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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29 / 두 죽음의 의미

웃는곰 2026. 7. 8. 19:59

홀로코스트 29 / 두 죽음의 의미

 

라디오 예루살렘……. 마지막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다비드 벤 모세의 사형집행이 내일 새벽에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팔레스타인 주재 고등판무관은 시민들이 침착히 행동할 것을 호소했으며 9

이후에는 통행을 금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누구도 거리에 나오는 것이 금지될 것입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누구도 거리에 나와서는 안 됩니다.

군 당국은 누구든 발견되는 즉시 발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무심결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비드 벤 모세의 이름을 입에 올렸을 때 그는 눈물을 글썽거렸음에 틀림없었다.

전 세계에 걸쳐 이 유대의 젊은 전사는 시대의 영웅이 되었다. 유럽의 모든 저항운동 단체는 영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으며 각국 수도의 랍비 대표들은 영국 국왕에게 공동 탄원서를 보냈다. 그들의 전보(30명의 서명이 들어 있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자신의 이상에 충실한 것이 죄일 뿐인 젊은이를 교수형에 처하지 마시오.>

 

그리고 한 유대 사절단은 백악관을 방문하여 대통령으로부터 중재에 나서겠다는 약속을 받기도 했다. 그 날 전 인류의 다음은 다비드 벤 모세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저녁 여덟 시가 되었다. 밖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가드는 불을 켰다. 밖에서는 그 어린 아이가 아직도 울고 있었다.

망나니 같은 놈들. 놈들은 그를 처형하려 해.”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고 손은 땀에 젖었다. 그는 방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한 개비를 다 태우고 나면 멀리 던져버리고 다시 피워 물었다.

놈들은 그를 처형하려고 해! 악당 놈들!”

 

라디오 방송은 뉴스를 끝내고 합창 프로그램을 계속했다. 엘리위젤이 라디오를 끄려 하자 가드가 제지했다.

지금 여덟 시 반이야. 끄지 말고 방송 쪽으로 돌려 보라구.”

그러나 엘리위젤은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얼른 다이얼을 맞출 수가 없었다.

내가 돌려보지.”

가드가 말했다. 이윽고 유대측 방송이 시작되었다. 아나운서는 모두에게 친숙한, 낭랑하고 침착한 목소리의 소녀였다. 매일 밤 이 시각이면 모든 남자, 여자, 어린이들이 일손과 놀이를 멈추고, 언제나 똑같은 여러분은 지금 자유의 소리 방송을 듣고 계십니다…….’로 시작되는 떨리는 듯하면서도 신비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은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이 소녀, 아니면 이 젊은 여성을 사랑했다.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노인만큼이나 위험한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듯 환히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녀 역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다만,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다섯도 채 안 되는 몇 사람만을 제외하고는. 엘리위젤과 가드는 그 몇 사람 속의 두 사람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일라나였다. 그녀는 가드와 사랑하는 사이였고 엘리위젤은 그들 두 사람과는 친구였다. 그들 두 사람의 사랑은 엘리위젤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랑도 있다는 것, 그런 사랑은 그 흔적을 따라 웃음을 가져오고 기쁨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었다.

 

여러분은 지금 자유의 소리 방송을 듣고 계십니다…….”

그녀는 되풀이했다. 가드의 어두운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마치 일라나의 또렷하고도 감동적인 목소리를 손에 쥐고 눈으로 보고 있는 듯 라디오 위로 몸을 꺾고 있었다. 오늘 밤, 그녀의 목소리는 곧 가드의 목소리였으며 전 세계의 목소리였다.

두 사람이 내일 새벽에 죽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일라나는 마치 성경의 한 구절을 읽고 있는 듯했다.

