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 24 / 아버지 죽음으로 얻은 자유
아버지는 이질에 걸렸다. 그래서 다른 환자 다섯 명과 함께 침대에 누워 있게 되었다.
엘리위젤은 아버지 곁에 앉아서 지켜보았다. 그가 보기에도 아버지가 다시
죽음을 면하게 되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버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불덩이 같은 입술을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엘리제르야, 내가 금덩이와 돈을 묻어둔 장소를 일러 주어야겠다.
지하실에……. 너도 알다시피…….”
두 번 다시 아들에게 이야기해 줄 시간이 없을까봐 걱정이라도 된다는 듯이,
아버지는 점점 빠른 속도로 말했다. 그러나 엘리위젤은 지금이 마지막이 아니며
모두는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아버지는 아들 말을 듣지 않았다. 듣고 싶었다 해도 거의 탈진상태에 빠져 있었으므로
더 이상 들을 수도 없었다. 아버지의 입술 사이로 피가 섞인 침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두 눈을 감은 채 숨을 헐떡거렸다.
엘리위젤은 아버지와 침대를 함께 쓰고 있는 한 재소자에게 한 끼 분량의 빵을 주고 잠자리를 바꾸었다.
오후에 의사가 왔다. 엘리위젤은 그에게로 가서 아버지가 병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이리로 데려와!”
아버지가 일어설 수 없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의사는 그 이상 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아버지를 의사에게 데리고 갔다. 의사는 아버지를 빤히 쳐다본 다음 퉁명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버지는 병을 앓고 계십니다. 이질을요.”
“이질? 그건 내 분야가 아니야. 나는 외과의사라구. 잔말 말고 다른 사람에게 자리나 비켜 줘!”
이의를 달아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얘야, 난 이제 틀렸다. 침대로 데려가 다오…….”
엘리위젤은 아버지를 침대로 데리고 가서 눕혔다. 아버지는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좀 주무세요, 아버지. 주무셔야 해요.”
아버지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숨소리가 사뭇 거칠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헐떡거렸다. 이제야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으리라고, 그 무엇보다도 진실을 알게 되었으리라고 엘리위젤은 확신했다.
다른 의사가 막사에 들어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 의사는 환자를 해치우기 위해서 왔을 뿐이었다. 엘리위젤은 그 의사가 환자들을 향하여, 게을러 빠져서 침대에 누워 뒹굴기만 한다고 고함을 질러대는 소리를 들었다. 당장 그에게 달려들어 목을 졸라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럴 용기도 그럴 힘도 없었다. 엘리위젤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고 있었다. 주먹을 너무 세게 쥐고 있었으므로 손이 아팠다.
‘아, 저 의사 놈들, 목을 졸라 죽여 버렸으면! 이 세상을 온통 불 질러 버렸으면! 내 아버지의 살인자들!’
그러나 그의 울부짖음은 목구멍에 걸려 있었다.
엘리위젤이 빵 배급을 타 가지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어린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얘야, 저들이 나를 마구 때렸다!”
“누가요?”
엘리위젤은 아버지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저 프랑스 사람……. 그리고 저 폴란드 사람……. 저들이 나를 때렸어.”
아버지의 어린애 같은 한 마디 한 마디는 아들 가슴에 또 하나의 상처를 입혔고 또 하나의 증오심을 일으켜 주었으며,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게 하는 또 하나의 증오심을 일으켜 주었다. 뿐만 아니라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리게 하는 또 하나의 명분을 주었다.
“엘리제르야……. 엘리제르야……. 저들에게 나를 때리지 말라고 말해 주렴.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저들이 나를 때리는 걸까?”
엘리위젤은 아버지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그들은 비웃었다. 엘리위젤은 그들에게 빵과 수프를 갖다 줄 테니 아버지를 잘 봐달라고 달랬다. 그들은 또 웃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화를 냈다. 그들은 아버지가 혼자서는 대소변을 보러 밖으로 나갈 수도 없기 때문에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다음날, 아버지는 빵을 빼앗겼노라고 우는 소리를 했다.
“주무시는 동안에요?”
“아니야, 난 자지 않았어. 저들이 내 위에 덤벼들어 빵을 빼앗아 갔어. 그리고 또 때렸어. 얘야, 난 더 못 참겠다. 물 한 모금만…….”
아버지는 물을 마셔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엘리위젤이 양보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애타게 간청했다. 물은 아버지에게 가장 나쁜 독약이었다. 그러나 그것밖에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겠는가? 물을 마시거나 마시지 않거나, 어차피 모든 것은 곧 끝나고 말 터인데…….
