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27 / 사람을 죽여야 하다니
한 시간 전에 가드는 엘리위젤에게 ‘노인’의 결정을 말해 주었었다.
모든 사형집행이 그러하듯 이번에도 사형집행은 새벽에 있을 예정이었다.
‘노인’의 메시지는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엘리위젤도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족운동’은 그 약속을 지킨다는 사실을 팔레스타인의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었으며 영국인들 역시 그 점을 알고 있었다.
한 달 전에 모두의 지도자이며 전사(戰士)인 사람이 테러 활동 중에 부상을 입고 경찰에 끌려갔었다.
군사 법정은 계엄령의 강제규정을 적용하여 그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의 위임 통치국인 영국이 모두에게 강요한 열 번째 사형선고였다.
‘노인’은 사태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방관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는 성지 팔레스타인을 하나의 교수대로 바꾸어 놓으려는 영국인의 기도를 더 이상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새로운 행동노선을 발표하였다. 곧, 보복이 그것이었다.
포스터와 지하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그는 엄숙한 경고를 발표했다.
다비드 벤 모세를 처형하지 말 것, 그의 죽음은 그대들 영국인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임,
이 시각부터 모든 유대 전사의 교수형에 대한 대가로 영국의 어머니들은 그 아들들의 죽음을 슬퍼하게 될 것임,
‘노인’은 이상의 경고와 함께 당장 영국군 장교를 한 사람 볼모로 잡아올 것을 모두에게 명령했다.
그리하여 운명은 존 도슨 대위를 모두의 희생물로 명령했던 것이다. 그는 어느 날 밤 혼자서 밖을 거닐다가 유대인 전사에 의해 납치되었던 것이다.
존 도슨의 납치사건은 전국을 극도의 긴장상태로 몰아넣었다. 영국군 당국은 48시간 통행금지령을 내린 가운데 가가호호 수색을 단행하여 수백 명의 용의자를 체포해 갔다. 탱크 부대가 교차로에 진을 치고 기관총이 지붕 꼭대기 여기저기에 장치되고 철조망 발리케이트가 골목골목에 쳐졌다.
팔레스타인의 전 시가지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인질을 은밀히 감추어 두고 있는 또 하나의 보다 작은 감옥이 있었다.
영국의 팔레스타인 주재 고등판무관이 무시무시한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포고문에 의하면, 만일 그들 대영제국의 존 도슨 대위가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스트들에 의하여 살해될 경우, 팔레스타인의 전 인구는 멸종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전국이 공포에 휩싸였다.
그리고 ‘유대인 학살’이란 추악한 말이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들이 정말 그렇게 할까?”
“왜 못해?”
“영국인이? 그들까지도 ‘유대인 학살’을 계획할 수 있을까?”
“왜 못해?”
“그들은 감히 그러지 못할 거야.”
“왜 못해?”
“세계여론이 그걸 도저히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왜 못해? 히틀러를 생각해 보게나. 세계여론도 한동안은 히틀러를 어쩌지 못했지 않아.”
