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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40 / 마지막 사람과의 대화

웃는곰 2026. 7. 19. 09:23

홀로코스트 40 / 마지막 사람과의 대화

존 도슨은 잘 생긴 남자였다. 면도하지 못한 얼굴이며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구겨진 셔츠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딘가 비범한 인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사십대쯤에 접어든 사람으로- 의심할 바 없는 직업군인이었다-

날카로운 눈과 단단한 턱, 얇은 입술과 훤히 트인 이마, 그리고 가느다란 손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지하실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그는 천장을 주시하며 야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침대는 비좁은 하얀 독방에 설치된 유일한 비품이었다.

 

우리들이 설치했던 그 교묘한 통풍장치에 감사해야 할 것은, 그 창문 없는 독방이 이층의 환한 방보다 훨씬 덜 답답했다는 점이었다.

존 도슨은 내가 온 것을 알아차리고도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상체를 일으켜 앉은 자세를 취할 뿐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말 한 마디 없이 나의 침묵의 농도를 가늠해 보기라도 하듯 나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의 눈길은 나의 온 몸을 감싸듯 강렬했으므로, 혹시 내가 수많은 눈동자를 가졌다는 사실을 그가 알아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몇 시요?”

그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나는 네 시가 지났다고 대답했다. 그는 나의 말속에 숨겨진 뜻을 알아내려고 애쓰는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해는 언제 뜨오?”

 

한 시간쯤 있으면요.”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이유도 없이 덧붙였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상대방을 주시했다. 그러면서 나는 갑자기 시간이 정상적으로, 규칙적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런데도 나는 실제로는 그 사실을 믿지 않고 있었다. 나는 살인으로부터 떼어놓을 그 한 시간이 평생보다 길게 느껴졌다. 그 시간은 언제나 먼 미래에 속하게 되리라. 그 시간은 결코 과거와 함께 있지는 않으리라.

그런데, 어쩐 일인지 우리 두 사람의 관계가 꽤 오래 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감방에 외롭게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는 희생자로 앉아 있고 나는 사형집행자로서 서 있었다. 우리는 천지창조의 첫 인간, 혹은 마지막 인간이었다. 확실히 우리는 외로웠다. 그럼 하나님은 어디에 있을까? 그 역시 어디엔가 현존해 있었다. 그는 존 도슨이 나에게 불어넣어 준 기호(嗜好) 속에 구현되어 있었다. 사형집행자와 희생자 사이의 증오의 부재(不在)- 아마 이것이 곧 하나님일 것이다.

 

우리는 비좁은 하얀 감방 안에서 외로웠다. 그는 침대에 앉아 있고 나는 그 앞에 서서 서로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을 통해서 나 자신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아마 그 역시 나를 통해서 그 자신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그에게 증오도, 분노도, 그리고 동정도 느끼지 않았다. 나는 그가 좋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가 생각할 때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이 좋았고, 그가 자기의 사상을 공식화하려고 노력할 때 손톱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좋았다. 만일 다른 상황이었다면 그는 나의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 당신이었소?”하고 그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가 어떻게 그것을 알아챘을까? 아마 그는 후각으로 알아냈는지도 모른다. 죽음이란 냄새를 지니고 있는 것이며, 그것을 가지고 내가 들어왔으니까. 그렇지 않다면, 내가 들어오자마자 나에게는 팔도 다리도 어깨도 없는 대신, 온통 눈동자만 있다는 사실을 보고 알아냈는지도 모른다.

 

그래요.”

나는 대답하면서 마음이 아주 평안했다. 마지막 발걸음이 어려운 법이다. 사람이란 마지막에 이르면 오히려 명석해지고 침착해지기 마련이다.

당신 이름이 무엇이오?”

그가 물었다. 이 질문은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모든 사형수들은 꼭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일까? 왜 그는 사형집행인의 이름을 알고 싶어 할까? 그 이름을 저 제상으로 함께 가지고 가기 위해서일까? 어떤 목적 때문일까? 아마 나는 이름을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어 가는 사형수에게 아무것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엘리샤라고 합니다.”

아주 음악적인 이름이군요.”

어떤 예언자의 이름이지요.”

 

하고 나는 설명했다.

엘리샤는 엘리야의 제자였어요. 그는 죽은 아이의 위에 엎드려 자기 입으로 아이의 입에 숨을 불어넣어 줌으로써 그 아이를 소생시킨 사람이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그와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구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음성에는 분노나 증오의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아마 그 역시 명석해지고 침착해진 탓일 것이다.

지금 몇 살이오?”

그는 나에 대한 관심을 높이며 다시 물었다.

열여덟입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나는 덧붙였다.

곧 열아홉이 되지요.”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야위고 민감해 보이는 얼굴에 갑자기 연민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잠깐 동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나서 언짢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안됐구려.”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그의 연민이 나의 전신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이야기를 하나 해주시오, 우스운 이야기를요. 만일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나는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내일이면 더욱 무거워지리라고 생각했다. 내일이면 나의 몸은 더욱 무거워져서 나의 인생을, 그리고 그의 죽음을 내리누르리라.

나는 당신이 죽기 전에 보게 될 마지막 사람이에요.”

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나를 한번 실컷 웃겨 보시죠.”

다시 한 번 그의 연민의 눈길에 내 전신이 휩싸였다. 나는 모든 사형수가 그와 똑같이 마지막 사람을 바라보는 것인지, 모든 희생자가 그의 사형집행자를 그와 똑같이 동정하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정말 안됐구려.”

