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34 /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 살아있을 뿐
“이제 됐어요.” 하고 내가 다시 말했다. “그만 걷기로 하죠.”
나는 다시 걸으면서 하늘이 열리는 전설을 그녀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나이 많은 선생님이 말하기를 불행한 어린이들이 기도할 때
길을 내주기 위해 가끔 밤에 하늘이 열리는 경우가 있다고 했었다.
오늘처럼 하늘이 열리던 어느 날 밤에,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는 한 소년이 하나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너무 어려서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몰라요.
하지만 저의 병든 아버지를 낫게 해주세요.”
하나님은 소년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소년은 정말 기도자로 변하여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그 스승의 말에 의하면, 그 날부터 하나님은 가끔 그 소년의 얼굴을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늘을 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특별한 순간에 하늘을 쳐다보기를 좋아해요.”
나는 카타리네에게 말했다.
“정말 그 소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하지만 당신도 보았듯이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 소년은 다만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지요.”
그때서야 카타리네는 그 날 밤 만난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가엾어라! 가엾어라!”
그녀는 이야기 속의 소년을 생각하고 이렇게 안쓰러워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그 연민을 사랑했다.
그 날 밤 이후, 카타리네는 자주 나와 함께 산책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나의 어린 시절과 최근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내가 왜 캠프장의 소년 소녀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떨어져 있느냐고 물었다.
“그건 그들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쓰기 때문이지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소녀들 가운데는 독일어를 아는 아이도 몇 사람 있어.”
“하지만 난 그들에게 아무것도 할 말이 없어요.”
“할 말이 아무것도 없지는 않을 거야.”
그녀는 웃으면서 천천히 말했다.
“네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뿐이야.”
나는 그녀가 무슨 목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계속 웃으면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주 쉽게, 그리고 멋지게 사랑이란 이런 것이며 저런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인간이란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리고 남자란 그가 사랑하고, 사랑해야 하는 여자의 앞에서만 진정으로 살아있을 뿐이라고 했다. 나는 사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혹은 존재할 권리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녀에게 말했다.
“사랑이 어떤 것인지 너에게 보여주어야겠구나.”
그녀는 말했다.
다음날 저녁, 모두는 나뭇잎이 무성하게 우거진 좁은 길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왼편에 있었는데 그녀가 나의 팔을 잡았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곁부축을 바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녀의 따뜻한 체온을 나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얼마를 걷다가 그녀가 피곤하다며 저쪽 나무 아래 풀밭에 앉자고 했다. 모두는 풀밭에 앉았다. 그녀는 앉자마자 나의 얼굴과 머리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연거푸 키스를 퍼부었다. 처음에는 입술에 입술을 댈 뿐이었으나 다음에는 그녀의 혀를 나의 입안에 깊숙이 넣고 뜨겁게 태우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모두는 저녁이면 여러 차례 같은 장소로 함께 갔다. 그때마다 그녀는 사랑과 갈망에 대해서, 그리고 마음의 신비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는 나의 손을 잡아 자기의 젖가슴이나 허벅지 위로 가져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여자들이 젖가슴과 허벅지와 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으며 그것들이 남자의 심장을 뛰게 하고 피를 불타게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마침내 모두에게 마지막 저녁이 왔다. 방학이 끝나므로 나는 다음날 파리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모두는 저녁 식사를 끝내자마자 마지막으로 그 나무 아래로 갔다. 나는 왠지 슬프고 외로운 감정을 느꼈다. 카타리네도 나의 손을 꼭 쥔 채 말이 없었다. 밤은 상쾌하고 고요했다. 산들바람이 이따금 따뜻한 숨결처럼 모두의 얼굴 위로 스쳤다. 카타리네가 오랜 침묵을 깬 것은 새벽 한 시나 두 시 경이었으리라. 그녀가 우수에 찬 얼굴을 나에게 돌리며 입을 열었다.
“모두, 사랑 한번 하기로 해.”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온 몸이 떨려왔다. 난생 처음으로 사랑을 하려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이 세상에서 여자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나쁜 것에 대해서 말한다거나 온당치 못한 짓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꼴사납게 나는 그녀가 자발적으로 선수를 쓰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블라우스를 풀어내자 별빛 속에서도 그녀의 상아처럼 하얀 두 개의 젖가슴을 볼 수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마지막 옷가지를 벗어버리고 완전한 알몸이 되었다.
“너도 옷을 벗어.”하고 그녀가 명령했다.
나는 온몸이 마비된 듯했다. 목구멍에는 쇳조각이 걸려 있는 것만 같고 혈관 속에는 납덩이가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팔과 손도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나는 다만 그녀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리고 가쁘게 오르내리고 있는 두 젖가슴을 숨을 죽이고 주시하고 있었다. 쭉 펼친 그녀의 알몸에 다만 홀려 있을 뿐이었다.
“옷을 벗으라니까.”하고 그녀가 재촉했다.
그런데도 나는 움직일 수가 업었다. 그녀가 직접 나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신중하게 셔츠와 내의를 모두 벗긴 다음, 스스로 풀밭 위에 가만히 누우면서 말했다.
“날 가져.”
나는 그녀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녀를 노려보고 나서 그녀의 알몸을 키스로 감쌌다. 그녀는 넋을 읽은 채 말 한 마디 없이 나의 머리를 애무하고 있었다.
“카타리네. 먼저 당신에게 말해야 할 것이 있어요.”
그러자 그녀는 격정에 사로잡힌 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나무 사이로 불고 있는 미풍이 속삭임도 격정에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안 돼, 안 돼.” 하고 그녀가 울부짖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나를 가지면 돼. 그 밖엔 아무 말도 하지 마.”
나는 그녀의 반대를 무시하며 계속했다.
“카타리네, 우선 말해야 할…….”
“그만, 그만, 말하지 마.”
그녀가 사뭇 애원했다.
“아무 말도 말고 조용히 해줘. 어서 나를 가져. 제발 말을 말아 줘.”
“당신에게 말해야 할 것은 이거예요. 당신이 이겼다는 거예요. 당신을 사랑해요. 카타리네……. 난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나 갑자기 그녀가 오열을 터뜨리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이렇게 되뇌는 것이었다.
“가엾어라! 가엾어라!”
나는 후닥닥 옷가지를 주워들고 그녀에게서 멀리 달려갔다.
이제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가엾다고 안쓰러워한 것은 하늘로 올라갔다는 그 소년이 아니라 바로 나였던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 사랑에 대해서 말해 준 것은, 기도자로 변하여 천국으로 올라간 소년이, 다름 아닌 바로 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가 죽었다가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온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나에게 사랑을 이야기해 주었고, 나와 사랑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죽을 운명에 놓인 어린 소년들과 사랑하기를 좋아했고, 죽음에 사로잡힌 어린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을 즐거워했으니까. 그러므로 이날 밤 그녀의 환영이 팔레스타인에 갑자기 나타났다 해서 조금도 놀랄 것은 없었다.
“가엾어라!”
하고 일라나가 조용하게 다시 한 번 되뇌었다. 그리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깊은 한숨과 함께 그녀는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럴 것처럼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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