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22 / 아직 죽지 않은 10명
지붕도 없이 느리게 달리는 찻간엔 바람이 맴돌고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모두는 서로 몸과 몸을 밀착시켰다. 머리는 텅 비고 무겁기만 했다.
가지가지 희미해져 가는 기억으로 소용돌이치고 무관심은 정신을 무디게 했다.
여기에 있거나 저기에 있거나 무엇이 다른가?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좀 더 늦게 죽으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밤은 길기만 했다. 끝없이 길기만 했다.
이윽고 지평선 위에 희미한 잿빛이 어렴풋이 비치자 옹기종기 엉겨 붙은
사람들의 형체들이 드러났다. 어깨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사람,
웅크리고 있는 사람, 다른 사람들 위에 얹혀 있는 사람.
그들의 모습은 새벽의 여명에 드러나는 묘지의 먼지 덮인 묘비들과 흡사했다.
엘리위젤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과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을 구별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양쪽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엘리위젤의 눈길은,
눈을 커다랗게 뜬 채 허공을 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 한동안 머물렀다.
그의 검푸른 얼굴은 서리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아버지는 그의 곁에서 담요를 두른 채 웅크리고 있었다.
두 어깨 위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럼, 아버지 역시 죽었단 말인가? 아버지를 불러보았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고함을 지를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마음속에 이런 깨달음이 엄습해 왔다.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 더 이상 살려고 버둥거릴 이유가 없다.’
열차는 황량한 들판의 한가운데서 멈추었다. 열차가 갑작스레 정차했기 때문에 그 반동에 흔들려 몇 사람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몸을 똑바로 세우고 놀란 눈길로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밖에는 친위대원들이 지나가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죽은 자들은 모두 내던져! 시체들은 모두 밖으로 던져!”
살아 있는 사람들은 기뻐했다. 비좁은 공간이 한결 넓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원자들이 나서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져 보기도 했다.
“여기도 하나 있어! 던지라구!”
그들은 웅크리고 있는 사람의 옷을 벗겼다. 그러면 생존자들은 그 옷을 탐욕스럽게 나눠 가졌다. 시체를 확인하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죽은 사람의 머리털, 한 사람은 발을 양쪽에서 잡고 밀가루 부대를 던지둣 화차 밖으로 던졌다.
곳곳에서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이리 와! 여기도 있어!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꼼짝도 앉아.”
지금까지 무관심한 상태에 있던 엘리위젤은 두 사람이 아버지에게로 다가오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아버지를 위에서 감싸 안았다. 얼음처럼 차가웠다. 아버지 얼굴을 찰싹 때렸다. 그리고 얼어붙은 손을 비벼대며 큰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일어나요. 저들이 아버지를 화차 밖으로 내던지려고 해요!”
그러나 아버지는 꼼짝도 않았다. 두 ‘무덤 파는 인부’가 엘리위젤의 멱살을 쥐었다.
“그냥 나둬. 죽었다는 걸 너도 분명히 알 수 있잖아.”
“아니에요!”
엘리위젤은 고함을 질렀다.
“아버진 죽지 않았어요! 아직 안 죽었어요!”
그러면서 있는 힘을 다해 아버지를 찰싹찰싹 때렸다. 잠시 후에 아버지의 두 눈까풀이 흐려진 눈 위로 약간 움직였다. 약하게나마 숨도 쉬고 있었다.
“봤지요?”
엘리위젤은 소리쳤다. 두 사람은 가버렸다.
모두 화차에서는 20구의 시체가 밖으로 던져졌다. 열차는 폴란드의 어느 벌판 깊은 눈 속에 매장하지도 않은 채 몇 백 구의 발가벗은 시체를 남겨두고 다시 이송을 계속했다.
모두는 음식도 배급받지 못했다. 그래서 빵 대신 눈으로 허기를 견뎠다. 낮도 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밤은 어둠의 찌꺼기를 모두의 영혼 속에 남겨 두었던 것이다. 열차는 느린 속도로 달렸다. 가끔 몇 시간씩 정차했다가 다시 출발하곤 했다. 눈발은 사정없이 내렸다.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모두는 낮이나 밤이나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한 사람 위에 다른 한 사람이 감싸듯 포갠 채 모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얼어 붙어버린 시체들이나 다름없었다. 모두는 눈을 내리감은 채 시체들을 내려놓을 다음 정거장만을 기다렸다.