한 사람은 모두의 칭송을 받을 만하고 다른 한 사람은 동정을 받을 만합니다. 모두의 형제이며 길잡이인 다비드 벤 모세는 그가 왜 죽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으나 존 도슨은 모르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인생에 있어 행복의 문턱에 선 혈기왕성하고 지적인 젊은이입니다. 그들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불가능합니다. 이들 두 사람은 내일 새벽이면 똑같은 시간, 똑같은 순간에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죽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사이에는 하나의 깊고 깊은 심연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다비드 벤 모세의 죽음은 의미심장하나 존 도슨의 죽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비드는 영웅이고 존은 제물입니다…….”

이십여 분 동안 일라나는 말을 계속했다. 그녀가 한 방송의 마지막 부분은 오직 존 도슨에게 바치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더 많은 위로와 격려가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엘리위젤은 다비드도 모르고 존도 몰랐다. 그러나 자신도 그들의 운명과 함께 묶여 있음을 느꼈다. 바로 그때, 일라나가 존 도슨의 임박한 죽음을 말하면서 엘리위젤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순간적으로 알아차렸다. 엘리위젤은 존 도슨의 사형집행자였으니까.

그럼 다비드 벤 모세는 누가 죽이는 것일까? 순간 엘리위젤이 바로 그들 두 사람은 물론, 이 지구상의 다른 모든 다비드 벤 모세존 도슨들을 죽이도록 결정된 장본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엘리위젤은 사형집행자로 겨우 열여덟 살이었다. 가책과 고통의 18, 노력과 반항의 18. 18년은 그런 것들의 합계였다. 엘리위젤은 인간성의 순수하고 무구한 본질을 알고 싶었으며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그는 지금껏 진리라는 것을 탐구해 왔다. 그런데 이제 하나의 살인자가 되어, 죽음과 신의 작업에 하나의 공범자가 되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벽에 걸린 거울 앞으로 다가가 자기의 얼굴을 들려보았다. 그 순간 외마디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도처에서 자기의 눈동자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에 그는 죽음을 무서워했었다. 죽는 것을 무서워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죽음의 상념에 사로잡혀 떨었었다.

죽음이란?” 하고 반백의 스승 칼만은 그에게 말했다.

 

팔 없이 있는 것, 다리 없이 있는 것, 입 없이 있는 것, 머리 없이 있는 것이야. 그것은 온통 눈동자뿐이지. 혹시 앞으로 네가 도처에서 눈동자를 가진 인간을 만나게 되거든, 그것이 곧 죽음이라고 확신해도 좋다.”

가드는 아직도 라디오에 몸에 기울이고 있었다.

나를 봐요.”

그러나 그는 엘리위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존 도슨, 당신에게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하고 일라나는 말하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 당신의 어머니는 틀림없이 흐느껴 울고 있거나, 깊은 절망 속에서 남몰래 애를 태우고 있을 겁니다. 어머니는 오늘 밤 잠을 이루지 못할 겁니다. 당신의 심장이 영원히 멎을 때 당신 어머니의 심장은 크게 뛸 겁니다. 그 분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들이 내 아들을 죽였다고. 그러나 도슨 부인, 모두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가드, 나를 좀 봐요.”

엘리위젤은 다시 말했다.

 

가드는 고개를 들어 흘끗 그를 한번 쳐다보고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고는 다시 일라나의 목소리로 돌아갔다.

가드는 내가 곧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구나, 하고 엘리위젤은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런던의 자기 아파트 창문 곁에 앉아 있는 존 도슨의 어머니는

그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밤을 응시하고 있을 것이며, 그 밤은 수천 개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으리라.

 

아닙니다, 도슨 부인, 모두가 살인자가 아닙니다. 당신 나라 내각의 장관들이 살인자입니다. 그들은 당신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에게 빵과 우유를 제공해 주기 위해,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그를 형제로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정부는 그를 우리의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증거로 그들은 당신 아들의 죽음을 보증하는 서명까지 한 것입니다. 아닙니다, 모두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엘리위젤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저쪽의 어린 아이는 이미 울음을 그쳐 조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