술은 아주 잘 되었으니까. 감염될 위험은 조금도 없네.”
“그 후에도 나는 그 작자를 다섯 번이나 더 보았지.”
하고 슈테판이 나에게 말했었다(슈테판은 무슨 이유에선 즉각 처형되지 않고 정치범 수용소로 옮겨졌다고 했다).
“5일 동안 날마다 나는 그 작자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어. 그럴 때마다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그의 그토록 아름다운 손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어…….”
존 도슨이 편지를 다 써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보고 있지 않았다. 나의 눈길은 온통 그의 자랑스럽고 매끄러우며 연약한 손에 쏠려 있었다.
“당신은 예술가인가요?”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머리를 저었다.
“한번쯤 그림을 그렸다든지, 악기를 다루었다든지, 혹은 최소한 그런 것을 해보고 싶은 적이 한 번도 없었나요?”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고 나서 냉정하게 대꾸했다.
“없었소.”
“그렇다면 의학공부는 했겠군요.”
“의학을 공부한 적도 없었소.”
그는 사뭇 화가 난 어조로 대꾸했다.
“안됐군요.”
“안되다니? 왜요?”
“당신 손을 한 번 보세요. 그건 외과의사의 손이라구요. 손가락을 잘라내는 그런 손이지요.”
그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쓴 종이를 침대에 놓았다.
“그게 당신이 말한 우스운 이야기요?”
“그래요. 아주 우습잖아요. 그 얘길 나에게 해준 친구도 그렇게 생각했었죠. 그는 어떻게나 웃었던지 나중에는 눈물까지 흘렸답니다.”
존 도슨은 머리를 내저으며 슬픈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나를 증오하고 있구려. 그렇죠?”
나는 그를 조금도 증오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증오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를 증오할 수 있다면 모든 일을 수월하게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증오는- 신념이나 사랑이나 전쟁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엘리샤, 너는 무엇 때문에 존 도슨을 죽였지?”
“그는 나의 적이니까.”
“존 도슨이? 너의 적이라구?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군.”
“좋아, 설명해 주지. 존 도슨은 영국인이야. 영국인은 우리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의 적이야. 따라서 그는 나의 적이지.”
“하지만 엘리샤, 그것만으로는 네가 왜 그를 죽였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그가 단지 적이기 때문에 죽인 거야?”
“아니야. 난 명령을 받고 있었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갈 거야.”
“그 명령이 그 사람을 너의 적으로 만들었을까? 사실을 말해봐. 엘리샤, 무엇 때문에 존 도슨을 죽였지?”
만일 내가 증오 때문에 그를 죽였노라고 대답한다면, 저런 질문들은 모두 나를 용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무엇 때문에 존 도슨을 죽였을까? 그를 증오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증오의 절대적인 특성은, 설령 그 행위에 비인간적인 점이 있다 해도 인간의 어떤 행위를 설명해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그를 증오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그를 죽이기 전에, 그와 대화를 나누고자 했던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내가 그에게서, 혹은 나 자신에게서 증오심을 일으킬 만한 어떤 것을 찾고자 했다는 사실은 나의 입장에서 볼 때 다소 불합리한 것이기는 했다.
어떤 사람이 적을 증오하는 것은 그 자신의 증오심을 증오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의 적인 이 친구가 나에게 증오심을 불러일으킨 거야. 내가 이 친구를 증오하는 것은 그가 나의 적이기 때문이라거나, 그가 나를 증오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나에게 증오심을 일으키게 했기 때문이야.
존 도슨이 나를 살인자로 만든 것이다, 라고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가 나를 존 도슨의 살인자로 만든 거라구. 그는 나의 증오를 받아 마땅한 거야. 그가 아니었다 해도 나는 살인자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존 도슨의 살인자는 되지 않았을 거라구.
그렇다. 내가 일찍이 지하실로 내려온 것은 나의 증오심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아주 쉬운 일로 생각되었다. 이 지구상의 모든 군대와 정부는 각기 증오심을 고취시키는 일정한 수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강연이나 영화, 기타 여러 가지 선전을 통해서 각자에게 편리하게 적에 대한 이미지를 창조한다. 악의 화신으로서, 혹은 고통의 상징으로서, 혹은 모든 시대의 잔학과 불의의 근원으로서. 이 수법은 가히 절대적이다. 나 역시 이 수법을 나의 희생자에게 적용하고자 안간힘을 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적은 다 똑같은 거야, 하고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들의 동료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거야. 그들은 각자 얼굴이 다르지만 모두 똑같은 손을 가지고 있는 거야. 내 친구의 혀를 자르고 손가락을 절단한 손과 똑같은 손을 가지고 있는 거야.
