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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30 / 살인 작전

웃는곰 2026. 7. 9. 11:52

홀로코스트 30 / 살인 작전

 

엘리위젤은 이전에도 몇 차례 살인을 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상황이 지금과는 달랐다.

그 규모도 달랐으며 그 목격자 역시 달랐다.

몇 달 전에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이후, 그는 경찰과 여러 번 다투었고,

각종 파업 활동과 갈릴리의 푸른 초원이나 사막 지대를 건너오는 영국군

호위대를 공격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그리하여 쌍방 간에 다수의 사상자가 생겼다.

 

그러나 승산은 늘 그들 편에 있었다. 왜냐하면 밤은 모두의 동맹자였기 때문이다.

밤의 엄호를 받아 그들은 적을 불시에 공격하곤 했다.

그들의 진지에 불을 지르고, 수십 명을 살해한 다음,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유대 민족운동의 목표는 가능한 한 가장 많은 수의 적군을 죽이는 데 있었다. 그것은 아주 간단했다.

 

엘리위젤은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날부터, 그 땅에 그가 발을 디디던

그 날부터 이러한 사상은 그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하이파에 당도하여 엘리위젤이 배에서 내렸을 때, 두 사람의 동지가

그를 차에 태워 라마트간과 텔아비브의 중간쯤에 위치한 어느 이층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집은 표면상으로는 어떤 어학교수의 소유로 되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그와 같은 젊은이들에게 테러 기술을 가르치는 곳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어학을 배운다는 핑계로 드나드는 곳이었다.

 

지하실은 적의 포로나 인질들을 수용하는 토굴로 사용되었으며,

경찰이 찾고 있는 동지들의 은신처로도 쓰였다.

바로 여기에 존 도슨이 갇혀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은신처는 절대로 안전했다. 여러 차례 영국군이 이 집을 밑바닥에서 지붕 꼭대기까지 수색했고,

그들의 경찰견이 존 도슨이 숨겨 있는 곳에서 몇 인치 안 되는 데까지

냄새를 맡았지만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그들 앞에는 두꺼운 벽이 가로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가드는 테러리스트들의 교육을 감독했다. 다른 복면의 교관들은 연발권총이나 기관총, 수류탄 등의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테러리스트들은 적군을 등 뒤에서 소리 없이 처치하거나, 감옥에 갇힌 동지들을 실수 없이 구출할 수 있도록 단검 사용하는 방법도 배웠다. 교육과정은 6주일로 되어 있었다. 가드는 매일 두 시간 동안 모두에게 민족운동의 이념을 주입시켰다. 최후의 목표는 오직 영국인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내는 일이었다. 그는 그 방법으로서 협박테러기습 살해 등을 가르쳤다.

어느 날이든, 그들의 점령이 피를 흘리는 대가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영국인들은 이 땅에 더 이상 머물러 있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가드는 이렇게 모두에게 말했다.

설령 여러분이 좋아한다 해도, 모두들의 선택한 방법이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모두는 알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달리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세대에 걸쳐, 박해한 자들보다 훨씬 순수하고자 염원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히틀러의 유대인을 멸종시키기 위한 수용소 시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정의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들보다 몇 배나 더 떳떳하기에 충분할 만큼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나치가 우리 민족의 삼분의 일을 학살했을 때 인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을 이 지상에서 멸종시키려는 문제가 제기되었는데도 세상은 침묵을 지켰습니다.

2천 년의 역사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를 불공평하고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자들보다 더욱 불공평하고 비인간적으로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멸종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심부름꾼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형집행자보다는 그 희생자로 선택되어 왔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다른 곳도 아닌 여기 팔레스타인의 어느 산상(山上)에서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계명에 복종한 유일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모두 지나간 일입니다. 우리는 다른 민족들과 똑같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살인은 우리의 직업이 아니라 우리의 의무가 될 것입니다. 매일, 매주, 그리고 매달, 여러분은 오직 한 가지 목적, 곧 모두로 하여금 살인자가 되게 한 자들을 살해해야 한다는 목적에만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시 한 번 인간이 되기 위하여 살인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교육의 마지막 날에는, 복면을 한 낯선 사람이 모두에게 연설을 했다. 그는 지도자들이 열한 번째 계명이라고 부른 원수를 증오하라에 대하여 말했다. 그의 음성은 부드럽고 어딘가 수줍었으며 몽상적이었다. 엘리위젤은 그가 바로 노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모두들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했으며, 사뭇 감동에 떨게 했다. 그가 떠난 후에도 그의 연설은 오랫동안 엘리위젤의 내부에서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었다.

