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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28 / 이상한 인물을 만나다

웃는곰 2026. 7. 7. 10:47

홀로코스트 28 / 이상한 인물을 만나다

 

엘리위젤의 본명은 엘리샤이다. 혼자 살아남아

자기 이야기를 쓰게 된 그는 열여덟 살이었다.

를 유대인의 민족운동에 가담시킨 것은 가드였으며, 그를 팔레스타인으로 보낸 것도 가드였다.

말하자면 가드가 그를 한 사람의 테러리스트로 만든 것이었다.

엘리위젤은 파리에서 가드를 만났다. 전쟁이 끝난 후, 부켄발트에서 곧장 파리로 갔었다.

미군들이 부켄발트를 해방시켰을 때, 그들은 엘리위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러나 그는 그 제의를 거절했다.

어린 시절을 다시 체험하고 싶지도 않았고, 다른 나라 사람의 손아귀에 들어간

자기 집을 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양친이 돌아가셨다는 것,

 

그리고 고향 마을은 러시아 군들이 점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고향으로 돌아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고향에 가고 싶지 않아요.”

그럼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단 말이오?”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요.”

그것은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그는 5주 동안 부켄발트에 머무른 다음에, 파리행 열차에 실렸다. 프랑스가 그에게 임시수용소를 제공해 준 것이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어떤 구호단체에서 몇 달 머물 수 있도록 노르망디의 청소년 캠프장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노르망디에서 돌아오게 되었을 때는 예의 구호단체에서 드 마로아 가에 가구가 딸린 방을 하나 제공해 주는 외에, 생활비와 프랑스어 수업료에 충당할 수 있는 금액까지 지급해 주었다. 그는 콧수염을 기른 어떤 신사에게서 토요일과 일요일만 빼고 매일 프랑스어 수업을 받았다.

 

지금 그 선생 이름은 잊었지만 소르본대학의 철학과정에 입학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었다. 그는 자기가 희생물이 되어 온 여러 사건들의 의미를 알고 싶었으므로 철학공부는 그에게 매력이 있었다. 나치 수용소에서 슬픔에 못 이겨 자주 울었으며,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인간에 대하여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인간의 경우, 그의 창조자인 하나님의 잔인성만을 물려받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엘리위젤은 수용소라는 격리된 환경 속에서 자기의 반항을 재평가해 본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입장에서 반항을 관찰해 본다는 것이 사뭇 두려웠다. 너무나 많은 의문들이 그를 사로잡았다.

신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고통 속에서? 아니면 반항 속에서? 인간이 가장 참된 인간이 되는 때는 언제일까? 그가 운명을 감수할 때? 아니면 거절할 때? 고통은 인간을 대체 어디로 인도할까? 정화(淨化), 아니면 수성(獸性)으로? 철학이 그 해답을 주리라고 기대했었다. 철학은 그의 기억에서, 그의 의문에서, 그리고 죄의식에서 자유로이 풀어 주리라고 기대했었다. 철학이 그것들을 멀리 몰아내거나, 적어도 밝은 대낮의 광명 속으로 끌어내리라 기대했었다. 그의 목적은 소르본대학에 입학하여 그 자신을 그런 노력에 바치는 데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어느 것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가드야말로 그로 하여금 스스로 최초의 목적을 내동댕이치게 한 장본인이었다. 만일 오늘날 여전히 그가 의심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책임이 모두 가드에게 있는 것이다.

어느 저녁 무렵, 누군가 방문을 노크하는 사람이 있었다. 엘리위젤은 누가 찾아왔을까 궁금해 하며 문을 열러 나갔다. 그에게는 파리에 친구도 없었으며 달리 친지도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방안에 박혀 책을 읽거나, 눈을 손으로 감싼 채 앉아 있거나, 아니면 과거를 생각하거나 하면서 보냈었다.

자네와 좀 얘기를 나누고 싶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젊은 편으로 키가 후리후리했다. 그는 비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외모로 미루어 탐정이거나 모험가처럼 보였다.

들어오시죠.”

그가 말하기도 전에 그는 벌써 방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비옷은 벗지도 않았다. 그는 말도 없이 테이블 쪽으로 가더니 거기에 놓여 있는 책 가운데 한두 권을 두서없이 손에 들고 책장을 펼쳐보았다. 그는 책을 다시 내려놓은 다음에야 엘리위젤을 돌아보았다.

 

나는 자네를 알고 있네.”

그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나는 자네에 대해서 모든 걸 알고 있지.”