상황은 급박해졌다. 유대의 민족지도자들은 신중을 기했다. 그들은 ‘노인’과 긴밀히 연락을 취하여 국가의 장래를 위하여 사태를 너무 깊은 곳으로 끌고 가지 말도록 ‘노인’에게 간청했다. 신중론자들과 ‘노인’은 이쪽의 ‘복수’에 대하여, 그리고 저쪽의 ‘학살’에 대하여 토론을 거듭했다. 신중론자들은 이쪽의 복수가 저들로 하여금 이쪽의 어린 아이들과 부녀자들에게 앙갚음을 하게 하는 최악의 사태를 몰고 올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만일 그들이 다비드 벤 모세를 교수형에 처한다면, 저들의 존 도슨도 죽어 마땅하고 만일 우리가 운동을 포기한다면 영국인들은 하나의 승리를 기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허약하고 무기력하기 때문에 포기한 것으로 간주할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우리가 마침내 항복하고, 좋소, 당신들 마음대로 하시오, 당신들에게 반대한 우리 유대 청년들을 마음대로 교수형에 처해도 좋소, 하고 두 손을 들어버린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도 된단 말입니까? 안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는 절대로 현재의 민족운동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우리가 지금 포기한다는 것은 저들에게 항복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니까요. 폭력이야말로 저들 영국인들이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입니다. 피에는 피, 죽음에는 죽음으로 대항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얼마 후, 전 세계가 그 태도를 바꾸었다. 런던과 파리, 그리고 뉴욕의 주요 신문들이 다비드 벤 모세의 이야기를 머리기사로 장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십 명의 특파원들이 리다로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예루살렘은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한편 런던에서는 존 도슨의 어머니가 식민성(殖民省)을 방문하여 자기 아들의 생명과 연관을 맺고 있는 다비드 벤 모세의 사면을 청원하고 나섰다. 이에 식민성의 장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어요. 유대인들은 결코 당신의 아들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오. 부인도 잘 알다시피 그들은 고함을 지르고 울부짖고 소란을 피워대고 있지만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학살’이란 말 때문에 무서워 떨고 있어요. 조금도 염려할 것 없습니다. 부인의 아들은 죽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팔레스타인 주재 고등판무관은 그보다는 덜 낙관적이었다. 그는 본국의 식민성에 관대한 조치를 요망하는 전문을 보냈다. 관대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영국에 대한 세계의 나쁜 여론을 무마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식민성 장관은 개인적인 답신을 보내어 고등판무관의 요망사항이 내각회의에서 토의되었음을 알렸다. 그러나 내각의 두 사람만이 관대한 조치에 찬성했을 뿐 다른 사람은 모두 반대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들 반대파들은 정치적인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대영제국의 위신 때문에 반대했던 것이다. 적군에 대한 사면이 자국(自國)의 허약성을 노출하여 젊은 이상주의자들에게 자칫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국민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일단의 테러리스트들이 대영제국을 향하여 이래라저래라 한다더라’라고 쑥덕거릴 것이었다. 식민성 장관은 이상의 내용을 알린 다음, 다음과 같은 자기 개인의 의견을 첨부했다.
“이제 우리는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게 되었소. 더욱이 하원(下院)의 반발을 한번 생각해 보시오. 반대파들이 모두를 몰아내기 위하여 이런 절호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참이오.”
“결국 ‘반대’라는 겁니까? 고등판무관은 물었다.
“그렇소.”
“각하, 그러면 존 도슨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들은 그를 문제 삼지도 않을 거요.”
“각하, 저로서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당신에겐 당신의 의견에 대한 정당한 권리가 있소.”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예루살렘 공영방송은 다비드 벤 모세의 사형집행이 다음날 새벽에 아크레의 감옥에서 거행될 것임을 알렸다. 사형수의 가족들에게는 마지막 면회가 허락되었으며 시민들에게는 평온을 유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 방송이 있은 후에 다른 뉴스들이 낮 동안에 알려졌다. 유엔총회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첫 토의 안건으로 상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중해에는 불법난민을 실은 두 척의 선반이 억류 중에 있으며, 이미 빠져나간 난민들은 키프러스에 수용되어 있다고 했다. 이어서 나타냐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는데 한 사람이 죽고 두 사람이 부상당했다는 소식과 함께 일기예보가 있었다. 내일은 따뜻하고 맑겠으며 시계(視界)는 무한……. 모두는 첫 뉴스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테러행위로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에 처해질 다비드 벤 모세…….
아나운서는 존 도슨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이 없었다. 그러나 뉴스를 듣고 있던 사람이면 모두 다비드 벤 모세와 마찬가지로 그도 역시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민족운동’은 약속을 꼭 지켜왔으니까.
“누가 그를 죽이죠?”
하고 엘리위젤이 가드에게 물었다.
“자네야.”
“내가요?”
엘리위젤은 귀를 의심했다.
“자네야. 이건 모두 ‘노인’의 명령이야.”
순간, 엘리위젤은 마치 주먹으로 얼굴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이 갑자기 무너지는 것만 같고 악몽이 득실거리는 끝없는 어떤 심연으로 아스라이 떨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건 전쟁이라구.”
가드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듯해서 그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건 전쟁이라구. 자넨 자신을 괴롭히지 말게나.”
내일, 엘리위젤은 한 사람을 죽이게 될 것이다 라고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현기증을 느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한 남자를 죽이게 될 것이다.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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