 

엘리위젤은 그에게 감사하며 운명이 저 변장한 거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구세주의 세계와 한편이 되었다.

엘리위젤은 일찍이 백발의 노스승이 그에게 여섯 번째 계명을 설명해주던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왜 인간에게는 살인할 권리가 없는가? 그것은 살인을 함으로써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직능을 행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살인이란 거리낌 없이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면하고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우리는 역사의 진로를 바꾸기 위해 하나님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될 수 있다. 모두가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손쉬운 일인가.’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내 테러리스트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처음 엘리위젤은 한동안 메스꺼운 기분을 억제하기 위하여 초인적인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 자신이 오로지 증오로 가득 차 있음을 보았다. 지난날을 회상해 보노라면 그 자신이 나치스 친위대 장교의 암회색 제복을 입고 있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입었던…….

 

영국군들은 토끼 같았다. 나무 밑 안전한 곳을 찾아 허둥대는 술 취한 토끼들. 그들에게는 머리도, 손도 없고 오직 다리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 다리로 술 취한 토끼들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러나 그들의 주위에는 엘리위젤의 눈들이 있었다.

불길처럼 모두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으므로 도망칠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는 그들에게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다. 총알이 불벽처럼 그들을 휩쌌다. 그들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산산이 부서졌다. 어쩌면 그 비명을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쪽은 모두 여섯 사람이었다. 엘리위젤은 다른 다섯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가드는 그들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날 그는 학교에 그냥 남았다. 마치 그는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가 보라구. 자네들은 나 없이도 훌륭하게 치러낼 것이야.’

다섯 동지들과 엘리위젤은 죽이거나 죽기 위하여 길을 떠나야 했다.

행운을 비네!”

가드는 모두가 떠나기 전에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하며 말했다.

난 자네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네.”

 

엘리위젤이 테러 활동의 정식요원으로 선임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그때 돌아올 때는(만일 돌아올 수 있다면) 지금과는 딴판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포화의 세례와 피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구역질을 하게 되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모두의 사명은 하이파와 텔 아비브 사이의 도로에서 영국군 호위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정확한 공격 지점은 헤데라 마을과 인접한 커브 길이었다. 시간은 늦은 오후, 모두는 작업장에서 돌아오는 노동자로 가장하고 공격개시 시각 삼십 분 전에 공격 지점에 도착했다.

 

만일 그들이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했더라면 모두의 위치가 발각되었을지도 모른다. 모두는 커브 길 양편에 지뢰를 묻은 다음 예정된 장소로 피했다. 50야드 밖에서는 그들을 페타그 티크바로 데려다 주기 위해 자동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는 그곳에서 헤어져 다른 세 대의 자동차를 타고 기지인 학교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영국군 호위대는 정확하게 예정 지점에 도착했다. 세 대의 무개 트럭에는 20여 명의 병사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가 바람에 나풀거렸고 얼굴이 햇볕에 빤짝이고 있었다. 이윽고 커브에 이르러 첫 트럭이 매설한 지뢰 하나에 폭파를 당하자 뒤를 따르던 트럭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급정차를 했다. 병사들은 황급히 땅으로 뛰어내렸지만 그들 역시 기총 사격을 받아야 했다. 그들은 허겁지겁 머리를 숙인 채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들의 다리는 커다란 낫에 베어지듯 총알에 맞아 잘려 나갔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모두 쓰러지고 말았다.

 

겨우 몇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엘리위젤 일당은 질서 있게 후퇴했으며 모든 일은 계획대로 실행됐다. 임무는 성공한 것이다. 학교에서 기다리는 가드에게 성공을 보고했다.

썩 잘했네. 어쩌면 노인께서도 믿으려 하지 않을 거야.”