그의 얼굴은 햇볕에 그을렸고 표정은 심각한 편이었다. 머리카락은 제멋대로여서 한 가닥이 자꾸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두 입술은 잔인하리만큼 굳게 다물려 있었는데 오히려 그 점이 그의 친절함과 강인함을 드러내 보여주는 듯했고 눈길은 온화한 지성으로 넘쳤다.

당신은 나보다도 더 운이 좋군요.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으니까 말이오.”

자네의 과거를 말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건 아니야.”

미소가 그의 입술에 번졌다.

미래라는 것도, 나에게는 제한된 흥미를 줄 뿐이죠.”

그는 계속 미소를 지었다.

미래에 관심이 있는가?”

 

엘리위젤은 불쾌했다. 그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질문의 뜻이 얼른 다가오지 않았다. 그가 지니고 있는 어떤 것이 초조하게 만들 뿐이었다. 아마 그것은, 상대는 내가 누구인가를 알고 있지만, 나는 그의 이름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그의 우세한 지식의 이점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친밀함과 기대감이 섞인 눈길로 나를 주시했으므로, 엘리위젤은 순간적으로 그가 다른 사람을 잘못 알았거나, 그가 찾아온 사람은 자기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누구시죠? 네게 당신이 바라는 건?”

 

나는 가드라고 하네.”

그는 되울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대답했는데, 마치 모든 의문에 대하여 해답을 주는 헤브루 신비교의 한 구절을 발음하는 듯했다. 여호와가 나는 나이니라라고 말하듯 그는 나는 가드라 하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렇군요. 당신 이름은 가드로군요. 당신을 알게 되어 반가워요. 이제 당신 자신을 소개했으니, 당신의 방문 목적을 물어 봐도 될까요?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죠?”

그는 날카로운 눈길로 엘리위젤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한참 사이를 두었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네의 미래를 나에게 주기 바라네.”

 

엘리위젤은 유대교 하시딤 파의 전통 속에서 교육을 받아온 터였으므로 불가능이 없다는 신비한 메시지인 메슐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다. 바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가드의 음성은 그를 떨게 했다. 그의 음성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그 어떤 메시지보다 훨씬 강력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의 말을 어떤 절대자로부터, 어떤 무한자로부터 흘러나오는 듯했으며, 그 말이 전하는 의미 또한 사뭇 두렵고 매혹적인 것이었다. 가드야말로 메슐라처럼 느껴졌다.

그에게 그런 인상을 준 것은 그의 신체적인 외모가 아니라, 그가 말하고 있는 내용, 그것을 말하는 그의 몸가짐이었다.

당신은 누구죠?”

 

엘리위젤은 공포에 떨며 다시 한 번 물었다. 이때 무엇인가가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함께 여행할 길의 마지막에 이르러 너무나 다른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 사람을 마침내 저주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메신저야.”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순간 엘리위젤은 자신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을 느꼈다. 예감은 적중했던 것이다. 그는 운명이 그에게 보낸 한 사람의 메신저였으며, 그 사람에 대하여 어느 것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해야 했으며 그의 요구라면 희망마저도 버려야 했다.

내 미래를 원한다구요? 내 미래를 가지고 당신은 무엇을 할 작정이죠?”

 

그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권력을 쥔 자가 사람들에게 보이는 차갑고 쌀쌀한 것이었다.

자네의 미래가 큰 소리를 부르짖도록 만들겠네.”

이렇게 대꾸하는 그의 검은 눈동자에서 야릇한 빛이 났다.

 

처음에는 절망으로 부르짖게, 다음에는 희망으로 부르짖게 할 것이네. 그리고 마지막에는 승리의 함성이 되게 하겠네.”

엘리위젤은 그에게 하나밖에 없는 의자를 권한 다음 침대에 앉았다. 그러나 그는 선 채로 있었다. 하시딤 파 전설에 따르면, 메신저는 언제나 그의 육체가 천국과 지상을 연결하는 하나의 고리로서 봉사하는 것처럼, 선 자세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그렇게 서서, 여태껏 벗어본 적이 없는 듯한, 아니 그의 몸의 일부분인 듯한 레인코트를 걸친 채,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고 날카로운 눈길을 던지며 유대인 민족 운동에 대하여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워댔다. 더욱이 그는 다른 담배 개비에 불을 붙이는 순간에도 상대를 비뚜름히 노려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며 결코 말을 끊지도 않았다. 그는 새벽까지 말을 계속했다. 엘리위젤은 새벽까지 눈 한번 붙이지 않았으며 마음을 열었다. 마치 어떤 유령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영원의 불꽃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온갖 이상으로 가득 차 있는 밀교의 신비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백발이 성성한 스승 앞에 앉아 있는 어린 제자처럼,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날 밤 가드는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국민의 행동이 자유롭게 될 독립 조국의 회복에 대한 오랜 유대민족의 꿈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다. 그는 또 모두의 민족운동이 영국인과의 싸움에서 절망적인 상태에 직면해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었다.