“얘야, 너만이라도 이 애비에게 인정을 베풀어 다오…….”
인정을 베풀라니! 엘리위젤은 그의 외아들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일주일이 지났다.
“이 사람이 너의 아버지지, 그렇지?”
내무반장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중병이로군.”
“의사가 아무도 진료도 해주려고 하지 않아요.”
“의사는 이제 너의 아버지를 위해 아무 일도 해주지 못해. 너도 마찬가지야.”
그는 털이 수북한 손을 엘리위젤의 어깨에 얹으며 덧붙였다.
“얘야, 내 말을 잘 들어. 여기가 집단수용소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돼. 여기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 거야. 절대로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는 안 돼. 아버지도 생각해서는 안 돼. 여기서는 아버지는 물론, 형제도 없고 친구도 없는 거야. 모두가 자기만을 위해 살고 죽는 거야. 내 너에게 확실한 충고를 한 마디 하겠어. 네 몫의 빵과 수프를 너의 늙은 아버지에게 주지 마. 네가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러지 않으면 너는 자신을 죽이는 거야. 오히려, 아버지에게 배급되는 음식을 네가 먹어야 돼.”
엘리위젤은 거부하지 않고 그의 말을 들었다. 그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말을 받아들일 용기는 없었다. 엘리위젤은 혼자 생각했다.
‘너의 아버지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너는 두 사람 분의 빵과 수프를 당연히 먹어야 해…….’
그러나 단 일 초도 못 되어 엘리위젤은 죄책감을 느꼈다. 아버지에게 주려고 조금이나마 수프를 구하러 달려 나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수프를 원치 않았다. 다만 물을 찾을 뿐이었다.
“물은 마시면 안 돼요. 수프를 좀 드세요.”
“속이 타서 그래. 얘야, 왜 그리 인정머리가 없니? 물 좀 다오.”
마침내 아버지에게 물을 조금 갖다 드렸다. 그리고는 출석점호를 받기 위해 막사를 나갔다. 바깥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막사로 돌아왔다. 환자 행세를 하기 위해 맨 꼭대기 침대 위로 올라가 드러누웠다. 환자들은 계속 막사에 남아 있어도 되기 때문이었다. 임종에 직면한 아버지를 도저히 혼자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가끔 신음소리만 들릴 뿐 사방은 정적에 싸였다. 친위대원들이 막사 앞에서 여러 가지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장교 한 명이 모두가 누워 있는 침대 곁을 지나갔다. 그때 아버지가 나에게 간청했다.
“얘야, 물 좀……. 속이 타는구나. 내 배가…….”
“거기, 조용히 햇!”
장교가 빽 고함을 질렀다. 그래도 아버지는 간청을 계속했다.
“엘리제르야……. 물 좀…….”
장교가 아버지에게 다가와 조용히 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자 참다못한 장교가 손에 들고 있던 곤봉으로 아버지의 머리를 세차게 한 번 내리쳤다. 엘리위젤은 꼼짝하지 않았다. 무서웠다. 아버지처럼 한 대 맞을까봐 무서웠던 것이다.
아버지가 숨이 깔딱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것은 아들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다.
“엘리제르…….”
엘리위젤은 아버지의 숨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면서도, 여전
히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출석점호가 끝난 후에 침대에서 내려왔을 때, 아버지의 입술이 무엇인가 어렴풋이 말소리를 내면서 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엘리위젤은 아버지 위에 허리를 굽힌 채 한 시간 이상이나 지켜보면서, 피로 물든 얼굴이며 부서진 머리의 모습을 마음속에 깊이깊이 새겨두었다.
취침 시간이 되었으므로 아버지의 위에 있는 침대로 올라갔다.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살아 있었다. 그 날은 1945년 1월 28일이었다.
엘리위젤은 이튿날인 1월 29일 새벽잠에서 깨었다. 아버지가 누워 있던 자리에는 다른 환자가 누워 있었다. 그들이 새벽이 되기 전에 아버지를 들어내어 화장장으로 운반해 갔음에 틀림없었다.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숨을 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무덤에는 기도 소리도 없었고 그를 추모하는 촛불 한 자루 켜 있지 못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말한 한 마디는 아들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엘리위젤은 그 부름에 응답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울 수가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그에게는 이미 흘릴 눈물이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엘리위젤은 자기 존재의 깊은 곳, 흔들리는 양심의 깊은 곳에서 찾고 있던 그 무엇, 유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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