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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35 / 사형집행자를 만든 사람들

웃는곰 2026. 7. 14. 19:20

홀로코스트 35 / 사형집행자를 만든 사람들

 

나는 갑자기 방안이 숨 막힐 듯이 답답해 오는 것을 느꼈다.

너무 답답해서 정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비좁은 방에 그렇게 많은 방문객이 한꺼번에 몰려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자정 이후로부터 방문객들이 쇄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 가운데는 내가 아는 사람도 있었고 미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존경하는 사람도 있었고 잊었던 사람도 있었다.

 

나는 방안을 둘러보면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나의 형성에, 영구한 내 자아의 형성에 기여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나와 친밀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어떤 표지를 붙여 낱낱이 분류할 수는 없었다. 이름은 알고 있으나 얼굴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고, 얼굴은 아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점에서 나의 인생과 그들의 인생은 서로 교차하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아버지도 있었다. 어머니도 있었고 그 거지도 있었으며 백발이 성성한 스승도 있었다. 또한 모두가 게데라에서 매복하며 기다리던 영국군 호위대의 병사들도 있었다. 그밖에도 여러 친구들, 형제들, 동지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아는 사람들도 있었고, 부켄발트와 아우슈비츠 시절의 삶과 고통, 희망과 저주 속에서 알게 되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아버지의 곁에는 이상스럽게도 나를 닮은수용소 시절 이전의,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의, 아니 모든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의 나를 닮은 소년 하나가 늘 붙어 있었다.

아버지가 소년에게 미소를 던지면 그는 그 웃음을 받아 모두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그것을 나에게 보내주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그 방안이 왜 그토록 숨이 막혀 왔던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방은 한꺼번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비좁았던 것이다. 나는 군중 사이를 뚫고서 그 소년에게 다가가서 그가 보내준 미소에 대하여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소년에게 많은 사람들이 방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묻고 싶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소년에게 묻는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결례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버지가 거기에 계시는 이상, 아버지에게 묻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이 많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지요?”

그때 어머니는 아버지 곁에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는데 나를 보고는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불쌍한 것, 불쌍한 것…….”

 

아버지.”하고 나는 다시 아버지에게 물었다.

여러분들은 지금 여기에서 무얼 하고 계시는 거지요?”

아버지의 커다란 눈나는 그 눈 속에서 얼마나 자주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던가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아버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스승의 얼굴과 마주쳤다. 스승의 수염은 이전보다 훨씬 더 하얘졌다.

선생님!” 하고 이번에는 스승에게 물었다.

왜 이분들이 오늘 밤 여기에 오셨는가요?”

그때 나는 다시 어머니가 나의 뒤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불쌍한 것, 불쌍한 내 아들.”

선생님, 제발!”하고 나는 채근했다.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렇게 애원합니다.”

그러나 스승은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스승은 나의 질문을 듣고 있지 않는 것도 같았다. 나는 스승의 그런 침묵이 무서웠다. 이전에 내가 알고 있는 스승은 언제나 나의 의문을 시원스럽게 풀어주는 분이었다. 나에게 의문이 있을 때는 언제나 스승의 해답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때의 스승의 침묵은 항상 나를 안심시켜 주지 않았던가. 나는 그분의 눈동자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거기에는 두 개의 불덩이, 나의 얼굴을 확확 타오르게 하는 두 개의 태양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나의 질문에 대답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 거지에게 다가갔다. 그는 여러 사람들 위로 머리와 어깨를 비죽이 내밀고 있었다. 뜻밖에도 그가 나에게 자발적으로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오늘은 여러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는 밤이야.”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슬펐다. 그리고 피곤했다.

그렇군요.”하고 지친 어조로 대답했다.

오늘은 많은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는 밤이로군요.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내가 늘 생각하던 당신이라면 그 이유를 밝혀 나를 위로해 주십시오. 이분들의 눈길과 침묵의 뜻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이분들이 왜 오늘 밤 여기에 왔는지 그 이유를 가르쳐 주십시오. 제발, 간청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거지는 나의 팔을 잡고는 부드럽게 누르면서 대답했다.

저 쪽에 있는 어린 소년이 보이겠지?”

거지는 조금 전의 나를 닮은 소년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 보입니다.”

그 친구가 자네의 질문에 모든 걸 대답해 줄 거야. 그에게로 가보게.”

이번에도 나는 그가 사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거지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유령의 군중 속을 팔꿈치로 헤집으며 기력을 다하여 간신히 소년의 곁으로 갔다.

말해 주렴.”

나는 간청하는 어조로 소년에게 말했다.

여기서 넌 무얼 하고 있는 거니? 다른 사람들은 또?”

그는 놀랍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넌 모르고 있었니?”

나는 모르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내일 한 사람이 죽게 되어 있어. 그렇지?”

그래. 내일 새벽이야.”

네가 그 사람을 죽이기로 돼 있지, 그렇지?”

그래, 그건 사실이야. 내가 그의 사형집행을 책임지고 있어.”

그러면서도 모두가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단 말이냐?”

모르겠어.”

 

어렵게 생각할 거 하나도 없어. 모두가 여기에 온 건 사형집행자의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서야. 모두는 네가 그 임무를 수행하는 걸 지켜보고 싶은 거야. 그건 당연하잖아, 그렇지 않니?”

어째서 그게 당연하다는 거야? 존 도슨을 죽이는 일이 너희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너는 생전의 모두 모두를 대표하기 때문이야.”

예전의 나를 닮은 소년은 말했다.

어느 의미에서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존 도슨의 사형집행인이 되기 위해서 여기에 온 거지. 모두들 없이는 네가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야. 이제, 이해할 수 있니?”

 

그제야 나는 이해하기 시작했다. 살인과 같은 절대적인 행위에는 그 살인자 개인만이 연루될 뿐만 아니라 그를 만들어낸 사람들 모두가 연루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나 역시 한 사람을 죽이려는 과정에서 나와 연관된 사람들을 살인자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알겠지?”

그래, 알겠어.”

불쌍한 것, 불쌍한 것!”

어머니가 다시 중얼거렸다. 이렇게 되뇌는 어머니의 입술은 늙은 스승의 머리카락만큼이나 하얗게 질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