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36 / 유령들의 밤
“그는 배고파하고 있어.”
뜻밖에도 기데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성자들은 일반 사람들이 당혹감을 느낄 정도로 소리 내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전혀 소리를 내지 않고 걷고 웃고 먹고 기도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하고 나는 단언했다. ‘그는 배고플 리가 없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죽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죽게 되어 있는 사람은 배고프지가 않다고.
“그 자신이 그렇게 말했는 걸.”
가운데 사뭇 감동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 모든 사람의 눈길이 나에게 쏠렸다.
일라나는 울음을 그쳤으며 요압도 이제는 손톱을 보고 있지 않았고,
가드는 지친 모습이었다. 모든 유령들도 나에게서 어떤 반응이 나타나기를,
어떤 기미 같은 것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유령들은 내가 울컥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을 기대하는 듯했다.
“그 사람, 자기가 죽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나요?”
하고 나는 기데온에게 물었다.
“그럼, 알고 있지.”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기데온은 사이를 두었다가 덧붙였다.
“내가 얘기해 주었으니까.”
“그의 반응은 어땠어요?”
나에게는 그의 반응이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내일 새벽에 죽게 된다는 소식에 쇼크를 일으키지 않았을까? 가만히 있었을까, 아니면 무죄를 주장했을까?
“그는 웃더군.”
하고 기데온이 말했다.
“자기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야. 그의 위장이 그렇게 말해주더라는 거야.”
“그러면서 배가 고프다고 했단 말이죠?”
기데온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손을 등 뒤로 숨기며 대답했다.
“그렇다니까. 그 친구 입으로 그렇게 말했어. 그리고 자기에게는 마지막 성찬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거야.”
가드가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전형적인 영국인이로군.”
하고 그가 말했다.
“꽤 용감한 친구야.”
모두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때 아버지가 심각한 눈길을 나에게 던졌다. 그 눈길은 마치 ‘죽으려고 하는 사람은 배가 고픈 법이란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의 위장은 아마 쇠로 만들어진 모양이군.”
이 말에도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위장이 찔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나는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일라나가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갔다.
“내가 먹을 것을 조금 준비하겠어요.”
그녀가 선언하듯 말했다. 나는 그녀가 빵 덩어리를 써는 소리며 냉장고를 여는 소리며 커피를 끓이는 소리를 들었다. 잠시 후에 그녀가 한 손에 커피 한 잔과 다른 손엔 쟁반 하나 들고 돌아왔다.
“내가 찾을 수 있는 음식은 이게 전부예요. 치즈 샌드위치와 블랙커피뿐이에요. 설탕도 없더군요……. 한 끼 식사로는 부족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예요.”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 그녀가 다시 물었다.
“누가 이걸 가져다주죠?”
이때 아버지 곁에 서 있던 소년이 나에게 준엄한 눈길을 던졌다. 그의 눈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네가 가거라. 네가 그에게 먹을 걸 갖다 주어라. 너도 알겠지만 그는 지금 배가 고픈 거야.’
“안 돼. 나는 안 돼. 나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으니까. 무엇보다도 그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나중에 나는 그가 결코 입에 음식을 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으니까.”
나는 덧붙여서 내 위장이 경련을 일으켰다고 말하려 했으나, 그건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와 단둘이 있고 싶지 않아. 아직은 말이야. 모두도 너와 함께 갈 거야.”
소년이 말했다.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거절한다는 건 나쁜 짓이야. 그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래, 알고 있어. 나는 항상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주어왔으니까. 거지 양반, 아마 당신도 그걸 기억할 겁니다. 내가 당신에게 빵을 거절하던가요? 하지만 오늘밤은 달라. 오늘밤에는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아. 이건 적선과는 다르니까.”
“네 말도 사실이야.”
소년은 나의 생각을 중단시키며 다시 말했다.
“오늘밤의 경우는 다르겠지. 너 역시 그전과는 다를 거고, 저어도 너는 그전과는 달라지려고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굶주린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걸 한번 생각해 봐. 그 사람에겐 먹을 것이 필요한 거야.”
“하지만 그는 내일이면 죽게 돼. 위장이 텅 빈 채 죽으나 가득 찬 채 죽으나 그게 무슨 뜻이 있느냔 말이야?”
“하지만 그는 아직 살아 있잖아.”
소년이 점잖게 한 마디 했다. 그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거기 모인 모든 유령들도 아버지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직 살아 있고 지금 배가 고픈 거야. 그런데도 그에게 먹을 걸 갖다 주지 않겠다고 거절하고 있는 거야?”
다시 모든 유령들이 시커먼 나무의 둥지가 흔들리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모습에 나는 소름이 끼쳤다. 나는 눈을 딱 감아버리고 싶었으나, 그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더욱이 아버지의 면전에서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좋아. 네 마을 받아들이겠어. 그 사람에게 음식을 갖다 주겠어.”
그러자 보이지 않는 지휘자의 지휘봉에 따르기라도 하듯이 유령들이 일제히 고개를 또 끄덕거렸다.
“그 사람에게 음식을 갖다 주겠어. 하지만 꼬마야, 너에게 먼저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죽은 사람들도 배가 고픈 거냐?”