존 도슨이 이렇게 되뇌었다. 나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겨우 미소를 지었다.

 

그건 조금도 우스운 얘기가 아니군요.”

그가 이번에는 답례로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 두 사람의 미소 가운데서 어느 쪽이 더 슬펐을까?

정말 조금도 우습지 않단 말이오?”

아니, 그렇지는 않았다. 뭔가 우스운 점이 있기는 있었다. 서로 웃으면서 앉아 있는 사형수와 서 있는 사형집행자- 아마 그들이 어릴 적부터의 친구였다면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인습에 젖은 겉치레 따위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과 눈길과 몸짓은 어느 것 하나 적나라한 진실 아닌 것이 없었다. 우리 사이에는 조화가 이루어져 있었다. 나의 미소는 그의 미소였고 그의 연민은 나의 연민이었다. 이 시간에 그가 나를 이해해 준 것만큼 일찍이 나를 이해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우리 두 사람에게 주어진 역할 때문에 우리는 그따위 우스꽝스러운 놀이를 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앉구려.”

 

존 도슨이 말했다. 그는 침대 왼쪽에 앉을 자리를 비워주었다. 나는 앉았다. 그때서야 나는 그가 나보다는 머리 하나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았다. 다리도 바닥에 닿아 있지 않은 나보다 길었다.

나에게는 당신 또래의 아들이 있어요.”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애는 당신과는 전혀 달라요. 그엔 금발에 힘이 세고 건강하지요. 그 앤 먹고, 마시고, 영화 구경 가고, 웃고, 노래하고, 계집애들과 놀러 다니기를 좋아해요. 그 애에겐 당신의 걱정이나 불행 같은 건 조금도 없지요.”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는아들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구구절절이 나의 몸 구석구석에 불을 활활 지르는 내용뿐이었다. 나는 몇 번이나 오른손으로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연발권총을 어루만졌는지 모른다. 권총 역시 뜨겁게 달아올라 나의 손끝에서 타는 듯했다.

 

이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라고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는 나의 적이다. 적과 대화란 있을 수 없다. 나는 다른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동안에 다른 것을 생각하기 위해서, 그를 만나보고 싶어 했으니까. 다른 어떤 것을…….

하지만 무얼 생각한다? 일라나에 대해서? 가드에 대해서? 그렇다. 가드를 생각해야 한다. 그는 다비드를 생각하고 있었지. 나 역시 우리들의 영웅 다비드 벤 모세를 생각해야 한다. 그는…….

 

나는 다비드를 보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럴 것이 그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만으로는 목소리가 있어야 하고 몸은 있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그것들 위에 다비드 벤 모세라는 이름을 꽂아야 실감이 나지 않겠는가?

내가 실제로 알고 있는 얼굴과 목소리와 몸을 생각하는 것이 낫겠군. 가드를 생각해 볼까? 아니야, 가드를 사형수로 상상해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야. 사형수지……. 그렇군! 왜 일찍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존 도슨은 사형수가 아닌가! 그렇다면 왜 그를 다비드 벤 모세로 바꾸어 생각하지 못했단 말인가? 앞으로 5분 동안, 존 도슨, 당신은 나의 다비드 벤 모세가 되는 거요. 아크레의 차갑고 습하고 창백한 햇볕이 드는 죽음의 감방에 갇혀 있는 다비드 벤 모세…….’

 

누군가 감방문을 두드린다. 문이 열리고 다비드, 당신에게 <시편>을 읽어주기 위하여, 그리고 당신의 참회를 듣기 위하여 랍비가 들어온다. 당신은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으로 지은 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데 대해서도 책임을 지고 무서운 참회를 해야 한다. 랍비는 당신에게 전통적인 축복을 준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니…….’

 

그리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당신에게 간곡히 타이른다. 그러면 당신은 절대로 무섭지 않다고,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같은 임무를 몇 번이고 수행하겠노라고 대답한다. 랍비는 미소를 지으며 바깥사람 모두가 당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말한다. 랍비는 감동하여 당신의 보는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애씀이 지나쳐 마침내 랍비는 소리 내어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다비드, 당신은 울지 않는다. 당신은 랍비를 친절하게 대한다. 왜냐하면 랍비는 당신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사형집행인과 그의 조수들은 빼고 말이다)이니까. 그래도 랍비가 계속 슬퍼하므로 당신은 이렇게 그를 위로한다. ‘울지 마십시오.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랍비께서 저 때문에 언짢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정말 안됐구려.”

하고 존 도슨이 말했다.

당신은 내 아들이 아니라 나를 걱정해 주는구려.”

그는 방바닥에 발을 딛고 섰다. 그가 일어서자 키가 너무 컸으므로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기 위해 허리를 굽혀야만 했다. 그는 구겨진 카키색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감방 안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다섯 발자국 한쪽으로 걸었다가 다섯 발자국 다른 쪽으로 걸었다.

 

당신이 그렇게 걷고 있으니까 정말 우습군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는 나의 말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계속 벽과 벽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네 시 이십 분이었다. 갑자기 그가 나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며 담배를 찾았다. 나는 호주머니 속에 플레이어즈한 갑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걸 몽땅 주겠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한 갑을 다 피울 시간이 없을 것이라며 갑째 갖는 것을 조용한 어조로 사양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조바심을 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