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33 / 너를 죽이고 말겠다
“내 목숨은 웃음이 구해 주었어요.
부켄발트에 있을 때였는데 어느 겨울이었지요.
모두는 추운 날씨에 모두 누더기를 걸친 채 날마다 수백 명씩 죽어갔어요.
매일 아침 우리는 막사 밖으로 나와 그들이 청소를 끝마칠
때까지 눈을 맞으며 두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몹시 아팠고 혹시 탄로가 나면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돼서 막사 안에 숨었어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어요.
청소부들이 와서 나를 찾아냈으니까요.
그들은 나를 막사의 부반장 앞으로 끌고 갔어요.
부반장은 계속 질문을 퍼부어대고 나서 손으로 내 목을 조르며 냉혹하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너를 목졸라 죽이고 말겠다’ 나는 그의 억센 팔에 목이 졸린 채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어요.
그 순간 이제 나는 끝장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온몸의 피가 머리 쪽으로 쏠리고
아이들의 장난감 풍선처럼 커다랗게 부풀리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아마 그런 꼬락서니는 만화 속에 나오는 꼬마 광대와 흡사했을 겁니다.
그러자 갑자기 목을 조르고 있던 그 부반장이 내 꼬락서니가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유쾌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더니 손아귀를 풀고는 껄걸 웃어대지 않겠어요? 그는 나를 죽이겠다는 생각도 잊어버리고 한참 동안 웃어댔어요. 그렇게 돼서 결국 나는 살아났어요. 그런 상황에서 그의 유머 감각 때문에 결국 나는 살아났다는 게 우습지 않아요?”
엘리위젤은 당시에 그가 느꼈던 극적인 상황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기를 기대하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모두들 차가운 찻잔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침묵이 한참 계속되었다. 모두는 벌써 과거를 회상하며 괴로웠던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일에 흥미를 잃고 있었다. 우리가 과연 무엇이 자기의 목숨을 지금까지 부지시켜 주었는가에 대하여 자문자답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기데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영국인에게 먹을 걸 갖다 주어야 할 거요.”
그렇구나 하고 엘리위젤은 생각했다. 기데온 역시 지금껏 영국인을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틀림없이.
“난 그가 배고프리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엘리위젤이 큰 소리로 말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식욕이 날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덧붙여서 자신에게 혼잣말을 했다.
“그를 죽여야 하는 나 역시 식욕이 날 리 없고…….”
이렇게 말하는 엘리위젤의 음성이 조금 이상하게 들린 모양이었다. 모두들 고개를 퍼뜩 들고 그를 꿰뚫어 보았다. 그는 그런 눈길을 오히려 의아해하며 완강한 어조로 되풀이했다.
“그렇고 말구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배고픔을 느낄 리가 없어요.”
엘리위젤이 거듭 이렇게 말하자 좌중은 돌처럼 굳은 채 누구 한 사람도 꼼짝하지 않았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관례적으로 마지막 식사를 제공한다는 건 웃기는 얘기라구요.”
그리고 다시 큰 소리로 말을 이었다.
“농담 치곤 가장 나쁜 악취미지요. 시체가 되어 나갈 사람에 대한 모욕이지 뭡니까. 그가 위장이 텅 빈 채 죽는다고 해서 어떻다는 거지요?”
가드의 눈에 놀라는 기색이 나타났다. 그러나 일라나는 연민의 눈길로, 기데온은 우정의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요압은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눈길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아마 그것은 그가 상대방을 경계할 때 나타나는 태도일 것이다.
“그는 모르고 있어.”
하고 기데온이 한참 만에 말했다.
“그가 무얼 모른단 말이죠?”
엘리위젤은 자신의 음성이 커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반문했다. 어쩌면 엘리위젤은 자신의 고함소리라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분노로 일그러진 자신의 표정이 거울 속의 동작 없는 그림자 속에 비치는 것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숨이 막힐 듯한 방안에 어떤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좌중은커녕 자기 자신마저도 어쩌지 못하는 무력한 우유부단함에 스스로 짜증이 났는지도 모른다.