열차는 열흘 낮, 열흘 밤을 그렇게 달렸다. 가끔 독일의 읍내 마을을 지나가기도 했다. 그럴 때는 대개 이른 아침녘으로 모두는 출근길의 노동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열차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람들은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어느 날 열차가 정차했을 때 어떤 노동자가 빵 한 덩이를 가방에서 꺼내어 화차 안으로 던졌다. 그 순간 화차 안에서는 일대 쟁탈전이 벌어졌다. 십여 명의 굶주린 사람들이 빵 덩어리를 향하여 우르르 몰려든 것이다. 그들은 빵 부스러기 몇 개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 독일 노동자는 이런 광경을 보고 아주 재미있어 했다.
엘리위젤은 몇 년 후, 그와 똑같은 장면을 남예멘의 수도 아든에서 볼 수 있었다. 모두 배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원주민’들에게 동전을 던져주면, 그들은 그것을 줍기 위해 물 속으로 다이빙을 하여 수라장을 이루었다. 승객들은 그런 장면을 재미있어 했는데, 그 중에서도 어떤 귀족 출신의 매력적인 파리 여성이 그런 장난을 유난히 즐겼다. 엘리위젤은 그때 뜻밖에 어린이 두 명이 동전을 갖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면서 서로 목을 졸라 죽이려는 장면을 목격했다. 엘리위젤은 그 귀부인을 향해 돌아섰다.
“제발!” 하고 그녀에게 간청했다.
“더 이상 동전을 던지지 마십시오!”
“왜요? 난 자선을 좋아해요…….”
한 덩이의 빵이 떨어진 그 화차 안에서는 실제로 싸움이 벌어졌다. 서로 덮치고 서로 짓밟고 깨물며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길들이지 않은 야수처럼 그들의 눈에서는 동물적인 탐욕과 증오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서로서로 이빨과 손톱을 날카롭게 곤두세워 비상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노동자들과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이 화차 주위에 우우 몰려들었다. 아마 그들은 이렇게 진기한 화물을 실은 화차를 일찍이 구경하지 못했으리라. 잠시 후에는 사방에서 빵 조각이 이 화차, 저 화차 안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구경꾼들은 해골만 남은 인간의 부류가 한 조각의 빵을 먹기 위해 처참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빵 한 조각이 이쪽 화차에도 떨어졌다. 엘리위젤은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그에게는 십여 명의 야만인들과 맞붙어 싸울 힘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와 멀지 않은 곳에 한 노인이 네 발로 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노인은 한쪽 손을 계속 가슴에 대고 있었다. 처음에 누군가에게 가슴팍을 쥐어 박혀 그러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야 노인이 셔츠 속에 빵을 한 조각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노인은 재빠른 동작으로 빵을 꺼내 한 입에 먹었다. 순간 노인의 두 눈이 번쩍 빛남과 동시에 죽은 얼굴에 찌푸림 같은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미소가 사라졌다. 노인 가까이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 나타난 것이다.
그림자는 이내 노인을 위에서 덮쳤다. 노인은 바닥에 나뒹군 채 그림자로부터 주먹세례를 받으며 비명을 질렀다.
“마이어, 마이어, 내 아들아! 나를 몰라보겠지? 난 네 애비다. 아이쿠, 넌 애비를 죽이고 있어! 난 빵을 좀 갖고 있다. 네게도 주려고, 네게도 줄…….”
노인은 이내 무너졌다. 그러면서도 주먹 안에는 조그만 빵 조각이 쥐어져 있었으며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것을 본 아들이 아버지 위에 덮쳐 낚아챘다. 노인은 가래 끓는 낮은 소리로 무엇인가 중얼거리다가 모든 사람의 무관심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몸을 뒤져 빵을 찾아내서는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들 역시 멀리 가지 못했다. 그를 본 두 사람이 달려들었고,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가세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두 물러갔을 때, 엘리위젤의 옆에는 2구의 시체,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때, 엘리위젤은 열다섯 살이었다.