 

메스꺼움이 엘리위젤을 엄습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는 공포에 떠는 토끼들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다리들을 보았고, 온통 증오에 가득 찬 그 자신을 보았다. 폴란드의 게토에서 보았던 나치스 친위대원들의 무서운 얼굴을 기억해 냈다.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그들은 항상 똑같은 수법으로 유대인들을 살육했다. 기관총이 사방에서 콩 볶듯이 발사되었다. 미친 듯이 발사!” 하고 명령한 친위대 장교는 껄껄 웃거나 게걸스럽게 음식을 처먹기도 했다. 그렇게 하여 커다란 낫으로 곡식을 베듯 유대인 학살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몇몇 유대인들은 총알의 불벽을 부수려고 발버둥쳤지만 그들의 머리는 이겨낼 수 없는 벽에 부딪칠 뿐이었다. 그들 역시 토끼들처럼, 포도주에 취하고 슬픔에 취한 토끼들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렇게 죽음이 그들을 베어 버렸다.

그렇다. 하나님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독일군 친위대원의 제복을 입고 그런 일을 수행한다는 것은 더욱 그랬다. 그러나 어떤 인질을 살해하는 것보다는 쉬었다.

 

엘리위젤의 첫 테러 활동 때, 그리고 그 뒤로도 계속된 테러 활동 때 그는 언제나 혼자가 아니었다. 그가 적을 죽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는 한 단체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존 도슨의 경우는 달랐다. 그 역시 이쪽 얼굴을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쪽 눈동자를 보게 될 것이다.

엘리샤, 자신을 괴롭히지 말게.”

가드가 말하면서 라디오를 끄고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이건 전쟁이라구.”

 

엘리위젤은 그에게 묻고 싶었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전쟁을 일삼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제복을 입고 있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그러나 입을 다물기로 했다.

하나님은 제복을 입지 않아. 하나님은 저항운동의 일원이며 테러리스트의 일원일 뿐이야.’

하고 혼잣말을 했다.

 

일라나는 야간 통행 금지령이 내리기 몇 분 전에 그녀의 경호원인 기데온, 요압과 함께 도착했다. 그녀는 불안하고 침울한 표정이었으나 전보다도 훨씬 아름다웠다. 그녀의 섬세한 외모는 마치 갈색 대리석으로 조각한 것 같았으며 그녀의 얼굴에는 가슴을 찢는 우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회색빛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고 입술은 아주 파리했다.

언제까지나 기억에 남을 거야……. 당신의 방송…….”

하고 가드가 중얼거렸다.

 

원고는 노인께서 써주신 걸요.”

하지만 당신의 목소리는…….”

목소리 역시 노인께서 창안하신 거예요.”

일라나는 피로에 지친 듯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으며 대답했다. 무거운 한순간의 침묵이 흐른 다음, 그녀가 덧붙였다.

오늘 나는 그분이 우는 걸 보았어요. 그제야 나는, 그분이 자주, 모두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자주 울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행복한 사람이로군, 하고 엘리위젤은 생각했다.

사나이가 우는 것은 어느 날 그가 울음을 멈추게 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우는 거야.’

요압은 두려움과 신중한 기대감에 싸여 있는 최근의 텔 아비브 소식을 모두에게 전해 주었다. 시민들은 대량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모든 신문기자들이 존 도슨의 처형을 중지하도록 노인에게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존 도슨의 이름이 다비드 벤 모세의 이름보다도 더 많이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노인께서 울고 있는 이유일 거야.”

가드가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모두가 유대인은 아직 박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그것을 물리칠 용기가 없기 때문이지.”

런던에서는 내각회의가 진행 중에 있어요.”

요압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뉴욕에서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시온주의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하고 있고 유엔에서도 이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다비드가 그런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하고 일라나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납빛으로 흐려졌다.

틀림없이 사형집행자가 얘기해 줄 거야.”

가드가 대답했다. 엘리위젤은 그의 목소리가 비통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비드는 어린 시절부터 가드의 친구였으며 그와 함께 민족운동에 참여했던 것이다. 가드는 이 사실을 다비드가 체포된 후에야 엘리위젤에게 얘기했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서로의 안전을 위해 좋지 않았다.

 

가드는 다비드가 부상을 입었을 때, 그 현장에 있었다.

그 날 작전의 지휘자였던 것이다.

그 작전은 모두가 암호명을 식은 죽 먹기라 불렀던 것으로, 한 용감한

영국군 보초의 어처구니없는 행동 때문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므로 만일 내일 새벽에 다비드가 교수형에 처해진다면 그것은 가드의 책임이었다.

설령 그가 부상을 입고 몸부림을 치며 복부에 총알이 박힌 채 땅바닥을 기며

총을 쏘아댔다 하더라도. 그 따위 어리석은 짓은 용감하고 완강한 바보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