소년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것도 몰랐니? 그들도 배가 고픈 거야.”
“그럼 죽은 사람들에게도 음식을 갖다 주어야겠구나?”
“그걸 질문이라고 하니? 그들에게도 음식을 주는 게 당연한 거야.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야…….”
“어렵지……. 어려워……. 어렵고 말고…….”
유령들이 일제히 이렇게 부르칮었다. 소년들은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너에게 비밀을 하나 얘기해 줄께.”
그가 속삭였다.
“한밤중이면 죽은 사람들이 그들의 무덤에서 나온다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
나는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도 그런 이야길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공동묘지에서 나와 교회당으로 간다는 얘기도 들어봤겠지?”
“그래, 나도 들어서 알고 있어.”
“그건 사실이야.”
하고 소년이 말했다. 그는 다음에 이어질 말이 아주 중요하다는 듯이 잠깐 동안 뜸을 들이고 나서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그의 목소리가 어찌나 작은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네가 얘기 들은 대로 그건 사실이야. 죽은 사람들은 밤마다 교회당에 모인다구. 하지만 네가 상상하는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먹기 위해서…….”
그러자 소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안의 모든 것들이―벽이며 의자며 사람들의 머리가―공기를 움직이거나 발을 바닥에 대거나 하지도 않고 예정된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나의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나는 원형을 이루며 소용돌이치는 군중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나는 눈을 딱 감아버리고 싶었고 귀도 막아버리고 싶었다. 그러자 그들 속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어머니도 있었고, 스승도 있었고 그 거지와 그 소년도 거기 함께 있었다. 나를 형성해준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 있는 이상, 나에게는 눈을 감거나 귀를 막을 권리가 없었다.
“그걸 나에게 주시죠.”
하고 나는 일라나에게 말했다.
“내가 그에게 갖다 주도록 하지요.”
그때 춤추던 사람들이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마치 내가 그들의 지휘자이고 나의 말이 지휘봉이라도 된다는 듯이. 나는 아직도 부엌문 앞에 서 있는 일라나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갑자기 가드가 달려 나오며 나보다 먼저 그녀의 옆에 섰다.
“내가 가져가겠어.”
하고 그가 말했다. 그러고는 난폭하게 그녀의 손에서 컵과 쟁반을 빼앗아서는 곤두박질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요압이 자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제 두 시를 지났군.”
“그거밖에 안 됐어요? 꽤 긴 밤이군요. 이렇게 밤이 길게 느껴지기는 난생 처음이에요.”
“그래요. 정말 길군요.”
요압이 동감을 표시했다. 일라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가끔, 도무지 끝이 없고 무한정으로만 계속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비 올 때도 그래요. 비가 올 때면,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뭔가 영속적이고 영원한 느낌을 받게 되거든요.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혼자서 말하곤 해요. 오늘도 비가 내리는구나. 아마 이 비는 내일까지 올 거야. 모레까지, 다음 주일까지, 아니 다음 세기까지 계속해서 올 거야, 라고요. 하지만 오늘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밤은 아마 내일까지 계속될 거야. 아니 매일, 매주, 매 세기 계속될 거야, 라고요.”
그녀는 갑자기 말을 끊고는 블라우스 끝동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에 밴 땀을 닦았다.
“왜 이 방안이 이렇게 숨이 막히는지 모르겠군요.”
일라나가 다시 말했다.
“유난히 이렇게 밤늦은 시각에 말예요.”
“아마 새벽이면 시원해지겠지요.”
요압이 대꾸했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해는 몇 시에 뜨지요?”
“다섯 시쯤.”
“지금 몇 시죠?”
“두 시 이십 분이군요.”
요압이 자기의 시계를 보며 대답했다.
“엘리샤, 당신도 더워요?”
일라나가 나에게 물었다.
“네, 덥군요.”
일라나는 테이블 곁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창문 쪽으로 다가가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도시는 멀리 떨어진 가공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도시는 깊은 잠에 떨어진 채 불안한 꿈을, 희망 없는 꿈을 낳고 있었다. 그 꿈은 다음날에는 더 많은 갖가지 꿈을 낳게 될 것이다. 이 꿈들은 번갈아 가며 새로운 영웅들을 탄생시킬 것이며, 그 영웅들은 각각 뜬눈으로 밤을 지면서 이른 새벽이면 죽이거나 죽거나 할 운명을 준비하게 될 것이었다.
“일라나, 정말 덥군요.”
하고 나는 일라나에게 말했다.
“숨이 막혀서 견딜 수가 없어요.”
'문학방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홀로코스트 38 / 죽은 사람은 하나님을 심판할 수 있다 (0) | 2026.07.17 |
|---|---|
| 홀로코스트 37 / 따뜻하게 살아 있는 손 (0) | 2026.07.16 |
| 홀로코스트 35 / 사형집행자를 만든 사람들 (1) | 2026.07.14 |
| 홀로코스트 34 /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 살아있을 뿐 (1) | 2026.07.13 |
| 홀로코스트 33 / 너를 죽이고 말겠다 (4) | 2026.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