영국 정부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소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수십만의 군대를 파견하고 있는데 비해 이족 민족운동 진영은 백여 명도 못 되는 형편이야. 하지만 모두는 그들의 마음속에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어. 자넨 내가 말하고 있는 뜻을 알겠나? 우리 때문에 영국인들은, 그렇지, 영국인이 전율하고 있는 거야!”

 

가드의 검은 눈동자에서 빛나고 있는 불꽃이 공포에 떨고 있는 수십만 영국군 병사들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는 듯했다.

엘리위젤은 그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 세상에서 떨고 있는 사람은 유대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까지도 모두 유대인은 역사를 떨게 하는 바람이 아니라 역사의 전율을 상징하는 존재일 뿐이라고 믿었다.

 

낙하산병, 경찰견, 탱크, 비행기, 기관총, 사형령 집행인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무서워하고 있어. 성지 팔레스타인은 지금 그들에게는 공포의 땅이 되어 있는 거야. 그들은 밤에 함부로 나오지도 못해. 뱃가죽에 구멍이 뚫릴까봐 젊은 아가씨들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얼굴에 수류탄 세례라도 받을까봐.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도 못하고 있어. 마음대로 말소리도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지도 못하지. 그들은 오직 두려워 떨고 있을 뿐이야.”

 

가드는 한참 사이를 두었다가, 팔레스타인의 푸른 하늘에 대해서, 그 고요하고 청명한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자네는 저녁 무렵이면 아름다운 어떤 여인과 산책을 할 수도 있으며, 그녀를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도 있어. 팔레스타인 이 천년의 역사는 자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지. 하지만 그런 밤들도 영국인들에게는 조금도 아름답지 않아. 모든 밤이 그들에게는 무덤처럼 열렸다가 닫히거든. 밤마다 그들 병사들은 혹은 두 명씩, 혹은 세 명씩, 혹은 수십 명씩 암흑에 삼켜져서 볼 수 없게 되지.”

가드는 엘리위젤이 수행해야 할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와 함께 기꺼이 투쟁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유대의 민족운동은 참신한 신병(新兵)의 보충을 요구하고 있었다. 미래를 나라에 바치기로 결심한 젊은이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들 젊은이들의 앞날이 모여 이스라엘의 자유와 팔레스타인의 미래가 될 터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엘리위젤이 들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의 양친은 시온주의자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시온주의는 하나의 감동이었으되 지도상의 어떤 지점, 어떤 정치적 슬로건, 혹은 인간이 살육되고 사망되는 어떤 주의, 주장은 아니었다.

가드의 이야기느 정말 매혹적이었다. 그에게서 유대 역사의 한 왕자를 보았다. 그는 엘리위젤의 상상력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유대 민족의 과거가 이제는 그들의 종교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하여 운명이 그에게 보내준 메신저처럼 보였다.

 

그는 말하고 있었다. 오라, 어서 오라. 미래는 팔을 활짝 펼치고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부터 그대는 더 이상 굴욕감을 느낄 필요가 없으며 박해를 받거나 동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대는 이제 남의 나라에서 야영하는 이방인이 아니다. 오라, 형제여, 오라!

가드는 이야기를 멈추고 새벽이 다가오고 있는 창문을 밖을 내다보았다. 그림자들은 사라지고 정체된 물 빛깔의 어스레하고 때 이른 미진한 빛이 침실에 스며들고 있었다.

당신의 제의를 수락하겠어요.”

엘리위젤이 그 말을 너무나 조용히 했으므로 가드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창문 곁에 선 채 그대로 있었다. 한순간의 침묵이 흐른 다음, 그는 돌아서며 말했다.

 

새벽이 되었군. 하지만 우리나라의 새벽은 이곳과는 다르지. 이곳의 새벽은 회색이지만 팔레스타인의 새벽은 불처럼 붉지.”

나는 당신의 제의를 수락하겠어요.”

듣고 있었어. 자네는 3주일 안에 떠나게 될 거야.”

엘리위젤은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가을의 미풍에 몸을 떨었다.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기 전까지의 3주일, 하고 생각했다. 아마 그 떨림은 미풍 때문이 아니라 이런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의식중에 가드와 함께 여행하는 길의 끝에는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또 다른 한 사람인 그에 의해 살해된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