엘리위젤은 또 성자 같은 기데온을 광인으로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또 성자 같은 기데온을 광인으로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존 도슨의 이름을 가드에게 붙여주고 가드의 운명을 다비드에게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엘리위젤은 그 가운데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한 힘을 갖기 위해서는 죽음을 대신해야만 했다. 이제는 그보다 더 이상 식욕도 느끼지 않고 있을 영국군 대위 존 도슨의 개인적인 죽음이 아닌 죽음을.
“그가 무얼 모른단 말이죠?”
하고 엘리위젤은 귀에 거슬릴 정도로 되물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죽게 된다는 것도 모르고 있어.”
기데온의 음성은 슬픔에 젖어 착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위장은 알고 있을 겁니다.”
엘리위젤은 반박 조로 말을 받았다.
“죽게 된 사람은 자기 위장이 하는 말을 듣거든요. 그는 자기의 심장이나 과거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두지 않아요. 그의 귀에는 폭풍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구요. 그는 오직 그의 위장에 귀를 기울일 뿐이지요. 그러면 위장이 그에게, 그는 죽어가고 있다는 것, 그는 배가 고프지 않다는 것을 얘기해 주는 거지요.”
엘리위젤은 너무 빨리, 너무 크게 말했으므로 사뭇 숨이 가빠왔다. 그는 멀리 달아나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 동료들의 눈길이 그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죽음이 모든 출구를 막고 있었다. 그리고 사방은 캄캄한 밤이었다.
“지하실에 내려가 보겠어요.”
기데온이 말했다.
“혹시 뭐라도 좀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 보겠어.”
“아무것도 묻지 말라구요. 그저 이렇게만 말해요. 내일, 태양이 피처럼 붉은 지평선에 떠오르면 그 존 도슨은 그의 인생에, 그의 위장에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거라고 말예요. 그가 죽게 되어 있다는 걸 얘기해 주라구요.”
기데온은 엘리위젤에게 눈길을 고정한 채 일어섰다. 그는 지하실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는 부엌 쪽으로 걸어가다가 출입구 앞에서 잠깐 멈추었다.
“그렇게 말하지.”
그는 보일락말락하게 한번 웃었을 뿐 곧 발걸음을 돌렸다. 엘리위젤은 그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엘리위젤은 그가 그의 말에 동의해 준 것이 기뻤다. 그가 아닌 기데온으로서는 존 도슨에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에게 죽음을 알려주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람을 살해하는 편이 쉬우니까.
“자정이군요.”
하고 요압이 말했다. 자정은? 하고 엘리위젤은 생각에 잠겼다. 자정은 사자(死者)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지. 그리고 하나님이 여호와의 신전이 파괴되었음을 슬퍼하며 흐느끼는 시간이구. 또 인간이 자기 존재의 깊이를 재야 하고 폐허에서 여호와의 신전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 흐느껴 우는 하나님과 기도하는 사자들.
“가엾어라!”
일라나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이 엘리위젤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눈물이 그를 음미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물은 엘리위젤을 애무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일라나, 가엾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괴어 있었다. 아니, 눈 대신에 눈물만 있었는지도 모른다. 눈물은 자꾸자꾸 불어나 불투명해지며 가득히 넘치고 있었다. 엘리위젤은 갑자기 어떤 최악의 사태가 생길 것만 같아서 겁이 났다. 어스름에 묻힌 듯 일라나가 금방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 자신에 눈물 속에 빠져 죽을 것만 같았다. 엘리위젤은 그녀의 팔을 잡고 울지 말라고 달래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해요. 하지만 울지는 말아요.
그러나 그녀는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소리 내어 울려면 눈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눈이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눈이 있어야 할 곳에 눈물만이 가득히 넘치고 있었다.
“가엾어라!”
그녀는 이렇게 되뇌었다. 마침내 엘리위젤이 예견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일라나가 사라지고 대신 카라리네가 나타난 것이다. 엘리위젤은 그녀가 왜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환영을 보고도 그는 특별히 놀라지는 않았다. 그녀는 남성을 좋아했다. 그것도 유별나게 죽음을 생각하는 어린 소년들을 좋아했다. 그녀는 어린 소년들에게 사랑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있어서, 죽으려고 하는 남성이란 그녀가 사랑을 속삭이기를 좋아하는 어린 소년들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녀가 그 신비로운 방안에 나타났대서 놀라울 것은 없었다. 모두가 앉아 있던 방을 신비롭다고 한 것은, 그 방안에는 희생자와 사형집행자, 그리고 현재와 과거 사이에 엄연히 경계선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희생자와 사형집행자가, 그리고 현재와 과거가 공존할 뿐이었다.