그 화차 칸에는 마이어 카츠라는 아버지의 친구가 있었다. 그는 부나에서 정원사로 일하며 가끔 모두에게 약간의 싱그러운 채소를 갖다 주고는 했었다. 그는 평소의 영양 상태가 좋은 편이어서 어느 누구보다도 수용소 생활을 잘 견뎌냈다. 또, 모두들 가운에서는 비교적 기운도 있었기 때문에 모두 화차의 책임자로 있었다.
호송이 시작된 지 3일째가 되는 날 밤,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 보니 누군가가 두 개의 손이 엘리위젤의 목을 조르며 죽이려고 했다. 엘리위젤은 겨우 한 마디 고함을 지를 수 있었다.
“아버지!”
그밖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숨이 막혀왔다. 그때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 공격자를 붙잡았다. 그러나 너무 허약한 아버지로서는 공격자를 상대할 수 없었으므로 마이어 카츠를 불렀다.
“이리 와! 빨리! 누군가 내 아들을 목졸라 죽이려고 해!”
잠시 후에 엘리위젤은 풀려났다. 그 공격자가 무엇 때문에 그를 목 졸라 죽이려고 했는지 이유를 아무도 모르고 있다.
며칠 후에 마이어 카츠는 아버지에게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클로모, 나도 이젠 점점 쇠약해지고 있어. 날이 갈수록 힘이 빠지고 있다구. 전처럼 버틸 수가 없어…….”
“져서는 안 되네.”
아버지는 그를 격려했다.
“자넨 이겨내야 돼. 자신을 잃어서는 안 되네.”
그러나 마이어 카츠는 무겁게 신음소리를 냈다.
“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클로모!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도저히 견뎌 나갈 수가 없어…….”
아버지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모두 가운데서 가장 건장하고 힘센 사람인 마이어 카츠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아들은 첫 번째 추려내기에서 뽑혀 가고 말았다. 그때도 울지 않던 그가 지금 울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그도 이제는 약해진 것이다. 그토록 끈질기던 그의 기운도 이제 바닥이 나고 만 것이다.
여행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는 무서운 바람이 휘몰아치고, 눈도 쉬지 않고 쏟아져 내렸다. 모두는 종말이, 진짜 종말이 다가왔다고 느꼈다. 얼음장처럼 매섭게 휘몰아치는 질풍을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었다.
누군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런 때에는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안 돼. 우린 얼어 죽고 만다구! 자, 모두들 일어나 운동을 하자구…….”
모두는 일어섰다. 눈에 젖은 담요를 더욱 단단히 몸에 감고 억지로 몇 발자국씩 움직이며 주위를 맴돌았다.
그때 갑자기 열차 안에서 비명소리, 상처 입은 짐승의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또 누군가가 죽어간 것이다.
자기들 역시 그렇게 죽어 가리라고 느끼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 비명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 이들의 비명소리는 무덤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이내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나 통곡하는 소리, 신음하는 소리, 괴로워 우는 소리는 바람에 실려 눈보라 속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이 울부짖음 소리는 전염병처럼 화차에서 화차로 번져갔다. 갑자기 수백 명의 울부짖음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울려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는 누구 때문에, 그리고 왜 우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다만, 임종 때의 저 마지막 숨소리, 깔딱거리며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소리였다. 모두는 죽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남아 있는 힘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밤은 여전히 길기만 했다.
마이어 카츠가 신음소리를 냈다.
“왜 저들은 당장 우리를 총살하지 않지?”
그 날 저녁, 차는 목적지에 당도했다. 밤이 깊었을 때 호송병들이 와서 모두를 화차에서 내리게 했다.
죽은 사람들은 열차 안에 버려둔 채, 아직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마이어 카츠는 열차 안에 남아 있었다.
그 마지막 밤에 가장 많은 사망자가 생겼다. 처음 모두 화차에는 백 명이 탔었다. 그
러나 모두가 화차에서 내렸을 때는 아버지와 엘리위젤을 포함하여 모두 10명뿐이었다.
모두는 부켄발트에 도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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