나는 지하실로 내려오면서, 우리의 동지 다비드 벤 모세를 사형에 처한 자, 나의 양친을 살해 한 자, 나와 내가 되고자 했던 인간 사이에 끼어든 자, 그리고 지금 내가 마음속으로 살해하고자 하는 ‘적’을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확신했었다. 그 적을 증오하리라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그의 군복을 보자마자 나의 증오심은 불길에 기름을 부은 듯 활활 타올랐던 것이다. 나의 증오심을 일으키기에 군복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그의 매끈한 손을 보는 순간, 슈테판을 머리에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잘린 손가락 대신 나의 증오심을 조각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는’ 아들에게, ‘웃으며 계집애들과 놀러 다니기를 좋아한다는’ 아들에게 작별의 편지를 쓰기 위하여 허리를 구부렸을 때, 나는 다비드를 생각했다. 존 도슨이 아니라, 다비드가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라고. 사형집행인의 올가미에 목을 내밀기에 앞서 어쩌면 ‘노인’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존 도슨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나의 마음은 다비드에게로 달려가고 있었다. 다비드에게는 랍비 외에는 말할 상대가 없었다. 다비드, 당신은 랍비에게도 이야기를 걸 수가 없다. 랍비는 당신의 마지막 유언을 하나님에게 중계하느라 달리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랍비에게 죄를 고백할 수는 있다. <시편>이나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문을 욀 수는 있다. 그리고 랍비의 위로를 받을 수도 있고 랍비를 위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여기 존 도슨처럼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모를 다비드를 생각했다. 그가 교수형을 당하는 우리의 첫 희생자는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그가 처형되는 시간과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침 다섯 시경이면 감옥의 문이 열리고 간수장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다비드 벤 모세, 준비하시오. 시간이 다 되었소, ‘시간이 다 되었소.’ 이것이 언제나 사형식의 집행사였다. 다비드는 자기가 갇혀 있던 감방을 한번 돌아볼 것이다. 그러면 랍비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라, 나의 아들이여.” 그들은 감방 문을 뒤에 열어 둔 채 밖으로 나올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감방 문이 닫히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고는 사형실로 통하는 긴 통로를 걷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다비드는 중요한 인물이므로 일행 가운데서 중앙을 차지하고 걸어갈 것이다. 또 그는, 우리의 모든 영웅들이 그렇게 했듯이, 머리를 높이 쳐들고 입술에 야릇한 미소를 떠올리며 의젓한 자세로 걸을 것이다. 통로의 양쪽에는 수백 개의 눈, 수백 개의 귀가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그가 가까이 다가온 것을 맨 처음 알아차린 죄수들은 희망의 노래인 하티크바(Hatikva)를 영창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하여 일행이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노랫소리는 점점 커지면서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강력한 소리가 되어 일행의 발자국 소리와 맞먹게 될 것이다…….
존 도슨이 자기의 아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나는 다비드의 발자국 소리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그 노랫소리를 듣고 있었다. 존 도슨은 그 발자국 소리를 막으려는 듯이, 다비드가 통로를 걸어가는 모습과 그의 입술에 떠오르는 야릇한 미소를 지우려는 듯이, 그리고 희망의 노래인 하티크바의 절망적인 소리를 안 들리게 하려는 듯이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증오하고 싶었다. 증오는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들어 버리니까……. 무엇 때문에 존 도슨을 살해했느냐고? 나는 그를 증오하기 때문에 살해했다. 나는 다비드 벤 모세가 그를 증오했기 때문에 그를 증오했으며, 다비드 벤 모세가 그를 증오한 것은 다비드 자신이 죽음과 만나야 하는 먼 끝으로 통하는 어두컴컴한 통로를 걷고 있는 동안에 그가 자기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엘리샤, 당신은 나를 증오하는구료. 그렇죠?”
존 도슨이 물었다. 그의 눈에는 자비심이 넘치고 있었다.
“당신을 증오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지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무엇 때문에 나를 증오하려고 애를 쓰는 거요?”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약간 슬픔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호기심의 기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 때문이냐고? 나는 잠시 망연해졌다. 그런 질문이 어디 있단 말인가! 증오심이 없다면 나의 동료와 내가 수행하고 있는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터였다. 증오심이 없다면 우리가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도 버려야 할 터였다. 존 도슨, 무엇 때문에 당신을 증오하려고 애쓰느냐고? 그건 우리 민족이 지금껏 증오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오. 우리 민족이 수세기 동안 비극을 겪어야만 했던 것은 우리 민족에게 굴욕감을 안겨주고 우리 민족을 멸종시키려 했던 자들을 우리가 증오할 줄 몰랐기 때문이오. 이제 우리의 유일한 기회는 당신을 증오하는 데서, 증오의 필요성과 기술을 배우는 데서 찾을 수 있을 뿐이오. 존 도슨,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의 미래는 단지 과거의 연장에 불과할 것이며, 메시아도 무작정 그의 구조를 기다릴 뿐일 것이오.
“무엇 때문에 당신은 나를 증오해야만 하는 거요?”
존 도슨이 다시 물었다.
“나의 행동에 어떤 초월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지요.”
존 도슨은 다시 한 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안됐군요.”
하고 그는 되뇌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다섯 시 십 분 전. 아직 십 분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십 분 속에 나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행위를 남기고 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준비하시오, 존 도슨.”
“시간이 되었소?”
그가 물었다.
“거의 다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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