엘리위젤이 카타리네를 만난 것은 1945년 파리에서였다. 그때 그는 부켄발트에서 파리에 막 도착했었다. 이미 말했다시피 부켄발트는 산 사람들이 죽은 사람으로 변하고, 산 사람들의 미래가 어둠으로 변해 가는 마술적인 곳이었다. 때문에 파리에 왔을 때 엘리위젤은 허약할 대로 허약해 있었으며 절반은 굶주린 상태였다. 여러 구호 단체 중의 한 곳에서 그를 어떤 캠프장으로 보내주었던 것인데, 그곳에서는 백여 명의 소년 소녀들이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캠프장은 노르망디에 있었으며, 이른 아침이면 팔레스타인에서와 마찬가지로 미풍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상쾌한 곳이었다.
엘리위젤은 프랑스어를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 다른 소년 소녀들과 즐겁게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들과 함께 먹고 함께 일광욕을 하기는 했지만 전혀 이야기를 나눌 길이 없었다. 그때 카타리네를 알게 되었다. 그녀만이 유일하게 독일어를 잘 알고 있는 듯해서 우연한 기회에 몇 마디 나누게 된 것이다. 그 후부터 그녀는 엘리위젤을 종종 식당으로 찾아와서는 잘 잤느냐는 둥, 식사는 즐겁냐는 둥, 혹은 낮에는 재미있게 보냈느냐는 둥 이것저것을 물어주었다.
그녀는 스물 예닐곱 정도의 나이로, 작은 키에 몸매는 여린 편이었다. 투명할 정도로 살갗은 희고 고왔으며 반짝이는 머릿결에 한 번도 운 적이 없는 푸르고 꿈꾸는 듯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은 전체적으로 섬세한 뼈대만을 제외하고는 마른 편이었다. 엘리위젤이 그때까지 여자를 가까이서 본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는 그 전에, 그러니까 전쟁 전에는 여자를 자세히 쳐다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 가거나 교회당에 갈 때에도 항상 눈길을 땅에 던진 채 돌담에 바싹 붙어서 걷곤 했었다. 물론 이 세상에 여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여자들에도 몸뚱이가 있고 가슴이 있고 다리가 있고 손이 있으며, 또 입맞춤으로 남자의 심장을 뛰게 하는 입술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카타리네가 그로 하여금 눈을 뜨게 했다.
캠프장은 숲의 가장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엘리위젤은 저녁 식사 후에 혼자서 그곳을 거닐며 살랑거리는 산들바람에 이야기를 걸거나, 더욱 푸르러 가는 하늘을 바라보거나 했다. 그렇게 혼자 있는 것이 좋았다.
어느 날 저녁 카타리네가 엘리위젤에게 자기가 함께 가도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너무 수줍어서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엉겁결에 좋다고 대답했다. 둘이는 반시간 동안, 그리고 한 시간 동안이나 말 한마디 없이 계속 걷기만 했다. 처음에는 그 침묵이 당혹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차츰 놀랍게도 그렇게 말없이 걷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두 사람의 침묵은 한 사람의 침묵보다 더 깊었다. 무심결에 엘리위젤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늘이 어떻게 열리는지, 저기를 한번 보세요.”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엘리위젤이 말한 대로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보이지 않는 바람에라도 휩쓸리듯 별들이 하늘 꼭대기에서부터, 어떤 것은 오른쪽으로, 어떤 것은 왼쪽으로 움직이면서 떼어져 나왔다. 그리하여 얼마 후에는 눈부시게 파랗고 점점 깊이와 윤곽을 뚜렷이 보이며 하늘의 중심부가 텅 빈 공간으로 나타났다.
“찬찬히 보세요.”
그는 말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잖아요.”
카타리네는 그의 등 뒤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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