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25 / 거울에 비친 해골
엘리위젤은 4월 11일까지 부켄발트에서 머물렀다.
그 기간 동안에 일어났던 생활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건 중요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는
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엘리위젤은 어린이들만 수용되어 있는 막사로 옮겨졌다.
거기에는 6백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전선은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엘리위젤은 철저하게 빈둥거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면 그것은 먹는 것뿐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해서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이따금 한 방울의 남아도는 수프를 먹는 꿈을 꾸었다.
4월 5일. 역사의 수레바퀴가 그 방향을 바꾸었다.
오후 늦게였다. 모두는 언제나처럼 친우대원이 모두의 인원을 파악하러 오기를 기다리며 막사에 정렬한 채로 서 있었다. 그러나 점호시간에 친위대원이 지각해 본 일은 부켄발트의 역사에 일찍이 없었는데 지각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수용소 소장의 명령이 확성기를 통해 방송되었다. 모든 유대인은 집합장에 모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히틀러는 자신의 약속은 틀림없이 지키려 하고 있었다. 막사의 어린이들은 집합장을 향해 행진했다. 모두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무반장인 구스타프가 곤봉을 휘두르며 몰아냈던 것이다. 그러나 도중에서 만난 재소자들이 귀엣말로 속삭여 주는 것이었다.
“막사로 돌아가라. 독일군이 너희를 쏘아 죽이려고 해. 빨리 막사로 돌아가 꼼짝 말고 가만히 있으라구.”
아이들은 막사로 돌아갔다. 또 돌아오는 길에 수용소 안의 레지스탕스가 유대인들을 저버리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유대인들의 학살을 저지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수용소 소장은 출석점호를 하루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시간이 늦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유대인들이 마치 유대인이 아닌 것처럼 행세하는 일대 변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소장은 다음날의 점호에는 모든 재소자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출석해야 한다고 엄명을 내렸다.
출석점호가 실시되었다. 수용소 소장은 부켄발트 수용소가 곧 폐쇄된다는 발표를 했다. 앞으로 매일 10개 막사씩 재소자들이 철수될 것이며, 빵과 수프의 급식도 일체 중지될 것이라고 했다. 마침내 철수가 시작되었다. 매일 수천 명의 재소자들이 수용소의 정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4월 10일. 아직도 수용소 안에는 어린이 수백 명을 포함하여 2천여 명의 재소자가 남아 있었다. 수용소 당국은 모두들 잔여 재소자들을 그 날 저녁까지 모두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런 후에 다음날 수용소를 폭파시키기로 했다.
그래서 모두는 드넓은 집합장에 모여 5열로 선 채 수용소 정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공습경보였다. 모두는 허겁지겁 막사로 돌아갔다. 결국 그 날 저녁의 철수 계획은 시간이 너무 늦어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철수는 그 다음날로 연기되었다.
모두는 굶주린 탓으로 고통이 심했다. 6일 동안이나 풀 몇 포기와 취사장 근처에서 찾아낸 약간의 감자 껍질을 먹은 것 외에는 꼬박 굶었기 때문이다. 아침 10시가 되자, 친위대원들이 수용소 곳곳에 흩어져서 마지막 희생자들을 집합장에 모으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레지스탕스가 행동을 개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무장한 사람들이 사방에서 들고 일어났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수류탄이 터졌다. 어린이들은 막사의 맨바닥에 납작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전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오 무렵이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친위대원들은 모두 도주해 버렸으므로 수용소의 운영은 레지스탕스가 맡아서 했다.
저녁 6시쯤 첫 미국 탱크가 부켄발트 수용소의 정문에 들어서고 있었다.
자유인으로서 모두가 취한 첫 행동은 너나없이 음식물에 달려드는 일이었다. 모두는 오직 먹는 것만을 생각했다. 보복을 하는 일도, 가족을 찾는 일도 먹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오직 빵 이외에는 안중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허기를 채운 후에도 독일군에게 보복할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음날에는 청년 몇 사람이 감자와 의복을 얻고, 여자와 함께 자기 위해서 바이마르로 떠났다. 그러나 그들에게서도 역시 보복할 기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부켄발트가 해방된 지 3일 후에 엘리위젤은 극심한 식중독에 걸렸다. 그래서 병원으로 옮겨져 생사의 분수령을 오르내리며 2주일을 보냈다.
어느 날, 엘리위젤은 원기를 완전히 회복하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는 맞은편 벽에 걸려 있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싶었다. 게토를 떠난 이래 자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거울의 저쪽에서 해골 하나가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해골이 노려보던 그 눈빛을 영영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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